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네로 알카디아

하니버스 by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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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 몇개 있었다. 하나는 나의 부모님이며 또 하나는 돈과 다른 하나는 바로 전쟁이었다. 공교롭게도, 아니면 정말 운이 없게도 난 그 세가지 중에서 두가지를 겪게 되었다. 바닥난 잔고와 어딘가의 19살 머저리가 쏜 총에 의해 발발한 전쟁,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몇 미리도 안되는 납덩어리 하나로 전쟁을 일으켰으니까.

“ 이제부터 자네들은 군인으로서 위대한 미국과 세상을 위해 용맹한 발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제군들의 발자국 하나가 미국의 큰 걸음이며 제군들이 쏜 탄환은 바로 미국의 위상이라! ”

이제부터 전쟁터로 나가 총알받이나 하라는 말을 길게하는 상사를 바라보며 나는 내 손에 쥔 살인도구를 내려다 보았다. 몇센치도 안되는 방아쇠라는걸 당기면 사람 하나가 죽는다. 아니 다칠지도 모른다. 절단이 날 수도 가슴에 넣어둔 수류탄에 우연히 맞아 산산조각이 날 지도 모른다. 와닿지 않은 현실감,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르기도 전에 나는 군용차량을 탑승한채 전쟁터로 끌려갔다.

전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릇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피바다와 널브러진 시체를 떠올릴것이며 누군가는 비명과 절단된 신체가 나뒹구는 난장판을 떠올릴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생각만큼 그렇게 사람냄새나는 곳이 아니었다.

흑과 백 혹은 회색. 검은 매연과 먼지구덩이에 뒹구는 잔해와 시체들. 피웅덩이는 먼지와 폭연에 덮혀 액체의 형태도 띄지않고 땅에 스며든다. 성한 건물하나 없이 진지라고 파놓은 자그마한 구덩이에 들어가 식사와 수면을 이룬다.

콰광-!!

“의무병!! 당장 튀어와!!”

“씨발 대체 지원은 언제 오는거야!!”

“엄마,엄마,엄마…살려줘요..난 , 난 죽기 싫어.”

“내,팔..내 팔 못봤어?”

폭발 한번, 그리고 몇초뒤에 울리는 고함과 비명 또는 울음소리. 군인들이 바지에 지른 소변냄새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내가 쓰고 있는 방탄모라는 빈약한 모자에 총알이 스친다.

싸워야 했다, 말발굽 소리가 전장을 달리며 내장이 터져나온 말이 흙바닥 위를 구른다. 입안에 모래가 들어간다, 팔꿈치가 닳도록 기어 부서진 벽 뒤로 숨는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당긴다, 굉음. 굉음이 들린다.

“이에 네로 소위는 이 시간부로 중위로 진급함을 알린다! 축하한다 네로 알카디아 중위!”

충성심 없는 경례를 하고서 어깨의 견장에 의미없는 계급이 오른다. 어차피 이러고 또 다시 날 전쟁터로 밀어넣겠지, 이제는 하늘위에 새보다 비행기가 거친 바닥을 달리는 자동차보단 전차가 더 익숙했다. 이 계급이 오를수록 난 어딘가 망가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허억…흐억..!”

기절했나? 언제부터? 주변을 둘러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소대원이 보였다, 이름이 뭐였지? 코너? 그래 코너 하사였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코너 하사를 흔들어보지만 건방지게도 상급자가 깨우는데 하반신도 없어 일어날수없는 상태였다. 그런 괘씸한 태도에 나는 녀석의 목에 걸려있는 군번줄을 끊어 입안에 먹이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했다.

분명 마지막 기억으로는 점령작전이였을 것이다. 녀석들의 무기고를 급습하고 무기들을 파괴하거나 점령하면 그만인 작전이었다, 그러나 교전중 적군의 비행기가 아군 적군 가릴것없이 포격을 퍼부었고..쓰러졌다. 무기를 넘길바에야 다 함께 죽여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 모양이였다. 억울함, 분노 , 이런건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은 그런 감정을 가진 이들부터 죽으니까. 나는 그렇기에 살아남았다.

“…하아..억..?”

그런데 나 혼자만 살아남은건 아닌것 같았다. 벽 뒤에서 기어나오는 우리와는 다른색의 군복을 입은 군인, 이마가 찢어진듯 한쪽 눈을 가릴정도로 붕대를 휘감은 부상병이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총구를 겨눴고 망설임 없이 당겼다. 굉음, 그러나 터지지 않았다. 힘 없는 딸깍임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적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 살기위한 발버둥이 다가온다.

“컥..!!끅..!!”

“nem…akarok..meghalni..! akarok meghalni!”

쓰러진 나에게 주먹이 쏟아진다, 다 해서 8개도 안될법한 손으로 쥔 주먹은 부족한 손가락에도 불구하고 나를 쓰러트리고 내 목을 옥죄온다. 눈물과 피로 젖은 손이 내 목을 덮었다. 웃기는 일이다, 단 두사람의 주먹질로 이 작전의 성공여부가 판별난다는 것이. 이미 우리의 조국은 우리들을 버렸을텐데.

“ ….”

그럼에도 나는 살았다, 쥐고 있던 총으로 녀석의 관자를 때리고 쓰러진 녀석의 위로 올라타 눈을 찌르거나 머리를 찍는다.

녀석의 발이 나를 밀었다, 벌레가 기어가듯이 내가 있는 곳에서 반대 방향을 향해 살고자 기어갔다.

그곳엔 내 소대원들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를 넘어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피해 살아남고자 죽은 이들의 얼굴을 누르고 소변을 지리며 모래를 나에게 뿌리기도 하면서 기어간다.

"…이리와, 그래야 끝나.“

비틀대면서 나 또한 시체와 다를바없이 걸어간다. 내 소대원들을 짓밟으면서 그들이 살고자 부르짖던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마지막까지도 소대장이던 나를 부르면서.

“…élni…akarok”

기어가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틀며 나에게 총구를 겨눈다, 시체에서 기어가다 찾은 총인것 같았다. 코피를 쏟으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애원하듯 , 제발 죽어달라는 듯이 나에게 빌었다.

방아쇠가 당겨진다, 총구가 불을 뿜으며 굉음이 터져나온다, 죽음이 다가온다.

“…하아,오늘은 날이 아닌가.”

나는 쓰고 있던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론적으로 , 난 죽지 않았다. 손가락도 없던 놈이 제대로 날 조준했을리가 없었고 나는 살아남았다. 울먹이며 기어가던 녀석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군번줄은 입안에 물려주었으니 시체는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희망했다.

편지를 정리하던 내 눈에 이상한 편지가 보였다. 고급스러운 편지지, 이런 편지지를 보낼 사람은 내 주변엔 없었다. 렛서녀석의 장난인가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편지지를 열자 그 안에 돈과…편지가 있었다.

“…바다사자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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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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