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005
자캐커플
탐정사무소, '더 클리프'를 개업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갔지만 시몬의 생각만큼 재밌는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고양이 찾기, 불륜 증거 찾기 등… 마테오는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시덥잖은 의뢰들을 묵묵히 해결했고, 시몬은 그런 마테오를 구경하며 제법 무료하면서도 따분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시몬은 신문을 뒤적거리며 그날 도착한 신문을 펼쳤다. 그는 신문과 함께 소파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
"오. 살인이네."
마음에 드는 물건 광고라도 발견한 듯한 말투였다. 마테오는 청소를 하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다 10초 정도가 더 지난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살인이요?"
"응. 요 앞에 강가 아래로 신원미상의 시체 두 구가 내려왔대. 이런 사건이 우리한테 오면 좀 좋을텐데 말이야."
그렇네요. 마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대답했다. 이런 종류의 평화는 꽤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려 해도 쉽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바라던 평범한 날도 쉽게 즐기긴 어려운걸까? 메네에서 보냈던 날이 마냥 그리운 건 아니었지만 이런 때는 이따금 그리워지곤 했다. 그날도 이런 날들 중 하루였다. 새파란 하늘이 유난히 인상깊은 초여름. 누군가 차임벨을 한 번 눌렀다.
"네, 들어오세요."
약속이 없는데도 울리는 초인종의 의미는 반가운 손님이란 말이었다. 시몬의 말과 함께 잠시 시간이 지나 소년이 한 명 들어왔다. 멜빵에 반바지를 입은 걸 봐서 꽤 부잣집 아이인 모양이었다. 마테오는 그를 보고 시몬을 한 번 봤다. 시몬은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곧 마테오에게 차를 내와 달라고 부탁했다. 마테오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부엌으로 가 차를 두 잔 내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차분하게 웃으며 소파에 앉으라며 팔을 건네며 웃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잠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겁먹은 소년의 고요가 감돌았다. 달칵, 그 사이 마테오가 내온 홍차가 책상 위에 두 잔 올려졌다. 한 잔은 소년의 앞에, 한 잔은 시몬의 앞에. 시몬은 홍차잔을 들어올려 자연스레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소년은 불안한 눈길을 데룩거리며 굴리며 여전히 제 가방을 끌어안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가 입을 연건 홍차의 김이 다 가실 때 쯤이었다.
"그, 더 클리프에서 무슨 일이든… 들어준다 해서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 있어서…"
소년은 최대한 어른스러워보이려는 듯 목소리를 깔고 또박또박한 어투로 말했다. 열 여섯에서 열 여덟 정도 되어보이는 앳된 얼굴로 그런 목소리를 내자 어째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 소년이 한 말은 두 사람을 제법 놀라게 만들었다.
"... 청부 살인이 가능하다면, 저희 부모님을 죽여주세요."
마테오는 한 쪽 눈썹을 까딱 들어올렸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존속 살해라, 참으로 익숙한 말이 아니던가. 알고 왔을 리는 없는데. 시몬은 침착한 태도로 웃으며 양 손을 깍지 껴 그 위에 턱을 얹었다.
"저희는 사건을 해결해 주는 곳이지, 사건 만들어주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그에게 살인은 쉽겠지만. 마테오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가 하는 말을 계속 듣기로 했다. 시몬은 여전히 태연한 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부모님을 죽여줬으면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가정폭력 같은 문제라면 사설 탐정이 아니라 경찰을 찾아가는 게 좋을텐데. 경찰에겐 가봤구요."
'가문'이란 명성이 붙을 정도로 큰 집안이 아니고 메네처럼 지역 전체가 가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 가정폭력을 한 부모는 쉽게 잡혀가지 않을까. 그게 시몬의 생각이었다. 시몬이나 마테오는 평범한 가정에 대해 이론적인 정보로 조언할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은 여전히 잔뜩 경계하는 얼굴을 풀지 않은 채 두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물론… …경찰에게 말하면 부모님은 구금되겠죠. 그럼 부모님이 갖고 있던 재산은 전부 후견인인 친척이 갖게 될거예요."
"돈이 필요한건가요?"
"그건 아니예요."
소년은 단호하게 끊어 말했다. 시몬은 잠시 생각해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일단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들어보고 결정하죠."
차가 이제 전부 식어가고 있었다. 시몬은 찻잔을 들어 끝까지 마시고 소년에게 고개를 까딱여보였다. 소년은 그제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동생이 있습니다. 4명 정도. 다들 하고 싶은 게 확실하고 착한 애들이예요. 그걸 부, 부모님은 모르겠지만… …탐정님이 생각하시는 거 맞아요. 학대당하고 있어요. 경찰한테 말해도 소용 없는 이유는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재산 상속을 받아서… …돈이 있거든요. 한 번 신고를 했는데 그 날은 서른 여덟시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밥도 못먹었어요."
소년의 목소리가 착잡했지만 목소리를 작아지지 않았다.
"동생들을 이런 곳에서 자라게 할 순 없어요. 적어도 이번 겨울이 지나서 제가 성인이 되고 나면 후견인이 되어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겠죠. 그럼 동생들도 키울 수 있을테고요."
"아, 잠깐."
시몬이 말을 끊었다.
"나이가?"
"올해로 열아홉입니다."
생각보다 마냥 어리진 않은 나이였다. 시몬은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 겨울에 부모님을 죽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돈은 가, 가져왔어요. 충분히."
소년은 제 가방을 마테오에게 내밀었다. 마테오는 가방을 열어 안 쪽을 확인해보았다. 어린 아이가 들고 있던 가방 치고 충분히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사람 하나 묻기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시몬은 그 쪽을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부모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을텐데요."
정말로 냉혈한 같은 대답이었다. 위험에 빠진 소년에게 부모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을거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더 많을테다. 하지만 그 말에 소년은 타당하다 생각한 듯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보다 더 많이 낼 수 있습니까? 청부 살인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요.”
"아, 그건..."
“없군요.”
마테오는 의외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몬이 냉철하고 좋은 판단력을 가졌단 건 알았지만 이런 상황에까지 깐깐하게 돈을 따질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시몬은 돈이 많았으니까- 소년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어려울까요...?"
소년은 거의 울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은 눈을 빙글 굴리더니 마테오를 바라보았다.
"어쩔까요?"
마테오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글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던가. 속으로만 생각하던 마테오가 대답하지 않고 시몬에게 대답을 넘기든 눈짓을 하자 시몬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 이야기, 굉장히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시몬은 턱을 괸 채 여전히 웃고 있었다. 소년은 침을 삼키며 뭔가요? 라고 물었다.
" 평소 신문은 좀 봅니까? 1면이라도요."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신원 불명의 시체 두 구가 강으로 내려왔다고 했죠. 얼굴과 지문을 황산으로 지져서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고, 옷은 전부 벗겨져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 그게 저랑 무슨 상관…"
"저는 당신이 청부 살인을 맡길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거든요."
마테오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부모님을 죽이는 건 자식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정만 없다면 그만큼 은폐하기 쉬운 일이 또 없다.
"굳이 청부 살인을 맡기려면 두 가지 이유가 필요하죠. 하나. 당신은 들키고 싶지 않다. 둘. 당신이 타인에게 덮어씌우려고 작정을 했다."
시몬은 피우던 담배를 제 앞 재떨이에 지져 끄고 웃어보였다.
"제, 제가 살인을 했다고 새, 생각 하시는건가요."
소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거짓말에 서툰 것에도 정도가 있지. 마테오는 말 없이 생각했다.
"아니요. 어디까지나 가설, 일종의 억측입니다. 그냥 조언을 하나 주고 싶은 것 뿐이예요."
시몬이 하하, 웃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범행 후에 옷은 태우는 편이 좋을겁니다."
"왜…"
소년은 제 가방을 꾹 움켜쥔 채 중얼거렸다.
"이유가 필요한가요? 저도 형제가 제법 여럿이라고만 말씀드리죠. 가족 소중한 줄은 아는 편이라…지키려면 뭐든 못하겠어요."
안 그래요? 시몬이 되물었다. 소년은 그때 벌떡 일어나더니 한참동안 부들거리며 떨다 결국 고개를 숙이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마테오는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뭘?"
"살인을 뒤집어 씌우려 한 것… 아니. 이미 살인을 저질렀단 사실 말입니다."
시몬은 담배를 한 개비 더 입에 물었다. 잠시 생각해보던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늘 신문을 보고 운 없으면 범인이 우리 탐정사로 오겠다 싶었어. 그래서 의심한 것 뿐이야."
같은 지역이고, 범인은 안 잡혔으니까. 시몬의 말에 마테오는 소년이 사라진 문가를 바라보았다. 시몬이 물었다.
"테오는? 전혀 눈치 못챘어?"
그의 물음에 마테오는 고개를 도리질쳤다.
"그럼 어떻게 알았어?"
한참동안의 정적 끝에 그는 시몬이 문 담배를 가져가며 대답했다. 그의 입에 물자 담배 끝에서 연기가 새어나왔다.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테오의 눈이 어둠속에서 깜박거리며 빛났다.
"그 애는 나와 같은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그 말에 툭 웃더니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 눈. 겁에 질리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눈. 훤히 보이는 표정. 시몬은 그것을 정말 사랑해마지 않았다.
“마찬가지야.”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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