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다름에 어긋나도 재차 손을 잡는다. 그리하면 여전히 곁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놓지 않겠다 약속하면 순간은 무한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손을 잡아주오.
발을 헛디디려 하니 몸을 붙여주오.
바라니 부디 당신을 내게 이어주오.
불씨에 나 내던질 두 날개를 고이 접어주오.
당신 품 벗어나 머무를 땅이 별달리 있겠소.
달구어진 철을 망치로 두드리던 중년은 이렇게 말했다.
“분명 그 녀석이 뭐에 씐 거요. 우리 애는 이제 일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 평생 불가에서 키웠는데 열병이라니.”
한겨울에도 약초를 캐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가던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타카라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정황이 그런 걸 어떡해요. 오늘 산에서 뭐라도 찾아야 할 텐데. 그래야 어머니께 차도가 생길 텐데…….”
손주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부엌에서 밥을 짓던 노년은 이렇게 말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어. 구십 먹어도 팔팔할 거라고 우리 강아지가 조잘대던 게 엊그제인디. 아직도 머리가 뜨뜻헌 거이 솥 때문인가, 열 때문인가.”
또 모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분명 숯쟁이 때문이야.”
다이키와 카즈는 한차례 탐문을 끝낸 후 촌장이 내어준 가장 널찍한 방에 들어앉았다. 촌마을의 농민들은 충사가 무엇을 하는 이들인지조차 몰랐지만, 이웃과 가족을 구해주겠다 말하니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가진 것들을 내주었다. 한 쪽 다리를 삐딱하게 구부리고 앉은 다이키 앞에는 겨울에 귀한 약초로 우려냈다는 탕 두 그릇이 놓여 있었고, 단아하게 등을 세우고 앉은 카즈 옆에는 담요가 여럿 쌓여 있었다. 카즈는 담요 몇 장을 집어 다이키의 몸을 꼼꼼히 감싼 후 자신의 다리 위에도 두 장을 올렸다. 다이키는 카즈의 손길을 충분히 누린 후에 말을 꺼냈다.
“불 때문에 사람이 죽어난다고 들었을 땐 음화인 줄 알았더니, 증상이 전혀 다르군.”
“열을 앗아가는 게 아니라 준다고들 하니까요.”
“너무 줘서 문제지.”
“떠오르는 벌레가 있으신가요? 저는 문헌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당장은 없어. 같이 찾지. 그런 다음에 숯쟁이라는 녀석에게 가보자고.”
시작은 카즈가 동굴님을 통해 받은 전서였다. 한겨울에 마을 하나가 전염병처럼 죽어가는데, 그 원인은 불이라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이키는 위험한 냄새가 난다며 따라나섰다. 그의 감은 카즈에 관한 일에 한해 엇나가는 법이 없었다.
두 사람은 의연히 집을 나서 눈 덮인 언덕을 지났다. 발자국 네 개가 사흘 정도 이어지니 흡사 기다란 뱀 같다며 카즈가 장난스레 웃었다. 어디서는 함께 첫눈을 밟았고, 어디서는 볕 때문에 녹진해진 찬물을 밟았다. 짧은 여행길은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마을에 도착해 보니 오는 길에 추측했던 벌레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보였다. 발품을 파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주민들은 재앙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든 저들이 아는 걸 전부 늘어놓았다.
어느 날부턴가 불에 손을 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무언갈 엎지르거나 실수로 잘못 짚은 게 아니라, 하나같이 스스로 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고. 무언가에 홀리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때문에 화상을 입은 이들은 그 후로 얇은 옷을 입어도 찬 기운이 몸에 들지 않았다. 비옥하지 않은 땅에서 추위에 떨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에 손을 집어넣으려 했으나, 애꿎게 흉터만 남고 열기를 얻지 못한 이가 허다했다. 그래서 불의 은혜를 입은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단 한 가지가 있었다. 마을에서 숯을 만들어 파는 소년, 타카라의 숯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었다. 밝혀진 이후 너도나도 그에게 숯을 사가 상처와 온기를 얻었다. 모두는 안심했다. 타카라, 네 덕분이다.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주었구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천운은 대가를 요구했다. 열을 얻은 건 좋았으나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내 그들은 차례로 열병을 얻고 쓰러지거나 몸이 약한 사람들은 이른 생을 마감했다. 안타까운 한 숨이 멎기 전, 모두는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너무 더워. 탈 것 같아. 손을 잡아줄래. 가져가 줘. 이 열을 가져가 줘…….
충사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벌레의 정체를 규명했다. 그들은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숯쟁이 소년, 타카라에게 향했다.
타카라는 장작을 패지도, 숯을 굽지도 않으며 시린 방 한 켠에 쭈그려 앉아 그저 추위에 떨고 있었다. 살인죄를 뒤집어써 온갖 이들의 원성을 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인상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다이키가 한발 물러서자, 그에 따르듯 카즈가 한 발 나아갔다. 그는 살갑게 미소를 띠곤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타카라.”
인기척을 환영하긴커녕 잘게 떨며 몸을 웅크리기만 하던 타카라는 상큼한 풀향과 나긋한 음성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직 낯선 이를 보면 경계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품는 순진한 아이였다. 맑은 눈망울이 선연했다.
“누구야?”
“저는 카즈라고 합니다. 이쪽은 다이키 씨에요.”
다이키는 미간에 힘을 주지 않으려 신경 쓰며 고개를 까딱였다. 겁먹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건 그의 특기가 아니었다.
“외지인이 왜…… 우리 마을은 위험해.”
“걱정 마세요. 저희는 충사니까요.”
“충사?”
“벌레에 관한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입니다. 작금의 일도 충분히 사람의 손으로 멈출 수 있는 것이에요.”
타카라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이해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가를 적시며 언성을 높였다.
“모두 나을 수 있는 거야?”
여지껏 말이 없던 다이키가 재차 끄덕이곤, 분위기가 풀렸는가 싶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건 처음부터 네 탓이 아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어쩌다 ‘겨우살이’로 숯을 만든 것뿐이지.”
타카라의 몸에도 화상이 있었으나 원체 몸이 건강한 편인지 아직 열이 올라 쓰러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카즈는 그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마주 앉았다.
“겨우살이는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벌레입니다. 추위를 피할 수 있다면 어디든 둥지를 틀고 열을 내죠. 혹시 나뭇감을 찾던 중에 유난히 따뜻하던 나무가 있지 않던가요?”
타카라는 이제 완전히 긴장을 풀고 카즈와 대면했다. 카즈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진심 어린 다정함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구보다 다이키가 잘 알고 있었다.
“있었어! 몇 그루가 분명히…… 이걸로 숯을 구우면 더 따뜻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나.”
“껍질 안에 벌레가 있었던 겁니다. 그건 온기를 이끄는 힘이 있어요. 체온을 가진 사람들은 겨우살이의 부름에 저항할 수 없었겠죠.”
“그래서 숯으로 태운 불에 손을 집어넣게 된 거야?”
“네, 그리고 사람들 안에서도 힘껏 열을 내고 있죠.”
카즈는 타카라의 손등을 덮은 화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 불룩 튀어나온 흉터 안에서요.” 묵묵히 뒤에 서 있던 다이키가 첨언했다. “벌레를 쫓아내면 화상은 사라질 거다. 그건 벌레의 둥지 같은 거니까.” 타카라는 깊이 안도하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카즈가 그를 끌어안고 규칙적으로 등을 쓸어내렸다.
“다 죽는 줄 알았어.”
“이제 아무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벌레가 나쁜 거야.”
“아니에요, 타카라. 이게 그들 삶의 방식입니다.”
그는 사람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태우듯, 겨우살이 또한 무언가를 태우며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 쪽이 착하거나 나쁠 수는 없는 거라고. 타카라는 세상의 이치와 순리 따위는 몰랐으나 그래도 주억댔다. 돌아가신 양친이 남겨준 유일한 기술이 숯 굽기였다. 그만두면 부모님을 떠올릴 수도, 돈을 벌 수도 없었다. ‘벌레도 그런 거겠지.’ 아마 그 또한 그저…… ‘살아가는 거야.’
세 사람은 하루빨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카즈와 타카라는 창고에 쌓아둔 숯들을 수레에 실어 광장으로 옮겼다. 어느 것이 어떤 나무로 구운 건지를 몰라 있는 대로 끄집어 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무얼 하나 싶어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다가도 타카라를 보고선 불에 덴 듯 놀라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마다 카즈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농담을 던지며 타카라를 웃게 해주었다.
그동안 다이키는 집집마다 돌며 날이 저물면 광장으로 모이라고 일러두었다. 병을 고치기 위함이니 숯에 손을 데인 자라면 한 명도 남김없이 참석해야 한다고. 그 수가 거의 마을 전체에 달했기에 이웃에 전하라 시켜도 한참이 걸렸다.
전달이 끝날 때 즈음. 한 집에 문을 두드렸으나 답이 없어 다이키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촌마을은 대문을 일일이 걸어 잠그는 경우가 드물어 가능한 일이었다.
안쪽을 살펴보니 집 주인은 맥없이 누워 있는 노부에게 난롯불을 때워 주고 있었다. 다시 소리 내어 불렀으나 들은 척이 없었다. 목청을 높여도 묵묵부답이었다. 짧은 고요와 공백. 다이키는 자연히 그가 청력이 둔한 이임을 이해했다. 손짓으로 설명하기 위해 거리를 좁힌 찰나 주인이 집게로 집은 숯에 노부가 마른 손을 뻗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노쇠한 몸이 열에 잡아먹히면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 번 넘어지기만 해도 생명이 위험한 연세다. 다이키는 무심코 달려들어 집게를 쳐냈다. 떨어지며 숯이 튕겨져 나가 그의 손을 스쳤다. 곧바로 화상이 불거졌다. 주인이 대경하며 엉거주춤 자세를 낮췄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충사 님이시죠. 무슨 일로, 아니, 손이…….”
그러나 정작 다친 당사자는 침착했다. 그는 숯을 천으로 감싸든 후 종이와 붓을 내어달라 손짓했다. 주인은 서툰 수화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그의 요구를 눈치챘다. 다이키의 문장은 짧고 빨랐다.
‘화상을 입었나?’
“아닙니다. 저희는 불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불의 효능을 믿지 않았나 보지.’
“숯에 무언가 붙어있는 걸 봤거든요. 조금 꺼림칙해서. 이 숯도 자세히 살필 걸 그랬습니다.”
다이키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 손을 놀렸다.
‘날이 저물면 밖을 내다봐. 좋은 구경거리가 될 거다.’
주인은 이유가 아니라 다른 걸 물었다.
“손은 괜찮으십니까?”
‘곧 나을 거야.’
“다른 사람들도요?”
다이키는 붓을 내려두곤 한 번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주인은 연신 감사하다 외치며 그를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긴 말 없이도 뜻이 통하는 상대를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나아진 다이키는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헤어질 때엔 이 주변에서 자라는 보양에 좋은 약초들을 몇 가지 알려주기도 했다.
다시 세 사람이 합류했다. 카즈는 다이키의 이변을 곧장 눈치챘다.
“다이키 씨. 손이…….”
“일이 좀 있었다. 괜찮아, 진짜 다친 게 아니니까.”
“그래도요.”
변변치 않은 일로 걱정을 받는 건 어쩐지 조금 즐거워서 다이키는 그저 손이 붙들린 채 웃었다. 카즈는 사라질 흉터를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
광장 중앙에 장작과 숯을 높이 쌓다 보니 금방 날이 저물었다. 목숨 귀한 줄을 아는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회명이 내려앉은 밤. 제단마냥 높이 쌓인 나무더미를 중심으로 무리가 빙 둘러싼 광경은 으스스하게도 보였다. 카즈가 횃불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여기에 불을 붙일 겁니다. 큰불이 타오르면, 모두 힘껏 몸을 털어내주세요. 제자리에서 뛰거나, 구르거나, 뭐든 괜찮습니다. 열이 오른 분들도 힘을 내셔야 합니다. 그러면 화상 속에 숨은 벌레들이 더 따뜻한 열기를 찾아 이 불로 모여들 거예요.”
모두가 숨죽이고 그의 말을 빠짐없이 경청했다. 불그림자가 일렁이는 얼굴이 창백했으나 두 눈에 서린 푸르름만은 형형했다.
“그때 불에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반드시 서로의 손을 잡아주세요. 눈을 맞추세요.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누구도 대꾸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열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든 이들의 눈에도 의지가 깃들었다. 카즈는 지체 없이 불을 옮겨 붙였다.
불은 단숨에 높이 타올랐다. 훅 끼쳐오는 열기가 고난과 병으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덥혀나갔다. 그들은 이리저리 몸을 털고, 뛰고, 그러다 노래를 불렀다. 아픈 이들은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몇 걸음을 떼더니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발로 뛰놀았다.
“몸이 점점 가벼워져.”
“화상이 줄어들고 있어!”
이제는 병이 아닌 왁자지껄한 웃음이 서로의 손길을 타고 만연하게 퍼져 나갔다. 뜀박질은 춤으로 변하고, 열기에 열기로 맞서는 이들이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타카라 또한 또래 아이와 양손을 맞잡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엉터리 가사를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카즈와 다이키가 뒤편에서 미소했다.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안심한 다이키도 손을 털어내려 했다. 그러자 돌연 카즈가 불가로 다가갔다.
“카즈? 왜 그래?”
“손을 넣으려고요.”
“미쳤어? 이리 와.”
“홀린 게 아닙니다.”
아차 하는 새에 카즈가 장작을 건드렸다. 손끝이 자그맣게 부풀었다. 다이키가 그의 옷깃을 잡아채자 카즈는 순순히 돌아섰다. 불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다이키는 어이가 없어서 오랜만에 그에게 인상을 썼다.
“다이키 씨와 춤을 추고 싶어서요.”
“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춤이야 그냥…….”
카즈가 다이키의 손을 잡았다. 흉터 진 손들은 꼭 같은 온도였다. 평소보다 뜨거운 체온. 그런데도 다름이 없다. 열기로 이어지자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기 어려워 상대가 꼭 자신 같았다. 불현듯 다이키는 카즈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다이키 씨.”
그가 확언하자 다이키는 정말로 괜찮아졌다. 카즈는 불이 아닌 그에게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발을 구르며 춤추었다. 이제는 축제가 된 무리에 섞여들자 얼굴이 그늘져 밖에서는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흉터가 지워진 몸들은 벌레가 떠난 후에도 열기를 품고 있었다. 서로가 익히 알고 있던 체온이 돌아왔다. 살아 있기에 따스했다. 설원에 새겨지는 수많은 발자욱이 눈을 녹여 내렸다.
그날 밤 마을 외곽. 주인은 언질대로 노부를 업은 채 마당으로 나왔다. 고개를 빼들고 담 너머를 바라보자 커다란 불이 광장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곁에서 빙글 돌고 춤추는 무리가 빠짐 없이 함박 웃음을 띤 채 노래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저것 보세요.”
그는 무뚝뚝한 인상이었던 충사가 보라고 한 광경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푸르게 빛나는 불티들이 불가를 중심으로 통통 튀며 하늘을 노니고 있었다. 일전에 본 숯 위를 기어다니던 것들이었다. 사람과 벌레와 불꽃이 한데 뛰어놀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업혀 있던 노인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두 사람은 보고 듣는 정도가 달라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래도 서로가 유일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사랑했다.
다름에 어긋나도 재차 손을 잡는다. 그리하면 여전히 곁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놓지 않겠다 약속하면 순간은 무한 같았다.
오늘 밤은 모두가 그렇게 했다.
작가의 말
배를 곪는 겨울이 반드시 찾아온다 해서 봄을, 여름을, 가을을 서글프게 보내야 하는 걸까요?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삶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겁니다. 적어도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카즈는 반드시, 원치 않아도 다이키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건 연인에게 비극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비관주의에 물들지 않습니다. 사계절 빠짐없이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애틋하고, 상대를 웃게 해주고 싶으니까요.
벌레의 삶은 자주 사람을 상처 입힙니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삶을 잘못되었다 냉엄히 판단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천재지변에게 복수하지 않듯 흐르는 일은 그리 두는 게 자연의 순리입니다.
다이키가 악몽을 꾸고, 카즈가 다른 이의 걸음을 따라나서면 상대방이 손을 잡고 내게로 돌아오라 외치면 됩니다. 그 마음만이 이별에 이별을 고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운 좋게도 두 사람은 여태껏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죠.
그렇다면 무엇이 걱정인가요?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세요. 사랑한다 말해요. 오늘 밤도 네 곁에 있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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