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드레

[해리드레] 양손 약지에 반지를

해리드레 전력 1H -w. 2020.02.23.

해리포타 by 래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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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쓸데없이 거치적거리고, 심지어 지팡이를 잡는 손에 끼우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장신구. 그게 해리가 생각하는 반지였다. 그 중에서도 소중한 것은 목걸이처럼 한다고 하더라. 안경처럼 없으면 불편한 것도 아닌걸 꼬박꼬박 끼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보기는 예쁘지만 정작 하고 싶지는 않은 수많은 것들 중 하나가 아닌가. 해리는 드레이코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뭐하는거야?” 다짜고짜 손을 빼앗긴 드레이코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들은 알콩달콩 사내연애를 하기 시작— 우웩, 사실 잦은 출장과 야근으로 끈끈해진 전우애와 사랑 어딘가에서 헤매는 두 마법사였다. 어쩌다보니 오러가 되자마자 같이 전 팀장의 큰 똥을 치우게 되었고, 처음으로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욕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잠자리를 함께 했더라. 뭐, 전쟁은 모든 것을 쓸어갔고, 사람 사이를 팍팍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랑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위로받고 싶고, 곁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며 거리와 술집과 클럽을 쏘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리와 드레이코처럼 벼락처럼 맞은 똥투성이 사건의 뒷수습에 몰두하다 자연스럽게 눈맞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고백했을 때—“설마 먹고 버릴건 아니지?”라는 물음도 고백이 될 수 있다면—는 꽤 웃기고 귀여운 모습도 보여줬는데. 이제 앞자리가 바뀔 때즈음이 되니 서로에게 담백해졌다. 섹스 파트너도 이거보단 불탈걸.

“아니, 예뻐서.” 해리가 드레이코의 오른손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엄지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문의 것이랬던가.

“아름다운건 만지는게 아니라 감상하는거야, 포터.” 드레이코가 해리의 중지에 박혀있는 굳은살을 만지며 답했다.

“그래, 여보(my pretty) 말이 다 맞지—는 않지만.”

드레이코는 붙잡은 손을 당기고 다른 주먹으로 해리의 복부를 때렸다.

“맞을 만 했어. 내가 지금 야근하는거 안보여? 죽을래? 야근없는 기만자는 빨리 퇴근이나 하시지.”

“네가 헤르미온느야? 왜 기한이 일주일이나 남은걸 지금 보는데?” 해리가 드레이코의 두툼한 서류 파일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 그레인저가 검토할 서류니까.” 드레이코가 짜증내며 말했다.

해리는 조용히 손을 쓰다듬고 놓고는 커피를 내리러 갔다. 까다로운 도련님은 까다롭고 예민한 서류노예가 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해리의 책임이 컸는데, 그는 영 서류 작업에는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뭐, 저주 금지법의 세분화로 인한 현장 오러의 인가 블라블라블라. 전쟁 후로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허용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이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했다. 해리는 이미 징계도 여러 번 받았는데, 여러 이유로 참작되어 직장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드레이코는 ‘해리 포터에게 주어지는 온갖 특혜들’로 논문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개인적으로 놀리고 약점을 꼬집는 데에 주로 사용했다. 드레이코가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해리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오, 이건 꽤 헤르미온느와 론의 관계같았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취향으로 내린 진한 커피 두 잔 중 하나에 미지근한 물을 조금 타고, 설탕 두 스푼을 넣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잔을 거의 여백이 없는 드레이코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 잠시동안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한 드레이코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점을 탁 찍더니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그는 퀭한 눈가를 문지르며 커피잔을 들고 조금씩 마셨다.

“뭘.” 그보다는 조금 더 낫지만 마찬가지로 퀭한 눈인 해리도 잔을 들어보였다. 야근은 없지만, 헤르미온느가 보내준 오러국 개정 교육지침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드레이코의 옆에 앉아서. 한참을 깃펜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드레이코의 옆모습을 보는건 몇 남지 않은 해리의 일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안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이 살이 빠지면서 더욱 날카로워보였다. 드레이코는 상당한 일중독자였다—해리는 자신도 그렇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서 안경이 꽤 잘어울린단 말이지. 예전에 안경의 비효율성에 논쟁한 것치고는. 그는 반지로 공격했었다. 해리는 다시 반지에 시선을 두었다. 뱀이 새겨진 정교한 은반지가 드레이코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져있었다. 왼손 약지에 하나 더 끼면 눈에 띌텐데. 해리는 그의 왼손을 펼쳐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드레이코의 손이 손가락이 곧고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전형적으로 고운 손이라면, 해리는 비교적 평범했다. 흉터는 좀 많지만 말이다. 커플링은 전에도 몇 번 생각해봤었지만, 드레이코는 별 생각이 없어보여 금방 잊어버렸었다. 하지만 방금 든 생각을 고려해보자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양손 약지에 반지라니, 뭔가 웃기잖아. 해리는 비실비실 웃어댔고, 드레이코로부터 수상쩍어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는 헤르미온느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지함이 도착했다. 해리는 자신의— 무신경함 혹은 무모함에 곤란한 비음을 냈다. 백금반지 안쪽에 서로의 이니셜이 적혀있는, 매우매우 낯간지러운 선물이었다. 이걸 뭐라하면서 주지? 딱히 기념일이랄 것도 없고, 생일에 주기에는 너무 멀고, 마땅한 날이 없었다. 굳이 그렇게 챙겨야하나? 해리는 그냥 같이 식사할 때 주기로 결정했다. 뭐 어떤가. 겉보기에는 그냥 단조로운 반지였다. 해리는 드레이코가 양손 약지에 반지를 끼는 것만 생각했지 저가 왼손 약지에 낀 반지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한 이틀쯤 끼고 다녔을 때, 예언자 일보에 ‘해리 포터의 그녀는 누구인가?’라는 예언자 일보치고는 시시한 제목의 기사가 났다. 아마 리타 스키터를 잇는 그 쓰레기같은 마녀는 일부러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귀는거 아무도 모르나?” 해리가 드레이코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뭐, 기다려. 곧 내리게 만들테니까.” 드레이코가 반지를 무심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받을 때도 담담히 감사 인사를 하며 손가락에 꼈던 그의 반응에 섭섭해할 수도 있었지만, 해리는 그 반응에서 충분히 흡족해하는 기색을 읽었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것 하나하나로 서운해하거나 실망할 시기는 지난 것이다. 지나가다가 어울린다는 이유나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툭툭 선물을 던져주곤 했으니 말이다.

“와아.” 해리가 성의없이 감탄하고는 키득거리며 드레이코의 허리를 살짝 끌어안았다.

“사랑해, 알지.”

“반쯤은.” 드레이코가 짓궃은 어조로 말하며 해리의 앞머리를 쓸어올렸고, 안경을 벗겨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동안 해리는 씩 웃고는 드레이코의 입에 몇 번 입맞췄고,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드레이코가 나른히 해리의 어깨에 팔을 걸며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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