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착헌 / 창호기려 ] 네크로필리아(中)

上에서 이어집니다

이착헌 by 아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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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죽으면

죽은것과 다를바없는 상태가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매일밤 마주하는 죽음 앞에서 강창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당연한 명제도 여지껏 젊고 강하다는 이유로 깊게 생각 할 필요를 못느껴왔는데, 만약 죽게되더라도 강대한 적에게 맞서거나 원한을 산 인간에게 방심하여 죽는 등의 갑작스럽고 대비하지 못하여 벌어진 사고에 휘말리는, 누구나 한번쯤 할법한 단편적인 상상 뿐이였다.

이렇듯 눈앞에 죽음을 들이밀면서도 결코 한번에 숨통을 끊지 않고, 오랜시간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미끼로 내걸어 삶을 향해 발버둥치도록 만드는 상황은 당연하게도 전혀 예상해본적 없는 굴욕적인 죽음이었다.

다른이들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며 쌓여온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자신이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순백색의 별도 달도 없이 외따로 떨어진 알 수 없는 공간에게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제 귓전에들리는 건

그 음울하고 기다란 썰물 소리뿐

포식을 갈망하는 숨결에 맞춰

세계의 광막한 가장자리와

헐벗은 순백의 벌판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뿐

이 아득하도록 넓은 공간 속에서 죽음으로부터 강창호를 구출하는데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올 징조는 하나도 없었다.

강창호는 꽤 오랫동안 굶주린 괴물을 피해 왔던길을 되돌아왔다.

이제는 처음 이 꿈을 꾸었을때 서있던 지점과 근접해졌는데 -온 사방을 둘러싼 괴물들은 지평선 너머까지 몸집을 불려 감히 다른 방향으로 향하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괴물들이 쫒는 속도가 느려지고있었고

소금기 섞인 비린내가 풍겨왔다.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이 공간에 첫발을 디딘날 보았던 시체 하나와 텅빈 벌판은 오간데없고 끝도없이 솟은 바다가 자리해있었다.

다만 강창호가 기억하던 생명이 넘치며 역동적인 바다가 아니라 이 세상에 선을 긋듯 단호히 솟아오른 흔들림 없는 절벽과 같은 모양새였지만 소금기있으며 한 세상을 덮을만큼 많은 물의 응집 또한 바다라 할 수 있다면 이것은 바다가 맞았다.

높이를 가늠하려 고개를 들어 그 끝을 보려 하였으나 구름한점 없는 하늘과 미동도 없는 바다는 하나라도 된듯 경계면이 보이지 않았다.

강창호는 다시 고개를 내려 눈앞에 펼쳐진 깊은 수심의 바닷속을 응시했다.

마치 거대한 수조처럼 숨김없이 속을 드러낸 바다는 아주 고요했고 아무런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 존재하는 바다보다도 더욱 바다처럼 넘실대며 강창호를 집어삼킬듯 쫒아오던 그것은 이 고요한 바다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드높은 수벽쪽으로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다만 두려움보다 굶주림이 앞서는지 천천히 강창호에게 그들의 부속지-형체를 볼 수 있는것은 아니지만-를 뻗고있었다.

강창호는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었다.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서 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인간은 그저 선택할 뿐이다.

강창호는 넘실대는 괴물을 뒤로하고 고요한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체되어있던 물분자들이 손님을 맞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창호는 최대한 괴물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능숙하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다는 생명의 발원지다.

태초에 유기질 거품이 생명을 얻어 오랜시간동안 진화를 거듭해 세상은 다양한 생물로 가득찼다.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어 첫 숨을 들이쉰 이래로 땅을 기어 다니던 존재가 어느날 자신 있게 땅을 밟고 서더니만, 그 다음에는 공기의 세상을 지배하려고 여러세대 동안 허덕여 왔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에 물을 떠나 공기를 들이마시며 두발 딛고 머나먼 우주를 향해 나아갈정도로 발전했다.

다만 그 대가로 물에서 숨쉬는법을 잊었다.

바다는 돌아온 탕아를 반기지 않는다.

무거운 수압이 강창호의 온몸을 짓눌렀다.

고개를 들어 성능 좋은 눈으로 하늘쪽을 바라봐도 수면은 보이지 않았다.

수심 10m당 기압이 하나씩 올라간다면 이곳은...

강창호는 생각하는것을 그만두었다.

물밖에는 자신을 쫒는 괴물이 있고 이곳은 숨 한번 쉬는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흉통을 짓눌러 가진 숨마저 앗아가려는 바닷속을 정처 없이 유영하는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숨이 막혀온다

이곳은 정신세계이고 육체는 온전히 잠들어있는걸 알고있음에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산소부족으로 시야가 흐려지고 청각이 먹먹해졌다.

숨을 머금을 힘조차 빠져나가 강창호의 호흡기관에 갇혀있던 공기방울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위쪽으로 빛을 찾아 올라갔다.

강창호는 죽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절망했다.

그 오랜시간을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발버둥쳐서 도달한 결말이 고작 이런것이다.

스스로 초래한, 누구도 곁을 지켜주지 않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죽음

머지않아 강인한 생명력과 생존을 향한 굳은 의지조차 휘발되고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도 없어 조용히 가라앉아가는 그의 앞으로

빛나는 거대한 장막이 드리웠다.

죽기 직전 보이는 환상인가 가물거리는 눈으로 살핀 그건 장막이 아니라 어느 존재의 신체 일부분이였다.

반투명하게 빛나는 그것은 빛이 닿지않는 깊은 물속에서 오로라처럼 너울대며 강창호를 휘감아 천천히 몸통쪽으로 끌고왔다.

멍한 정신속에서 흐려진 시야로 자신을 휘감은 존재의 수족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 육체의 주인이 제대로 보였다.

그의 외양은 아주 거대한 해파리로 몸은 천문사진에 나올법한 색상으로 빛나는 한천질이며, 6개의 길게 늘어진 촉수가 주변을 부유하고 있었다.

특이한점은 눈이 있다는것인데 하나 있는 외눈은 강창호만큼 거대했다.

강창호가 그 존재를 관찰하는동안 그 존재또한 하나 달린 외눈으로 강창호를 응시했다.

그 눈은 강창호가 아는 여느 해양생물처럼 의식과 의지 없이 바다를 떠도는 존재가 아니라는걸 바로 알 수 있을만큼 분명한 이지가 느껴졌다.

이 거대하고 빛나는 존재를 마주하고 강창호는 어떤 경외감이 들었다.

한 세상의 시작부터 멸망까지 지켜본자의 존재감은, 밖에 있는 괴물들이 바다를 두려워한것이 아니라 그 속에 웅크린 한 존재를 두려워했다는걸 깨닫게 만들었다.

강창호는 눈을 감아도 눈꺼풀 너머 새어들어오는 빛을 향해 힘없이 손을 뻗었다.

이 행동의 목적은 손을 뻗은 강창호 본인 조차 짐작할 수 없었지만 강창호는 마지막 남은 의식 한줄기로 그 존재에게 닿아야한다고 생각했고, 행했다.

마침내 손 끝에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이 드는 찰나

주변을 비추던 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강창호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자 거대한 존재는 오간데없고 처음 마주했던 매마른 시체가 강창호의 손끝에 맞닿아있었다.

그 직후 시체라 생각했던것이 번쩍 눈을 뜨더니 눈을 휘며 웃었다.

그 눈

심연보다 깊은 어둠

그 존재는 사라진것이 아니라 인두겁을 뒤집어 쓰고 강창호의 곁에 자리한 것이다.

강창호는 진실을 마주하고 경악 할 새도 없이 시체라 생각했던것에게 입맞춤으로 숨을 나눠받았다.

**

"허억!"

꿈에서 깨자마자 발작적으로 기침하며 숨을 들이켠 강창호는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을 훔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 여명이 부드럽게 침실을 비추고, 거울속 짐승같은 몰골을 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박살난채로 방치된 저택의 모습은 김기려가 다녀간 날과 변함없이 엉망이였다.

강창호는 고요한 저택을 둘러보며 색다른 감상에 젖었다.

꼼짝없이 죽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구원의 손길이 그를 소생시켰다.

눈을 감고 밝아오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한참을 가만히 벽에 기대어있던 강창호는 김기려에게 연락했다.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람이라고는 강창호 본인뿐인 넓은 저택에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한치의 헤맴 없이 그의 앞에 도달한 김기려에게 강창호는 말했다.

"한가지 확인해볼게 있어."

그리고는 김기려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여 다짜고짜 입을 맞췄는데 김기려는 예상한듯 가만히 강창호가 행하는대로 따라줬다.

강창호는 차가운 체온을 지닌 김기려의 매마른 몸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꿈에서 했던것처럼 김기려의 숨을 나눠받았다.

한참동안 김기려를 붙잡고 입술을 맞대고있던 강창호는 입술을 완전히 떨어뜨리지 않고서 물기어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대체 뭐지?"

"......"

"대체 왜 나에게 그런것들을 보여준거야."

김기려는 여전히 무기질적인 눈으로 강창호를 응시할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강창호는 그런 김기려에게 다시금 입을 맞추고 차가운 그의 혀와 자신의 혀를 얽으며 서로 맞닿은 모든곳이 같은 온도가 될때까지 김기려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

.

.

김기려는 강창호의 영혼을 끌어내 기심체의 먹이로 주고자 했다.

그가 감히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해 '김기려'의 시체를 상하게 했으며

감히 열등한 유인원따위가 마도학의 끝을 본 자신의 앞에서 방자했기 때문이다.

술식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고등한 마법체계를 접해본적 없는 지구의 원시술사들은 강창호가 무엇에 당한것인지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김기려는 기심체 중에서도 특히 악질적이며 덜떨어져 동족에게도 외면받는 심연의 벌레같은 것들과 강창호의 영혼을 급조한 심상세계에 묶어두었다.

모든 일은 예상대로 흘러갔고 마지막 순간, 희망을 눈앞에서 부숴 물밖의 벌레들에게 강창호를 던져주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였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강창호가 모든것을 내려놓은 얼굴을 하고 힘이 빠져 움직이지도 않는 손을 뻗어 자신에게 닿고자 하는것을 보니

강창호라는 인간이 궁금해졌다.

그 순간에 강창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기에 김기려는 그를 살렸다.

그를 전부 알게될때까지 김기려는 강창호를 살려놓기로했다.

그뿐이었다.

대마법사의 단순한 변덕으로 강창호는 살았다.

법사이기 이전에 학자였던 한 외계인의 흥미를 끌어낸 강창호는 본인이 무엇때문에 죽을뻔하고 무엇때문에 살게 되었는지 영원히 알길이 없겠지만

김기려는 잡아먹을듯 깊숙히 혀를 밀어넣는 강창호를 받아주며 그의 감은 눈을 보았고, 잘게 떨리는 호흡을 느꼈다.

강창호에 대한 분석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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