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한림 썰모음 4 (22.04.01~22.05.22)

긴른

1. 만우절 거짓말 연습을 하는 긴토키.

 

만우절 거짓말 연습을 하는 긴토키.

사다하루를 앞에 두고 고백을 하는 모습을 히지카타에게 들켰으면 좋겠다.

 

원래는 정말 고백을 할 생각이었지만, 고백하기도 전에 당사자에게 들켜버린 걸 어떡하냐. ‘지금 뭐하냐’라는 당사자의 말에 긴토키는 대답했음.

‘정말 싫어하는 녀석이 있는데, 고백으로 골탕먹여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라고.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말을 쉽게 믿는 눈치였음. 마침 만우절을 끝내주게 준비하는 녀석이 신센구미에 있을 테니까.

 

“곧 만우절이라더군. 그때 하려는 건가?”

“뭐? 만우절?”

 

만우절이야?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 긴토키는 냉큼 히지카타의 말을 받아 긍정했음.

 

“어. 그렇지. 그때 해달라더라.”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놀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히지카타는 의외로 진지한 태도로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었음. 얼마나 진지했냐면…….

 

“다시 해봐라.”

 

자기 앞에서 고백하라고 말할 정도로.

 

“미쳤냐? 내가 왜?”

“나한테 할 고백 아니냐. 그럼 나한테 연습하는 게 낫지.”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빨리 하라는 듯 턱짓으로 재촉했음. 한 번 봐 줄테니 어디 해보라는 태도였지.

긴토키는 내심 깨달았을 것 같음.

이 자식,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다하루 앞에서 히지카타를 부른 것까지 전부 들켰을 줄은 몰랐던 긴토키는 수치심에 증발하기 직전이었음.

저 놈을 죽여 증거인멸을 하고 그냥 콱 죽을까 고민도 하겠지.

근데 히지카타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저도 모르게 휘말릴 것 같음.

그렇게 만우절 날까지 거짓말 연습이 시작되었음.

히지카타 입장에선 고백이 거짓말이고, 긴토키 입장에선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 거짓말인.

 

하루에 한 번, 긴토키는 히지카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히지카타는 그것에 대해 피드백을 해줬음. 덕분에 긴토키는 강제로 다양한 고백을 하게 되겠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소품으로, 다양한 말을 하면서.

처음엔 창피하고 벌칙 같았지만, 나중엔 즐길 것 같음.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의 고백을 받고 이런저런 점이 좋았다고 진지하게 말해주는데, 누가 싫겠어. 많이 설레기도 하고, 속 시원한 기분도 들 것 같음.

 

문제는 히지카타가 긴토키에게 계속 캐묻는 거야. 의뢰인이 누구인지.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의뢰를 맡겨서 골탕먹이고 싶을 정도로 자신을 싫어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신경쓰이는 눈치였음. 궁금하겠지. 그래서 긴토키에게 묻는데, 긴토키는 의뢰인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며 계속 숨기는 거임.

 

그래도 히지카타는 포기하지 않고 의뢰인에 대한 질문을 매일 조금씩 할 것 같음. 의뢰인은 내 어디가 싫다고 했는지, 의뢰인은 언제부터 나를 싫어했는지.

긴토키의 진짜 거짓말 연습은 의뢰인 꾸며내기가 되었음.

존재하지도 않는 의뢰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 거야.

 

그렇게 시작된 거짓말에 긴토키의 진심이 새어나가면서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어디를 좋아하는지 털어놓았으면 좋겠음.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어디에 설렜는지,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들을 ‘싫다’로 바꿔서 말했으면 좋겠음.

 

이런게 싫다더라, 저런게 싫다더라 라면서 입으로는 히지카타를 놀리는데 얼굴은 괜히 빨개져있으면…….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흘러서 히지카타도 슬쩍 시선 피하고 헛기침 할 것 같다.

 

그리고 만우절 날, 그동안의 연습이 무색하게 벌벌 떨면서, 그리고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나는 네가 너무 싫다.’라고 고백하는 긴토키가 보고 싶었음.

그리고 히지카타는 한참 고장난 듯 멈춰 서있다가, 긴토키의 고백을 알아차리고는 함께 삐걱대면서 고맙다고, ‘나도 네가 너무 싫었다.’라고 고백했으면 좋겠어.

 

서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온몸이 새빨개져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서로 싫다면서 욕하고 고맙다는 인사 주고받는 사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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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원성서의 외전 아닌 외전.

*시점은 마지막으로부터 며칠 전.

 

 

“넌 언제 살아있음을 느껴?”

 

긴토키가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다른 누군가에겐 두서없는 엉뚱한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시한부가 된 그들에겐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를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는 주제였다.

히지카타는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대답을 내놓았다.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응.”

“그게 지식이든 경험이든. 내가 몰랐던 것을 새롭게 만나면, 난 그것을 알기 위해 아직까지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그렇냐.”

 

긴토키는 짧은 대답을 한 후에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널 만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뭐, 그 전부터 발칵 뒤집히긴 했지만, 결국 널 만나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널 알고 사랑하게 된 뒤로는 이전과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뭐. 내 삶이 다사다난하긴 하지.”

“그러니까 내말은,”

 

히지카타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는 긴토키의 볼을 잡고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넌 날 살아있게 한다.”

 

……아.

히지카타를 보며 몇번 입을 달싹이던 긴토키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의 살짝 붉어진 귀를 보고 쿡쿡 웃는 히지카타에게, 긴토키는 말했다.

 

“나는...죽음을 알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군.”

 

“난 죽음과 가까웠으니까. 종종 장례식이 있기도 했고, 특히 나는 죽음과 살았지. 내가 죽인 삶이 많으니까.”

“그건 네가 죽인 것이 아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일별했다. 히지카타는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있었지만, 긴토키는 그것이 서글픈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아무튼. 그리고 이젠 내 것을 기다리고 있잖아. 네 손에 쥐어진 죽음.”

“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야,”

 

긴토키는 서로 잡고있던 손을 당겨 히지카타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넌 날 살아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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