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흔적

프시하랑

쏟아지는 장대비

계절의 경계 by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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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랑아, 하랑아. 괜찮아?”

“….”

테쎄라의 마나협회장, 프시히는 1인실에서 하랑의 상태를 살핀다. 떨리는 손이 이마를 짚었고 노을진 눈이 외관을 살폈다. 에프티치아 총무라면 드러난 곳에 공격을 했을 것이다. 다만 이같은 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상흔을 입힌다. 그녀는 하랑의 성정으로 보아서 크게 키우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프시히가 엮여있다면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이상 자중하곤 했기에. 괜히 “협회장의 그림자” 라는 이명이 붙은 게 아니다. 입원실은 적막했다. 아냐, 그때처럼 죽을 정도는 아냐. 다만… 그는 몇번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페이션트 모니터의 신호음이 미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창가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처럼 검은 먹구름이 자욱하다. 그에 비해 입원실은 하얗다. 프시히의 가운도, 하랑의 환자복과 침상 이불도. 하얀 가운 뒤로 가려진 팔 다리에는 온갖 멍이 들어 새파랗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녀가 침상 위에 누워 있다. 자신의 연인이 납치당한 것도 몰랐었다. 늘 무심한 태도가 이 사태를 야기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에프티치아로 직접 이동해 하랑을 구한 여하단장의 말 한마디는 싸늘했다. 온기가 미약한 하랑의 몸은 축 쳐진 채 체르타에게 안겨있었다.

“너, 어줍잖은 애정으로 만나는거면 차라리 놓아주지 그러냐.”

“…체르타.”

“한심하다, 테쎄라의 마나협회장씩이나 되는 자가 사람 하나 못 구하고… 쓰레기가.”

평소에도 피곤한 기색으로 잘 반응하지 않는 자신의 동생이다.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는 여하단장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냉막한 눈빛으로 자신의 형제를 몰아간다. 변명할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은 입은 꾹 닫힌다. 조용하게 일갈하던 푸르고 회색의 오드아이가 눈을 느리게 감는다. 늘어뜨린 손은 이 이상으로 표출한 분노가 넘쳐 손을 감아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푸른 핏줄이 튀어나오는 것을 프시히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창밖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 비는 눈물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흘러내린다. 가장 슬퍼할 이는 협회장일 것이나내비치지 않은 이상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 사랑하는 사람. ‘테쎄라’가 엮여있어 회피한 것이 맞다. 프시히는 더더욱 작아져 죄책감의 족쇄에 같힌다. 나서야만 했는데. 슬퍼진 눈이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손에 뭍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하랑이 느리게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친 프시히가 하랑을 시야에 담았다. 수척한 얼굴이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까만 두 눈이 실망을 비추었지만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오긴 왔네. 한마디 내뱉은 음성 뒤의 대답보다 프시히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가 자신보다 한참 작은 그녀를 품에 안았기 때문에. 여리고도 여리다. 내가 이여자에에 어떤 짓을 저질렀던 걸까. 분홍색의 머리칼에 얼굴을 부비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의 힘겨운 한 마디.

“…미안하다. 다시는 널 외면하지 않을게.”

“나 무서웠어…. 또 죽을까봐.”

“살아줘서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

“…응,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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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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