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 헌터스

[말렉/알렉매그] 질투

그의 집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 같다.

* S02E07 알렉이 매그너스에게 부적을 선물하는 장면에서부터 알렉이 이지에게 진도를 나가는 방법을 상담받는 장면 사이의 시점으로 날조한 연성.

* 드라마 다시 보니까 제이스는 정말로 매그너스 집 방 하나에 얹혀사는 거더라. 그 아파트 다 매그너스 명의인 거 아니였냐며... 400살 할배면 집은 아파트 단위로 살 줄 알았어. 은근히 통이 작은 월록. 그런 주제에 집에 자꾸 누굴 키울 만큼 품은 넓음. 어이없어.

* 시즌 2까지만 보고 쓴 캐해인 점 주의.


알렉은 할 일이 없을 때면 종종 매그너스의 집에 찾아가곤 했다. 물론 그에게 할 일이 없는 날은 극히 드물었으니, 따지고 보면 쉬는 날이 생기는 족족 그의 집에 찾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렉은 보통 매그너스와 미리 약속을 잡아 데이트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매그너스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할 것을 내심 기대하며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알렉이 매그너스의 집에 깜짝 방문하는 날엔 매그너스를 찾아온 다른 손님을 함께 마주치는 날이 많았다.

 

그 손님이란 존재는 매번 다른 인물이었다. 종족과 나이,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오는 존재를 보다 보면 매그너스의 인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집에 섀도우 헌터인 제이스가 묵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곳에 누가 찾아와도 놀랄 일이 아닌 것은 맞았다. 하지만 머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나빠지는 감정은 알렉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그들이 매그너스를 보는 눈빛이 불쾌했다. 모두 하나같이 호의가 가득한 얼굴로 다정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미련이 남는다는 듯이 느긋이 머무르다 갔다.

그것을 볼 때마다 알렉은 생각 깊은 곳에서부터 17000이라는 숫자가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일까, 알렉은 약속 없이 매그너스의 집에 찾아가는 빈도수를 늘렸고, 매그너스는 그것을 기껍게 여기며 알렉에게 자기 집 열쇠를 주었다.

만약 집에 찾아왔을 때 자신이 없다면 안에서 기다려달라는 말을 덧붙이며.

 

 

알렉은 자신의 주머니에 든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괜히 열쇠고리와 열쇠를 부딪치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알렉은 비실비실 올라오는 입꼬리를 의식하지 못하며 문을 똑똑 두드렸다. 하지만 문은 시간이 지나도 열리질 않았다.

 

집을 비웠나? 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다시 한번 더 문을 두드려본 알렉은 ‘매그너스, 없어? 제이스? 나야, 알렉.’이라고 말하며 기다렸다가 결국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에 들어간 알렉의 시야에 소파에서 자고있는 매그너스와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월록이 들어왔다.

월록은 알렉을 발견하고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알렉은 월록의 인사를 받지 않고 그의 손이 닿아있는 매그너스의 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볼일 남았나?”

“네?”

“없으면 가. 내가 깨울 테니까.”

“어…….”

 

월록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고, 알렉은 월록이 머물렀던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매그너스를 내려다봤다.

 

매그너스는 깊게 잠들었는지 월록과 알렉이 오가는 인기척에도 깨어나지 않고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입술을 손끝으로 만졌다. 마른 입술의 보드라움이 먼저 느껴지고, 살짝 벌어진 입술의 틈새에서 조용한 숨이 오가는 것이 느껴졌다.

알렉은 그 입술에 짧게 키스하고는 시선을 내려 매그너스의 배에 얹어져 있는 한쪽 팔을 손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힘없이 올라가는 팔을 따라 비칠 듯 말 듯 한 짙은 색의 셔츠 소매가 흘러내렸다. 좀 전에 나간 월록을 떠올린 알렉은 월록이 잡았던 부분에 입을 가져다 댔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알렉은 그것에 이어 입을 댄 부분을 깨물고 빨았다. 뱀파이어처럼.

스스로 그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알렉이 깜짝 놀라던 찰나, 매그너스가 잠에서 깨어나며 누군가를 불렀다.

 

“……라파엘?”

 

갑자기 여기서 그 뱀파이어 이름은 왜 나오는 거지?

알렉은 입을 떼고 매그너스의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여전히 몽롱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면서 잠을 쫓아낸 매그너스는 알렉을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안녕, 달링.”

 

매그너스는 알렉의 삐죽 나온 이쁜 입에 고개를 살짝 꺾으며 다가갔다. 하지만 알렉이 뒤로 물러나면서 키스를 피하고 매그너스에게 물었다.

 

“방금 그 뱀파이어는 왜 부른 거지?”

“뱀파이어? 누구?”

“라파엘을 불렀잖아.”

“아… 그 아이가 막 뱀파이어가 됐을 적엔 종종 입질을 하곤 했거든.”

 

매그너스는 닿지 못한 입술을 아쉽다는 듯 시선을 두다 팔을 쭉 펼치며 기지개를 켰다. 알렉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매그니스를 캐묻기 시작했다.

 

“월록이 다녀가던데. 누구야?”

“아, 갔나? 어릴 적에 내 도움을 받았던 아이야. 오랜만에 근처에 볼일이 있었다면서 왔어.”

“그 월록 말고도 많이 찾아오는 것 같더라.”

“대부분 갓 태어나서 오는 애들이야. 섀도우 헌터와는 다르게, 다운월더는 태어나면서 세상을 잃잖아. 제 세상을 다시 찾아가려면 도움이 필요하니까.”

“…….”

“물론 대가는 받을 거지만. 다만 요즘 부쩍 많이 오는 것 같긴 해. 날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지?”

 

대답을 하다말고 고민에 빠져 혼자 중얼거리는 매그너스를 보며 알렉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렇게 대답하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사라도 가야 하나……이런 걸 고민할 때는 아니지. 알렉산더, 오늘은 어딜 갈까? 어느 국가를 찍어도 최고의 장소로 데려가 주지.”

 

매그너스는 잡념을 털어버리자는 듯 손을 휘저으며 알렉에게 물었다. 알렉도 자신 앞에 소환된 지구본으로 시선을 옮기며 좀 전까지 느끼던 불쾌함을 잊어버렸다.

 

* * *

 

그가 잠시 묻어두었던 감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그날도 알렉은 매그너스의 집에 약속 없이 방문했다. 그리고 알렉은 매그너스 대신 집 문을 열어준 이를 마주했다.

 

“엇. 라이트우드 씨.”

“너는…….”

 

기지에서 작은 일을 도맡고 있는 섀도우 헌터였다.

매그너스와는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다. 둘은 무슨 사이지? 전엔 다운월더라서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으면서. 이번엔 돼 섀도우 헌터인 건데?

 

눈앞의 헌터는 알렉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였다. 알렉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관리되지 않는 표정을 가렸다.

그때, 헌터의 뒤로 따라온 매그너스가 알렉을 보며 놀란 듯 말했다.

 

“알렉산더? 나 보러 온 거야?”

 

매그너스의 태도도 알렉의 눈엔 유난히 놀라 보이는 것이, 마치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처럼 구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들떴던 기분이 확 가라앉아버린 알렉은 매그너스의 질문에 쌀쌀맞게 대답했다.

 

“아니. 제이스에게 용건이 있어서.”

“아…….”

 

매그너스는 아쉽다는 듯 대답을 흘리며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그는 제이스가 있는 호실을 알려주었고, 알렉에는 그 말에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제이스는 잠시 다른 호실로 갔어. 1009호야.”

“알고 있어.”

“그래?”

 

그러면 왜 여기로……?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은 방에는 정적이 돌았다. 알렉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굳건히 서 있자 매그너스와 헌터는 눈만 깜빡이면서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알렉산더?”

“아.”

 

알렉산더는 매그너스가 그를 부르고 나서야 자신이 말없이 오랫동안 서 있었음을 깨달았다.

 

“갈게.”

“응, 나중에 봐.”

 

평소라면 한번은 붙잡았을 거면서.

알렉은 매그너스가 아쉬워하는 듯하면서도 저를 붙잡지 않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괜히 문을 세게 닫아버리고 힘을 준 발걸음으로 제이스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방문을 거칠게 열면서 다짜고짜 물었다.

 

“지금 매그너스 집에 있는 헌터 뭐야.”

“뭐? 누구?”

 

전후 사정없이 질문을 던진 알렉에게 제이스가 되묻자 알렉은 다시 고쳐서 말했다.

 

“지금 매그너스 집에 섀도우 헌터가 하나 와있어. 뭔지 몰라?”

“난 지금 여기로 쫓겨난 입장이거든? 무슨 상황인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제이스의 대답을 들은 알렉은 아차 싶었는지 말을 멈추고 눈을 키웠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내가 기지의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 정말 공식적인 일로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술까지 마시면서 할 협조가 무엇인지는 심히 궁금하지만 말이다.

제이스는 심각한 얼굴로 고뇌하는 알렉을 보면서 툭 내뱉듯이 말했다.

 

“그렇게 질투가 나면 매그너스에게 가서 왜 만난 거냐고 직접 물어봐.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질투? 아니, 난 아무렇지 않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지.”

 

알렉은 제이스의 말에 딱 잘라 대답했다. 제이스는 그의 칼 같은 태도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말던가. 더 볼일 없으면 빨리 가. 난 바빠.”

 

제이스는 알렉에게 가라는 듯 손을 휘적거리고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옆에 누운 여자에게 키스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보여 알렉은 뚱해진 얼굴로 방을 나섰다.

 

이제 어딜 가야 하지.

복도로 나온 알렉은 자신이 별 목적 없이 매그너스를 보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용건도 없이 온 곳이니 지금은 갈 곳이 기지뿐이라는 것도.

그에게 돌아갈 곳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그런데도 오늘은 유난히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매그너스는 자신의 눈높이에 떠있는 옷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며칠 전에 직접 구매한 것으로, 선물로 부적을 받았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에게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알렉을 만나니 옷이 그애게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작아보이지.”

 

그에겐 선물을 구매하는 것 또한 선물을 받는 것 만큼이나 오랜만이었다. 특히 마법 대신 돈을 사용해 선물을 준비하는 것는 처음에 가까웠다. 그러니, 사이즈를 잘못 선택하는 실수는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매그너스는 옷을 허공에서 이리저리 뒤집으며 검지로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드렸다.

그래도 충분리 큰 사이즈를 샀다고 생각했는데. 알렉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덩치가 큰 편이었다. 아무래도 옷을 다시 구매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차라리 다른 것을 사볼까? 향수를 선물하면 뿌리고 다녀주려나?

향수라면 그애게 잘 맞는 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그너스는 눈을 감고 그가 맡았던 알렉의 체향을 가만히 떠올렸다.

 

알렉의 선물을 고르는 일은 그 고민 자체로도 매그너스를 행복하고 배부르게 만들었다. 그는 들뜬 마음으로 흥얼거리며 둥근 모양의 포탈을 열었다.

그리고 매그너스가 빠져나간 방의 침대 위에는 아쉬움에 차마 없애지 못한 알렉의 선물만 남아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집에 혼자 들어온 알렉이 발견했다.

 

* * *

 

요즘 너무 많이 찾아가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알렉의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미 발걸음은 매그너스의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고, 뒤 돌아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가 또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나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알렉은 문을 두드렸다가 열쇠로 열고 집에 들어왔다. 집주인과 룸메이트가 비운 집은 적막했다.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했지만, 알렉은 집 구석구석까지 매그너스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가 매그너스의 침실까지 들어갔을 때, 알렉은 침대 위에 놓인 옷을 발견했다. 매그너스가 입을 만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알렉은 옷의 어깨 부분을 양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자신의 것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좀 작았다. 이건……저번에 이 집에서 마주쳤던 그 섀도우 헌터의 것이라고 하기에 걸맞은 사이즈였다.

 

“알렉산더?”

 

방 밖에서 포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와 동시에 매그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렉은 옷을 구겨지게 쥔 채로 뒤를 돌았다.

 

“!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알렉이 옷을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은 매그너스는 말을 흐리면서 황급히 손을 놀려 마법으로 옷을 없애버렸다.

그 불안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렉은 제 손에서 사라지는 옷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매그너스에게 성큼 다가갔다.

 

“이번엔 또 뭐라고 변명하려고? 그동안 만났던 과거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줬나 보지?”

 

알렉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던 매그너스는 더욱 당황한 기색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도 다 처음이라고 했잖아.”

 

준비해뒀던 선물이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매그너스의 마음엔 미안함만큼이나 속상함이 생겨났다. 하지만 알렉이 뒤이어 하는 말은 매그너스의 생각과 꽤 달랐다.

 

“그게 섀도우 헌터에 맛 들였다는 의미인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나같이 모자란 놈 하나로는 부족한 거지? 그래서…….”

 

매그너스는 그제야 알렉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히 알렉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오해야, 알렉산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럼 분명히 말할게. 당신이 얼마나 만났든 그건 괜찮다고 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어. 도대체…….”

“오해하는 거야.”

“이건 내 문제야. 그냥……그들보다 내가 가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날 까마득하게 해.”

 

매그너스는 알렉의 마지막 말에 대답하기를 멈췄다. 할 말을 삼켜버리는 듯 목울대가 움직이면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알렉은 저것이 그가 자신이 한 말에 상처를 입었을 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그너스가 다시 말했다.

 

“너만큼 내게 강렬한 존재는 없었어. 가치라니, 넌 내게 과분한 사람이야.”

 

매그너스는 전보다 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말을 듣고 기분이 누그러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의심은 풀지 않은 채로 물었다.

 

“그럼 네가 만난 그 섀도우 헌터는? 이 옷 주인 말이야.”

“그 옷은 네 거야!”

“!”

 

설마 옷 때문에 그렇게 오해를 한 거야?

매그너스는 소리 없는 탄성을 뱉고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알렉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매그의 말을 들은 알렉은 분노가 씻긴 것처럼 내려가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번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드문드문 끊긴 투로 매그너스에게 물었다.

 

“난…그런 옷 없는데. 그건 사이즈도 작았고…….”

“……네게 선물하려고 샀던 거야. 사이즈는 내가 직접 사본 적이 드물어서 실수했고.”

 

처음이라고 했잖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웠던 매그너스는 점점 말소리를 줄였다. 하지만 그 말은 아무리 작아져도 알렉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와 그에게 충격을 줬다.

매그너스는 집에 돌아온 처음부터 내내 들고 있었던 작은 종이가방을 알렉에게 건넸다.

 

“받아. 네가 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준비한 거야.”

 

알렉은 계속 고장 난 듯이 서 있다가 매그가 손에 넘겨준 선물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 보답은 이미 받은 거 아녔어? 집 열쇠로.”

“그거? 그건 선물이 아니지. 오히려 어느 정도는 내 욕심이었던 거고.”

“…….”

 

자신의 창피함을 가라앉혀야 했던 두 사람의 방에는 잠시 정적이 돌았다. 그리고 끝까지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았던 알렉은 매그너스에게 물었다. 전과는 다르게 한껏 누그러진 말투였다.

 

“저번에 같이 술 마셨던 섀도우 헌터는 왜 만난 거야?”

“아, 지난번에 도와줬던 월록의 연인이야. 내 덕분에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

 

월록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간 건가. 그렇다면 그 섀도우 헌터가 문을 대신 열어줬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알렉은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해가 풀리고 나니 자신이 정말 별일 아닌 것에 크게 화를 내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알렉이 겨우 가라앉힌 창피함을 다시 솟구치게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있었던 속이 간질간질해졌다.

매그너스는 월록과 섀도우 헌터를 도왔던 일을 회상하는 듯 말을 덧붙였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로 섀도우 헌터를 돕진 않았을 거야. 두 사람을 보니 계속 네 생각이 나더라.”

“오해해서 미안해.”

 

알렉은 매그너스에게 받은 종이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매그너스를 닮아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향수였다.

매그너스는 알렉이 향수를 뿌리기를 기다렸다. 매그너스의 시선을 읽은 알렉은 왼쪽 손목을 향해 펌프를 누르고는 향을 맡아보았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다행이다. 이건 성공이네.”

 

매그너스는 알렉의 왼손을 잡아 손목에 코를 가져다 대고 향을 맡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가까워진 거리는 자연스럽게 키스로 이어졌다.

 

* * *

 

“그래서, 입지도 못할 옷까지 굳이 받아왔다고?”

“내 거니까.”

 

알렉이 유명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종이가방을 들고 가는 것을 제이스가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제이스는 눈을 굴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나무보다 뻣뻣한 이 친구는 놀려도 재밌는 반응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대신 알렉에게 조언을 건넸다.

 

“둘이 관계가 더 확실해지면 너도 덜 불안하지 않을까?”

“더 확실한 관계? 결….”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의미의 관계 말이야.”

 

제이스가 말한 것의 의미를 고민하며 눈을 가늘게 찌푸린 알렉은 금방 그 뜻을 찾았다. 섹스.

 

알렉은 제이스가 뭐라도 더 설명하길 바라는 듯 쳐다봤지만, 제이스는 자신의 할 일이 다 끝났다며 자리를 떠났다. 이런 건 이지가 더 잘 알 거라면서 말을 덧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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