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기려] 사료 한 줌은 얼마나 무겁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개날조 냥적폐
CP인 이유: 쓰는 사람이 CP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정하성은 개를 좋아했다. 고양이보다는 개가 좋다고 했다. 개라.
김기려는 새삼스레 신기해했다. 정하성이 쉼없이 베어 죽이고 태워 죽이는 몬스터 중에는 개를 닮은 사족보행 짐승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김기려는 묻지 않았다.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그건 지구에서 손꼽히는 강자의 취향에 시비를 거는게 두려워서…였던가.
그에게 강아지가 나오는 짧은 숏츠를 가르쳐 준 것도 그였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나 잠시 전화를 만질 때 정하성은 보기 드물게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했다.
'이거 보세요.'
'개네.'
'골든 리트리버 형제래요. 다섯 마리.'
입을 살짝 벌리고 눈꼬리를 휘는 정하성의 얼굴을 보면 자연스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개를 좋아한다더니 정말이군. 다 자란 개에게도 강아지라는 호칭을 쓰네. 그 정도의 실없는 감상. 몇 번인가 희고 검고 누런 개를 보여주던 정하성은 화면 속 개가 걷고 코를 킁킁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김기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정하성은 실없게도 김기려와 눈이 몇 번인가 마주친 이후로는 제 화면을 그에게 내밀지 않았다. 김기려가 그러했듯 그도 새삼스레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그의 얼굴이 언제나와 같이 알기 어려운 무표정이었다던가 하는. 말을 꺼냈다면 실례했습니다 뭐 그런 소리나 했겠지. 김기려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김기려가 정하성과 함께 개를 마주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들의 직업이 직업인 것을 둘째치더라도 그들의 주변은 늘 한적했다. 말 그대로 급이 다른 기운을 감지하고 경계하는 것은 육감적인 영역. 사람보다도 그 능력이 뛰어난 짐승에게 빈틈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그가 정하성과 개를 떠올릴만한 계기는 기껏해야 게이트 안의 괴물이 전부였는데, 정하성은 김기려가 잡념을 떠올릴만한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고 김기려 역시 정하성의 사소한 취향 같은 것에 뉴런을 할당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그들은 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일이 드물었다.
애당초 정하성은 김기려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그는 스몰토크에 능하지 않았다. 타고나기를 말수보다 생각에 많은 글자를 할애하도록 생겨먹었으며 자라나면서는 먼저 말하지 않아도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많았던 탓에 정하성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물꼬를 트며 분위기를 푸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가 몹시도 어려워하는 김기려. 따라서 정하성은 김기려 앞에서도 재잘대지 않았다.
개가 친히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도 그랬다. 정하성이 전화를 들고 말꼬리를 흐렸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네. 짧게 반복되는 소리. 전화를 끊고서도 정하성은 꺼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김기려가 짧게 물었다. 정하성의 핸드폰 배경화면에 떠있는 이미지는 보고서도 모른 척 했다. "별 일 아닙니다. 촬영 제의가 들어와서요."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게 그의 본업은 아니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하성의 성격이나 최근 행적을 보면 더더욱. 이를 증명하듯 김기려는 그가 김기려가 된 이후로 정하성을 광고판에서 본 적이 없다. "그러냐." 김기려가 짧게 답했고 그걸로 대화가 끝나는 줄 알았으나 정하성은 화면을 문지른다. 무의식이 건드린 안면 근육 몇 개. 걱정이라도 해달라는 거냐. 꼭 그렇게 보여서 김기려는 말을 더한다.
"어떤 촬영인데 거절해놓고도 마음이 불편해?"
"공익 광고입니다."
김기려는 눈썹을 까딱인다. 정하성이 공익 광고처럼 듣기 좋은 말을 거절했다고? 그러나 이내 무언가 깨닫고 그가 덧붙인다.
"어쩔 수 없지. 일반인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다른 분도 아닌 헌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건방진 생각을 삼키며 정하성이 무심한 얼굴을 응시하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헌터님 말씀이 맞습니다. 휴식 시간도 끝났으니 다시 집중하겠습니다.”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여느때와 같은 시간에 김기려는 정하성과 함께 각성자용 체육관 바깥으로 나선다. 벌써 몇 번이고 거절한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그의 요청을 한결같이 도로가 좁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등을 돌린다. 김기려의 뇌 혹은 영혼의 어딘가에 정하성과 개가 남아있었을까? 김기려는 정하성과 달리 집에 가는 동안 몇 마리의 개를 볼 수 있었다. 인간 아기처럼 네 발 달린 탈 것에 태워져있거나, 품에 안겨있거나, 목줄을 매고 거리를 걷거나. 김기려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응시했는지 사족보행 포유류에 얼마나 큰 관심을 두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인간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생물에게 관심을 가질 때는 게이트 안이 전부였으므로.
김기려는 평소와 같이 저녁보다 살짝 늦은 시간에 편의점에서 산 음식을 들고 귀가해 스마트폰을 가로모드로 전환하고 유튜브 공식 방송사 뉴스 채널의 무료 뉴스 보도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그 다음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었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작은 화면으로 유튜브를 보며 인터넷 뉴스를 읽고 있었는데, 창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야옹’이라는 의성어보다는 ‘응먉’이라는 글자가 더 정확한 소리. 김기려는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작은 화면 안 글자로 눈을 돌렸다. 다시 한번 ‘응야아’ 하는 소리가 나며 작은 창 밖에 그림자가 졌다. 김기려가 누운 채로 목을 최대한 위로 꺾었다.
고양이네. 예상과 다를 바 없었다. 창문 닫는 걸 잊어버렸다는 것도 모르게 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갈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난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 앞발을 입에 넣고 침을 묻히고 있었을 뿐. 김기려는 정하성과 달리 인간이 귀여워하는 생물은커녕 인간도 징그러워하며 적응하는 중이었고, 원래 몸 주인인 김기려에게도 네발짐승과 관련된 기억이 별달리 없기에 김기려는 그것들을 귀여워하기 어려웠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창문을 닫을까. 이대로 잠들면 쉭쉭대는 목이 내일은 더 갈라질지 모르니. 닫지 말까. 창을 닫으러 일어나면 저것들이 인기척에 놀라 달아날테니. 방금 처음 본 짐승 또는 그 종에 일말의 애정이라곤 없었으나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에게 지구의 모든 것은 관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그랬을지도. 그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것들이 몸단장을 끝낼때까지 기다리며 그것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다큐멘터리(120분 전체가 아닌 7분 38초짜리 유튜브 클립이었지만)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고양이의 혀에는 돌기가 있고 고양이의 몸은 유연한 연골과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 침을 몸에 묻히는 걸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이걸 그루밍이라고 하는데, 고양이는 이걸 통해 무리의 유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인간이 키우는 동물인만큼 그 무리에는 인간이 포함되는 경우도 흔하고.
듣고보니 신기하네. 저와 전혀 다른 개체를 한 무리라고 인식하고 제가 하는 방식으로 우호를 표현한다니. 인간보다도 멍청해보이는 생물이 말이다. 김기려는 저와 인간들을 사육자와 고양이로 빗대어본다. 그를 인간으로 인식하고 인간의 방식으로 우호, 적대, 감사 등을 표현하는 생물들을 떠올린다. 다른 개체와 구분할만한 특징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몇몇 인간을 떠올린다. 그가 하듯 다른 개체와 김기려를 구분하는 인간들도. ‘먉끙’하는 소리를 내고는 아예 드러누워 제 배에 얼굴을 파묻는 고양이와 엄지에 닿으며 다시 재생하는 영상 속 배경음악. 김기려는 제가 목을 꺾어다 보고 있는 광경이 꼭 정하성의 핸드폰 속에서 재생되던 영상같다고 생각한다.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힌 점까지.
정하성이 사족보행 정온동물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김기려가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며 우호를 가지는 것과 비슷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김기려는 목에 통증을 느끼고 자세를 바꾼 뒤 마저 고양이의 그루밍을 관찰했다. 그리고 45분뒤 게으르게도 왼쪽 뒷발 하나를 남기고 잠든 고양이들 앞으로 다가가 창을 닫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기려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들을 관찰하다 그것들에게 밥까지 사다 먹이게 되었다.
안윤승의 SNS가 계기였다. 그의 화면 속 고양이를 보고 김기려가 먼저 물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정하성이 핸드폰으로 개를 보던 게 떠올라서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안윤승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예? 아뇨. 고르자면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하는데요, 주소가 집 근처길래요.”
그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과연 화면 속에는 다각도로 찍은 고양이 사진 외에도 몇 글자가 더 있다. ‘루루, 2세 남아, 페르시안, 회색 장모, 노란 눈, 왼쪽 앞발에 검은 점’ 등등. 그리고 사례금 100만원. 그게 뭐지? 친절하게도 김기려의 체세포는 외계 생물의 정보를 보완해준다.
“사례금을 100만원이나 걸었다고?”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뒷말을 잇지 못하던 찰나 안윤승이 대답한다.
“백만원으로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죠. 병원에 데려갈 예정이었다던데…어디 다치진 않았을까 모르겠네요.” 어서 집에 가면 좋겠다. 그런 다정한 지구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김기려의 새 영혼이 정보를 보완한다. 안윤승은 벌이가 좋은 고등급 헌터이며, 그가 사는 동네에 살고 있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이들이 주민일거라 추측할 수 있다고.
당장 어제 집앞에서 찾은 고양이만 두 마리인데. 만약 그것들이 저런 사례금이 있는, 걸어다니는 돈벌이였다면?
안윤승과 밥을 먹고 헤어진 뒤, 김기려는 잃어버린 동물의 전단지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그리고 작은 짐승을 잃어버려 어쩔 줄 모르는 인간에는 헌터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이 짐승의 귀환에 0이 몇 개나 달린 금액을 매달아 둔 것도.
‘이런 일엔 서쳐 스킬이 달린 헌터가 유리해. 하지만 그런 고급인력이 여기에 스킬을 낭비할 여력이 있을 가능성은 적지. 당장 선우연만 봐도…’ 예민한 감각을 뻗어 생물의 마나를 비롯한 탐지에 능한 것은 그의 특기. 만약 그가 감각을 조금 더 곤두세우는 걸로 동네에 숨은 돈, 아니, 길 잃은 동물을 찾아낸다면?
비상금과 여유 자금을 빼놓고 실제로 굴리기 적당한 정도의 사례금(그의 금전감각은 이미 망가져있었다)과 인맥의 가능성. 새로이 발견한 인간의 면을 관찰하며 어쩌면 실험까지 벌일 수 있는 기회.
김기려는 한가했다. 그는 이것을 쉽다못해 단순한 작업으로 여겼다. 적당한 호기심과 체력도 있었다. 비록 그는 제가 사는 좁고 촘촘한 동네에서 가본 곳이 몇 없고, 그의 마력은 전성기에 비하면 비교도 못할 만큼 하찮고 형편없었으며 개나 고양이와 같은 짐승은 작은 만큼 날렵했지만. 어쨌든 호기심에 가볍게 도전했다 관두기엔 나쁘지 않은 소일거리로 보였다.
“얇얇얆.”
“옳지.”
김기려는 손쉽게 주인 잃은 고양이를 하나 찾았다. 파랑색 목걸이, 원형 금속판에 남은 한글 몇 글자. 완벽해. 그는 편의점에서 습식 사료라는 것을 사와 내밀었다. 고양이는 흰 수염을 바싹 움직여가며 고기를 삼켰다. 그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걸로 주인을 찾으면 되겠지. 그리고 인간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는거야. 이걸 왜 키우는지, 어떻게 키웠는지. 아니지, 이 개체를 전달하기 전에 동네에서 본 것 같다고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니까.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으니 뭔가 더 보여주겠지.
비록 다른 개체였지만 고양이는 어젯밤 염려가 무색하게 싹싹했다. 그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고, 손을 내밀자 먼저 다가와 머리를 부비기까지 했다. 수생생물의 경험에 남은 감각으론 촘촘하게 난 체모가 섬세한 말단에 닿는 감각이 다소 어색했으나, 물컹한 촉감은 익히 알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나쁘지 않네. 그는 그대로 먹을 걸 손에 들고 짐승을 제 집 앞으로 이끌었다. 여길 기억이나 할 지 모르겠네. 잘 따르니 억지로 붙잡아 둘 필요는 없겠지. 여기가 어딘지는 대충 기억했고, 치아와 발톱도 뾰족하니 상처나기 좋아보이고. 이 몸은 개를 닮은 괴물에게 어처구니없이 뜯겨 다리를 절게 될 만큼 물렁했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다음 날 김기려는 사진을 들고 동네를 돌았다. 이렇게 생긴 고양이 잃어버린 사람 혹시 아세요? 고양이 잃어버리신 분 안 계세요?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놈들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찢는다느니 하는 말을 몇 번 들었다. 그 다음은 고양이를 다시 찾아다녔다. 아니, 이 근처에서 본 것 같은데 어디 있는 거야? 김기려는 그때까지도 제가 이 동네의 지리를 모른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러다 하루가 다 갔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때, 그제서야 김기려는 인정했다. 여긴 길이 복잡하구나. 해류도 몸을 높여 위에서 내려다 볼 방법도 없는 외계인에겐 다니기 어려운 곳이었구나. 아직 서울의 부동산 사정을 제대로 검색해보지 않은 그에게 재개발이니 어쩌니 하는 구도심의 자그만 주택가는 난이도가 상당했다. 차라리 마법으로 복잡하게 얽힌 미로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그가 붉은 벽돌에 전봇대 하나 달린 골목을 또다시 지날 때였다.
“나비 왔니?”
“이야아아!”
“그래그래, 밥 줄게.”
저거 이름은 ㅁ 니 잖아? 김기려가 걸음을 멈춘다. 인터넷에선 치즈라고 부르는 주황색과 흰색 털가죽, 파랑색 목걸이, 한쪽 귀 끝이 잘린 특징적인 모양. 전부 그가 점찍어둔 개체가 맞는데. 설마 풀어놓고 키우는 짐승이었던가. 저기요. 하고 그가 말을 건다.
“그 고양이요, 키우시는 건가요?”
“응?”
이어지는 답은 묘했다.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다. 하지만 밥을 주고 있다. 그게 키우는 거 아닌가? 둥근 실루엣의 중년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자신은 그냥 밥이나 좀 먹이는 거라고. 목걸이에 적힌 이름도 중년의 여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주인이 버린건지,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주인이 안나오더라고. 그래도 혹시 몰라서 해뒀어. 김기려는 다시 묻는다. 주인 없다면서요? 그러자 여자는 답한다. 중성화 수술이란걸 하러 병원에 데려갔을 때 (처음 듣는 단어다. 인간이 그정도로 신체를 조작할 수 있다니? 김기려는 집에 가서 검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저 목걸이를 뺀 적이 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서는 목줄에 뺨을 비볐다고.
“주인이 그리운걸지도 모르니까는.”
그럴리가 있나. 인간의 감정조차도 쉬이 공감하지 못하는 김기려가 일단락한다. 속으로만.
포상금 찾기도 인간 찾기도 이걸로는 못하겠어. 다른 개체를 찾아봐야겠다. 동네를 옮겨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김기려의 손에 줄무늬 꼬리가 스쳤다.
“또 보고 있네.” 김기려가 앉은 정하성의 머리 위로 불쑥 말을 걸었다.
“네?”
정하성이 낸 소리에 김기려가 답한다. “그 채널 전에도 봤었잖아. 골든 리트리버 다섯 마리가 나오는. 이름이…콩고물 패밀리였나?”
정하성이 엄지를 대자 영상이 멈춘다. 화면 속 새끼 개들은 양말 하나를 물고 사방에서 잡아당기며 갈기갈기 쥐어뜯고 있다. 정하성은 그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구독했습니다. 보다보니 귀여워서요.”
귀여운가? 벌써 저정도의 치악력과 갈곳없는 호기심을 보이는 강아지들. 나는 그런 걸로 씨름하고 싶지 않은데. 정하성이 손가락을 떼자 화면 속 양말이 결국 찢어지고 여성으로 추정되는 높은 목소리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30여초 이하의 짧은 영상이 끝난다. 화면 아래서 새 영상이 시작되었다.
“고양이도 좋아해?”
“네.”
“고양이랑 개 중엔 개를 더 좋아한다며. 그건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었나보네.” 숏츠는 알고리즘을 추적해서 비슷한 영상을 계속 보여준다고 했으니까. 김기려의 시야에 잡힌 정하성의 핸드폰은 갈색 얼룩무늬 고양이로 꽉 채워져있다.
“개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동물이라면 좋아합니다.”
“아.” 김기려가 짧게 소리낸다. 정하성은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점을 고려한건지 대화를 잇는다.
“사실은 이 채널 속 강아지들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거절했지만요.” 정하성이 개가 여러마리 찍힌 채널 아이콘을 누르자 영상 목록이 나타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제목과 섬네일 속 입을 벌리고 있는 강아지.
“며칠 전에 전화로 받았던 촬영 제안이요, 그게 반려동물과 관련된 공익 광고였습니다. 제가 먼저 거절했는데, 아직 미련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좋아하면 찍지 그랬어. 이젠 전처럼 닥치는대로 게이트를 깨야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게, 각성한 이후로는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헌터님이야 저보다 능력 제어에 뛰어나시니 겪어보신 적이 드물 걸로 압니다만, 각성치가 높은 자에게 반응하는 건 육감적인 영역이니 동물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김기려는 정하성을 내려다본다. 마나의 선택을 받기 전 그가 택했던 직업은 수의사. 아마 동물, 정확히는 도시에 사는 인간이 기르는 포유류를 좋아하는 걸까.
“그럼 고양이 보러 올래?” 김기려는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네?”
편의점에서 캔을 사며 김기려는 다시 떠올린다. 이 몸은 고양이 밥을 산 적이 있다고. 전에도 직원에게 묻지 않고 몸에 남은 기억을 떠올려 똑같은 캔을 샀었다. 카드를 단말기에 꽂았다 빼며 그런 사실을 상기한다. 우리 기려는 자기 먹을것도 없으면서 이런 건 언제 또 사다 먹였대. 그가 값비싼 코트 주머니에 캔을 쑤셔넣자 정하성이 눈을 굴렸다. 꼭 생경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굴었지만 외계인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일거라 믿으며 뻔뻔하게 편의점 밖으로 나선다. 정하성이 저를 보고 놀라는 일이나 저를 특별하게 여기는 게 어디 하루이틀이던가.
정하성은 김기려의 뒤를 따른다. 차에 오르기도 전에 김기려는 설명을 마쳤다. 얼마 전부터 고양이가 집 주변을 얼쩡거리더라고. 밥도 잘 먹고 그만하면 거리도 안전하니까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다른 이가 상대였다면 ‘이미 해봤다, 소용없다’ 라던가 ‘어떻게 생겼는지 더 자세히 말해달라’며 운전했겠지만 조수석에 앉은 건 다른 이도 아닌 김기려다. 김기려이기에 묻고 싶은 수많은 질문을 입에 물고 정하성은 조용히 김기려의 뒤를 따랐다.
“저 담벼락이야. 집 창문이랑 이어지는데, 창가에도 앉아있곤 해. 조금 기다리면 곧 올거야.”
정하성과 김기려가 마주 앉는다. 여기 처음 온 것도 아니건만 정하성은 여전히 이곳이 낯설었다. 그가 눈을 굴리고 있자니 방 주인이 차와 다과를 내온다. 많이 먹어. 그가 그릇을 앞으로 밀었다. “감사합니다.” 정하성은 어색하게 과자를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조용한 방 안엔 정하성이 과자를 씹는 소리만 울렸다.
“저, 헌터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 뭔데?”
“김기려 헌터님은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아니?”
예상 밖의 답변에 정하성이 표정을 바꾼다. 그럼 고양이 밥은 왜…? 김기려가 과자를 하나 집는다. 그냥? 네가 좋아한다길래 생각이 나서. 그게 다인가요? 단순한 변덕? 정하성이 질문하듯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아찔한 순간 김기려가 고양이다, 라며 얘기를 돌렸고 정하성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제 입을 틀어막는 대신 무사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기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옆에 설 수 있었다.
정말이네. 고양이다.
김기려의 말대로 창문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창살 달린 작은 사각형 구멍 너머엔 고양이가 있다. 그 개체가 아니네. 실로 오랜만에 듣는 표현에 정하성이 잠시 시선을 방 안으로 향한다.
“하성이 너한테 보여주려던 건 노랑색 털에 파란 목걸이를 한 고양이야. 귀가 짝짝이인.”
“목걸이요? 그럼 주인이 있는 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안나타난다고 동네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고.”
“그렇군요.”
“하성이 너 수의대 다녔었잖아? 혹시 뭔가 다른 방법을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게 했는데 정작 고양이가 안 왔네.”
난 이런 쪽은 잘 몰라서. 정하성은 김기려의 무심한 얼굴을 본다. 평소와 같이 무표정해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과 평이한 목소리에 오래 시선을 둔다. 그렇게 하면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없는 기대를 아직도 하는 사람처럼. 그의 생각을 범인이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린지 오래인데도 정하성은 대답을 고를 때 그의 얼굴을 오래 보고는 했다.
“키울 생각은 없으신게 맞습니까?”
“키워?” 어려운 문장이다. 김기려는 어젯밤 대화를 떠올린다. 먹이를 주고 이름을 붙이고 털을 쓰다듬으며 안위를 걱정하지만 키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중년 여성. 김기려는 키운다는 단어의 뜻을 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여기서 모르는 티를 내면 안될 것 같은데.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했던 안윤승도 온라인 전단지를 보며 얼굴 근육을 당긴 걸 보면 동물을 좋아하는 정하성 앞에선 좀 더 말을 신경써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김기려는 평소보다 신중하게 문장을 만들었다. 시작은 그랬다.
“밥 좀 먹이고 오늘 오려나 생각하는 것도 키운다면 키우는 거지만… 내가 얘들 주인은 아니지.” 김기려가 주황색 습식 사료 캔을 열어 창살 틈으로 민다. 검정색 줄무늬가 있는 갈색 고양이 두 마리가 제 앞으로 밀려오는 캔을 내려다보며 코를 달싹였다. “돌본다? 그 정도 표현이면 되려나.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갈 수 있게 도와줄거야.” 이만하면 적당한 답이 됐어야 할텐데. 김기려가 슬쩍 정하성의 안색을 살핀다.
“저희는…그러니까 제 기준에서 말하자면, 헌터는 출장이 잦고 집을 불규칙하게 비우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던전 브레이크도 있고, 게이트 자체가 불규칙하게 나타나니 언제 나가서 언제 들어올지는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동 의무가 있는 고등급 헌터는 더더욱이요. 그러니까…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게 동물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외네. 김기려가 정하성을 얼굴을 본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기다리게 하는 건 가혹하단 생각이 듭니다.” 정하성이 시선을 약간 아래로 한다. 무언가 아래쪽에 있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안색이 어두워졌다는 말이 적절한 표정. 내가 키우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김기려가 얕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정하성이 덧붙인다.
“물론 헌터님이 잘못되었다거나 키우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김기려 헌터님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고양이 한두마리 정도는 잘 키워주시겠지요.” 편리한 판단에 김기려는 침묵으로 긍정한다.
“사실은 유기견보호소에 봉사를 다니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헌터님처럼 밥을 챙겨주려 길동물 쉼터를 만든 적도 있고요.”
정하성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고 김기려는 막지 않는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동물에겐 몹쓸 짓이니까 그렇게라도 돌보고 싶었습니다. 그땐 마음이 많이 불안하던 때라…부끄럽지만 의지할 구석이 필요했습니다. 동물을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요.”
김기려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는다. (추임새 넣는 것 외엔 할 말이 없다.)
“그런데…그렇게 만나는 동물들에게도 정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 길면 한 두달에 몇 번 보는게 전부인데도요. 왜 쉼터 밥이 덜 줄어들고 있을까, 이 애는 언제 자길 버린 주인 기다리길 그만둘까… 정을 주니 마음이 쓰이고 오히려 불편해져서, 나는 이렇게도 동물을 품을 그릇이 못 되는 구나 싶어 관뒀습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니 각성치를 조절하는 것도 어려워 동물들이 저를 피하게 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가까이서 동물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정하성이 창살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검지 손가락을 내밀고 잠시 기다리자 좀 더 꼬리가 긴 쪽이 고개를 숙이더니 코를 손가락 끝에 가까이 댄다. 짐승이 얼굴을 부비자 정하성은 손을 뻗어 수염 근처와 턱을 긁었다. 고양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글자로 적자면 ‘부르르르르륽’ 같은. 정하성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김기려는 정하성을 관찰한다. 그의 기억 중 잊은 부분이 없다면, 지금 제 앞에 보이는 건 그가 아는 정하성 중 가장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다. 눈썹에선 힘이 풀어지고, 마치 졸린 사람처럼 눈가에서도 힘을 풀고 눈동자를 늘어트린 얼굴.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걸려있고, 간간히 이가 살짝 드러날 만큼 입이 열리며 작은 웃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같은 인간이 보았다면 보기 좋은 광경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유일한 목격자는 미감이 다른 외계인인지라, 김기려는 정하성의 자연스런 미소 같은 것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가 이렇게나 부드럽고 차분한 기운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할 뿐. 그 어떤 언론 매체에서도, 그와 사적으로 만난 어떤 자리에서도 본 적 없는 평온한 기색에 김기려는 편히 얼굴 근육을 늘어놓는다. 허구한 날 긴장만 하더니, 이렇게 힘을 뺄 줄도 알긴 하네. 커리큘럼에 참고해야겠어.
그러고보면 결국 돈은 한 푼도 못 벌고 쓰기만 한 건가? 하지만 뭐, 지구에서 가장 강한 화염술사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면야. 이렇게 작은 것부터 관계를 잘 다듬어둘수록 쓸모가 있겠지. 그런 식으로 계산 비슷한 것을 마친 그는 정하성이 고양이 쓰다듬는 광경을 지켜본다. 귀와 뺨, 턱을 지나 꼬리뼈가 시작되는 부근을 긁고 쓰다듬는 현란한 손길과 털이 풀풀 날리는 작은 육식동물의 애정공세. 종국에 정하성은 두 손을 창 밖으로 빼고 두 마리를 주무르는 꼴이 되었다.
“하성이 너 아주 동물에 환장하는구나.” 고양이가 이정도인데, 개를 보면 어떨지 기대되는데. 놀리듯 말해도 정하성은 민망하다는 듯 웃어보일 뿐이다.
저런 녀석이 허구한 날 웨어울프니 섀도우울프니 하는 걸 태우고 있다니 불쌍하게 됐군. 허공을 돌다 콧등 위로 앉은 검은 털을 떼며 김기려가 생각했다.
“박옥순 채널이라고 알아?”
“예? 무슨 채널이요?”
“박, 옥, 순 채널. 유튜브 채널 이름이 박옥순이야.”
눈을 약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정하성에게 김기려가 제 핸드폰을 내민다. ‘박’이라는 기본 프로필 사진이 달린 유튜브 채널에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다소 어색한 제목의 짧은 영상이 몇 편 올라와 있다. 정하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만 깜박이자 김기려가 설명을 보탰다. 일전에 만난 중년 여성말고도 동네에는 길고양이나 떠돌이 개를 돌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제 실명을 걸고 소소하게 동물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고.
“봐봐, 이게 그 고양이야. 전에 너한테 말했던 목걸이 맨 고양이. 미음하고 ‘니’ 두 음절만 남아있는데 다들 나비니 예쁜이니 부르더라.”
김기려의 말에 정하성은 아마추어가 찍은게 분명한 3분 12초짜리 영상을 응시한다. 그의 어머니 혹은 그보다도 나이가 많을 듯한 여성의 음성과 고양이를 쓰다듬는 주름진 손. 서투르기 짝이 없는 영상을 정하성은 계속 본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김기려가 다른 영상을 재생한다.
“이건 검은 개. 고양이 냄새를 묻힌 손으로 쓰다듬어도 별 반응을 안보인대.”
“….” 정하성이 김기려의 무표정한 얼굴을 쳐다본다. “언제 그렇게까지….”
“네가 했던 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아랑곳않고 김기려가 말을 잇는다.
전에 네가 우리집 와서 그랬었잖아. 그렇게 돌보기만 해도 정이 든다고. 키우는 것 자체가 어떻게 목적이 되나 했는데 이젠 알 것 같아. 묘한 말을 하는 그를 정하성이 응시한다.
“이해할 수 없어도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멍청하고 단순한데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고…그런가 하면 뜻을 알 것 같은 때도 있고. 그래서 눈을 떼기 힘든 것 같아.” 인간들도 대강 이런 기분이겠지. 김기려는 그야말로 짐승과 인간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야, 김기려만큼 사육자의 입장에 가까운 이도 달리 없으니까. 아직도 입양과 돌봄의 기준은 구분하기 어렵지만 관심을 두고 돌보는 이유라면 알 것 같다는 그에게 정하성이 묻는다.
“걱정되진 않으세요?”
“어떤 게?”
“어…그냥, 여러가지요.”
어딘가 다쳐서 돌아올 수도 있고, 행동이 눈에 띄게 안 좋아질 수도 있고요. 다른 고양이 눈치를 본다던가, 산책 중인 다른 강아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정하성이 당장 어제 일을 떠올리듯 안색을 굳히지만 김기려는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 걱정을 해?”
정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기려는 그가 내린 결론을 풀이하려 한다. 아마도, 정하성은 동물을 좋아하고, 7년 전 가족을 포함해 가까운 이들을 많이 잃으며 무언가 잃는 게 두려워진 거겠지.
“네 마음도 이해하지만.” 사고를 추론했을 뿐인 그가 위장을 위해 이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원하는 대로 만날 순 없지만 적어도 만났을 때 어떻게 할지는 정할 수 있어. 돌아보면 후회가 남기도 하지만…그땐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란게 있기도 하니까. 잘 하고 있고 잘 할거라고 믿으면서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여느때와 같은 평이한 목소리.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한 발음을 들으며 정하성은 문장을 자아내는 입을, 차분하다 못해 가라앉은 눈을 응시한다. 아마도 이건, 단순히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헌터님도 후회를 하신 적이 있나요?”
“있지.” 그 새끼들을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던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반말로 혼내지 않는 거였는데 같은 거. “그래서 너한테 이런 말 하는 거야.” 정하성이 눈을 크게 뜬다.
“후회만 하다간 지금 또 후회할 일 만든다. 그러니까 잠도 좀 자고, 고양이랑 개도 쓰다듬어.”
정하성은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 웃는 기색이 있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든다. 가벼이 말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다시 제 핸드폰 화면을 건드리며 이 고양이는 어떻고 저 개는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정하성은 평이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사람도 후회를 한 적이 있다고. 이 사람도. 무엇이던 완벽할 것 같았던 그도. 문득 정하성은 그의 소매에 고양이 털이 묻지는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든다. 새카맣고 단정한 그의 소매에도, 부드럽고 가벼운, 얇디 얇은 털오라기가 붙어있지 않았나. 그것을 제가 집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오늘 헌터님 댁에 가도 될까요?” 정하성이 말했다. 충동적으로.
“오늘?”
“고양이 간식은 제가 사겠습니다.”
여유를 가지라고 한 건 맞지만 행동이 빠르네.
“그래. 네가 그러고 싶다면.”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조건이 있어. 김기려가 운을 띄웠다. 아까 그거, 세 번 더 해야하는데. 할 수 있지? 세, 세 번이나요? 못하겠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그래. 한번 해봐. 저 그런데 헌터님, 한번만 더 설명을 해주시면…. 제 뒤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따라붙는 정하성을 뒤로 하고 김기려는 무표정한 입가를 쓸었다. 한국 랭킹 1위 주머니 털면서 건방지게 굴면 안되는데. 나까지 실력이 늘고 있네. 놀리는 실력. 정하성이 그의 침묵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헌터님? 헌터님? 하고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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