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착헌] 세차의 꽃말은
그렇게 됐다 창호야
~367화 스포, 여러 가지로 날조
창호 >>❤️>> 기려 기반이지만 둘이 딱히 뭘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ncp
아무튼 강창호씨가 소소하게 고통받는 내용
창밖의 정원에는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요 며칠 줄곧 눈이 내리더니, 간만에 맑은 날이었다
방안에 앉아 손가락 움직임 몇 번만으로 모든 걸 주문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안 등의 이유로 당사자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볼일 또한 한두 번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이라면야 사람을 써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만. 잘 나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를 쓰고 두문불출하는 것도 불필요한 의심을 사기 마련이니…….
그런 이유로 보랏빛 머리의 남성은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차를 몰고 나섰다. 그것이 어제의 일이다. 염화칼슘을 쏟아부어 억지로 녹인 도로를 달렸던 차에는 흙탕물 자국이며 새카만 타르 자국, 그 사이 내린 눈이 남긴 물자국 등이 점점이 남아있을 것이다.
희게 빛나는 정원을 눈으로 훑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해결한 일들, 진행 중인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빙빙 맴돌았으나… 무엇이 되었든 당장은 손을 대기가 애매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은 그다지 보이질 않았나.’
일렁이며 어디에서든 제 존재를 과시하던 작은 불빛은, 어느 날부터 특징적인 깜박임이 사라졌으나 오히려 더 눈에 띄곤 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당사자가 마력을 눌러둔 상태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의 김기려는 섬광탄이라도 터트린 듯이 현란하게 발광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글라스까지 동원해 가며 애써 무시해야만 했었는데.
김기려가 이사간 이후로는 그럴 일도 적어졌다. 태백산맥이라는 천연의 장벽이 시야를 가려 순식간에 일어나는 시각 재해를 원천 차단해 주었기 때문이다. 용의 눈은 콘크리트 벽 하나둘이야 없는 것마냥 취급했으나, 산맥쯤 되면 다행히도 가림막이 되어주는 모양이었다.
그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엽사는 간혹 서울에 오기도 했는데, 딱히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 한 쪽이 서서히 밝아져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이전부터 평소 보이는 마력양만으로는 일반인과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체내 마력 조절에 능숙했던 김기려였다. 본인이 원한다면 티나지 않도록 오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저런 꼴로 나다니는 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건강상 이상이 여유 따위는 부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서인지. 아니, 이따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 인사와 얽힌 일을 전부 끊어 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에 처박힌다는 선언을 한 것인데.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으니 세차나 하면서 시간을 죽여 볼까.’
무념무상으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쓸데없는 생각도 잦아들기 마련이었다.
그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이 직접 세차를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으나, 그는 원한 살 짓을 제법 하고다니는 탓에 잡다한 용무에 사용할 승용물은 직접 관리하고는 했다. 누군가 손을 댄 탓에 타고있던 차가 사고를 내 봐야 차가 다치지 자신이 다치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받힌 상대방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 것이다. 탈 때마다 매번 신경써서 검증하는 것보다야 직접 관리하고 직접 운전하는 것이 경제적이지 않겠는가. 사실 이런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그는 차를 사는 것도 운전하는 것도 관리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굳이 차량 보관용 차고와 별개로 정비를 위한 차고를 하나 더 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러고 싶었기에 강창호는 각 잡고 세차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겨울임에도 차고 안은 다소 따뜻했다. 세차라는 걸 하는데 물이 얼어버려서야 본말전도가 되니 난방을 돌린 것은 당연했으나, 조금 과했는지 이제는 더울 지경이었다. 어쩌면 몇 시간 동안 이 안에서 바쁘게 움직여서였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들여 왁싱까지 야무지게 한 덕에, 다소 얼룩덜룩하던 차는 이제 방금 녹인 설탕 시럽처럼 반질거렸다.
“서울 각지에 이르게 나타난 레드 게이트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배경음 삼아 켜둔 뉴스 채널에서 뭔가가 불타고 있었다.
‘…알아서들 처리하겠지.’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 모씨와 서 모씨는 최근 무슨 일인지 게이트를 발견하자마자 말벌을 발견한 양봉업자처럼 달려가고는 했는데, 덕분에 이 몇 달간 한국은 게이트 재난 발생 전처럼 평화로운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헐레벌떡 달려가 서울을 수호할 사람이 둘이나 있는 이 상황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한들 나설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불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멀리까지 번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집 근처로 접근해오는 것들이 있는지 돌아보는 정도는 필요할지도 몰랐다. 별 일 없다면 멀리서 처리가 잘 되고 있는지 구경하는 정도로도 족할 것이었고, 레드 게이트라고 한들 잡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라 문제가 생기더라도 처리 자체는 어렵지도 않았으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매끈하게 빛나는 차체를 바라보던 그는 그대로 차에 올라 차고를 나섰다. 이 근처 길이야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근처를 한 바퀴 돌더라도 나가기 전과 같은 말끔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럴 것이었는데.
어쩐지, 공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 빛무리가 한들한들 상공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강창호가 이상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주변이 잘 보일만한 건물 위로 뛰어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남의 영역 근처에서 요란하게 일을 벌이는 인간이 있다면 찾아 사이좋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허…….”
세로로 길쭉하게 늘어진 동공이 실처럼 얇게 조여들었다.
이 따위 일이 벌어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로 이상할 정도로 넓은 범위에서 푸른 빛이 상승하고 있었다. 떠오른 빛무리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궤도를 그리며 하나씩 빛으로 된 하늘에 합류했다. 아니, 강한 광량 탓에 착각한 것 같았다. 그 형상은 빛으로 된 구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었다.
어떻게 참견할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구름의 형태로 하늘을 뒤덮고 그 세를 불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는데.”
증거로 삼을 만한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왜인지 이 짓을 누가 저지르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인간이 이럴 수가 있나?”
그리고 작은 빛이 하나둘씩 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더니, 시야가 온통 내리치는 빛으로 가득했다. 기가 막혀 가만히 서있는 사이 한껏 부풀어오른 구름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빛의 비는 이상현상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름끼치게 차가웠다. 파충류의 눈을 한 남자는 때아닌 소나기에 흠뻑 젖은 채, 비가 오는 것을 확인하듯 들어올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에 괸 빗물은 사금파리를 품은 것마냥 푸르게 반짝이고, 그는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며 빛 조각을 머금은 비가 제 손바닥에 내리치는 것을, 사방으로 튀는 물과 함께 빛이 불규칙하게 비산하는 것을, 그것들이 결국 지면으로 추락해 스며드는 것을, 이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던전 쇼크가 일어난 이래 사람 죽는 게 특별히 대단한 화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었으나, 그럼에도 어떤 상실은 고통스럽고 영구한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결국에는 찾아올 어느 날이 그저 그런 생채기, ‘그런 일도 있었지’ 한 마디로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한지?
김기려에 대한 소식은 언젠가 들려올 부고 정도나 듣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그조차도 영원히 알고 싶지 않기는 했다.
안타깝게도 문제의 당사자가 순순히 협조해주지만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문제였지만.
‘이건 정말 못 잊겠군…….’
그는 한없이 사실에 가까운 예감을 느끼며 이마에 달라붙는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뒤로 쓸어냈다. 사람이 이 정도까지 별나면 없는 셈 치고 살기도 정말이지 어렵다는 사실이 피곤하다. 슬슬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게 비가 그쳐가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난리였는지.
다 못 본 걸로 하고 뜨끈한 물 틀어놓고 샤워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온몸이 마력 섞인 비에 푹 젖어 점점이 반짝이는 꼴이 남의 체액에 절여진 것 같아 제법 불쾌하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도 비를 맞았으면 일단 씻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한 기분이…….
저 아래 문 한 짝이 열린 차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듯 덩그러니 서있었다. 차라는 것은 분명 말을 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닌데도, 강창호의 귓가에는 가련한 애차의 독백이 들려오는 듯했다.
‘주인님…… 축축해요…….’
그러니까, 내리며 차 문을 닫은 기억이 없다.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다.
두줄요약
👽: 시켜줘 대한민국 명예 소방관
🐉: 💢
사실 저번 전력에 쓰려고 했던 소재였는데 주말에 기절하게 일이 많이 생긴 탓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강창호 어제도 출근 안 했어요
창호가 세차하면 비오길
두문불출 기간동안 그도 소소한 불행과 고통을 겪었길
그가 좀더 사기를 당하길
그런 작은 소망이 있어요
하지만 강창호씨를 좋아합니다. 진짜로.
댓글 2
유영하는 고슴도치
헉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분명 타는 잿빛의 재난을 물로 쓸어내리는 붉고도 검은 장면일텐데 올리브님의 글을 보니 물방울과 빛의 반사와 산란작용으로 무지개빛 반짝이를 본 것 같아 너무너무... 가슴이 빠듯하게 차오르네요ㅠㅠㅠㅠㅠ 정말 재밌고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공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고요한 딱다구리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ㅡ!!!!ㅠㅠㅠㅠ위에 명시해주셨으니 못잊겠다고 하는것이 강창호의 사랑이군요... 설탕시럽으로 코팅한것처럼 반들하게 닦아놨다는거랑 마력이 섞여서 체액에 절여진것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비라는 말의 대비가 너무 좋습니다ㅋㅋㅋㅋ강창호의 애차가 안쓰러워 보일지라도... 강창호 이미 재수없었지만 더욱 끝없이 재수없길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