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서현 002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창현 본인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맹서현에게 저 따위가 어리게 굴지 말란 소리 같은 건 할 자격 없다고.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행동만큼 유치하고 철없는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시간이 금인 시국에 이런 한가한 말씨름이나 걸고.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래, 그냥 화풀이 상대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
자괴감이 들었다.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너를 포함해 이곳에서 숨 쉬고 있는 아이들 전부가. 이창현은 상대랑 보폭 맞추는 것 따윈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태생이 그러했다. 기질부터 그랬던 놈이며, 환경도 그가 이런 사람으로 자라길 등 떠밀었다. 타인은 원하지도 않는 관용을 베풀고, 책임을 지고, 눈을 가리려고 거짓말을 지껄이고, 동시에 안심시키려 헛소리나 떠들어대는 놈.
그래, 보고 자란 게 그런 것 뿐이니까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제가 다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내가 당신들한테 해 되는 일 할 것 같아? 왜 매번 위험 요소를 남겨 놓는 겁니까. 그도 스스로가 이상하단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만 들어서, 굴복하는 것이다. 현실에. 요즈음 자꾸 그랬듯이….
… 차라리 그렇게 말하라는 겁니다. 고맙단 말 하지 말란 소리라고요. 본인 맘 편하자고 하는 말이면 맘껏 해두십쇼. 근데 저한테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그렇게 하는 거면 싫다 이겁니다.
네 표정 면밀이 살피는 시선이다. 사실 이창현 같은 종자에겐 네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진 중요하지 않다. 그냥 네 안위를 걱정하기에 제 뜻을 거부하지 않았음 하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친애의 방식. 그가 가장 멸시하던 이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 그러므로 이창현이 떠들어댄 말들은 스스로에 대한 그 자신의 감상. 나아질 것도 떨어질 것도 없는 사실 그 자체의 인식이다. 자기혐오와는 거리가 멀다. 객관화에 좀 더 근접한.
예, 싫습니다. 싫어요.
… 씹어뱉듯 발음하는 그 몇 음절은 차라리
비난보단
비명에 가까웠다.
그렇게 말하지 마, 개자식아. 선배가 너한테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해. 이창현… 쓸모없는 폐급 새끼. 그냥 죽어라. 속에서 그런 소리가 위장을 마구 쥐어짜는 것 같았는데도. 자꾸 이렇게 말하면 인간관계 다 망할 걸. 그럼 영영, 망해버린 세상에서 고립되는 운명…… 아, 네가 원했던 건 그거지? 열 여덟치고는 지나치게 찌든 고등학생의 멘탈은 흔들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을 내뱉는 순간 내비치고 만 것이다. 눈빛… 두려움, 동경, 친애, 염려, 절망, 그리고 맨 뒤에서 힘겹게 몸을 웅크리던, 좌절.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시선을 저도 자각하곤 금세 대각선으로 눈 돌렸다. 아… 추하다, 나 자신아….
… 필요 없단 말입니다.
그래도 할 말은 끝까지 했다. 어쩌면 오기, 혹은 방어기제. 주먹 쥔 손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상대는 너고, 분노를 쏟는 상대도 너인데, 곧 칠 것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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