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님 연성빵

내가 연성빵 한번 더 하면 사람이 아니다. 천재 피아니스트 아카기X페이지터너 카이지

FKMT by 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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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내내 작업곡으로 쓴 모슈코프스키 에튀드 OP 72 no. 1을 공유합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썰인데 어릴 때 피아노 배우다가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돼서 피아노를 관둔 카이지와 그걸 줍줍해서 페이지터너로 쓰는 아카기가 보고 싶음.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잘 쓰는 게 중요하대~ 라는 엄마들 토크에 홀랑 넘어간 카이지엄마, 어린 카이지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데려감.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이 연습 안 해놓고 포도알 칠하고 맨날 고양이 춤, 젓가락 행진곡만 연습해서 피아노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일상일 듯. 그러던 어느 날 피아노 학원 친구가 콩쿠르에 나간다며 맹연습 하는걸 보고 자기도 멋진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며 선생님한테 떼 씀. 연습도 안 하면서 그런 곡을 칠 수 있겠냐며 가서 연습이나 하라고 딱밤 때려서 내쫓음. 그때부터 피아노가 너무 좋아져서 열심히 연습하는 초딩 카이지. 학교에서도 책상 두드리면서 상상 연습하고 학교 끝나면 피아노 학원 뛰어가고 5~6시간씩 앉아있고… 처음엔 작심삼일 정도겠지 하던 선생님도 점점 진지하게 연습하고 재능이 보이는 카이지를 예뻐하며 열심히 가르침.

어느새 콩쿠르 나간다며 연습하던 친구조차 뛰어넘는 실력을 갖추게 된 카이지.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나왔다곤 믿기 힘든 실력으로 초등학생 콩쿠르를 휩쓸고 다님. 솔직히 가난한 집이라 카이지 뒷바라지 하는 것도 힘들지만 상 받고 붕방붕방 뛰는 카이지가 좋아서 누나도 엄마도 카이지 하나만을 위해 투잡 뛰면서 일함.

그렇게 예중 입시를 위해 한밤중까지 연습하고 집에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함.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자동차 바퀴에 깔리며 절단을 하게 되고 접합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됨. 당연히 피아노도 그만두고 인생을 막살기 시작함. 자기 인생을 위해 누나랑 엄마를 희생시켰는데 자기보다 천재인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고 고작 이런 사고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다는 걸로 멘헤라 기질도 좀 올 듯. 남들이 너 요새 피아노는 아예 안 쳐? 이런 거 물어보면 예민하게 구는 카이지 좋네요… 네가 뭔데 그런걸 물어보냐고 사람 패서 경찰서 자주 갈듯(…)

그렇게 인생 대충 살면서 우리가 아는 니트 도박중독자 어쩌고저쩌고 성인이 된 카이지. 피아노를 증오하지만 여전히 사랑해서 연주 영상은 또 착실히 챙겨보고 피아노 앨범도 자주 사러 다님.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일본의 고등학생 천재 피아니스트 소개 영상을 보게 됨. 동년배의 영상을 보면 멘헤라 기질이 더 심해지지만 차가운 인상과 반대되게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연주에 끌려 해당 영상을 계속 봄. 근데 이런 애가 초등학생 시절에 있었나, 에이 전국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다 알겠냐 하면서 보던 중, 피아노를 어떻게 시작했냐는 질문의 대답이 귀에 꽂힘.

“저는 피아노랑 전혀 연관이 없었지만 딱 한 사람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길래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걸까.

편의점 알바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음. 매대만 바라보며 결제를 하곤 언제 퇴근하나 생각하는 카이지.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의 손이 참 예쁘다. 피아노 치면 잘 치겠네. 하는 생각에 얼굴을 슬쩍 보니 그 아카기 시게루가 서있음.

“아카기 시게루?!”

자신을 알아본 게 기쁜 건지 살짝 웃는듯한 아카기를 보고 영상이랑은 다르게 부드러운 인상이란 생각을 함. 팬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 팬이라기엔 그렇게 챙겨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이야기는 나눠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에 뒤죽박죽인 머릿속임. 고민하던 카이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카기가 먼저 입을 열었음.

“이제 피아노는 안 치시나요?”

순식간에 싸해지는 카이지의 표정. 왼손을 뒤로 숨기며 그런걸 왜 묻냐고 날카롭게 대해버림. 애당초 그만둔 지 10년도 더 넘었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던 시절의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짐. 카이지의 질문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아카기 때문에 정적이 흐름. 처음 본 사람한테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싶어 조금 후회하는 카이지.

“…어릴 때나 조금 한 거지, 이젠 관심 없기도 하고… 돈도 없고…”

아카기의 눈을 피하며 약간의 사회생활로 터득한 변명거리를 말함. 이미 싸해진 분위기를 돌리긴 어렵겠지만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닐 테니 괜찮겠다고 생각함.

“그럼 다음 공연부터 페이지터너로 일해주세요.”

완전 생뚱맞은 말이 들림. 음악은 이제 안 한다고 반박할 새도 없이 명함만 휙 건네주고 나가버림. 그렇게 아카기와의 인연이 끝날 줄 알았지만…

다음 날, 또 편의점에 출근해 일하기 싫다와 퇴근하고 싶다만 되뇌는 카이지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림.

“생각은?”

천재 피아니스트면서 왜 이런 구석진 편의점까지 직접 행차하냐고 비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결제해주는 카이지. 생각은 무슨 생각, 페이지터너로 일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음악이랑 관련된 일은 안 할 거라고 거절하려는 찰나 눈앞에 떨어지는 돈뭉치를 봄.

“이…게 무슨…?”

척봐도 몇백만엔은 되어 보이는 돈뭉치에 놀라 굳어있는 카이지를 신경도 안 쓰고 다음 공연 때 잘 부탁한다며 나가버림. 다음 공연이 언제인지라도 알려주던가, 이 돈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하다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함.

“그… 편의점알바…”

“카이지씨?”

“안 해요.”

이름은 또 어떻게 아는 거냔 의문도 들었지만 본론부터 빠르게 이야기 하는 카이지. 전화기 너머의 아카기는 침묵을 유지한 채 카이지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음.

“이제 음악이랑 관련 된 일은 하지 않을거니까…”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림. 한숨을 푹 내쉬며 재고정리를 하려고 일어나려는 순간 문자가 하나 날아옴.

‘내일까지 못 갚으면 지하행이다.’ㅡ엔도

카이지가 빚쟁이 도박중독자라 참 다행임. 어떻게 페이지터너로 취업시키나 고민했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써먹을 수 있는 빚쟁이 소재가 있어서…!! 안 할거라고 전화 끊은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아카기한테 전화를 함.

“…정말로 돈 주는거지…요?”

자세한건 만나서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퇴근시간에 다시 연락해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김. 최악의 인상이었을텐데 받아줘서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과거의 자신을 어떻게 알고있는지 의심하는 마음이 듬.

카이지가 초조해하거나 말거나 시간은 착실히 흘러 퇴근시간이 다가옴. 아카기에게 전화를 걸자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함. 공연도 있다면서 연습 안하나… 궁시렁대며 카페로 들어가 아카기 앞에 앉음. 얼마나 기다린건지 재떨이에 수북한 담배꽁초를 보며 퇴근시간에 맞춰서 나오지 미련하게 기다린거냔 생각에 약간 미안해지는 카이지임.

“그래서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같이 일 할 사이인데 편하게 말 하세요. 카이지씨.”

“어… 음… 그래. 너도 편하게 해. 그… 정말 단순히 페이지터너만 하는데 그정도 돈을 주겠다고?”

돈이 썩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뒷말을 삼키며 물어봄. 대답은 안 하고 카이지를 가만히 응시하는 아카기. 역시 그정도 돈을 고작 페이지터너한테 주는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럼 뭘 시키려는 걸까. 침을 꿀꺽 삼키며 제발 매춘이라고만 하지말라고 생각함. 그러나 아카기한테서 나온 말은 의외였음.

“왜 그만둔거야?”

“말했잖아. 돈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고작 그런 이유로?”

“네가 뭘 안다고…!!”

“당신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지.”

눈물 터지기 직전인 카이지의 표정과 대비되게 평온한 아카기. 돈 몇푼에 자존심까지 팔아가며 이런 말을 들어야 된다는게 너무 분한 카이지는 까짓 돈 안 받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함.

“초등학생때 이름 좀 날렸다고 끝까지 살아남는 세계도 아니고”

“거기에 손가락이 절단 됐으면 피아니스트로서 생명은 끝난거지.”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서 속이 시원해?”

눈물콧물 찔찔 흘리며 아카기한테 털어놓음. 카이지가 진정되길 기다리는건지 가만히 담배만 태우는 아카기. 한참을 혼자 욕하면서 울던 카이지의 눈물이 잦아들자 입을 엶.

“난 당신때문에 시작했는데.”

“뭐라고…?”

“OO초등학교 음악실. 카이지씨가 맨날 점심시간마다 피아노 쳤었잖아.”

그랬던 기억이 있던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카기에 대한 기억은 없음. 기억을 되살리려 인상을 찌푸리자 아카기는 기억 못할줄 알았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감.

“나는 모든게 무료했고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어.”

“카이지씨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듣고나서야 세상에 색이 있다는걸 알게 된 기분이었어.”

“그런 당신과 같이 연주를 하고 싶을 뿐이야.”

담담히 자기의 이야기를 끝낸 아카기. 페이지터너는 무대위에 오르지만 없는 사람과도 같은데 그걸 같이 연주한다고 말 할 수 있는걸까? 뭔가 될대로 돼라! 어차피 돈은 필요하니… 그리고 자신의 옛 연주를 듣고 피아노를 시작해서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는 것도 왠지 기쁜 카이지임. 아까까지 울고불고 화냈던 건 싹 날아가고 시원하게 웃으며 말함.

“돈은 확실히 챙겨줄거지?”

“…그래…….”

그렇게 시작된 아카기의 페이지터너 생활… 일 줄 알았지만 페이지터너는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카이지. 아카기에게 다음 공연때 보자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무슨소리야 카이지씨. 그정도 돈을 받았으면 연습실까지 와야지.”

“어…?”

“나 악보 넘기는거 귀찮거든.”

천재라는 것들은 다 이렇게 이상한걸까… 그래도 받은 돈이 돈이니만큼 순순히 승낙함. 그렇게 기념비적인 카이지의 페이지터너 첫 출근 날. 오랜만에 보는 그랜드 피아노와 피아노 악보에 설렐 틈도 없이 아카기의 연습이 시작 됨.

“카이지씨, 느려.”

이 까다로운 천재 피아니스트는 조금이라도 느려도, 빨라도 바로 연주를 멈추고 카이지를 노려봄. 일찍 일어나서 넘길 준비 하는것도 싫어하면서… 이쪽은 악보를 본지도 오래됐는데…!! 억울하지만 돈 받은게 있으니 크읏 크읏 하면서도 아카기가 원하는 타이밍에 넘겨주려 노력함. 점점 아카기의 연주에 맞춰 악보 넘기는게 익숙해져가자 그제서야 아카기의 연주가 귀에 잘 들리기 시작함.

그러니까… 사람 몇명은 죽이고 다녔을 것 처럼 생긴 녀석이 나때문에 이런 연주를 한다는거구나.

“집중.”

잠깐 딴 생각한걸 귀신같이 눈치채는 아카기임…

이래저래 투닥대면서도 착실히 연습실에 출근하고 아카기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페이지를 넘겨주는 일상에도 어느정도 익숙해 졌을 무렵임. 아카기가 다음주에 공연이라며 그때까지는 연습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함. 공연 당일날에 바로 실전 투입이라니, 그간 맞춰온게 있다지만 조금 자신이 없는 카이지. 역시 같이 연습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물어보자…

“질릴 정도로 많이 쳤던 곡이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곤 다음주에 보자며 가버림.

그리고 공연 당일.

“내가 당신의 왼손이 되어줄게.”

무대에 오르기 전 카이지에게 이렇게 말함. 이후 이어지는 곡은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사실 이거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적어왔습니다. 아카기가 왼손으로 반주해주고 카이지가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카기가 나름대로?ㅋㅋ 위로해준다면 이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음. 카이지도 왠지 같이 연주하는 것보단 아카기가 한손으로만 연주하는 거에서 위로 받을 것 같음. 한손을 아예 안 쓰는 곡이다보니 페이지터너가 필요없을텐데도 굳이 카이지와 함께 무대에 올라 카이지의 손이라도 되는것 마냥 피아노 옆면을 붙잡고 연주할 아카기를 생각하면 너무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ㅎㅎ

카이지도 나름 초등학생 때 이름 날렸던 피아니스트니까 사고 소식도 알음알음 아카기에게 전해졌을것 같고… 그때부터 연습했다는 뒷설정이 있었는데 어째 넣을만한 순간이 안 와서 여기서 풉니다…ㅋㅋ 그리고 초딩 카이지는 아카기를 기억 못하지만 아카기는 카이지를 기억하는 이유!!… 별건 아니고 점심시간에 피아노 치면서 우는 카이지(같은 부분을 계속 틀려서 멘탈 나감)를 스쳐지나가듯 봤고 그날 방과후까지 울면서 피아노를 놓지 않고 계속 치는 모습, 그리고 틀린 부분을 완벽하게 해내는 걸 봤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아카기가 일방적으로 본거라 카이지는 몰랐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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