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신서백->박] 동료 직원 3명이 한 명을 좋아하게 됐는데, 어떡하죠? (1)

해량무현, 지혁무현, 애영무현 로코

-로맨스코미디에 맞춘 날조와 약간의 캐붕 있습니다.

-해량이 연 체육관에 애영이랑 지혁이도 입사했다는 설정.

“고민이 있다.”

회원이 없어 텅텅 빈 체육관에서 아무 기구에 대충 걸터앉은 해량이 깍지 낀 두 손에 턱을 얹고 심각하게 말하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당연하게도 서지혁이었다.

“예?! 뭔가요! 혹시 또 불면증?! 여긴 해저기지가 아니라서 그때처럼 주먹 쓰면 바로 신고당해서 잡혀갑니다!”

“아니야. 불면증은 그 뒤로 잠잠해.”

“그럼 뭔데요?”

애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지간히 가벼운 고민이라면 그들에게 털어놓지는 않았을 터. 손 털고 나온 용병업계에 얽힌 사건인가? 염려하는 애영에게 해량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선생님을…좋아하는 것 같다.”

“네?”

“예?”

“그 사람과는 다른 형태의 호감이라 눈치 채는 것이 늦었어. 하지만…며칠 동안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이 맞다.”

“에…”

벙쪄 있는 지혁 대신 애영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확실히 하고 싶어서 묻는 건데요, 선생님이라는건 혹시…”

“3층 치과 원장인 박무현 씨.”

“안 돼요!”

“안 돼요!”

동시에 터져나오는 반대의 목소리에 해량의 눈이 커졌다. 같은 말을 외친 지혁과 애영도 서로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생각지 못한 반응에 해량이 당황스런 목소리로 묻자 그의 직원들이 외쳤다.

“저도 무현 씨를 좋아하니까요!”

“저도 선생님을 좋아하니까요!”

합창처럼 외친 둘은 뜨악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너는 왜?! 너는 왜?! 상대에게 손가락질하며 경악하는 둘을 보던 해량은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두 눈을 감았다.

퇴근한 셋은 벽으로 분리된 방이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소주 세 병과 어묵탕 하나를 시킨 그들은 직원이 어묵탕을 가스버너 위에 올려두고 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묵탕이 끓기 직전에야 서지혁이 침묵을 깼다.

“그래, 백애영. 넌 선생님을 언제부터 좋아했어?”

“정확히는 몰라. 아마도 해저기지 탈출하던 날.”

“왜?”

“살면서 그렇게 다정하고 약하지만 강인하면서 비폭력적임에도 폭력을 쓰는 사람을 혐오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 내 돈을 노리지도 않았고 나의 도움을 당연시 여기지도 않았어. 과하게 의지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고. 또 돈 욕심은 없는데 부지런해. 대단하지 않아?”

“아깝다. 비폭력적인거만 빼면 딱 관장님인데.”

“닥쳐. 관장님, 전 관장님 그런 눈으로 안 봤어요.”

“알아.”

애영은 속마음을 뱉어내서 홀가분하다는 듯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단숨에 반 병을 비운 애영이 지혁에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지현 언니 좋아하던 거 아니었어? 왜 뜬금없이 무현 씨야?”

“뭐 좋아하는 사람이 바뀔 수도 있는거지…”

말을 흐리는 지혁을 애영이 노려봤다. 애영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지혁은 두 팔을 들어 보였다.

“아, 알았어. 지현이 좋아했던 건 맞는데…하아…사실 쪽팔려서 말 안했지만 차였어.”

“뭐? 언제?”

“체육관 오픈하고 얼마 안되서…이제 용병은 은퇴했으니까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혹시나하고 연락해봤거든. 만나서 할 얘기 있다니까 좋다고 만나자고 하는거야. 난…그게 긍적적인 신호인 줄 알았다고!”

“설마 냅다 고백했냐?”

“청혼했어.”

“미쳤어?”

척수반사처럼 튀어나온 애영의 매서운 질타에 지혁이 흑흑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척 하는 꼴이 같잖았다.

“그치만…!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연락 끊긴 남자가 만나자니까 바로 수락하고! 그간 내가 보내준 과자들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나는…! 너무 기뻤단 말야…!”

“기뻐서 혼자 손자 이름까지 생각했나 보군.”

“어흐흑…”

해량이 표정 없이 대꾸하자 지혁이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우는 척 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우는 것 같았다. 애영은 말없이 소주 병뚜껑을 열어 지혁의 손 옆에 갖다 줬다. 지혁은 코 먹는 소리를 내더니 병째로 들이켰다.

“하, 그래. 니가 지현 언니한테 차인 이야기는 궁금하진 않았지만 잘 들었고, 그래서 무현 씨는 왜 좋아하게 됐어?”

“다정하시잖아…”

지혁이 벨을 눌러 두번째 소주를 시키며 칭얼거렸다.

“그분이 나한테나 생명의 은인이지, 그분은 나 같은거 기억도 못할 줄 알았는데. 체육관 열기 전에 인사하러 왔더니 엄청 반겨주셔서 좀 당황하고 놀랐었어. 그 뒤로도 되게 잘 챙겨줬고…그리고…”

“뭐야.”

지혁의 뺨이 발그레해지는 것을 본 애영이 쌍욕을 뱉고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멀찍이 떨어졌다.

“가끔 나를 되게, 여리게 보시는데, 그게 뭔가 간질간질하고…기분이 좋더라고. 이상하지? 이렇게 큰 남자를 깨지기 쉬운 뭔가처럼 다루는데 처음 겪어봐서 좀 웃기고 좋았어.”

쑥스럽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지혁을 보던 애영도 입을 가렸다. 욕지기가 올라올 것 같아서였다. 지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해량은 한숨을 옅게 쉬었다.

“그래, 선생님의 매력을 눈치챈 사람이 나 혼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라이벌이 너희들이라니, 이건 좀 곤란하게 됐네.”

“그래서 형님은 왜 선생님을 좋아하시나요?”

“너희들과 비슷한 이유지.”

“자세하게 말해줘요.”

어차피 솔직하게 말한 둘은 전 팀장이자 현 관장의 속내도 털어볼 작정으로 졸랐다. 사별한 연인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도 전부 알고 있는데 대체 언제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 한 켠을 내줬단 말인가? 친한 부하임과 동시에 직원이자 동료인 두 명이 끈질기게 물어보자 해량은 두번째 소주병을 한 모금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정말 너희와 별로 다를 것 없어. 해저기지를 탈출하며 나는 선생님께 아주 많은…감정을 느꼈어. 특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는데 그 분이 날 업고 비상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았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은 이기적인 것이 당연하고 비정하며 약자가 언제나 고통받는 세상이었는데, 성별만 제외하면 약자로 살아왔을 것이 분명했을 선생님은 절대 약자가 아니었어. 세상을 선하게 보고, 선을 베풀고 선을 권하지만 타인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분노하지도 않았지. 난 그런 사람을 처음 봤어.”

해량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둘은 해량이 고르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과 직원이 된 소원도 툭하면 우리 원장은 착해서 좋은데 너무 착해서 문제라고 그들에게 하소연하러 왔다.

주먹의 세기로 강약을 정하던 그들에게 박무현의 존재는 가히 충격이었다. 힘으로 해결하면 간단한 것을 무현은 돌아돌아 완만하게 해결했다. 사실 그들이라고 살인과 폭력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그래야만 하니까 했을 뿐이지. 그런데 무현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굳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길을 제시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세 명은 한동안 무현의 장점에 대해 떠들었다. 단점에 대해서도 떠들었다. 장점과 단점이 별로 다를 바가 없었지만, 장점을 말할 때는 얼굴을 붉히며 서로 머뭇거리던 그들이 단점을 말할 때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셋은 각각 소주를 5병씩 해치운 뒤에야 헤어졌다. 숨겨왔던 마음을 서로에게 꺼낸 그들은 후련한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난처한 얼굴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 3명이 한 명을 좋아하게 됐다니. 이건 다 박무현이 쓸데없이 다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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