무지개의 반대편에는

쓰고 있는 글의 외전격? 아마?

붐붐 by 달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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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빛나는 청춘의 나이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정반대로 거무칙칙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었고.

다행인건 나는 그런 내 속마음을 감추고 멀쩡한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은하야.”

낯간지럽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 활기차고 쾌활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색함에 손등을 메만지는 소년이 있었다.

“백강윤.”

“어. 그, 알잖아. 우리 체육대회 같이 나가게 된 거.”

배드민턴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남녀 팀전으로 같이 나가게 되었으니 아마 같이 연습하자고 온 것이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할거냐고 물어보니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 언제 돼?”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너 배드민턴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여러 개 나가잖아. 활동하는 것도 있고.”

계주랑 축구, 점심시간 간이 탁구 시합에 동아리 부스 운영까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말하니 백강윤은 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네 친구들이 옆에서 계속 떠들었잖아. 꼭 들으라는 것처럼.

“아무리 그래도 학생 회장보단 바쁘진 않을걸. 내가 맞출게. 언제 돼?”

하지만 맞춰준다면야 거절할 이유도 없다. 공부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언제나 시간을 금처럼 여겨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생활 기록부에도 들어가지 않는 체육대회 시합 따위 지든 이기든 상관 없다. 그러나 상대편에 ‘그 새끼’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 회장님은 소수의 의견이라면 그냥 묵살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 하나하나가 소중한 의견들인데. 안 그래?’

빠득. 생각만으로도 이가 갈렸다. 오늘도 회의시간에 웃는 낯으로 속을 박박 긁는데 어찌나 주먹을 날리고 싶던지. 당장 일어나 멱살을 잡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공적으론 조질 수 없으니 사적으로라도 조져주마.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짧게 한 후, 고개를 들고 생글 웃고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백강윤은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띄우고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강윤 웃으면 뒤에 후광 비침. 리얼임. 믿으셈.’

어, 좀 빛나는 것 같기도…

백강윤 얼굴에 홀려서 호들갑을 떠는 헛소리인 줄 알았더니 어느 정돈 사실을 포함하고 있었나 보다.

뱃속에 능구렁이를 백마리 키우고 있는 놈을 생각하다 티없이 순진한 강아지 같은 녀석을 보니 조금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짜증나고 저조한 상태였지만 그걸 이 순한 녀석에게 티내지 않을 정도는 됐다.

“화요일이랑 목요일 점심시간에 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바쁘면 둘 중 하나만 해도 돼.”

“아니야 괜찮아. 내가 시간 내볼게. 그럼 화요일 점심시간에 보자! 1시 까지 오면 돼. 그때까지 올 수 있어? 급하게 먹어서 체하는 거 아니지?”

화풀이하려고 한 나 자신 반성하자. 이런 착한 애한테 무슨 짓을…

“그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 그럼 그날 1시에 보자.”

“그래! 내일 보자 은하야!”

강아지 꼬리가 붕붕 휘날리는 것 같은 착각을 뒤로 하고 이은하는 몸을 돌렸다. 아직 오늘치 영어 단어를 다 외우지 못했기 때문에 길을 걸으며 단어장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refraction’

(빛, 소리 등의) 굴절

저 단어를 보니 아까 환하게 웃던 백강윤의 미소가 떠올렸다. 아까 보았던 빛은 단순히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한 착시인가.

고개를 갸웃하다 언뜻 그 빛 사이로 다채로운 색들이 쨍하게 시야에 들어왔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 내일 보자 은하야!’

그냥 후광보다는 무지개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보통 그 나이대 이런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설레는 무언가로 변질되기 마련이지만 단어장을 넘기는 순간 칼같이 끊어지며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백강윤에겐 굉장히 아쉬울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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