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흔적

마지막

드림전력: 날개

계절의 경계 by 휴일
16
0
0

https://www.youtube.com/watch?v=DLtqhpGqIXM

"쏘라니까."

"김하랑. 너..!"

"어차피 나 하나 죽어도 이곳은 똑같이 변함 없을테니까."

총을 잡은 손이 잘게 떨린다. 이런 순간이 올줄은 나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신도 아닌 인간, 마르니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을 속삭였다. 테쎄라의 힘이 건재함에도 갈등은 존재했다. 보원성. 포럼이 끝나고 긴장이 풀린 어느날. 일은 터졌다. 전투경험이 거의 없는 연구원들은 폭도의 무력앞에 마나를 운용할 틈새조차 없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협회 기밀문서를 넘겼으며 협회장실을 제외하고 건물 대부분이 괴한들의 손에 넘어갔다.

"제길..."

김하랑은 신이 된지 얼마 안된 시기였다. 공간이동 마법으로 여하단에서 보호하는게 낫겠지. 내 마음을 알아챈듯 그녀는 거부했다. ‘싸울 수 있다’라며 나를 설득했고 곧잘 막아냈다. 그럼에도 신의 힘을 담은 인간 신체의 한계는 존재했다. 내 체질은 로드이다. 마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할 필요가 거의 없다. 공격 한번이면 적들이 나가 떨어졌다. 그만큼 급박한 순간이었다. 한창 전투가 일어나던 도중 사건이 터졌다. 내가 방심한 틈으로 적이 등뒤에서 공격했다. 하랑은 내가 '로드'라는 사실을 잊고 내게 밀려드는 마나공격을 몸으로 받아냈다. 방어마법을 썼음에도 모든 공격을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큰 파열음이 귀를 때렸고 그녀를 안고서 차가운 벽에 부딪혔다. 

"랑아, 괜찮.." 

"으윽........'"

"조금만 더 참아라, 금방 끝날거다. 내가 곧 저 새끼들을..."

고개를 숙여 품안의 하랑을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외부압력에 의한 하복부 출혈. 수술시간이 꽤 걸리지만 내 선에서 가능한 수준이다 검붉은 피가 마법이 스친 환부에서 흘러나온다. 협회는 습격당해 대부분의 실장들이 적들의 마나로 포박당한 상태였다. 어느새 보원성 잔류세력이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본 순간 절망이 머릿속을 채웠다. 내가 가장보고싶지 않은 너의 모습. 신체 힘이 약해지면 드러나는 검은 머리카락. 더욱이 너를 지켜야 한다는 필사적인 간절함이 일렁였다. 괴한들은 현재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비릿하게 웃는다. 빈정이는 목소리도 들은것 같다. 그 높으신 테쎄라가 여자하나 못지켜서 이 난리라고.

"그거 나한테 쏴. 마르니출신 애 하나 죽는다고 협회가 흔들리진 않아. 나 때문에 방해되는거 알아."

"...."

"왜 망설이고 있어. 냉정하고 이성적인 너라면......"

"알았어. 아플테니까 눈 감아라."

"......프시히."

작게 내 이름을 중얼거린 그녀는  내게서 멀어진다. 분홍색의 머리카락은 핏자국이 남아 철쭉 같았다. 거동이 온전치 않아 비틀거리는 순간에도 환부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환부에서 흐른 피가 하얀 가운을 적셔 잉크처럼 붉게 번졌다. 이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적을 견제하며 머리를 굴렸다. 적에게서 뺴앗은 총을 바라본다. 마법이 담겨있는 총은 한 발이 남아있다.

"다행이야, 네 마법으로 죽지않아도 되서."

"......"

너는 그렇게 끝까지 나를 먼저 생각해서. 냉정하고 이기적인 내게 다정해서. 꼭 이런 상황에서만. 

애써 침착하려 애쓰는 목이 매여 갈라졌다. 총을 들어 하랑의 급소를 천천히 조준했다. 가슴이 쓰리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있는 너의 다정함을 앞으로도 느낄 수 있을까.

"눈...감으라,니까. 내 말 못들..었냐..?"

"...알았다니까. 끝까지 매정.."

탕. 총성이 들리는 동시에 그녀가 눈을 감았다. 여린 몸이 쓰러지는 동시에 너에게 빠르게 달려가 안아들었다. 손 쓸 틈도 없이 하랑의 몸은 빠르게 식어간다. 그녀의 온기가 점점 사라진다. 일순 단전에 피가 솟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놈들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크큭....그러게 연애를 왜해서 약점을 만들고 그러시ㄴ...윽?"

 ".....내가 너희같은 놈들 때문에.."

"그,그만....! 이렇게 쎈 놈일줄은...커헉"

"용서 못해. 테쎄라의 마나협회장 직위를 걸고서."

괴한들은 빠르게 처리했고, 품에 들려있던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감은 낯은 잠을 자는듯이 평온했다. 네가 나때문에 불필요한 희생을 했다. 하랑에게 손을 뻗으니 흘러내렸던 눈물자국을 볼 수 있었다. 나같은 놈때문에 울지마. 숨이 멎고 영혼이 떠난 몸은 너무나 무겁다. 

"내가 처음에 공간이동마법 써줄때 갔었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 랑아. 하랑아. 응?"

"협회장님......"

"랑아....하랑아.. 김하랑......흐윽....."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알고있음에도 계속 네 이름을 부르면 프시히. 하고 잠에서 깨듯 눈을 떴으면 했다. 과학 이론을 진리로 여겨왔으나 이순간만큼은 기적을 바랐다. 얼음장같은 하랑의 손을 잡고 네게 마나를 주입했다. 제발, 지금이라도 깨어나줘.

"마나로그에 잡히지 않으세요. 그러니 이제.... 보내주셔야합니다."

"아니다. 없.."

"실장님, 저건..."

"...!"

엔피스테는 죽어서도 숙주의 의지를 지킨다. 죽어서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아니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은지. 죽어서도 살아있을 적의 몸이 유지되는 사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 엔피스테는 숙주의 죽음으로 인해 홀로 남겨질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을 기다린다. 내가 이미 네 곁에 있는데 넌 무엇을 기다리고있나. 

네가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네 흔적이라도 남길 바랐다. 정신을 차리고 잠든 하랑을 바라보면 서서히 흐려지는 형체를 마주했다. 안돼, 가지마. 네게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더 아껴줘야했는데.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했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찬란한 빛으로 변한 네 몸은 파랑새의 형태로 변했다. 내가 어렸을 적 보았던 작은 새처럼. 새 형태를 띤 엔피스테.. 아니 하랑의 엔피스테는 내 주위를 한바퀴 돌더니 허공으로 날아간다. 한순간이었다. 내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엔피스테가 공중에 흩어진다. 그녀가 정말로 떠났다. 평생을 살면서 하랑의 엔피스테를 마주할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눈물은 멈추고 네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감히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내 욕심으로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하다.


카테고리
#기타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