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샘플 페이지

<샘플(일부)>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샘플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인 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사람의 손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손을 보았기에 구조대원에겐 그를 구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급히 동료에게 무전을 한 그는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 잔해를 함께 들어 올렸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은 한 남자를 구조했으니 벌써 사흘 전 일이 되었다. 사흘 후 경찰과 보더 관계자 앞에 그날 일을 진술한 구조대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질문했다. 맞았나요? 예?

사람이 맞았나요?

…….

경찰과 보더 관계자는 잠시 서로의 눈을 보며 입을 다물었고, 대답은 경찰보다 먼저 입을 연 보더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 조사 중입니다.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맞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당연하다시피 요구받은 침묵에 구조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려는 듯 떨어뜨린 뒤 다시 들지 못했다. 그리곤 그 채로 뇌까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분명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아니면 뭐죠? 사람이 아니면 그건……. 생각의 연쇄를 끊은 건 보더 관계자보다 먼저 입을 연 경찰이었다. 아직 조사 중입니다.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으나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이윽고 다음과 같은 말로 상황을 끝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흘 전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던 남자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이름을 묻는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말함으로써 구급대원이 이를 경찰에게 알리도록 도왔고,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명단을 조회한 경찰은 곧 보더와 병원에 연락을 넣어 그를 격리토록 지시했다. 이윽고 붐벼야 할 응급실에 남은 환자라곤 남자 하나. 의사와 간호사, 환자는 모두 대피하고 경찰들은 그를 둘러싼 뒤 앞서 공포탄을 제거한 권총을 그에게로 겨눈 채로 그와 대치 상태를 이뤘다.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그들과 대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나 아무도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고 말을 섞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고 만다. 경찰들은 두려움과 혐오로 범벅된 시선을 그에게로 고정할 뿐이다. 그마저 일부는 회피하며 남자를 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대치는 보더에서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원 트리거를 지참하고 전투체로 전환한 그들은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그에게로 다가갔고, 그 뒤 일정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남자를 보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결국 남자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휴스 크로닌의 출신에 대한 의심을 무마하고자 내 이름으로 소문을 퍼뜨렸죠.”

“……!”

“아마토리 치카가 아이비스로 본부 벽을 날려버렸을 때 나와 사토리, 아라후네가 함께 있었습니다.”

“스나이퍼 트리거를 처음 기동했을 때는…….”

“사와무라와 함께 보더에 입대했을 때…….”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파득 떨리는 어깨들을 무시하고 쉼 없이 입을 움직이다 보면 마침내 가운데 선 남자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나 노력한 끝에, 해명한 끝에 얻은 그것은 다름 아닌.

“……아즈마 대장.”

이름. 그리고 그것은 인정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남자도 그를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를 인정했다. 비록 그에겐 그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예의로. 그는 언제든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므로.

“시노다 씨.”

아즈마 하루아키의 사망이 확인된 지 일주일 만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시신이 수습된 지 일주일 만에 그는 잔해 속에서 발견되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그일까, 과연?

알 수 없었다.

제3차 대규모 침공의 피해 규모는 제1차 대규모 침공을 방불케 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실종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명단이 되어 기록되었으나 경찰은 실종자 명단에서 남자의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남자가 실종자 명단에서조차 누락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을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실종자의 가족이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남자의 이름은 다른 의미로 그곳에 있을 이름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어선 아니 됐다. 다른 곳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이름은 사망자 명단 중에서도 상단에 기재되어 있었다. ‘아’ 단으로 시작했으므로 그러했다.

‘스나이퍼는 발견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가 오래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스나이퍼의 기본이었다. 자신이 가르친 만큼 기본에 충실히 행동한 아즈마 하루아키는 뛰어난 스나이퍼였으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나이퍼까지는 되지 못했다. 세상에는 그를 뛰어넘는 스나이퍼가 많았다. 아군에도, 적군에도. 자신이 발견되었음을 저격을 통해 깨달은 아즈마는 이윽고 전투체가 파괴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본체에 장비하도록 한 무전기를 통해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발각됐습니다. 베일 아웃이 불가한 상황에서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낸 아즈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 뒤 무전을 끊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아즈마는 그가 마지막으로 무전을 한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눈을 감지 못했으며, 코와 입에선 흘린 피가 채 굳지 않아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트리온 기관을 적출당한 다른 이들과 같이 가슴께가 피로 젖어 있었다. 15시 27분. 사망 확인 시각은 위와 같이 기록되었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7분 전의 마지막 통신은 그대로 그의 유언이 되었다.

“아즈마 씨.”

아, 그를 발견한 건 미와 부대였다고 한다.

“――――――――――!”

직후 요네야는 미와의 목에 팔을 걸어 그를 잡아당겼다. 현명한 판단과 신속한 행동 덕에 그는 미와가 후퇴하는 네이버들을 쫓아 게이트를 넘어가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지만, 격렬한 반항에 그만 그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요네야는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스나이퍼들에게 소리쳐야만 했다.

“슈지를 쏴! 당장!”

탕!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복구된 베일 아웃 기능이었다. 본부의 작전실에서 눈을 뜬 미와는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침대 아래로 떨어졌고, 미와의 베일 아웃을 확인하자마자 급하게 넘어온 츠키미는 속을 게워 내는 그와 함께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 그러면서 생각했더랬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더랬다.

“어째서?”

트리온 기관의 적출 대상이 되는 이들은 보통 트리온 보유량이 적은 이들로, 대개 이들보다 트리온 보유량이 많은 편에 속하는 보더 전투원들은 그보단 네이버후드로 납치되는 쪽을 좀 더 염려해야 했다. 제2차 대침공 당시 아프토크라톨로 큐브화 되어 납치되었던 C급 훈련생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아즈마의 예는 이와 달랐다. 그러니 아즈마의 예는 명백히 가리키는 바가 있다고 보아도 좋은 것이었다. 명백히, 보복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으면 미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뒤집어지는 속을 견딜 수도 없었다. 어째서?

“왜?”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기억 속 아즈마가 언제나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낼 수 있던 미와다. 아, 누나도 그랬다. 당신도 그랬다. 누나도 그랬어. 당신도 그랬어.

누나도 죽었지…….

당신도…….

“…….”

당신도…….

“…….”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해 낸 미와는 이내 츠키미의 품 안에서 오열했다. 아. 그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렇게 말하는 입을 멈출 수 없었더랬다.

‘위선자.’

그 말에 화도 내지 않고 웃던 당신.

‘아즈마 씨는 위선자입니다.’

그런 당신.

‘하하,’

‘웃음이 나오십니까?’

‘하지만 타마코마가 배신자라면 시노다 파는 위선자가 아니고 뭐겠어.’

사흘 전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남자는 열흘 전 사망이 확인되었던 남자였는데,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자신의 죽음만큼은 기억하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자신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잔해에 매몰되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즈마 하루아키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쿠가 유마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문제였다.

“거짓말하고 있지 않아.”

그 말을 들은 미와는 생각했다. ‘차라리 시시한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을 텐데.


*

병원에서 보더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그것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더의 엔지니어들은 유능했으므로 그들은 곧 그것이 트리온으로 이루어진 신체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즉, 트리온체였다. 한편 그것은 보더 내부자들 사이에서 ‘그것’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신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여기든 어쩌든 그에 맞춰줘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쿠가 유마의 사이드 이펙트는 거짓 간파였지, 진실 확인이 아니었다. 쿠가의 사이드 이펙트로 알아낸 사실은 ‘그것은 자신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여긴다’ 그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않았다. 시노다와 함께 네이버 또는 트리온 병사일지 모르는 그것을 ‘처리’하러 갔던 보더 전투원들에겐 전원 함구령이 내려졌다. 미와는 그에 포함되지 않았다.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대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처음부터 작전에서 배제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쿠데라와 코아라이, 히토미 등 아즈마 부대의 대원들도 포함되지 않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그것이 언젠가 ‘아즈마’와 저희가 두었던 대국을 언급한 순간 방아쇠를 당길 뻔했던 스와는 입에 문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씹다 결국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뒤 입을 헹궜다. ‘의태’ 또는 무언가일 트리온 병사, 또는 트리거 사용자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이들에 포함되었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와도 그에게서 그것의 존재를 눈치챈 게 아니다.

‘야.’

그들 중 유일하게 불안 요소를 포함한 인선이 있었다. 이즈미가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그를 데려갔을 터나, 그러지 못해 대안으로 선택된 사람은 솔직히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대안으로 선택된 만큼 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따라서 여차하면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그를 제지하라고, 그런 명령을 하달받은 스와 코타로였다. 시노다에게서. 스와는 제게 내려진 명령에 충실히 임했다. 명령이 아니더라도 그랬을 터이긴 했다.

‘정신 차려.’

그리고 그 또한, 그런 그가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스와는 그것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를 보며 더욱 자신을 다잡았으니, 야. 정신 차려. 양손으로 샷건을 잡고 그것을 겨누고 있는 탓에 손 대신 발을 써서 그를 툭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반응은 없었으나 듣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니노미야.’

‘…….’

‘저건 아즈마 씨가 아니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알잖아. 대답은 한참 후에야,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압니다. 저도. 그래? 그 말에 하, 웃으면 좋았겠지만 조금도 웃을 수 없던 스와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즈마는 보더 전투원 중 가장 마지막에 사망한 전투원이었다. 길었던 전투가 끝나 모두가 안심하던 때. 그때 들려온 부고 소식이었다. 발송된 전사 통지서였다.

실제론 직접 들고 댁을 찾아갔으니 발송은 어디까지나 비유였다. 죽음도 비유였다면 좋았으련만. 물벼락을 맞을 줄 알았는데 맞을 틈도 없었다는 말로 그날을 요약하리다.

니노미야와 마찬가지로 타치카와 대신 인선에 포함되었던 시노다의 입에서 아즈마란 이름이 나온 순간, 스와는 그간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은 것 같은 착각에 잠깐 사로잡혔으나 결국 끝까지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그것에게 추가적인 구속은 없었다. 그러든 말든 스와는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찾지 않았고, 그것을 보지 않았다. 열흘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을 한 미와와 마주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간형 네이버는 퇴각했으나 미카도시에는 그대로 남은 트리온 병사 잔당 처리에 모두가 정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죄다 쥐어짰던 지난 며칠이었다. 열흘이 지난 지금은 얼추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남은 건 사후처리뿐이었을 때였다.

열흘 동안 미와는 근신을 명 받았다. 요네야와 나란히. 요네야 입장에선 억울해해도 이해할 만하나, 정작 요네야는 미와를 이해하며 본체에까지 주먹을 날린 그를 용서했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 속이 깊고 어른스러운 친구를 두었음을 미와도 언젠간 반드시 알아야 하리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미와가 스와를 불렀다. 스와를 멈춰 세웠다.

“스와 씨.”

“어? 어. 미와.”

“그게 사실인가요.”

그 말에 스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와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스와는 쉽게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레짐작하여 먼저 묻지도 않은 사실을 밝힐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 덕이었다.

“사흘 전 미카도시에 남은 네이버를 생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입에 담배를 꺼내 무는 스와였으나 불은 붙이지 않았다. 미와가 아직 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버틸 수도 있었지만 말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게. 어쩌긴, 당연히……. 죽이러 갈 테냐?

“…….”

그렇다면 스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난 몰라.”

사실이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날 발견된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감고 있지 않았지만, 그와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개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은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 있었다. 코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가슴을 꿰뚫린 여파로, 다른 사망자들과 같이 피로 젖어 있는 가슴은 트리온 기관을 적출당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바로, 보고를 받은 키누타는 침음하며,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눈을 감았다. 비가시기관이라 하나 검출이 불가한 장기는 아니었다. 그는 못내 말하기 싫다는 투로 수뇌부 회의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단 한마디로 요약되는 사실을.

가져가지 않았어.

아, 미와는 그날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일까? 무엇을? 악의를?

그러나 확인받고 싶지는 않은 사실이었다. 확인받고 싶지는 않았을 사실이었다. 그날 부대원 요네야에게 행사한 폭력으로 근신 처분을 명 받아 회의 참관을 허락받지 못한 미와는 그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밖에서 대기했다. 그를 제외하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문밖으로 나온 사람은 후유시마였다. 그러나 그는 미와를 보지 못한 채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나아갔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2일째 되는 날이었다. 무엇으로부터 2일째 되는 날인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 아니, 미와는 알았다. 15시 27분. 사망 확인 시각은 미와 대신 미와 부대의 누군가가 기록하여 전달되었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마지막 통신은 7분 전. 15시 20분, 전투를 마무리하는 대로 아즈마를 찾아 엄호하라는 명령이 미와 부대로 전달되었고, 정확히 2분 후, 대치하던 트리온 병사를 쓰러뜨린 미와 부대가 아즈마를 찾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었다.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누나의 숨이 멎을 때까지 걸린 시간도 그 정도였던가.

5분. 300초. 카운트 다운. 300. 299. 298…….

297…….

함구령을 받은 모든 대원이 입을 다문 가운데 정보는 예상외의 길로 미와에게 닿았다. 경로의 시발점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였다. 그는 한 C급 대원의 가족이었고, 그 대원은 후일 기억 봉인 절차를 밟게 되나 이와 관련한 소문을 내어 징계성을 띠고 이뤄진 조치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두려움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서 보더의 기밀 작전을 전해 들은 훈련생은 곧장 그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찾아갔고, 붙잡고, 따져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남아 있는 네이버가 있다는 게. 아직,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예요? 아직도? C급 훈련생들에게 가까운 정규 대원이란 그들을 교육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A급 정예 부대 아라시야마 부대였다. 그러나 아라시야마가 부재한 탓에 애꿎게도 훈련생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토리의 양팔을 붙잡은 채 덜덜 떨었고, 그의 손을 붙잡아 떨어뜨려 놓은 건 다름 아닌 키토라였다. 아, 영민한 키토라. 그는 사실의 진위를 제가 아는 것과 상관없이 이 순간 겁에 질린 훈련생에게 딱 잘라 말하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래야만 하는 사실이었으니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키토라는 틀리지 않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지 않은가.

“그럴 리 없어.”

그렇기에 키토라는 지금 당장 훈련생에게 필요한,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예의 모습을 보여주어 그를 안심시킨 뒤, 모든 C급에게 내려진 명령대로 그를 귀가시켜 일을 마무리했다. 복도를 지나던 미와가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은 우연이었다. 키토라에게 다가간 건 훈련생이 돌아간 후. 목격한 건 그 전부터였다. 그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미와 선배.”

“방금 훈련생이 말한 게 무슨 소리야.”

“저도 몰라요. 처음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럴 리 없잖아요. 키토라는 그 말을 ‘아직 남아 있는 네이버가 있을 리 없다’는 뜻으로 입에 담았다. 하지만 미와에게 그 말은 보더가 그것을 ‘살려두었을 리 없다’, 아니, ‘살려두면 안 되지 않은가’ 따위가 되어 귀에 들렸음이다. 그러나 미와가 아는 보더는 그것을 ‘살려두었을 것이다.’ 그런 조직이니까. 캐낼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죽은 목숨도 이어 붙이는 조직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었다. 이래선 안 됐다.

‘그렇다면 어쩌게. 죽이러 갈 테냐?’

죽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하지만 타마코마가 배신자라면 시노다 파는 위선자가 아니고 뭐겠어.’

‘위선자.’

이미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자신은. 위선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다 살해당할 거라고.

“…….”

아.

“미와?”

아, 나는 무슨 말을 한 건지.

손을 들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스와의 부름에도 화장실로 달려간 그는 이내 속을 모두 게워 낸 뒤에야 자리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사흘이 지났을 때. 그리고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이미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자신은. 위선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고, 당신은. 그러다 살해당할 거라고. 그러다 죽을 거라고. 그제야 알게 될 거라고. 그제야 당신은 무엇을 알게 되나? 네이버가 적이라는 것?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구제에 힘써야 한다는 것? 죽은 뒤에야 알게 되나? 죽은 사람이 무얼 알 수 있는데. 무얼 할 수 있는데.

아는 건 산 사람뿐이지. 할 수 있는 건 산 사람밖에 없지.

……그러니까 당신들은 위선자야. 당신들도 실은 알고 있잖아. 점잖은 체하며 빼고 있지만 실은 할 수 있잖아. 누구보다 능히 휘두를 줄 아는 트리거면서. 능히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면서. 점잖은 체, 괜찮은 체, 아무것도 잃지 않은 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는 것도 산 사람뿐. 해명할 수 있는 것도 산 사람밖에.

들어줄 수 없는 건 죽은 사람뿐.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죽은 사람이라…….

근신 처분 기간에는 트리거를 반납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본체인 그는 쉽게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야만 했다. 트리온체로서 본체를 제압할 때 어려운 것은 힘 조절일 뿐이다. 따라서 맨몸으로도 어느 정도 격투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근접전에서 어떤 기술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다뤄져야 하는지 아는 자가 미와의 팔을 뒤로 꺾어 붙잡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다친다. ‘의태’ 또는 무언가일 트리온 병사, 또는 트리거 사용자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이들에 포함되었던 유바 타쿠마의 말은 엄포가 아닌 사실이었다. 그러나 미와가 그 말을 귀담아들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지금 눈만을 위로 올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눈앞의 자를 바라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미와의 서슬에 뒤로 넘어져야 했던 ‘그것’에겐 조금의 타격도 들어가지 않았다. 트리온체였기 때문이었다.

유바가 미와를 제압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몸을 일으키는 그것의 목을 향해 겨눠진 최소 3개의 스콜피온과 호월이 있었다. 카자마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4개. 그러나 일단은 가시적인 3개 중 하나의 호월을 든 자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말은……. 말을 잇지 못한 까닭은 자명하다.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해버릴 것 같아서 그렇다. ‘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어색하기에 그렇다.

그런데 쓸데없는 말의 기준은 무엇인지. 쓸모는 누가 정하는가? 무엇이 중한지. 쓸모 있는지. 쓸 데가 있는지. 실은 그런 말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호월이 움찔, 흔들리는 가운데 그것이 입을 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슈지.”

‘슈지.’

오래전 비밀리에 구금되었던 에네도라의 생체 잔해를 아는 미와는 보더 내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구금실에 관해 알고 있는 대원 중 한 명이었다. 열하루째, 무기한 근신은 아니지만 아직 근신 기간이 끝나지 않은 미와가 본부를 돌아다니는 것에 모두가 익숙해졌을 때였다. 교대로 잠시 자리가 비워졌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진입하는 미와를 먼저 발견한 ‘눈’이 있었다. 눈은 언제나, 트리온 병사의 두드러지는 특징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순한 사실을 언급해도 좋았다. 는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저격수라면 으레 그렇듯이.

이름이 불렸을 때 미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게, 내부에서 외부가 보이는 유리창이던가? 열하루째 제대로 자지 못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든 그는 유리창 너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아니, 그것을, 아니 그를, 그것, 그. 아니. 그.

툭. 셧다운된 모니터 화면과 같이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알 수 없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테라시마가 소리쳤다. 이미 폐쇄회로 카메라로 상황을 보고 달려온 직후였다. 미와! 그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가 모두 천장으로 떠오르며 흩어졌다. 우당탕, 쿵, 탕탕탕. 온갖 집기가 밀쳐져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고 구금실의 문을 벌컥 연 미와는 곧장 그것을 향해 뛰어들었다. 양손을 뻗었다.

목을 거머쥐었다. 밀쳐 쓰러뜨렸다.

쿵,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간 몸에 머리가 바닥과 부딪쳤으나 아파하는 기색은 없었고 미와 또한 바닥과 격하게 부딪친 무릎의 아픔이라던가 그런 건 하등 느끼지 못했다.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 미와가 그것의 목을 잡아 뜯듯 붙잡아 조르는데도 그것은 아무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트리온체이니 당연했으나 미와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부러지라 조르는 틈에, 고통은 없으나 숨이 부족하여 작아진 목소리가 미와의 귀에 다시 한번 닿았다. 슈지.

이름, 그것은 인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의 인정 따위 미와에게 필요 없다.

감히.

감히.

슈지. 괜찮니.

어느 소설의 제목과 반대로 미와에겐 입이 있었으나 비명을 지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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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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