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신해량] 정의로운 사람

신해량 과거 이야기

-과거 상상해서 쓴 날조뿐인 글.

-서지혁 나옴. 해량의 그녀 나옴. 논컾글.

“해량아. 오늘은 또 왜 그랬어?”

“…”

이제 열네 살. 중학교 1학년의 소년이 눈을 내리깐 채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누나가 속상한 얼굴로 해량의 손을 잡아 흔들며 재차 묻자 해량이 겨우 입을 열었다.

“걔네가 은호한테 구정물을 쏟고 괴롭히고 있었어.

“은호는 누구야?”

“제일 앞자리 구석에 앉는 애 있어.”

해량이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누나가 쥐었던 손을 치우자 그 아래에는 붕대로 둘둘 감긴 손이 나타났다. 누나가 그 손을 보고 입술을 깨물자 해량이 눈치를 보더니 붕대 감긴 손을 조용히 제 등 뒤로 감추었다.

해량은 걱정을 끼치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볼 때마다 장성한 얼굴이 기대된다며 호호 웃을 정도로 호감가는 외모에 성격도 똑부러졌고 누군가를 괴롭히기는 커녕, 소외되는 애들을 챙겼다. 해량이 덕분에 우리 애가 밝아졌다며 엄마들이 과일이나 반찬 따위를 가져다주는 일도 빈번했다. 해량의 어머니는 애가 누굴 닮아 이렇게 착한 지 모르겠다며 가끔 자랑 섞인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해량이 문제아가 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부터였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성장을 추월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서열에 예민해지는 시기. 힘만 세고 머리는 빈 놈이나, 힘 센 놈한테 괴롭힘 당하기 싫어서 폭탄 돌리기 하는 비열한 놈들이 교실에 판치기 시작하자 해량은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에 시퍼렇게 멍을 달고 온 애와 함께 따지러 온 엄마에게 해량의 어머니는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사과하고 돌려보낸 후에 해량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어머니는 정의감에 폭력을 행사했다는 아이의 앞에서 이마를 짚었다.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담임 선생님에게 사실을 물어보러 갔더니, 맞은 놈들이 못된 애들이긴 했다. 담임도 곤란한 모양이었다.

“아이들 사이의 서열까지 제가 관여하긴 힘들거든요. 선생님한테 의지하면 또 고자질쟁이라고 왕따 당하고. 저는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해량이가 그…렇게 한 후론 반이 조용해지긴 했어요.”

담임은 아주아주 난처한 기색으로 뒷말을 덧붙였다. 반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애를 피떡이 되도록 때려눕힌 해량을 혼내긴 했지만 그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라는 본심이 살짝 드러났다. 이야기를 다 듣고 돌아온 해량의 어머니는 해량에게, 무조건 때리지 말고 일단 경고는 해주라는 말 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해량은 착한 아이였고, 그 뒤론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듯 싶더니 중학교에 새로 입학하니 다시 문제가 생겼다. 피떡이 된 상대가 다른 중학교로 가는 바람에 해량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경고를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처맞은 것이다. 중학생이 되며 키가 10cm는 더 큰 해량의 주먹은 작년보다 더 무겁고 빨랐다. 코뼈가 부러져 수술을 해야 하는 한 명과 갈비뼈가 금이 간 두 명과 두 눈과 양 뺨이 퉁퉁 부어 봐줄 수가 없는 한 명의 보호자들이 몰려들어 학교에 항의했다.

해량의 어머니가 수습을 위해 학교에 간 사이, 해원이 해량을 붙잡아 앉혀두고 부탁했다.

“네가 정의로운 걸 탓하지는 않아. 강한 사람이 약자를 지키는 건 절대 욕할 일이 아니지. 약한 친구를 괴롭히다가 맞아서 입원하게 된 애들, 불쌍하다고 동정하지도 않아. 그렇지만 해량아.”

간절하게 떨리는 누나의 목소리에 해량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네가 휘두른 폭력에 책임을 지는 건 네가 아니라 우리 엄마야. 엄마가 없으면 할아버지, 아니면 나겠지. 너는 지금 책임 없이 주먹을 쓸 뿐이야. 알겠니?”

해량은 똑똑하고 또 착했다. 그가 약자를 위해 휘두른 강도 높은 폭행을 그가 아니라 그의 보호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을 깨달은 해량은 그 뒤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주먹을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 집에 연락이 가지 않게 아주 은밀하게 팼다는 소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로 어머니도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줄도 몰랐던 해량은 상주 완장을 차고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고서야 그가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았다.

줄지어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고 있는 남매를 도와주러 온 외할아버지는 사정을 모르는 남매에게 그간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던 일을 알려줬다. 해량의 아버지는 용병 세계 에서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온갖 의뢰를 성공시키는 전설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적이 아주 많았던 그는 어머니와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해량을 낳을 때까지 몇 년간 조용히 살다가 훌쩍 떠났다.

해원은 어렴풋이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고 해량은 그를 아예 몰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거나, 어머니랑 아주 안 좋게 헤어져서 못 만나는 줄만 알았던 해량이 외할아버지에게 왜 그는 정착하지 않았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집 안에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겪은 서러운 일들이 떠올랐다. 외할아버지는 그를 안타깝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는 너무 정의로웠다.”

너무 정의로워서, 약소국이, 여자와 아이가, 자신들을 지켜 달라고 보내는 의뢰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던 용병들은 약자의 의뢰를 쉽게 무시했고, 은퇴하다시피한 해량의 아버지에게까지 흘러 들어온 살려달라는 비명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해원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찾아온 조문객을 맞이하러 떠났고 해량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해량을 보며 누굴 닮아 이렇게 정의로운지…. 하고 머리를 쓰다듬던 일이 생각났다.

해량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들어갔다. 학업엔 뜻이 없어서 미련도 없었다. 2년 동안 열심히 구른 후에 제대해서 용병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신해량 상병님 어디 가십니까?”

“PX 간다.”

“앗, 저도 사주십쇼. 아이스크림 먹고 싶슴다.”

“서 일병 돈으로 사먹지 그래.”

“아잉.”

후임 중에 가장 키가 크고 신체능력도 좋아 눈에 띄는 남자였다. 서지혁은 입대하자마자 이등병 루키로 이름을 날리더니 어느샌가 소대원 전원과 말을 트고 지냈다. 밉지 않게 능글능글 사람 대하는 스킬에 당한 건 해량도 마찬가지였다. 기어코 해량에게서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은 지혁이 인적이 드문 구석에서 나란히 서 있던 해량에게 물었다.

“신 상병님 군대 오래 안 있으실 거죠?”

“그건 왜?”

“왠지 그래 보이셔서요. 뭐, 다른 일 하실겁니까? 경호원?”

“….”

“왜 그 재벌가 경호원은 얼굴도 본다던데요. 상병님 서로 데려가려고 경매 붙일지도 모릅니다.”

“경호원은 안 해.”

“그럼 뭐 하시는데요?”

“…그걸 왜 자꾸 물어? 서 일병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야, 상병님 따라가려고 그러죠.”

장난스러운 말투에 해량이 그를 쳐다봤다. 진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해량이 시멘트 벽에 뒷통수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말 안 해요.”

“용병 할거야.”

“아~ 그래서 입대했슴까? 총 쏘는 거 배울려고? 하긴 민간인은 총 다루기 쉽지 않죠.”

“말하면 가만 안 둬.”

“말 안 한다니까요.”

지혁이 불안하면 새끼 손가락이라도 걸겠냐며 손을 내밀었다. 해량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하사로 진급하기 직전, 해량은 제대했다. 그의 쓸모를 아쉬워하던 맞선임이 해량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매달렸지만 해량은 담백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서지혁은 1년 후에 보자며 연락처 바꾸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에야 해량을 놓아줬다.

해량은 제대하고 말도 없이 해외 나가지 말고 와서 얼굴 비추라고 누누히 강조하던 누나의 말에 따라 집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예매한 버스표를 살펴보던 해량은 누군가의 비명에 발을 멈췄다.

“소매치기야!!!! 내 가방!!! 거기 서!!!!”

해량이 뒤를 돌아보자 검은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자신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를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이를 악물고 죽어라 쫓아왔다. 해량이 팔을 뻗어 어렵지 않게 남자의 목깃을 잡아 챘다. 몸이 날쌘 대신 가벼웠던 남자는 막 제대한 거구의 군인의 손에 붙잡혀서 대롱 매달렸고 그 사이 달려온 여자가 남자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았다. 목덜미를 붙잡혀 한껏 몸부림치며 쌍욕을 날리는 남자를 가만히 내려보며 이걸 어떡할까, 고민하던 해량에게 여자가 말을 걸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네? 아, 아뇨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에요, 위험할 수도 있는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고마워요.”

감사 인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해량이 뒤늦게 여자를 돌아봤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웃는 얼굴이 어딘가 눈길을 잡아 끌었다. 남의 얼굴을 이렇게 빤히 쳐다보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시간 되시나요?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어….”

해량이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사이 버스터미널 경비들이 다가와 소매치기를 데려갔다. 그제야 손이 자유로워진 해량이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내려보다가 뒷목을 만지며 대답했다.

“그럼…그럴까요?”


외전 불면증 보셨나요? 해량이는 왤케 착할까요. 지독하게 다정해서 한숨만 나온다. 연인을 데려간 자연에게 복수하는 방법이 상상도 못한 다정함이라서 혼자 울부짖으며 이불을 씹었습니다.

해량이 폭력을 쓰긴 하지만 다 이유가 있잖아요. 저는 폭력을 좋아하진 않지만 말로 해서 안 들어처먹는 새끼는 좀 맞아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마 해저기지의 다른 사람들도 그래서 은근히 해량을 응원하는 거겠죠. 보통 말로 해서 안 듣는 사람은 자신이 강자인 걸 알고 횡포 부리는 거니까요.

해량이 주먹으로 혼내주는 사건 중에 누나가 얽힌 일도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흐름상 끼워넣을 곳이 없어서 뺐네요. 나중에 다시 읽다가 추가할지도 몰라요. 해량과 누나가 닮았다면 누나도 만만찮게 고생했겠죠. 해량의 누나는 일반인일 것 같은데 이상한 놈이 꼬여서 해량이 해결하는 일이 적어도 한 번은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굳이 누나가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아도 뒤에서 성희롱하다가 해량이 조용히 패고 넘어갔을지도…?

하…신해량 이…남자…너무 어려워요. 한국인들에게 보이는 다정함과 반비례하는 무한교에 대한 비정함이 날 울게 해. 어케 사람이 이렇게 다정하고 비정할수가? 엉엉…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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