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일부)> Boléro (외전)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샘플
“자르는 게 좋을까요.”
내버려두니 자연히 길어졌다. 조금만 있으면 어깨 밑으로도 내려갈 것 같았다.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입을 연 아이의 표정은 언제나 조금 무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길이로 길러본 적 역시 처음이라,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 자신을 생경하게 느끼고 있는 아이였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가 얼떨결에 아이의 고민을 상담해 주게 된 스와가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 끝을 깨물어 부순 뒤 대답했다. 아니, 질문했다.
“자르고 싶어?”
“모르겠어요.”
원래는 이렇게 길어지기 전에 엄마가 자르라고 해서 잘랐는데. 그러면 그럴까? 하고 미용실에 가면 그만이었으나 이제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기르고 싶어? 그리 묻자, 음, 하고 고민에 잠긴 목소리를 내던 아이가 머리카락 끝을 놓으며 말했다. 여기서 더 길어지면 불편할 것 같기도 해요. 그래? 와작와작 깨문 사탕 조각이 입 안을 굴러다니는 걸 느끼며 스와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럼 그냥 길러서 묶어도 괜찮고.”
“키쿠치하라 씨처럼요?”
“걔는 사이드 이펙트 때문에 기르는 면도 있지만, 뭐, 그렇지.”
다 먹은 종이 막대를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지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미와에게도 물어봤겠지. 미와는 뭐래냐.”
“기를 거면 묶고 다니는 게 편할 거래요.”
“맞는 말이군.”
“그래서 여기까지만 기를까 같은 생각도 들어요.”
“그것도 괜찮지.”
“본부장님은 머리 기르신 적 없으세요?”
“없어. 어릴 때 염색은 해 봤지만.”
“무슨 색으로요?”
“노란색.”
“와.”
하지만 표정으론 별다른 감흥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다지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남자애가 머리 기른다고 뭐라 안 하시네요. 뭐냐,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었어? 인상을 팍 구긴 스와가 한참을 투덜거린 후에 입을 열었다.
“네 맘대로, 끌리는 대로 해. 고민되면 이대로 좀 더 놔둬도 괜찮고.”
그 말에 한참 동안 대답이 없길래 고민에 잠긴 줄만 알았다. 그럼 자기는 이만 일어나보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뜨려는데, 어떤 감정도, 반응도 드러내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아이가 무표정한 그대로 입을 열었다. 저번에요. 저번에? 남자애가 머리 기른다고 뭐라 한 게 저번이냐? 대충 그런 말을 하려던 차.
“옛날 사진을 봤어요.”
“어, 뭐?”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당황하여 잠깐 말을 더듬었다.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잇는 아이였다. 미와 씨가 제 나이대일 때 사진이요. ……그게 언제 적이냐. 까마득하네. 그렇긴 한데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이에게서 먼 곳으로 돌려버렸다. 자연스러운 전환이었길 바라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새 사탕을 찾는데, 아이가 말을 이었다. 사실 조금 안심했어요. 뭐가? 그냥요. 마침내 새 사탕을 꺼내 비닐 껍질을 벗길 때쯤이었다. 그냥 뭐. 그냥.
“그때도 머리 기르신 분이 계셔서요. 그래서 안심했어요.”
“……하.”
껍질을 벗긴 청포도 맛 사탕을 입에 쏙 집어넣은 뒤 손을 털었다. 그리곤 다시 아이에게로 몸을 돌려 갑자기 저를 내려다보는 스와를 올려다보는 아이 앞에 섰다.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양손을. 뻗어서 아이의 볼을 잡았다. 요 꼬맹이가, 그렇게까지 옛날 아니거든? 뭐, 10년 전이면 벽돌만 한 핸드폰 들고 다니고 그랬을 줄 알아? 그때도 스마트폰 있고 다 있었거든? 아으앗, 아으아앗. 트리온체에 의미 없는 꿀밤을 날리는 대신 요게 요게, 하고 아이의 양 볼을 붙잡아 찹쌀떡처럼 쭉쭉 늘리는 스와였다. 그래도 아프지 않을 걸 알고 한 짓인데, 그럼에도 몇 번 잡아당기기 무섭게 누군가 뒤에서 스와의 다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순식간에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지고 말았다. 어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던 차 뒷덜미를 잡은 누군가 덕에 간신히 그것만은 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병 주고 약 준 셈이라 결코 고맙지 않은 상대를 보기 위해 눈을 흘겼을 때였다.
“나이 먹고 어린애 괴롭히면 추하다, 스와.”
“여기서 제일 성격 나쁜 놈이 뭐라는 거야!?”
“거기 너. 사내 괴롭힘으로 얼른 신고해라. 보복은 걱정하지 말고.”
“시끄러워!”
세월이 흐르든 말든, 아니, 오히려 흐르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동안의 소유자 카자마가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눈치채고 시선을 내렸다. 뭐지? 신고 방법을 알려주길 원하나? 그 말에 헛소리 그만하고 갈 길 가보라며 툴툴대던 스와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문제야 여기 있지. 스와 네가 문제니까. 아 좀! 간신히 카자마의 손에서 놓여나 구겨진 옷의 주름을 펴던 스와가 다시 한번 아이를 살폈다. 아. 아뇨. 그냥.
“자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뭘 하든 네 선택이긴 한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있어?”
“아뇨……. 그냥.”
그냥요.
시선을 내린 아이가 대답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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