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착헌 / 창호기려 ] 네크로필리아(上)

어느날부터 기묘한 꿈을 꾸기 시작한 강창호

이착헌 by 아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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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호는 어느날부터 기묘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한여름 뙤약볕처럼 눈부신 빛 아래 서있었고 발치에는 핏기없고 매말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체가 늘어져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재질을 알 수 없는 하얗고 고른 바닥과 아득히 먼곳에 새하얀 지평선이 있었고 어떤 지형지물도, 생물체도 없는 기묘한 공간속에 존재하는것은 오로지 자신과 발치의 시체뿐이였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한점 없고 바람도 소리도 없는 공간속에서 이미 생명력 한톨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인형을 눈으로 훑던 그는 몸의 주인을 확인하려는 순간 꿈에서 깼다.

이 꿈을 처음 꾸었을때 강창호는 꿈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했다.

이상하고 의미모르겠지만 잊기 힘든 꿈들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저편에서 풍화되어 사라지니까.

그러나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을때 강창호는 고민을 안할수 없었다.

세상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출몰하고 사람이 단신으로 도시를 궤멸 시킬 수 있는 시대, 그중에서도 능력 특성으로 몸보신으로는 손꼽히는 강자가 이상현상을 겪는것은 허투루 넘길만한 일은 아니였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아도 자신의 안위를 끔찍이 여기는 편이기도 했다.

원한을 많이 사고다니는 편이라 이런일을 당하는것이 처음도 아니고 웬만한 저주도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이런 흔적도 남지 않는 정신계 공격이라니...누군지 몰라도 돈깨나 썼을것이다.

큰돈이 움직이는건 흔적이 남으니 해주 후에 어떤 개자식인지 상판때기 확인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창호는 저주의 종류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꿈이 반복되었으나 그 누구도 이것이 정신계 공격인지 상태 이상 저주인지도 구분해내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힐러와 저주술사까지도 이 기묘한 꿈을 촉발시키는 원인을 찾지 못했기에 강창호는 적당한 선물-양지에서는 구하기 힘들지만 수요는 넘치는-을 들고서 저주로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헌터에게 저주 감식을 의뢰했다.

결과는 이상없음.

강창호는 그녀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저주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가 피차 골아프게 일을 키울 필요가 없는 그녀와의 관계를 떠올리고 순순히 자택으로 돌아왔다.

자택에 도착했을때는 음지와 양지를 비롯해 실력있는 정신계 헌터 주변의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에 대한 조사결과가 도출되어있었고, 이 또한 이상은 없었다.

누구도 저주따위는 걸지 않았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강창호는 꿈에대해 조사하는것에 흥미를 잃었다.

권태감에 찌든 헌터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것도 아니라고 하니 현상유지를 해도 상관 없다 결론 내리고 익숙해진 순백색 세상을 거닐었다.

꿈이란 대개 흐릿하고 시간도 공간도 모호하며 당연한 물리법칙이 어그러지는, 수면도중 발생하는 정신 현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더더욱 강창호는 이것을 한밤의 허상같은것으로 치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꿈이라기엔 너무도 선명해서 차라리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미완성된 세상에 우연히 발 디디게 되었다는게 더 설득력 있었으니까.

한달째

그는 새하얀 땅의 끝을 보기위해 한방향으로 걷고있었다.

시체가 놓여져있는곳은 더이상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을 두고 관찰한 결과 시체에서 알아낼 수 있는것은 더이상 없었기에-정확히는 자세히 살펴보려 할 수록 허락되지 않은것처럼 강제적으로 퇴출되듯 꿈에서 깨었다- 지평선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이런 재미없는 일에 한달간 골몰할만큼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였지만 이곳은 걷는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기를 몇달, 이제는 이곳을 두번째 고향으로 여겨야겠다고 자조할만큼 익숙해진 후의 어느날 밤.

오랜 시간 끝에 노력에 보답하듯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것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까워 질수록 지평선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시작하고 가까이 다가가 관찰한 그것은

바다와같이 범람하는 무언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고 재생과 동시에 부패를 반복하며 끝없이 세상을 뒤덮고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정도로 강렬한 빛조차 형체를 비춰내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는것은 볼수없는것이 당연했지만 존재하기에 느낄수있었다

포식자이자 피식자인 그것들은 서로를 증오하여 잡아먹으며 그 찰나에 서로를 사랑하여 새로운 괴물을 낳았다

매순간 뒤섞이고 분리되는 그것은 하나의 존재이며 무한했다

창조와 소멸의 순간을 마주한 강창호는 깨달았다

그들은우주가존재한이후억겁의시간을굶주려있었고마주한순간부터그는그들에게자아를포식당하고있었다

강인한 육체조차 방파제가되지못하고조우의그찰나그것들에게자신이인식된순간부터기억과감정과영혼은수만개의식탐에짓눌려쥐어짜이고있었 다

강창호는 모든 감각기관을 뽑아버리고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범람하는 그것을 피해 왔던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무색무취무미했던 꿈 속에서 새로운것을 발견한 대가는 강창호가 지불할 수 없을정도로 거대했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강창호는 범우주적 재해를 마주하고 자아상실의 공포를 느꼈다.

과연 이것은 저주따위가 아니였다.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심연이 그를 들여다본것이다.

강창호는 잠드는것이 두려워졌다.

각성상태로 닷새를 버티다가 기절하듯 잠들었을때 순백색 세상을 좀먹고 코앞까지 쫒아온 그것들을 마주하고부터는 억지로 깨어있지도 못했다.

끊임없이 도망치는 밤. 

평생을 포식자로 살아온 그에게는 버거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일어나있는 순간에 더욱 포악스러워졌고 사람들은 감히 그의 눈에 띄어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해 진행중이던 일들도 모두 정체되었다.

김기려가 찾아온건 그 무렵이었다.

사람이라고는 강창호 본인뿐인 넓은 저택에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한치의 헤맴 없이 강창호의 앞에 도달한 김기려는 물기없이 건조한 목소리로 강창호에게 말을 걸었다.

"강창호 헌터님"

"......"

"연락을 받지 않으셔서 찾아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강창호는 오랫동안 제대로된 숙면을 취하지 못해 대화 내용이 잘 인식되지 않았다.

김기려가 뭐라고 말하고는 있는데 꼭 물속에 있는듯 목소리가 퍼지는것처럼 느껴졌다.

피곤하고 날선 그는 대화 내용을 이해하길 포기하고 조용히 김기려를 내려다 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엔 그는 이미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표정없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눈에 담던 그는 곧 김기려가 입을 다물고 자신을 응시하기 시작한것을 깨달았다.

김기려는 고개를 스르륵 기울이고는 예의 무기질적인 얼굴과 눈빛으로 강창호를 관찰하고있었고

강창호는 그 눈빛이 참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눈깜빡하는 순간 김기려는 강창호에게 목줄기를 붙잡혀 대리석 바닥에 처박혔다.

쩌적, 소리내며 요란히 부서진 타일 조각이 비산했지만 바닥에 처박은 사람도, 처박힌 사람도 방금 있던 일이 거짓인 마냥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거세게 죄여오는 숨통에도 김기려는 신경따위 쓰지 않는것처럼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얇은 눈꺼풀을 움직여 완전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반개했다.

동공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검은 눈동자가 반쯤 드러나 강창호의 두 눈을 응시했다.

바다에 휩쓸려다니는 자포동물의 움직임처럼 가벼운 손짓으로 강창호의 얼굴을 훑어내린 김기려는 관찰이 끝났는지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강창호의 손에 몸을 내버렸다.

낮은 체온과 미동없는 몸.

가끔씩 김기려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과 다를바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살을 맞대고 있는 지금 여전히 차가운 살갖아래 작고 여린 맥박이 뛰고있었다.

강창호는 그런 김기려의 모습에 손에서 힘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상대를 죽여버릴듯 들끓던 살심이 저 맥없는 태도에 가라앉았다.

시체와 다른점이 심장이 뛰는것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모든게 의미없다고 느껴졌다.

.

.

.

강창호가 자리를 떠난 후, 김기려는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대리석 조각이 머리카락에 얽혀 고개를 움직일때마다 우수수 떨어졌지만 신경쓰지 않고 널브러진-이미 주변이 난장판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작은 유리병을 확인하고 드디어 볼일이 끝난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용없다는걸 알면서도 구하기 어렵다는 성수까지 사용했다는건 공포가 극에 달했다는 뜻일테니 더 확인할건 없다.

모두 김기려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체로 지성체에게 두려움이란 미지(未知)에서 온다.

고도의 문명발달을 이룬 알파우리에서 행성을 대표하는 강력한 마법사였던 시절 공포심이라는 개념을 잊고 지냈던것은 물론 강력한 무력을 소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리법칙만 다뤄온 원시술사들을 굴복시킬 방법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현재의 모습일지라도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김기려는 저택 현관쪽으로 걸어가 나가기 전에 한번 더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균열이 저택 현관까지 이어져 한쪽 벽면을 장식한 전신거울마저 산산조각 나있었다.

부서진 거울 속 '김기려'의 모습도 엉망진창인건 마찬가지라 그는 머리를 쓰다듬듯 한번 털어주고 좁고 안락한 거처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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