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대공 고독사건(샘플)

하성기려 로판AU :: 그래서 북부대공이 누군데

지인과의 피의 맹약으로 탄생한 연성. 하성기려를 사랑하는 R님께 바칩니다.

어중간한 로맨스&판타지클리셰짬뽕세계관. 그런데 하성기려를 위한 안일한 로코유니버스 약간의 착각계

이 글은 외계인이 제일조아 연합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땅이 있다.

끝없는 파도가 대지를 깎아내고, 하루의 절반은 칼날 같은 바람이 살아있는 것들을 갉아 먹느라 메마름과 고독이 예정된 땅. 과거 파도가 무슨 색인지 세상 사람들이 알았던 시절엔 이곳 역시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저 ‘검은 산’라고 불리는 제국의 북부.

실상은 산조차 아니었다. 수백년 왕국의 경계면을 따라 높디 높은 성벽을 쌓은 것이 그대로 무너지고 썩어가다, 눈과 함께 쌓여 얼어붙었을 뿐이다. 버려진 성벽들이 둘러 싼 가장 깊은 곳, 그 절벽 끝에 북부의 주인이 살고 있다. 제국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지배자. 본래 저마다의 역할과 사명을 지고 살아갔던 땅의 찬탈자. 북부의 사람들조차 그 피를 이은 자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공포와 경외를 담아 지칭했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가 배척이 된 탓일까, 어느날부터 성의 주인 일가에게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작은 폭풍우가 치는 밤, 돌연 성을 나간 대공이었다. 어느 어부가 증언하길, 높이 솟구치는 파도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고 있다더라. 공작이 미쳤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다음엔 밤마다 성에서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웃음소리 같기도, 억눌린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성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이 하나 둘씩 일을 그만두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로, ‘공작 부인께서…’ 그 말만 중얼거리다 입에 담기도 꺼려진다는 듯 침묵했다.

그렇게 미쳐 밤마다 바다로 나가던 대공이 실종되자, 이번엔 성에 유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은 대공이 성을 배회하고 있다더라, 아니다 광증에 걸린 공작 부인이 잠옷만 입고 밤마다 성을 헤맨다더라. 어느것 하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성의 순찰을 돌던 경비들이 목격한 그림자는 어느 때는 가냘프고 길쭉했고, 어느 때는 짧고 통통했으며, 어느 때는 곰처럼 덩치가 컸고, 어느 때는 난쟁이처럼 조그마했다. 남아있던 몇 안되는 고용인들이 또 일을 그만두었다. 키가 말쑥한 어느 고용인은 마을에 내려오자마자 병사들의 봉급이 몇 달이나 밀렸다는 말을 내뱉어 마을 사람들의 불안을 키웠다.

또 다시 폭풍우가 치는 밤, 새까맣고 창문이 모두 막힌 음산한 마차가 성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이가 있다.

며칠 뒤, 인근의 골짜기에서 공작 부인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 모두가 쉬쉬하던 소문이 단숨에 목소리를 높이며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수도의 황성에 알려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런 일이 있어, 자네를 불렀네.”

알현실보다 깊은 곳, 황제의 침궁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서 정하성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북부는 중요한 땅이지. 그곳이 어떤 의미인지는 짐이 말할 것도 없고, 자네가 더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보네.”

시종이 그의 앞에 찻잔을 놓아주었으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각설탕이 녹아가는 것만 응시할 뿐 손을 대지 않았다. 황제는 두 손을 마치 결박하듯 뒷짐을 지고 무릎을 꿇은 성기사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북부의 진상을 조사하길 바라십니까.”

“물론 그것도 흥미롭지만,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네.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도 있고.”

정하성은 명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출발하겠다는 듯 어깨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황제는 찻잔에 우유를 조금 더 넣곤 그를 만류했다. 고개를 들라는 말이 없으니 황제의 표정을 알 길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불쾌감보단 귀찮은 문제가 생긴 것 같은 투였다.

“공작이 죽은게 맞는지 확인하고, 뭐 그 일에 얽힌 다른 귀족이 있다면 찾아는 두게. 쓰임은 짐이 고를테니. 그보다도. 공작에게 자식이 있지 않던가?”

황제가 심드렁히 말했다.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지만 공작의 핏줄은 찾아내야 한다고.

“아비가 죽었으면 그 자식이 새로 자리를 받아야지. 자네가 할 일은 대공의 핏줄을 찾아 임명장을 넘기고 그를 성에 다시 데려다 놓는 일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정하성은 황제의 말을 곱씹다,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얼핏 단순하다. 임명장을 전달할 뿐인 일이라면 다른 전령을 보내도 된다. 굳이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 전할 필요 없는 말이고, 제국의 가장 뛰어난 성기사로 칭송받는 정하성을 보내는 건 인력 낭비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황제가 우려하는게 ‘북부’에 있다면, 그는 단한번의 절차로 최적의 대처를 할 수 있다.

북부는 저주받았다. 제국은 그 대가로 축복을 받았다.

제국은 천년의 번영을 약속받았다. ‘북부의 주인이 그 바다 밑에 잠드는 한 영원토록. 천년의 풍요가 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때문에 공작의 성은 많은 전략적 요충지를 다 버리고 북부의 땅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바다와 맞닿아 지어진 것이다. 그 일가의 핏줄이 단 한명이라도 그 땅에 살고 있어야만 예언의 안전성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이게 신비를 잃어버린 핏줄이 여전히 제국의 대공가로 존중받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한 모든 예외를 허가받는 이유였다.

이젠 신실한 이들이나 겨우 기억하는 아주 옛 이야기지만, 황가에는 꾸준히 제국을 위한 잠언으로 구전되어 내려왔다. 뭐가 되었든 저주가 있다는데 그게 티끌 만큼이라도 중앙에 튀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예,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정하성은 그런 방면에서 최적의 인재다. 그는 손에 닿는 모든 삿된 것을 불태울 수 있는 성화를 가진 성기사였으니까.


‘그’가 눈을 뜬 것은 파도가 썰물처럼 들어오는 수로의 가장자리였다. 언제 얼어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차가운 해수에 몸의 절반이 담긴 채, 사지의 말단이 굳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갓 태어난 아이처럼 꿈틀거리다 간신히 몸을 바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육신의 연약함과 추위가 유독 강렬하게 느껴졌다. 저릿한 몸을 주무르다 무거운 머리를 삐걱이며 돌린다.

“아, 아-. 콜록, 켁!”

소리를 내려하자 호흡이 낯선 것처럼 목에 걸렸다. 여러차례 기침한 끝에 겨우 목에서 질척한 물기 비슷한 것이 토해졌다. 잔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절벽과 바다가 보였다. 그의 몸이 걸려있던 수로는 관리가 덜 되었는지 바닥과 단차가 울퉁불퉁했는데, 발로 딛고 걸어보니 얼핏 계단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물살이 세지 않다면 거슬러 오르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수로가 이어진 방향을 따라 느리게 걷자, 절벽의 암초들 사이로 좁게 통로가 나 있는게 보였다. 절벽에 묻어난 하얀 소금기를 보니, 밀물이 오면 여기까지 잠겨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런 걸 왜 알고 있지?

‘그’는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느꼈다.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제 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몸의 이곳 저곳을 더듬어보다 심장의 위치와 뇌의 위치를 천천히 구분해냈다. 연약한 몸, 약점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는 기형적 형태, 왜 나는 이렇게 생겼지? 그는 손을 이용해 머리를 통통 두드리다 문득 떠올렸다. 이름은 김기려. 이 몸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랬다.

좋아, 이로서 구조적 약점 때문에 기억에 오류가 생겼단 사실을 떠올렸다. 그럼 나머지 기억은 차차 정리되도록 애쓰는 수 밖에. 김기려는 우선 연약한 자신을 위한 껍질이 필요하다. 여긴 객관적으로 좋은 안식처가 아니다. 그의 몸을 덮은 얇은 껍질은 굉장히 차가웠고, 축축했고, 무엇보다 바닷가를 두어시간 걸어다녔을 뿐인데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보다 약간 더 따뜻한 곳을 찾을 필요성을 느꼈다.

김기려는 그가 찾은 통로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통로는 어두웠고, 계단과 경사로가 반복되며 꼬여있었다. 수로인 탓에 바닥이 미끄러웠다. 다행히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인가 군데군데 부서진 자리가 있어, 미끄러져도 발을 걸고 버틸 상태는 되었다. 그는 몇 번이고 물살에 떠밀릴 뻔 하다가 사지로 벽과 바닥을 짚어가며 겨우 통로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통로의 끝은 당연하지만 창살이 세워진 수로였다. 그 너머에 물이 가득 찬 홀이 보였다. 김기려는 통로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낮게 내려온 창살을 응시하다, 그의 몸이 충분히 마르고 납작하단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몸을 비틀어댄 끝에 창살을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아마도 이곳은 절벽 안에 있거나, 혹은 절벽 위에 있는 공간일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 아까보다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얼어붙은 껍질을 벗어 물에 빠트리고, 벽에 걸려있던 태피스트리로 몸을 덮었다.

그나저나, 여긴 또 어디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니 주인이 있을텐데, 이곳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김기려는 돌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진동에 집중했다. 말소리나, 하다못해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없었다. 빈 공간일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이 낯선 곳을 살폈다.

이곳은 구조가 아주 복잡하고, 굉장히 넓었으며, 제법 더러웠고, 무엇보다.

텅 비어있었다.

“버려진 곳이군.”

망가진 가구, 뜯겨진 커튼, 청소가 되지 않은 홀이나 집기가 거의 없는 주방 따위를 보며 김기려는 판단을 마쳤다. 그는 어째서인지 각 공간이 어떤 모습이 ‘정상’인지 알 수 있었다. 사라진 기억 탓인지 자신의 뛰어난 두뇌 탓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김기려에게 중요한 건 이곳에 다른 거주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는 건?

“이제 이 성은 내거다.”

김기려는 부동산을 획득했다. 아주 거대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성을. 꾸물꾸물 남은 집기를 모아 방을 정리하고 있는 김기려는 모를 일이다. 이 성이 누구의 저주를 받은 땅인지. 이곳을 찾아오고 있는 어떤 남자의 정체도.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게 될…

Coming soon?

“저는 실종된 북부 대공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큰일이다. 김기려는 등불을 든 사내가 절대 성문 앞에서 비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냥 들여? 아니면 내쫓아? 하지만 정체불명의 종이쪼가리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마치 자길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듯 강조되고 있었다. 결국 김기려는 공허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아까부터 신경쓰이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래서 북부 대공이 누군데.”

이것은 저주받은 땅의 주인과 멀리서 찾아온 성기사의… 사랑?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후… 마감에 성공하면 9월 디페스타에 판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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