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Time , BUT.
Let'me see
알카디아, 그것은 이름으로 구속된 나의 가장 커다란 흉터. 그 성을 지어준 수녀원의 수녀님은 뜻을 알려주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재정난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수녀님의 아이 교육은 그다지 나쁜편이 아니기에 혼자서 벌어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글도 쓸 수 있었고 읽을 수도 있었으며 또래보다 체격이 좋은 덕에 의외로 나를 찾는 일거리는 많았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벌목을 , 어떤 때에는 공사장에 나서기도 하며 내 나이대에 만지기 힘든 돈을 벌기도 했다. 어린 아이가 많은 돈을 지니면 일어날 법한 일들도 많았다. 불량배들은 어딜가나 있었고 술에 찌든 노숙자들이 품에서 자기 손보다 작은 주머니 칼을 꺼내 나를 위협하기도 했다.
돈을 뺏기는 날이 있었다, 돈을 지켰던 날도 있긴 했다. 나를 중심으로 모이는 아이들이 생겼었다, 두명에서 세명, 어느날은 학대하던 고아원에서 도망친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나를 대장처럼 따랐고 나 또한 그들이 나를 의지해주는 것이 내심 좋았던것 같았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이 없어지기 전까진.
새삼스럽진 않았다, 아이들 중 일부가 따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독립하기 위해서 인줄로만(ㅡ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ㅡ) 알았기에 나는 허무하게 사라진 내 돈과 나를 떠난 아이들의 흔적을 회상하며 아마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나를 일깨운건 지붕에서 새어나온 빗물이 콧잔등 위로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호흡 하나 하나에 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쏟아졌다. 인정과 그것을 베풂으로 인한 나의 보람이였던 것들도.
그 때였을 것이다, 어느정도 나이가 찼기에 군에 입대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도 텅 비어버린 자금을 벌기 위해서 숙식이 걱정없는 곳을 찾던 나에게 군대란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내 군인의 삶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 톱니바퀴에 끼어버린 조약돌.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니 균형이 어긋나 망가지고 으스러지던 내 인생이라 이름붙인 기계부품의 그것 정도 아니었을까.
병사로서의 나는 그렇게 나쁘게 흘러가는 편은 아니었다, 내 동기라 부르던 것들은 유쾌한 편이었고 훈련과 일과가 없던 날에는 가끔씩 외출을 나가 술도 마시면서 내가 받았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느끼도록 하였으니.
그것들은 나에게 진통제 정도의 정을 새겼었다.
일이 틀어진건 글쎄, 장교를 지원한게 문제였을까. 장교로 지원한 나에게 병사였던 동기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병사에서 장교로 올라온 나를 다른 장교들은 고깝게 보였을테니. 그러한 조롱의 의미로 들개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한동안 괴롭힘에 시달리곤 했다.
괴롭힘은 견딜만 했다, 그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 위한 노력들은 그다지 와닿을만한 그것이 아니었고 나 또한 이를 무시하며 지나가면 그만이기에 별 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다.
총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저 작은 한발에 불과했던 몇미리의 납덩어리가 일으킨 전쟁에 나 또한 참전해야 했고.
그 전쟁을 딱히 요약할만한 말을 찾는것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닥을 기고 강에 뛰어들며 말을 타고 수류탄을 던지는 나날, 우연히 던졌던 수류탄이 적들의 진지까지 굴러가 우연히 거기에 있던 지휘관을 사살했던 공적을 받고서 중위로 진급한 나를 다른 장교들은 이를 조롱삼아 낙하산 군견이라며 불렀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만큼 젊고 잘 움직일수있는 장교는 몇 없으니까. 할 수 있겠나?”
갑작스러운 호출, 그리고 이어진 제안과 함께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발령이 떨어졌다. 특수작전부대라 명명한 그것은 말만 번드르르한 말 그대로 자살부대에 가까운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었다.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이들을 적들의 거점으로 몰아넣는다, 그들이 죽는다면 다음이, 또 그 다음이 이어받으면서 적들의 보급을 소모시키고 병사들은 죽어나가며 수를 줄이면서 다른 전선의 전력을 빼버리게 하는 말 그대로 병사들로 하는 소모전이 주력인 부대였다.
“낙하산 군견 중위님이네, 우린 이제 다 죽었구만.”
“상사 앞에선 존댓말을 써라 존 호세 상병.”
“나보다 나이도 어린게 무슨, 까놓고 얘기합시다. 우리 다 죽는거요?”
병사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을수 없었다. 이미 침투작전은 3번째 , 두번의 실패와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무슨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는다는 물음에 나올 대답을 정할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 얄팍한 탄알집에 총알을 넣으면서 침묵을 유지할뿐.
“이번엔 나도 작전에 투입한다.”
“드디어 미치셨나,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말이야. 우리가 안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들은척 하나 안하더니 드디어 귓구멍이 뚫렸나?”
“윗선의 명령이다. 다 들어가서 죽으라고 하더군.”
“옘병씨발 , 귓구멍이 아니라 똥구멍이었나. 꼰대새끼들.”
침투는 순조롭지 않았다, 이미 두번의 침투가 있었던 터라 경계는 삼엄했고 침투하는 과정에서 5명의 병사들을 잃었다.
“그건 왜 손에 감는거요, 군견중위.”
“넣었다가 떨어트릴까봐, 왜 불만있나?”
“아니, 무슨 옘병짓을 하나해서. 꼰대로서 말하는데, 당신 덩치를 생각해서 움직이쇼 존나 못숨더만.”
전사한 병사들의 군번줄을 손에 감고서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침투를 계속했다, 목표는 보급창고, 혹은 요인암살. 쉽게말해 지휘관을 죽이고 우리도 죽으라는 말이었다. 기껏해야 30명, 혹은 40명이 채 될까말까한 병사로 상대의 지휘관을 죽이는게 수지타산에 맞는건지 그러한 의문은 이미 지워둔지 오래였다.
“케에엑…!커허..컥..!!”
호흡이 빠져나가는 소리,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감긴 군번줄로 적 지휘관의 목을 조른다. 단단히, 절대로 일어날수없게. 또 다시 병사들을 이곳에 몰아넣을 일이 없도록. 이미 여기까지 오는것만 해도 많은 수의 병사들을 잃었다. 탄환은 떨어졌고 챙겨왔던 대검조차 어느 한 병사의 목에 틀어박혔다.
죽어라,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마라. 살아도 살지 말아라. 제발 숨이 멎기를 , 손에 쥔 군번줄에 피부가 쓸리고 너무 강하게 조여진 탓에 그 사이로 송글송글한 핏방울이 맺혔다. 손이 떨린다, 부릅 뜬 시체의 눈과 내 눈이 맞닿았다. 나의 눈하고 저 죽은 이의 눈이 과연 다른가.
“…하,기어코 살았군 개같은 새끼.”
복귀한 나를 향해 툭 던지듯 욕설을 내뱉은 사령관. 그는 나를 벌레쫓듯이 내보내고는 곧장 다른 임무를 전해주었다.
임무는 실패했지만 또한 성공했고 나는 그 때마다 운좋게도 살아남았다. 수십번의 실패에서도 단 몇번의 성공이 거치자 군 내부에선 나를 쉬쉬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어느새 내 별명은 사냥개로 불리우게 되었다.
“꼰대새끼..기어코 죽네. 라고 생각하고 있소?”
"…“
“너무 인상쓰지마쇼, 오래버텼지 당신 아래에서 이정도 살아남은거면.”
“말 하지마라. 명령이다.”
“하! 남은 시체라도 데리고 가서 군법으로 처벌하던지.”
존 호세 병장, 언제나 꼰대라며 나에게 쓴 소리를 일삼던 놈. 폭음과 총성이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태연하게 나를 향해 욕을 던지는 놈. 이런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특수작전이라며 사지로 내던지는 임무에 꿋꿋하게 따라오면서 언제나 살아남는다고 믿는것은 과한 욕심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놈의 몸은 허리에서부터 끊겨있었다. 정확히는 터져나갔다고 보는게 맞았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샘솟는 아드레날린이 고통을 줄여주는건지 낄낄거리는 놈의 비아냥에도 나는 그 눈을 보며 차마 말을 이어할수가 없었다.
“들으쇼, 내 마지막 말이니까. 어른이 하는 말은 원래 들어야 돼.”
“…”
“거 씨발 정없게 대답도 없네..아무튼…”
존 호제의 병장의 마지막 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말을 했었는지도 아니면 말을 하려는 직전에 숨이 멎은 걸지도.
언제나 내 꿈은 이렇게 끝난다. 쓰러진 존 호세 병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어린 시절의 나. 새파랗게 어린 눈은 피로 젖었고 살인의 취해 주저앉았으며 숱한 죽음에 처연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내 삶을 요약하면 배신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것에 대해 분노하기엔 상처는 너무나 곪고 방치되었으며 복수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난 늘 그렇듯이 존 호세 병장의 시체를 보며 꿈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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