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시리즈

[모브 시점] 미오리네랑 슬레타는 대체 무슨 관계야?

아스티카시아 모브백합커플의 관점에서 보는 슬레타와 미오리네의 관계(관찰)에 대한 이야기.

  • 2023년 7월 2일에 포스타입에 업로드 했던 글입니다.

  • ‘아스티카시아의 성소수자 학생들에겐 슬레타와 미오리네가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해보다 쓰게 된 글로, 시즌1의 1화~12화를 배경으로 썼습니다.

  • 아스티카시아 학원에 재학 중인 모브(엑스트라)여여커플이 화자가 되어 애니 본편의 줄거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둘의 스킨십 묘사(포옹 등)이 짧게 등장하며 이들의 시선에 비친 슬레타와 미오리네 그리고 주변의 모습이 관찰자 시점으로 표현됩니다. 

  • 왼오를 상정하지 않았기에, 미오슬레든 슬레미오든 자유로운 방향으로 읽어주셔요!

  • 날조가 곳곳에 등장하니 유의해 주세요.


아스티카시아 고등 전문학원은 베네리트 그룹 산하의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식 기술들의 정수로 빚어낸 방위사업 인재교육 전문학원이다. 

경영전략과와 메카닉과, 그리고 파일럿과의 세 교육과정별 분과가 존재하며 학생의 절대다수가 베네리트 그룹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업 또는 협력업체들에 직장을 두고 있는 이들의 자녀다 보니 학창 시절을 함께하는 동년배끼리의 우정 외에도 나름의 이해관계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기숙사도 제타크 헤비 머시너리, 그래슬리 디펜스 시스템즈, 페일 테크놀로지스, 브리온, 다이고 등 회사명을 본떠 지었다. 아, 소수인 어시언 학생들이 모여 있는 지구기숙사도 있다.

이들도 엄연히 베네리트 그룹에 속한 기업의 추천을 받아 입학 또는 편입했지만, 세간에 존재하는 스페시언과 어시언 사이의 갈등을 그대로 옮겨 온 듯, 학교 전반의 처우는 좋지 못하다.

호전적인 이들이 다수 모여 있는 파일럿과의 특성상, 학생들끼리 모빌슈트 성능 비교나 단순 재미, 내기 등을 이유로 ‘결투’가 종종 있어왔지만 베네리트 그룹 회장이자 카테드랄 총괄 대표, 더불어 이 학원의 이사장이기도 한 델링 렘블랑 회장님의 영애, 미오리네 렘블랑이 입학한 이후 ‘홀더 제도’가 생기면서 총재님의 예비 사위가 되기 위해 학생 간의 결투가 조금 더 잦아지고 치열해졌다.

적어도 사나흘에 한 번은 홀더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결투가 열렸고, 처음엔 현대적인 방식이라 할 수 없는 ‘홀더 제도’에 난색을 표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학원내의 주요 모니터 및 각자가 소지한 학생수첩 겸 이동통신단말기, 태블릿을 통해 실시간으로 결투를 시청할 수 있다 보니 머지않아 마치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 올림픽 시즌이 온 것 처럼 대다수 학생이 이를 컨텐츠로써 즐기기 시작했다.

.

오후 수업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미리암에게 식당 옆의 카페라운지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두고 그가 좋아하는 히비스커스차 2잔을 구매해 2인용 소파가 놓인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두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이쪽으로 걸어오는 익숙한 인영이 비쳤다.

히비스커스차를 받아 든 미리암은 표정이 한층 더 밝아져 옆에 바짝 앉아 어깨를 기대왔고 그에 부응하듯 허리에 손을 감싸자,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기에 시선을 맞추고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데 단말기의 화면이 켜지며 소리가 울렸다.

곧 결투가 시작된다는 알림이었다.

결투 당사자는 브리온기숙사 내 랭킹 2위를 달리는 학생과 제타크기숙사 내 랭킹 5위의 학생이었다.

이기는 쪽이 며칠 뒤에 페일 기숙사의 리더인 엘란 케레스와 결투를 하는 조건이라고.

실력이 엇비슷한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며 20여 분을 끌다가 브리온쪽의 학생이 먼저 상대 모빌슈트의 블레이드 안테나를 부러트렸다.

보통 10분 내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편이지만 이번은 결투 시간이 길어져 조금 지루할 만도 한데 역시 미리암은 메카닉과여서 그런지 눈을 빛내며 끝까지 집중해서 둘의 결투를 시청했다.

아마 두 모빌슈트의 구동 기믹을 살피고 손상된 부위를 어떻게 수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지켜봤겠지? 이런 점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조금은 의구심을 담은 투로 미리암이 질문을 해왔다.

“있잖아, 캐서린”

“응?”

“너는 홀더자리에 관심 없어? 파일럿과잖아”

“홀더는 회장님 예비 사위가 되는 거잖아? 관심 없어.”

“왜? 꽤 탐낼 자리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그룹 1인자의 예비 사위인데. 그리고...”

“그리고?”

“미오리네, 엄청 미인이잖아.”

“그렇지만, 내 옆에 있는 아가씨가 더 취향인데?”

“칫, 능글맞기는!”

“미리암의 검은 머리카락이 좋아. 갈색 눈동자도.”

“하긴, 넌 색소 진한 여자가 취향이지.”

“그... 외모만 좋다는 게 아니고-...”

“알아, 알아- 수도 없이 들려줬잖아. 1학년 때부터.”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와락 안겨 오는 미리암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사실 파일럿과의 학생으로서 회장님의 ‘예비 사위 자리’라는 위치가 갖는 이점 자체에 아예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자기 분수를 알라고, 결코 닿을 수 없을 1등성(first magnitude star, 一等星)을 욕심내서 무리하다 많은 걸 잃고 싶지 않아.

당장 곁에서 반짝이는 별. 2주년을 앞둔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고, 이대로 계속 함께 좋은 파일럿 & 메카닉 콤비로서 지내고 싶으니까.

게다가 구엘 제타크, 엘란 케레스, 샤디크 재네리 같은 3대가의 최우수 파일럿들을 이길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으니, 가끔은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온전한 진실만을 말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거야.

“... 홀더 경쟁에 끼어들어 결투하겠다고 하면 퍽 잘 정비해 주겠다?”

“그럼~ 빔 라이플 발사 안 되게 할 거야.”

“모빌슈트 관절부는?”

“꼴사납게 다치면 담당 메카닉으로서 자존심 상할 것 같으니까, 손대지 않을게”

“고마워.”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기만 해봐?”

“그럴 리가 없잖아~”

.

.

.

오랜 시일이 지나지 않아 제타크사 CEO의 장남인 구엘 제타크가 홀더자리를 꿰찼다.

3대가의 파일럿 셋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상 범위 내였고 그는 파일럿과 내에서도 손꼽히는 모빌슈트 조종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모든 학생이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니, 모빌슈트 결투 승패에 판돈을 거는 도박쟁이 학생들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 한 것 같았다.

구엘이 홀더가 된 후, 홀더자리를 탐하는 학생들의 결투는 줄어들었다.

승률이 적은 싸움에 굳이 뛰어드는 무모한 이는 적었으니까. 다만 회장님의 영애인 미오리네는 ‘홀더 제도’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듯했고 때론 거친 성정의 구엘을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대놓고 외면하기 일쑤라, 뒤에서 이를 쑥덕대는- 구엘에 대한 험담을 하는 학생들이 구엘에게 딱 걸려 결투를 통해 ‘응징’당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학년 아래에 수성에서 왔다는 편입생이 첫 등교를 하는 날이었고 어쩐 일인지 미오리네가 그 편입생이 위험에 처한 걸 구해줬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구엘과 미오리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편입생이 그걸 말리다 둘이 결투를 하게 되었다.

편입하자마자 결투라니... 게다가 상대는 홀더인 구엘 제타크. 기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미리암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함께 결투를 시청하자고 메시지를 보내와서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시청각실에서 만났다. 편입생의 결투에 모두 흥미가 끌렸는지, 시청각실엔 학생들이 꽤 모여 있었고 곧이어 둘의 모빌슈트가 화면에 등장했다.

편입생의 모빌슈트는 화려했다. 

하얀 외장은 잘 채택하지 않는 색상이라 신선했고 마치 페일사나 그래슬리사처럼 얇고 곡선이 많은 몸체가 두드러졌지만, 어느 제조사의 모델인지 알 수 없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러나 결투 선서를 위해 탑승자의 얼굴이 비쳤을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편입생이 아닌 미오리네 렘블랑이 그 기체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미오리네는 홀더 결투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내비쳤고, 당연하지만 경영전략과 영애님이 구엘을 이길 리 없었기 때문에 금방 승패가 가려지겠구나 싶던 차에 타인의 학생수첩으로 결투 장소에 난입한 편입생이 이내 자신의 모빌슈트를 되찾아 그대로 미오리네를 태운 채 잠시 중단됐던 결투가 다시 진행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편입생은 새로운 홀더가 되었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환호하는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으며 나도, 그리고 미리암도 기존에 본 적 없는 화려한 비트 기동에 얼떨떨했다. 

아카이빙 기록한 걸 나중에 함께 분석해 보자며 얘기를 하던 찰나, 프론트 관리회사 관리인들이 결투 장소에 치안 유지용 모빌슈트를 몰고 와서는 편입생이 금지된 ‘건담’을 사용했다며 모빌슈트를 압수하고 조사를 해야 한다는 구실로 구금해 갔다.

우리 세대의 학생들은 그 건에 대해 이론으로만 접했으므로, 

‘건담’이라 불리는 모빌슈트들엔 탑승자의 생명윤리와 연관된 이슈가 과거에 있었고 회장님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데 시초가 된 ‘바나디스 사변’ 이후 전면 금지되어 모두 폐기 처분된 제조 기술이라고만 알고 있는 정도인데 편입생의 기체인 ‘에어리얼’이 그 제조기법을 사용했다는 것 같았다.

금지된 기술을 사용한 모빌슈트는 폐기 처분, 그리고 편입생은 퇴학 될 거란 얘기가 돌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곧 돌아와서 구엘과 다시 결투를 벌였고 조금 난항은 있었지만 다시 한번 승리해 정식적으로 홀더가 되었다.

결투 직후 구엘이 슬레타 머큐리에게 갑작스레 청혼하는 헤프닝이 있었는데 정말 대차게 차여서...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무슨 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생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그렇게 까이다니. 

나 같으면 다음 날 학교 절대 못 나와.

.

.

.

새로운 홀더는 수성에서 나고 자라 학원 생활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평상시엔 결투에서 구엘을 굴복시킬 때와는 사뭇 다른 미숙한 모습을 내비쳤고 파일럿과 2학년들의 실습이 있을 땐 어시언 괴롭히길 좋아하는 학생들로 인한 작은 소동으로 재재시험을 치게 되었다는데 그때 어시언 학생들과의 인연으로 지구기숙사생이 되었다.

수성이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엄연히 스페시언인데 어시언과 함께 생활할 생각을 하다니, 처음 구엘을 무너뜨리던 존재감처럼 좀 독특한 녀석 같다.

일부 학생들이 ‘지구 놀이’라고 비꼬는, 자신만의 작은 온실 공간을 돌보는 미오리네도 그런 홀더와 취향이 은근히 맞았는지 구엘보단 호의적으로 그를 대하는 듯했다. 

경영전략과면서 홀더의 실습 서포터를 자처했다니.

당사자에게는 실례지만, 미리암과 둘이서 어쩌면 미오리네도 ‘이쪽’일지도 모른다는 얘길 나눴다. 

그도 그럴게 구엘에겐 그렇게 쌀쌀맞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새 홀더는 어린아이같이 미숙한 부분이 있어 보임에도 이상하리만치 호의적인 행동을 보여주니까.

눈에 띄는 붉은 색의 곱슬머리에 조금 큰 키, 맑고 진한 청록색 눈동자, 조금 짙지만, 매력 있는 피부색을 가진 수성 출신의 홀더 슬레타 머큐리. 거기에 뛰어난 모빌슈트 조종 능력. 

이런 부분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인기 있을 만한 조건이었고 미오리네도 보는 눈이 있을 텐데 홀더의 외견이 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 아닐까 싶었다.

.

.

.

“미리암, 구동이 좋아. 이대로 나가면 되겠는데?”

“신경 쓴 보람이 있네~ 발함 준비할게?”

“응. 준비되면 신호 줘~”

“잠깐, 저기 엘란 아니야?”

“에?”

전술 시험 구역에서 정비 상태 확인 및 파일럿과 친구들과 모의 훈련을 위해 컨테이너실에서 최종 조율을 하고 있던 도중, 엘란이 파일럿 슈트를 입고 나타났다. 

가만히 기대고 서서 독서하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일단 발함 준비가 완료되어 그대로 전술시험구역으로 나가며 미리암에게 뭔가 특이사항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엘란은 주말엔 보통 기숙사에 박혀 있기로 유명해서 여가시간에 이런 곳에 얼굴을 비추는 일은 도통 없던 일이라 컨테이너실의 다른 학생들도 그에게 이목이 쏠렸지만, 평소 이미지 덕에 선뜻 먼저 말을 거는 학생은 없어 보였다.

“캐서린. 특종이야”

“뭣 때문이래?”

“데이트한대. 홀더랑”

“뭐? 엘란이? 홀더랑?”

“응! 둘이 옆쪽 전술 시험 구역으로 갔어.”

“그... 홀더가 혹시 남자도 좋아하나?”

“글세? 그렇지만 엄청 진심인 것 같던데?”

아마도 지금쯤 교내 학생들의 반절에 이 사실이 파다하게 퍼졌겠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을 듣고 해당 전술 시험 구역으로 달려간 구엘이 엘란과 결투를 한다는 소식이 아스티카시아 내에서 통용하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그때 청혼했던 게 진짜 진심이었다는 게 좀 놀랍기도 했지만, 3대가 후계 구도에 있는 이들끼리 홀더경쟁 이외에 같은 여학생 문제로 결투하는 게 처음이라 슬레타 머큐리는 대체 무슨... 폭풍을 몰고 다니는 녀석인가?

결투 시청을 위해 친구들과 서둘러 모의 훈련을 간단히 마무리 짓고 컨테이너실로 돌아가 미리암, 그리고 미리암의 메카닉과 친구 몇몇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침 미리암의 태블릿에 곧 결투가 진행된다는 알람이 떴고 컨테이너실에 남아있던 주변 모두 삼삼오오 모여 태블릿에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3대가 학생끼리의 결투는 오랜만이었고 무려 홀더 때문에 엘란과 구엘이 결투를 벌이는 형상이라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곧이어 등장한 화면을 보곤 친구들과의 모의 훈련을 서둘러 마무리하길 백번 잘했다고 탄성 할 수밖에 없었다.

엘란이 새로운 모빌슈트에 탑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구엘도 수리 중일 전용기들 대신 동생인 라우더의 딜란자를 타고 온 터라, 둘 다 몸에 익은 모빌슈트가 아니어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에 대해 더욱 의견이 분분했다.

평소보다 더 거친 구엘의 운용 방식과 기존의 페일사에선 볼 수 없던 비트 전개 등 다양한 기믹이 적용된 ‘파렉트’로 박진감 넘치는 결투 끝에 엘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나저나 엘란의 새 모빌슈트도 ‘건담’이라는 것 같은데, 학생이 저런 위험한 걸 계속 타도 괜찮은 거 맞아?

.

.

.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도통 타인에게 흥미가 없던 그 엘란 케레스가 홀더인 슬레타 머큐리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 거리인 데다가 그와 결투까지 벌인다고 하고, 장소마저 결투 장소로는 잘 활용되지 않는 프론트 외 주역. 

둘의 결투 직전까지 전교생의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뜨거웠던 관심만큼이나 결투는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것들투성이었고 파일럿과와 메카닉과 학생들은 미리 아카이빙 준비를 해두길 천만번 잘했다고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건담’과 ‘건담’의 대결, 보통의 모빌슈트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투 형태를 보여줬고 마지막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리암은 리플레이하며 분석할 생각에 조금 들떠 보였지만 나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게 영 편치 않았다. 두 모빌슈트가 비트를 사용하는 방식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승리 직전에 ‘에어리얼’이 내보낸 그 파장은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모빌슈트의 움직임을 제한 & 조종하는 상호 간섭, ‘오버라이드’는 이론으로만 짧게 접했지, 실제론 처음 접하는 터라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 기술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상대의 모빌슈트를 난도질하는 모습이야 여러 번 봐서 적응이 되었지만, 마지막의 그건 본능적인 공포심이 올라오는 기분이라 오싹했다. 

저 모빌슈트는, 슬레타 머큐리는 대체 뭘까.

“미리암은 괜찮아?”

“뭐가?”

“난 좀 무서워서, 아까의 결투 말이야.”

“아... 솔직히 오싹하긴 했어.”

“역시 그렇지?”

“일반적인 모빌슈트랑 확실히 달라. 에어리얼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메커니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제작비용도 상당했을 텐데.”

“홀더가 신세 개발 공사라는 곳의 CEO 딸이랬지?”

“응... 파르메트 채굴상에 랭크 최하위권이던데?”

“어떻게 편입 전까지 아무도 몰랐지?”

“수성에 꼭꼭 숨어 있었나보지...”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나? 저런 성능의 모빌슈트로 인명구조를 했다고?”

“인명구조?”

“응. 학년 통합 수업 때 들었어. 수성에 있을 때 인명구조 활동을 했다고.”

“인명구조 하던 애가 싸움에 재능이 있다니, 좀 운명의 장난 같다.”

“그러니까.”

홀더, 슬레타 머큐리는 엘란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후 그와 데이트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미오리네는 예비 신랑이 저렇게 남자랑 놀아나도 괜찮은 건가? 어쩌면 그가 가진 ‘강함’ 때문에 모종의 계약 관계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오리네의 온실에 출입할 수 있는 건 슬레타 머큐리가 유일했기에 정말 둘이 아무런 썸씽도 없는 건지, 엘란이랑 홀더가 썸타는 것에 대해 미오리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비교적 마주칠 일이 많은 경영전략과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쳐도 그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리가 없지.

.

.

.

“미리암, 엘란말이야...”

“엘란이 왜?”

“요 며칠간 등교 안 했다?”

“뭐라구? 왜?”

“휴학했대.”

“진짜로? 갑자기? 웬일이야?”

“이유는 잘 모르겠어. 기업 사정이라나?”

“걔는 샤디크처럼 회사 중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좀 이상한데?”

“안 그래도 파일럿과 애들 다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이상할 만하지~! 수업에는 꼬박꼬박 나오지 않았어?”

“음~ 1학년 때부터 떠올려 보면, 어쩌다 가끔 1~2주씩 빠질 때가 있던 거 같기도 하고?”

“휴학한 적은 처음이지 않아?”

“아무래도?”

“그... 캐서린, 이건 내 추측인데”

“응?”

“홀더랑 엘란이 데이트하기로 한 날에... 미오리네가 깽판 쳤다거나...”

“에이 설마~!”

“그래도 들어봐? 둘이 결투 끝나고, 꽤 사이 좋아 보이지 않았어?”

“그건 그렇더라,,,”

“미오리네가 홀더 뺏길까 봐 둘 데이트에 몰래 따라갔다거나...”

“‘그’ 미오리네가? 설마?... 그런데 일리는 있다. 홀더는 미오리네 약혼자인 거니까.”

“그렇지~ 약혼자가 딴 남자랑 놀아나는 꼴을 어떻게 봐!”

“흠~ 확실히,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했겠네.”

“그니까! 얼굴도 그리 예쁜데! 자길 놔두고 딴 놈이랑 바람피우는 건 용서 못 하지!”

“진짜면 엄청난 이슈 거리겠는데?”

“그걸 아니까 홀더랑 미오리네 둘 다 별말 없겠지~ 떠벌려져 봤자 좋을 것도 없고!”

“대체 뭔 짓을 하면 그 엘란이 휴학까지 할까?”

“엘란이 보는 앞에서 찐~한 키스라도 했나?”

“엑? 미오리네가?”

“솔직히 나도 상상 안 가긴 하는데, 휴학할 정도니까 뭔가 충격적인 거 아녔을까?”

“.... 미오리네가 홀더한테 진하게 키스하는 거 보면 나 같아도 충격받을 것 같긴 해. 거의 항상 인상 쓴다거나 무표정하곤 했으니까.”

“홀더랑 미오리네, 뭔가 썸씽이 있는 건 확실해! 안 그러면 맨날 저렇게 같이 온실 돌보겠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원동기 타고 가는 거 홀더랑 미오리네 아니야?”

“정말이네? 어디 가는 거지?”

“온실은 저 반대 방향이지 않아?”

“그러게~ 뭐야?”

“아, 혹시 이사장실 가나?”

“이사장실? 아! 미오리네, 기숙사 안 쓰고 거기 쓴댔지...”

“홀더는 지구기숙사 쓰잖아, 거기 1인 1실 아니랬지?”

“그러고 보니 그렇네.”

“지금 시간이... 9시 27분.”

“통금 10시잖아!?”

“데려다주고 다시 지구 기숙사 가기엔 좀 빠듯하지 않아?”

“내일 주말이니까, 어쩌면 같이 자려는 걸 수도 있고?”

“그, 잠만 자려나?”

“홀더, 좀 아방해 보이긴 해도 알건 다 알겠지?”

“17살인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새침한 미오리네가 허락하려나?”

“글쎄? 그렇지만 홀더는 왠지, 미오리네가 먼저 원하지 않으면 안 건드릴 것 같은 인상이야.”

“진짜 그럴 것 같아. 분위기만 봐도...”

“해도 미오리네가 먼저 하자고 하겠지.”

“미오리네 취향 진짜 특이하다~ 저런 번개 머리에 너구리 눈썹이 좋은가?”

“그것보다, 홀더는 피지컬도 좋고 자세히 뜯어보면 은근히 예쁘지 않아?”

“나름 반반하긴 하지?”

“뭔가 매력이 있으니까 미오리네가 저러겠지.”

“확실히 구엘하곤 다르지? 다른 사람 챙기는 거 처음 봐.”

“수성 출신인데, 다시 생각해 봐도 진짜 횡재했네!”

.

.

.

엘란의 휴학은 지속됐고, 그 사이 미오리네는 홀더와 동행했던 베네리트 그룹의 인큐베이션 행사에서 ‘건담 논란’에 휩싸인 홀더를 구하기 위해 주식회사 ‘건담’의 사업안을 발표하고 출자에 성공했다.

확실히 둘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할 만한 객관적 증거였고 소식을 들은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했지만, ‘결혼을 원치 않는 미오리네가 모종의 거래 관계로 그를 선택했다’, ‘둘 사이에 썸씽이 있고 진지한 관계일 수 있다’, ‘큰 관심은 없지만 재미있는 이슈 거리다’의 3가지로 나뉘는 편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식회사 건담’의 웃긴 홍보 PV를 발표했고 지구기숙사에 설립하려 했나 본데 교내 학칙으로 불발되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샤디크 무리가 그것과 관련 있는 듯했고, 미오리네와 지구기숙사가 그래슬리 기숙사 6인방에게 결투 신청을 해 오랜만의 단체전 결투를 볼 수 있게 되어 결투를 즐거운 컨텐츠로 소비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들뜬 분위기였다.

단체전 결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그래슬리 기숙사와 파일럿과 모빌슈트가 둘밖에 없는 지구기숙사가 어떻게 6:6 결투를 진행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그래슬리 기숙사가 압승할 것이란 의견이 학생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

.

.

단체전인 만큼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미리암을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시청각실로 갔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교내의 모든 시청각실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빈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미리 자리를 맡아둔 메카닉과 친구 덕에 나름 화면을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슬리의 6인방 중에 샤디크를 제외한 다섯은 각자를 따르는 확고한 학생 팬층이 있었고 이번 결투에서도 각각의 팬덤이 모여 시청각실이나 옥상 등을 대관해 결투를 상영하며 함께 보는 모양이었다.

“캐서린, 있잖아”

“응?”

“지구기숙사 애들, 좀 위축되겠다.”

“그러게. 실력 차가 압도적일 텐데.”

“그것도 그렇고~ 그래슬리 6인방 인기 대단하잖아. 대부분 저쪽 응원할 텐데, 결투 할 맛 안 날 것 같아.”

“음~ 성격에 따라선 오기가 생길 것도 같은데?”

“그런가? 쟤네도 자존심이 있을 텐데, 너무 빨리 끝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홀더랑 지구기숙사가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네.”

미리암, 그리고 친구들과 결투와 관련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곧 결투가 시작되자 모두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건담사가 페일사의 개발 부서를 인수했다더니, 모빌슈트가 부족했던 지구기숙사는 페일사에서 ‘조워트’를 지원받았는지 파일럿과가 아닌 학생 넷은 조워트에 탑승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파일럿과가 아닌 지구기숙사 학생들은 결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그래슬리 6인방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이내 모빌슈트의 곳곳이 파손되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구세대 데미 트레이너 모델을 개조한 모빌슈트를 사용하는 파일럿과 1학년의 추아츄리는 조금 더 버티는 듯했지만 이내 샤디크의 ‘미카엘리스’에게 하부가 파손돼 결투가 시작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홀더와 그래슬리 기숙사의 1:6 상황이 펼쳐졌다.

아무리 성능 좋은 모빌슈트라도 혼자서 여럿을 상대하는 건 무리라 시청각실의 학생 모두 곧 그래슬리 기숙사의 승리를 예상하였다.

홀더의 모빌슈트를 몰아 포위망을 좁힌 그래슬리 기숙사는 무언가의 ‘기술’을 사용했고 ‘에어리얼’의 비트들이 작동을 멈추고 결투할 때마다 나타나던 붉은색 발광부가 빛을 잃었다. 

일방적 공격을 이어가는 샤디크의 ‘미카엘리스’를 피해 홀더는 방어만을 하며 물러서는가 싶더니, 오래되지 않아 ‘에어리얼’의 발광부가 푸른빛을 띠며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파손된 부위는 많았지만, 아직 전투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작동을 멈췄던 비트들도 재가동을 시작하며 모빌슈트를 중심으로 둘러쌌다. 지난번, ‘파렉트’와의 전투 때와 비슷하게 이상한 파장- ‘오버라이드’로 추정되는 제어 기술을 이용해 그래슬리 기숙사의 모빌슈트들이 사용하는 ‘기술’를 무력화한 후, 하나둘 ‘베귀르펜테’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아직 1:3의 상황이었고, 결국 ‘에어리얼’의 한쪽 하부가 파손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샤디크의 한방이 남은 순간, 지구기숙사의 일격으로 ‘미카엘리스’의 블레이드 안테나가 파손되어 그들의 극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투 선서처럼 ‘승패는 모빌슈트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파일럿의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오직 결과만이 진실.’ 그 자체를 보는 듯했다.

승리 직후, 홀더는 모빌슈트 콕핏을 열고 나와 건담사의 pv에서 췄던 춤을 췄고, 분명 웃긴 안무였는데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결투의 강렬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기도 했고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홀더의 모빌슈트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지구기숙사 애들 단합력 엄청나다. 그 그래슬리 6인방을 이겼다고?”

“미오리네, 취향이 좀 독특하긴 해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 것 같아.”

“그러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시청각실에선 여기저기서 지구기숙사를 새로 봤다느니, 홀더가 조금은 멋있는 것 같다느니, 그래슬리 기숙사가 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느니, 미오리네를 다시 봤다는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엘란 케레스와의 전투에서 보여줬던 ‘오버라이드’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확신하게 됐다.

아마도 ‘에어리얼’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인 것 같고 이론으로만 어렴풋이 전해 들었던 그것을 직접 두 번이나 목도하니 당황스러웠다.

베네리트의 3대가가 아닌, 극 하위 랭크의 신세 개발 공사- 작은 채굴상 기업에서 저런 엄청난 기술을 보유한 모빌슈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함께 결투를 지켜본 경영전략과 친구들과 미리암이 한 입으로 얘기했고, 동감했다.

방과 후였기에 각자의 할 일을 위해 곧이어 삼삼오오 시청각실을 나갔고 나와 미리암도 함께 하기로 했던 과제가 있었기에 시청각실을 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홀더-슬레타 머큐리 말이야. 아까 결투에서 좀 이상하지 않았어?”

“혼자 막 중얼거린 거 말하는 거지?”

“응. 마치 대화하는 것 같이...”

“의아하긴 했어. 흥분해서 혼잣말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역시 이상해.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어. 그 ‘에어리얼’이든 슬레타 머큐리든...”

“우리들이 머리 싸매 봤자 답은 안 나올 것 같아. 그리고 얽혀서 좋은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럴까? 하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번 결투, 지구기숙사가 이겼으니까, 걔네 축하 파티 같은 거 하겠네.”

“그렇네? 결투 이겨서 건담사 정식 승인도 받을 테니까. 대단해 정말...”

“내말이~!”

.

.

.

주식회사 건담이 교내 학생 창업회사로 승인받은 이후, 건드 기술을 의료에 사용하겠다며 미오리네와 홀더, 지구기숙사는 사업 아이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았다.

인수를 통해 신세 개발 공사와 페일사 개발 부서를 합병한 터라 제품 개발은 순조로워 보였고 페일사의 엔지니어도 지구기숙사를 종종 방문하며 ‘건드 의족’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콜로니와 프론트에서 쭉 살아왔던 우리 스페시언 청소년들에게 의체란 생소한 물건이었다.

웬만해선 큰 사고를 당할 일이 전무했고 주변에서 질병, 노화 등으로 신체에 불편함이 있어 지팡이나 전동휠체어 같은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경우는 때때로 있었지만, 선천적 장애로 신체 일부가 없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기도 하고 절단된 신체 부위가 있는 주변인도 거의 없었기에 의체가 낯선 학생이 많았고

호기심을 갖는 일부 몇몇은 ‘건드 의족’의 개발 및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지구기숙사 인근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홀더와 미오리네의 사이엔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미오리네가 회사 일로 출장 간 이후에도 혼자 열심히 온실을 돌보는 홀더를 보면 분명 허울뿐인 약혼자는 아닐 거란 분위기가 조성됐고 대부분 학생들도 둘이 은근히 사이좋은 거 아니냐는 둥, 정말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은밀히 오가고 있었다.

물론 결혼을 원치 않는 미오리네의 방패막이자 거래관계일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존재했다.

.

.

.

휴학 중이던 엘란 케레스가 복학하자마자 두 달 전쯤의 단체전 결투로 반파된 에어리얼의 수리가 완료되어 건담사 직원이기도 한 지구기숙사 모두와 미오리네는 베네리트의 핵심 개발 거점인 ‘플랜트 쿠에타’로 갔다.

플랜트 쿠에타.

허가 없이 아무나 출입할 수 없기에 장래에 베네리트 그룹 안에서 직장을 갖길 원하는 아스티카시아의 학생 대부분이 언젠간 가보고 싶다고 꿈꾸는 곳이기에 지구기숙사생들에게 조금 질투를 느꼈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교실 밖 복도에서 어시언 주제에 영애님 덕으로 호사를 누린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들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복학 직전에 건담사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합류했다는 엘란은 어떤 연유에선지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석 달에 가까웠던 휴학에서 돌아온 그는 뭔가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어두침침하고 무표정했던 얼굴이 밝고 생기 있는 미소로 변한 것도 그렇지만, 활동 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처럼 승하차장과 교내전철, 교실과 모빌슈트 실습 공간, 결투위원회 라운지와 페일 기숙사 인근에서만 보였던 이전과는 다르게 활동 범위가 넓어져 교내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보였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예전의 ‘얼음 왕자’가 아니었다.

변화한 그의 모습이 다른 사람은 아닌가 느껴질 정도로 낯설었지만, 잘난 얼굴 덕에 그 또한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건 변했어도 홀더인 슬레타 머큐리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 보여서 그날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휴학 했다고 어렴풋이 생각할 따름이었다.

.

.

.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미리암 그리고 친구 커플과 함께 한가히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학생수첩 겸 이동 통신기의 알람이 울려 확인해보니 플랜트 쿠에타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일부 구역이 사고로 소실되어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수리가 불가피해 한동안 신규 모빌슈트 개발 및 생산에 약간의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고,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운송선이나 모빌슈트들의 폭발이 있었던 것 같았다.

피해자가 꽤 나온 것으로 보여 걱정은 되었지만, 베네리트 그룹의 성장 역사에서 크고 작은 사고는 종종 있어왔다고 배웠기에 짧은 묵념의 시간을 갖고 곧 다시 티타임을 즐겼다.

지구기숙사생들이 돌아왔을 무렵에 중상자 명단에 회장님이, 사망자 명단에 제타크 CEO가 있다는 소식을 접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사고가 났길래?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건 알 도리가 없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