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몽
눈에 보이는 명백한 현상만을 염두에 두는 간편한 법칙으로 세워진 세계. 애달프도록 그리운…….
‘회사에 제정신인 인간 찾기 힘든 건 알았지만…….’
서미래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지나 용도 모를 방 안으로 구르듯 몸을 날린 후 급히 문을 닫았다. 숨기 위해 움츠린 두 다리는 천장에 붙어 있으며 정수리는 지면을 향해 있었다.
뒤늦게 주변을 살피니 크기는 회사 사무실과 엇비슷했으나 가구 따위는 전혀 없이 휑했다. 슬며시 내다본 창밖은 여즉 성망조차 없으며 어둑한 흑안개가 집어삼킬 먹잇감을 찾아 태동하고 있었다. 그 틈새로 층계를 세면 세 자릿수는 될 높이의 첨탑들이 땅에서 하늘로 뿌리를 박으려는 듯 솟아내렸다.
송두리째 거꾸로 뒤집힌 세계였다.
‘이 꿈 주인은 상담이 시급한 것 같은데.’
위아래가 반전된 세상은 눈을 뜨고 있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다. 이래서야 1번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눈을 감은 미래가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매뉴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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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몽중몽]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B-56, 재난관리국의 등록번호는 3127PSYA.2010.아29.
반복되는 숫자를 가진 일자(1월 1일, 12월 12일 등)에 두 개의 베개를 놓고 잠이 들면, 누군가의 꿈속에 자각몽인 상태로 진입하는 괴담.
공간화되는 꿈은 해당 괴담에 휘말린 당사자 전원 중 무작위로 결정된다.
괴담이 성립되는 최소 인원은 열 명이며, 완전히 탈출하기 위해서는 꿈에서 여섯 번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는 방법은 세 가지.
1. 충분히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2. 현실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한다.
3.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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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작 두 번째 꿈이다.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식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목록을 고려해야 하지만, 미래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엔 직관적이어도 괴담에는 늘 두 번째 얼굴이 있다. 당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이 ‘절대 하지 않을 일’에 속할까. 중력이 역전된 형국에 ‘죽음’의 개념은 그대로일까. 섣불리 상처를 입었다가 사망에 이르지 못한 채 행동에 제한이 생기면 본말전도였다.
■■■ 대리가 3번 방법으로 깨어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찔렀으나 사망에 이르지 못함. 이후 실신한 채로 출혈을 계속하다 실종.
이 부분은 아직 매뉴얼에는 없는 문장이었다. 그는 옛 친구가 먹던 햄버거도 잊은 채 열변을 토하며 보여주던 위키 화면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일단 흩어진 동료들을 최대한 찾아야 했다. 같은 조가 아니더라도, 운이 좋으면 누구의 꿈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방 밖에서 공향이 들렸다. 구둣발이었다. 텅 빈 방 안에는 모습을 은폐할 방법조차 없어, 미래는 누군가 들어오면 습격할 수 있도록 재빨리 문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다가오는 ‘무언가’는 기척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지, 곧 문틈 새로 발소리가 먼저 침입해왔다. 뚜벅, 뚜벅. 그것이 너머에서 멈춰 섰다. 숨조차 멈춘 미래가 침묵하자 다른 소리가 문을 넘었다.
똑똑.
그는 석상처럼 굳은 채 반응하지도, 입을 열지도 않았다.
똑똑.
일정한 노크가 이어졌다.
똑똑.
‘제발 그냥 지나가라.’
똑똑.
똑똑.
똑똑.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꼼짝할 수 없었다. 떠나는 걸음이 들리지 않았다. 안팎을 구분하지 않은 정적이 묵직이 내려앉았다. 아니,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 땀방울이 턱 끝을 느리게 훑었다. 미래가 저도 모르게 훔치려 손을 들자, 바스락. 빳빳한 정장 소매가 쓸렸다. 미래가 눈을 홉뜨고, 거세게 문간을 돌아보고, 찰나.
“여우 씨 긴장 많이 했나 봐.”
귓가를 두드린 건 맥이 빠지도록 경쾌한 음성이었다.
“…늑대 님?”
“네, 나예요. 이것 좀 열어줄래요? 여기 너무 깜깜하네.”
“증명이 필요합니다.”
“의심이 많네. 좋은 자세에요. 하지만 어떻게 증명할까. 우리, 서로만의 비밀이 있을 정도로 긴밀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부정할 수 없다. G조의 조장, 남재인이 타인에게 그어둔 선은 그뿐만 아니라 회사의 누구도 함부로 넘어설 수 없었다. 미래의 묵묵부답에 문 너머의 그는 예상했다는 듯 넉살 좋게 스스로의 말을 받았다.
“아, 이러면 되겠다. 문고리 옆을 봐요.”
미래가 고개를 돌려 그가 지시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분명 방금까지 없었던 자그마한 낙서가 새겨진 게 보였다. 작대기 형태의 사람이 늑대 가면을 쓰고 손을 흔드는 그림이었다.
“이건…….”
“여긴 내 꿈이에요. 꿈의 주인만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 알죠?”
그 설명은 분명히 매뉴얼 하단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안도하기는커녕 대경하며 어조를 높였다.
“그건 더 이상 깨어날 수 없을 만큼 꿈과 일체화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딱딱한 소리 말고요. 언제부터 매뉴얼이 법전이었어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그래서 열어줄 거예요, 말 거예요?” 그가 독촉하니 미래는 혼곤한 와중에도 일단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두 사람을 가로막던 벽이 사라지자 어둠을 헤치며 모습을 보인 형체는 끔찍한 살인마도, 정체 모를 괴물도 아닌 바로 남재인 본인이었다. 미래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바라보자 재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화답했다. 거꾸로 서 있는 탓에 앞머리가 젖혀져, 호선을 그린 눈썹이 여느 때보다 눈에 띄었다.
“늑대 님이 이 꿈의 주인이라고요?”
“맞아요. 운도 좋지.”
“호러 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기괴한 괴물들이 즐비한 이 반전 세계가요?”
“뭔가 문제라도?”
‘평소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시는 겁니까?’ 따져 묻고 싶은 말은 미처 목울대를 넘지 못한 채 소화되었다. 미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인은 여상히 미소하며 친근한 태도를 유지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누구나 악몽 정도는 꾸잖아요.”
“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알고 계시나요.”
“3번은 확실히 알고 있어요. 밖에 거대한 안개 덩어리가 있죠? 거기에 집어 삼켜지면 ‘사망’판정이 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제 조원들을 찾아서 다음 꿈으로 넘어가야겠네요.”
목적이 정해진 미래는 방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더 발을 뗄 수 없었다. 문을 가로막고 선 재인이 길을 비켜주지 않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늑대 가면에 뚫린 두 개의 구멍에서 언뜻 붉은빛이 스쳤다.
“소용없어요.”
“뭐라고요?”
“내가 왜 조원들을 내버려두고 당신에게 왔다고 생각해요?”
답을 짐작한 미래가 망연하게 입을 벌렸다. 재인은 자못 연극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대부분 다른 괴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자해로 사망하려다 꿈의 주민이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죠.”
※주의점: 꿈속에서는 점차 인지능력이 흐려지며, 정신력이 완전히 소모되면 꿈과 동화된다. 동화된 사람은 영원히 ‘꿈의 주민’이 되어 실종으로 처리된다.
“그걸 어떻게…….”
“나도 조원들을 제법 찾아다녔거든요. 그러다가 봤죠. 몇 사람은 우연찮게 다음 꿈으로 넘어간 것 같던데요.”
설명을 마친 재인이 눈가를 휘어접으며 그제야 자리에서 비켜섰다. “결론은, 여긴 우리 둘뿐이라는 거죠.” 여전히 느긋한 말투와 몸짓이 미래에겐 낯설었다. 도무지 동고동락을 함께하던 동료를 잃은 사람의 낌새가 아니었다. 보통은 키우던 식물이 시든다 해도 그보다는 상심할 테였다. ‘저 사람에게 보통의 관점을 기대하는 건 의미가 없어.’ 그가 관조자의 위치를 고수하는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자리에서 새로운 논제를 대두하는 게 어리석은 행동임은 명백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이동하죠.”
“얘기가 빠르네요. 마음에 들어요.”
두 사람은 건물을 빠져나와 바깥으로 향했다. 별나게도 움직임에 신중을 가할 필요는 없었다. 미래가 숨기 위해 이곳으로 향할 때는 갖은 괴물들이 쫓아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건만, 나갈 때는 무엇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가면 아래에서 재인을 곁눈질했다. 제 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 이 괴담 또한 꿈의 주인이 특별한 권력을 가지는 양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남재인 만이 예외일까? 그렇다면 대체 왜?
“여우 씨.”
깊이 빠져 있던 상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득 고개를 들자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앞서가던 재인이 미래를 돌아보았으나 순식간에 안개로 감싸여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와요.”
그가 미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암흑에서 흔들리는 실루엣은 사람 아닌 것의 그림자로 보였다. 역전된 천지, 달과 별이 뜨지 않는 밤, 낯선 이의 초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비현실은 바로 재인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순간 둔탁한 예감이 미래의 뇌리를 스쳤다. 이 손을 맞잡으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다. 그러나.
‘괴담에 떨어져도 살 사람은 살아야지.’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채 한밤을 지샐 수는 없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하는 현실과 맞이해야 할 계절이 있었다. 미래가 재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살갗을 움켜쥐었다. 온통 검은 꿈에서 나누어 갖는 온도만이 선명했다. 보일 리가 없는데도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이어진 채 끝을 맞이했다. 또한 깨어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함께였다. 손을 잡고 있던 덕일까. 소수의 생존자가 있다는 재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런 꿈을 미래가 꿀 리 없을뿐더러, 재인도 마찬가지일 테다. 옅은 복숭앗빛 하늘에서 자그마한 파티클이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꽃 향이 나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건물은 갖가지 디저트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과자집이었으며 가로수와 가로등마다 풍성한 리본이 연결되어 발간 자태를 뽐냈다. 멀리서 제목을 알 수 없는 만화 영화의 주제가가 쾌활하게 울려 퍼졌다.
화사히 뽐내는 정경에도 눈길을 빼앗기지 않은 미래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던 와중, 재인은 명백히 흥미를 느끼는 낯으로 두리번댔다.
“그 소문이 진짜였네요.”
“소문이요?”
“이 괴담에 진입하기 전날 밤, 직원들이 밤을 새워서 아동용 만화나 동화를 본단 얘기요.”
“아, 그래서 이런.”
“효과가 좋네요. 곧 매뉴얼에도 추가되겠어요.”
꿈이란 드넓은 사막에서 모래를 한 움큼 쥐어 흩뿌리는 일이다. 무의식이란 이름의 사해에 씨앗을 심고 샘을 만들어 가꾸면, 손을 내밀 때 모래알이 아닌 싱그러운 풀꽃이 담길 가능성이 발아함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곧 두 사람에게 커다란 곰인형이 걸어와 투명한 풍선을 나누어 주었다. 안에는 칠색 무지개가 일렁대며 비추어지고 있었다. 익히 알다시피 괴담에서는 변수를 피하는 행동이 최우선이기에 둘 모두 거절하지 않고 손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양손은 놀이동산에 다녀온 부부처럼 풍선과 인형, 선물 상자로 가득 차버렸다.
“여기 마음에 드네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안 됩니다. 동이 트기 전에 완전히 깨어나야죠.”
“알아요, 알아요. 와~ 이것 봐요.”
재인이 길거리 가판대에 놓인 하트 모양 초콜릿 상자를 집어 들었다. 지키고 선 사람이 없어 무엇에 손을 대도 제재 받지 않았다.
“초콜릿 좋아하시나요.”
“그보다는 아이템 같아서요.”
그는 뚜껑을 열더니 말릴 틈도 없이 초콜릿을 날름 집어먹었다.
“음, 보기랑은 꽤 다른 맛이네. 정신 회복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요.”
미래가 가면 아래로 다소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이랄까. 미래 씨도 하나 먹을래요?”
“아뇨, 정말 그렇다면 중요한 상황을 위해 아껴둬야죠.”
“악몽 꿀 것 같으면 말해요~”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던 평화는 당연하게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내 목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음을 깨닫고 짧은 산책을 멈추었다.
“이 이상은 갈 수 없나 보군요.”
“마땅히 떨어질 곳도 보이지 않고요. 그렇다면…….”
“역시 죽어야겠죠?” 상큼한 웃음과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박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미래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전처럼 특이한 공간이 아니니 문제는 없을 테였다. 그들은 미리 지급받았던 소형 나이프를 꺼내들곤 서로를 마주 보았다. 위험하게 손장난을 하던 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으로?”
“그 편이 빠르겠네요.”
“좋아요, 셋 세고 동시에 할까요?”
“왜죠.”
“함께 죽음을 맞는 두 사람이라니, 로맨틱하잖아요.”
미래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먼저 스스로의 목을 찔렀다. 슬래셔 무비처럼 피가 튀거나 격렬한 고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다만…….
“와, 이거 볼만한데요.”
벌어진 상처에서 미래의 머리칼과 같이 붉은 꽃잎이 퐁퐁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가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목격한 적색은 치솟는 꽃잎이 아닌 그 새로 번뜩이는 재인의 시선이었다. 선뜻한 웃음 위로 음침한 악의 따위가 아닌,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낸 아이의 순수가 떠올랐다. ‘당신은 대체 누구야?’ 미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목구멍은 화편으로 차올라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었다. 이윽고 눈이 완전히 감겼다. 다음은 암전이었다.
재인과 미래는 이후로도 몇 개의 꿈을 함께 헤쳐 나갔다. 어떤 꿈은 그린 듯한 흉몽이어서 어둑한 저택에서 살인마에게 쫓기고, 어떤 꿈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종말 직전의 풍경 속에서 재해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살아남았던 사원들이 수 명 실종되었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결국 다른 일행과의 합류는 포기하게 되었다.
미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현명하게 상황을 헤쳐나갔으며 재인은 특유의 여유와 한 끗 다른 시각으로 활로를 열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많은 두 사람이지만, 이내 한 가지 같은 뜻이 맺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믿을 만한 동료라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여섯 번째 꿈에서 깨어났다.
먼저 여태껏 그래왔듯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조사했다. 척 보기에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도시였다. 끝을 모르고 높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렀다. 익숙한 차량이 도로 위를 미끄러지고, 바삐 걷는 행인들 사이에서 게으른 비둘기들이 날개를 접은 채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의 행진은 거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온 후에야 중단되었다. 도시의 정경을 살펴보던 미래가 불쑥 말했다.
“이상하네요.”
“이상해요?”
“너무 이상한 점이 없어서 이상합니다.”
“아~ 동감.”
그들은 장황한 설명 없이도 같은 의견을 표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쳐도 다소 기묘했다. ‘몽중몽’은 B급 괴담이다. 이곳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지만 일이 이렇게 잘 풀리면 도리어 의심하는 게 수지다. 아무리 시선을 흩뿌려도 수상한 기척이나 현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벽적으로 온화하다. 그러나 미래는 의구심을 가질지언정 낯설어하지는 않았다. 줄곧 이 평화가 그리웠다. 코너를 돌다 아무리 운이 나빠도 맨홀 뚜껑에 발이 걸려 넘어질지언정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오산이며, 잠이 들 때 침대 밑의 어둠 한구석을 경계하는 건 망상으로 치부되는 곳. 눈에 보이는 명백한 현상만을 염두에 두는 간편한 법칙으로 세워진 세계. 애달프도록 그리운…….
불현듯, 미래는 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뒤늦은 자각이었다. 이성에 날을 세워 날카롭게 벼린 채 괴담을 탐사하던 신입 대원은 한참 전에 지친지 오래였다. 비틀대는 정신은 줄곧 안주할 곳을 찾아 헤매었다. 고향과 더없이 닮은 이 도시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안식처였다.
언젠가 매일같이 흘려 넘기던 까치의 한가로운 울음을 희미한 바람이 실어 날랐다.
“여우 씨, 왜 그래요? 멍하니.”
“아뇨, 아무것도. 잠시 휴식도 할 겸 카페라도 들를까요?”
“카페요?”
“네, 이 근방에 좋은 곳을 알거든요.”
미래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앞장섰다. 친구와 종종 함께 찾던 가게가 이 근방에 있을 테였다. 알맞게 구워 생크림을 담뿍 올린 허니 브레드에 시그니처 커피를 곁들이면 수라상이 남부럽지 않은 맛집이었다. 지인에게 소개해 주어 실패한 적도 없었다. 상기된 발걸음을 지켜보던 그의 일행이 한 박자 늦게 따라나섰다.
“여우 씨.”
“네.”
“카페에 간 다음엔 어쩌려고요?”
“글쎄요, 영화라도 보러 갈까요? 요즘 재밌는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다음에는?”
“음,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귀가해도 좋고요.”
“돌아간다고. 어디로?”
“집으로요. 저는 이 근처에…….”
미래가 말을 끝맺으려는 순간, 재인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중심을 잃고 기우뚱 휘청인 몸이 안기다시피 밀착되었다. 미래는 당황한 나머지 반응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버렸다. 놀랄 틈도 없이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입 벌려봐요.”
“네?”
되묻기 위해 입을 벌리자마자 알싸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곧바로 입안에 하트 모양 초콜릿이 우겨 넣어졌다. 순간 미래는 당황조차 잊고 미간을 좁혔다.
“매워…….”
제법 커다란 초콜릿을 머금은 탓에 발음이 뭉개지는 웅얼거림을 듣자, 재인은 그를 도로 일으켜 세운 후 미련 없이 떨어졌다.
“그쵸? 보기랑은 다르다니까.”
들뜬 기색이 사라진 미래는 과자가 입안에서 다 녹을 때까지 몽롱한 낯으로 서서 혀를 굴렸다.
‘정신 회복 효과가 있는 아이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비로소 현재를 바르게 인지했다. 자신이 방금 전 어떤 상태였는지를. 하마터면 꿈과 동화될 뻔했다. 곁에 재인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괴담의 주민이 되어 영영 실종되었을 것이다. 식은땀이 배인 손을 들어 얼굴을 몇 번 문지르다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어요.”
“뭘요. 이러라고 동료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갚을 필요는 없는데, 굳이 그러고 싶다면…….”
재인은 문장에 온점을 찍지 않고선 빙그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어 악수를 청하듯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돌아갈까요?”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곧 시간제한이다.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하늘이 불그스레 물들어 재인의 뒤를 천천히 덧칠했다. 미래는 잠시간 풍경을 바라보다 손을 올려 그의 손바닥에 포갰다. 처음과는 달리 주저 없는 동작이었다.
“돌아갑시다.”
“안타깝게도 집은 아니고, 회사로 가는 거지만.”
“감지덕지죠.”
재인과 미래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난간 위로 올라섰다. 떨어진다는 감각을 느끼기엔 충분한 높이였다. 살아남기 위해 시도하는 행위가 완전히 반대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모순에 웃지 못할 기시감을 느꼈다.
“셋 세면 뛸까요?”
“또요.”
“갑자기 뛰기엔 좀 어색하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그럼, 하나, 둘.”
“아차.” 숫자를 세던 재인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구호를 멈추었으나 미래는 ‘셋’의 타이밍에 맞춰 발을 내디뎌버렸다. 그가 떨어지니 자연스레 손을 잡고 있던 재인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꿈속의 중력이 두 사람을 끌어안자 처음 마주쳤던 때와 같이 서로를 거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 도중에 멈추셨어요!”
“갚고 싶다고 했잖아요. 피차 조원 잃은 신세니까…….”
“우리 조에 들어와요!” 거센 바람 소리에 둘 모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웃는 재인의 얼굴은 누군가 목격한다면 용감하고 유쾌한 번지 점프로 보이겠으나 실상은 이어진 손 외엔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는 자유 낙하였다. 미래는 떨어지는 와중엔 변명을 늘어놓을 틈조차 없음을 알아챘다. 일부러 상황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어쨌든 허락된 시간은 단 수 초. 눈을 질끈 감고 할 수 있는 말은.
“…알겠습니다!”
한 마디면 충분했다.
남재인은 괴담 세계의 이면에 관련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이 선택은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한 결정이다. 그러나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음은, 동틀 녘의 추락이 두렵지 않음은 어째서일까.
눈을 뜨면 여전히 누군가가 곁에 있으리란 사실은, 거리를 재는 일조차 불가능한 머나먼 타지에서도 이방인의 마음 한켠을 나긋하게 어루만졌다.
작가의 말
이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인 미래에게 괴담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재하는 세계는 마치 한 편의 꿈과도 같습니다. 늘 생존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귀환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불합리한 비일상에 힘쓴다 해서 낯선 세계가 곧 현실로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서 도망쳐야 할 비현실임이 뚜렷해질 뿐이죠.
그러던 와중 누가 봐도 이 세계에 깊게 연관되어 있을 법한 재인을 만납니다. 그는 가볍지만 비밀스럽고,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미래가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 세계를 아는 것이 곧 나갈 수 있는 방법과 연결될 테니까요.
그러나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곧 그와 나의 사이에 새로운 세계가 형성됨을 뜻합니다. 가슴 한편에서 저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이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로 보이던 미래가, 재인과 서로 알아가고 정을 나눈 후에도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나 ‘남 일’로 여길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의 일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재인과 미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혹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튀어 우선순위가 바뀌어버릴 수도 있겠죠.
두 사람의 예상치 못할 발전을 기대하며, 피가 튀고 비명이 울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생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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