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서현 001.

薪盡火滅 by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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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예… 뭐. 그러십니까. 그럼 쭉 그 기준대로 사세요.

바지 주머니에 손 찔러넣었다. 짝다리 짚고, 냉소적인 태도하며. 유도부 훈련 하던 시절 유난히 갈구던 모 선배의 태도를 똑같이 닮아선. 본인도 그런 모습을 알기나 하는지 비웃음밖에 남지 않은 표정에도 잠깐 이채가 돌았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위협하기 위해 이런 것이 아닙니다만…. 이미 이렇게 된 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차피 제 말 들어줄 생각 없으시잖습니까? 그 말은 목구멍 뒤로 삼켰다.

모두가 같이 탈출, … 아니, 누가 안 바라겠습니까. 그거 되게 좋은 목표인 거, 뭐. 인정합니다. 비록 저는 역량이 부족하여 못 할 것 같긴 한데. 선배라면 안 될 것도 없으니.

네 어깨에 묻은 실밥 살짝 떼어줬다. 후, 하며 멀리 날려보내고는. 그러니까 그 태도가 동네 양아치랑 다름이 없는 것이다. 쾌활한 웃음기 따위 한 번에 지워버리고. 상황 이렇게 되니 제 멋대로 행동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선배 따위 제 알 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으로. 그렇다기엔 또 지나치게 건조한 말투였지만. 표정에서 뭔가 읽어낼 만한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틀린 말도 아니니 부정 안 하겠습니다. 원래 저 같은 인간들이 역지사지가 안 되는 법이라서요. 저 열심히 싸운 적도 없습니다. 나대는 척 하면서 매번 피하고, 1학년들한테 떠넘기고, 헛소리나 지껄이던 거 보셨잖습니까. 그 멍청한 시체 한 번 제대로 못 맞추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잖습니까. 왜 말을 못 하십니까? 한 것도 없으면서 위선 떨지 말라고 말하란 말입니다.

동학년의 친구가 죽어나가는 동안 아무것도 못 했고, 매번 결정적인 일은 손 떼고 지켜만 보는 비겁한 새끼라고 생각하셔도 전 할 말 없다 이겁니다. 왜냐면 틀린 소리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잖아요….

… 고맙단 말 하지 마십쇼. 그런 말 할 자격 없으십니다. 이득 본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말하시냔 말입니다?

고개 살짝 돌리며, 픽, 웃고는. 비소. 다시 시선 맞춘다.

물론, 사세요. 저 진심으로 선배가 살아남길 바라고 있습니다. 부모님 만나러 가신다면서요. 헬기는 올 거고, 다시 멀쩡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선배 죽는 꼴 유쾌하게 볼 생각 없으니까 제발, 부디. 그렇게 해 주십쇼. 모두랑 같이 살아남아 보세요.

죽을 만큼 노력하지 마십쇼. 죽기 직전까지만 노력하세요.

그러고도 안 되면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세요. 그게 인간 본성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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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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