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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신병

230611, 미완임. 어째서

씹덕짓 by 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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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이 몇 번째지?"

처연하게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던 온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질문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네가 그러니까, 아니 내가 이상한 꿈을 꾼 게 몇 번째냐고? 아 응 그건, 맞아. 나 방금도 그랬어. 자꾸 정신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야. 알아?"

방어적으로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말이 없던 륜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몸을 굽혔다.

"요즘 제대로 쉰 적이 있기는 해? 가서 자. 너 요즘 더 피곤해, 보여."

피곤해, 까지 말했을 때 륜의 혓바닥이 제멋대로 굳었다. 륜은 재빨리 말을 마무리짓고는 '온이 요즘 특히 더 피곤하게 군다'는 잠재적인 생각이 드러났을까 당황했다. 온의 눈빛이 아쉬운 티를 내며 륜을 훑고 지나갔다. 평소처럼 주변 사람을 지치게 하는 모습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시선 안에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느껴져 륜은 더욱 조급해졌다. 부드럽게 달래 줄 때까지 그러고 있을 것 같았는데, 얼마 안 가 온은 생각보다 순순히 일어났다. 륜이 손끝을 맞대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온의 발목에 상처가 또 늘어 있었던 것이다. 온이 접어 놓은 바짓단을 펼쳐 발목을 감추고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침실을 향해 앞장설 때까지 륜은 추궁하듯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으나 온은 줄곧 앞만 보고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는 것을 보니 분명 륜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랬을 것이다. 륜은 속으로 온의 손가락을 난도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온의 손은 제가 함부로 망가뜨리지 않아도 이미 제각각 다른 상처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옆에 있을 거지?"

혼잣말하는 것처럼 들린 말이었지만 륜은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막 돌려 거절하려는 순간 온이 이미 답을 정해둔 채로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을 것을 뒤늦게 이해했다. 저 참새 같은 놈. 분명 다 알고 있는 거야. 짐짓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륜은 온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온의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물가물했다. 륜은 곁눈질로 온이 완전히 눈을 감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은 저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먼지가 긴 세월에 완전히 들러붙기라도 한 듯 침대와 책상은 비슷한 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약통이 있었다. 가볍게 흔드니 빈약하게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륜은 고개를 돌려 온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죄책감을 털어내려 몇 번 숨을 크게 쉬었다. 오래된 메모와 제목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지가 내려앉은 책들 가운데서 륜은 온의 일기장을 찾아냈다.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한 사람의 것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필체는 난잡했다. 그나마 온전한 몇몇 글씨조차도 필기체가 심해 몇 번씩 고쳐 읽어야 했다. 페이지를 넘기며 가장 최근의 것부터 펼쳐 읽기 시작했다. 온의 일상은 똑같은 구조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하루. 그래서일까, 온의 글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서술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감각과 주관에 의존하고 있었고 의미심장한 말을 자주 남겼다. 최근의 일기일수록 륜이 찾아낸 나름의 규칙들은 모두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 되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이 짧은 말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프다, 라는 말을 많이 찾아낼수록 어쩐지 이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 같았다. 치료를 위한 과정. 하지만 그 모든 '아프다'에 이유는 없었다. 그마저도 6일 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모든 기록이 끊겼다. 두통약이 필요하다면서 륜의 방을 찾아왔을 때도 온은 '아파서'라고 했다. 만신창이가 된 손발에 대해 물었을 때도 온은 '아파서'라고 했다. 왜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륜이 터놓고 화냈을 때도 온은 '아파서'라고 했다. 그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목적인 거다. 륜은 미간을 찡그렸다. 륜이 시종일관 무시하자 온은 더욱 장황한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3일쯤 됐나, 온이 한밤에 륜의 방으로 이상한 꿈을 꿨다며 찾아왔다. 누가 죽는 꿈을 꿨어. 배를 칼로 찌르는 꿈을 꿨어.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꿨어... 륜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약통을 다시 집어들었다. 통을 엎자 흰색의 둥그스름한 알약이 나왔다. 언젠가 한바탕 취조하리라 다짐하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온은 답지 않게 새근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륜은 파리한 안색의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날 밤, 륜은 바깥의 소음을 무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방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좁아터진 이곳은 사실 하나의 공간을 가벽으로 이리저리 나눠 놓으며 생긴 자투리 공간이었다. 고립된 사회인 이곳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자그마한 일탈의 소리. 낡은 건물이 내딛는 걸음마다 끼익거리며 항의하는 소리. 륜은 그 모든 소리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반복되는 소음들은 분별력을 무뎌지게 해서 그것들이 먼 곳에서 들리는 것인지, 자신을 안락한 관처럼 에워싸고 있는 어느 모퉁이에서 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게 했다. 그저 듣고만 있는 것이었다. 륜은 주머니 속의 맨들맨들한 것을 손가락 끝으로 구석구석 느끼며 쓰다듬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알약이 손끝에 끈적하게 달라붙을 정도가 될 무렵, 륜은 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동그란 가장자리가 마치 그 이름과 닮게 느껴졌던 것이다. 잠이 몰려오며 생각은 점점 더 깊고 넓어졌다. 온의 창백한 우유 같은 피부. 현세가 아닌 어딘가 먼 곳을 헤아리는 것 같은 두 눈. 어두운 밤 호수 아래 가라앉은 두 개의 별빛.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웃음소리. 머릿속의 모습이 점점 닳아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륜은 눈을 감았다.

"..륜..."

륜은 그것을 꿈결에 들려오는 소리라 생각했다. 륜이 못 들은 척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 공기 중에 어렴풋이 떠돌던 익숙한 체취가 느껴졌다. 또 악몽이냐, 개자식아. 속으로 이 말을 크고 또렷하게 읊조린 륜은 대답 없이 자는 척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다 코 안으로 확 밀려드는 비릿한 냄새에 움찔하고 눈을 떴다.

"아... 뭔 짓거리를 하다 온 거야?"

생각보다 거칠게 나온 말에 륜은 의식적으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창틈 새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니 온이 소리도 없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온의 뺨은 평소보다 약간 더 창백했고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천조각이 드문드문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그의 팔목을 감싸고 있었다. 륜은 속으로 탄식했고 잠깐 숨을 멈추었다. 이유를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륜 자신을 위해서라도 알 필요가 있었다. 저 천조각을 풀어헤친 다음 목격하게 될 광경을 대비하기 위해서. 온은 전례없이 편안해 보였다.

"지금은, 괜찮아."

륜은 대답 없이 머리맡을 더듬어 붕대를 꼭 쥐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촛대에 불을 켰다. 상처가 조금이라도 깊으면 강제로라도 온을 치료받게 할 생각이었지만 다행으로 상처는 얕은 편이었다. 륜은 입을 꾹 다물고 붕대를 조금 세게 감았다. 온은 건성으로 아픈 척 소리를 냈다. 이 자식 이젠 장난도 칠 줄 아네, 륜은 작게 중얼이며 괜스레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분명 적합한 시기 적합한 순간이지만. 지금 몰아붙이지 않으면 영영 그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알지만 이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깨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륜은 본디 강직한 인간이었고 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촛불 아래서 륜은 더욱 엄숙해 보였다. 어린 양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어린 양은 온을 뜻했다.

"아까 네 책상 위에 있던 거 봤어."

온이 고양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진통제?"

아닌 것 같다. 아닌 것 같아.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다. 륜은 온보다 더 난감한 표정으로 이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었다. 온은 흑진주 같은 눈동자를 내리떴다. 륜은 저 표정을 알았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지어내는 표정이지 사실은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표정. 온이 지친다는 표정으로 문득 륜을 올려다보았다.

"대답해. 아니면 먹어버린다."

륜이 한참이나 손끝으로 더듬던 약을 입가에 댔다. 적어도 형체는 보존되어 있었다.

"그건 그냥,"

여기까지 말한 후 온이 입을 다물었다. 한 줄기 반항심이 그의 작은 얼굴에 싸늘한 표정을 자아냈다.

"그냥? 그냥 뭐?"

온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알약이 끝끝내 손끝에 약간의 불쾌함을 남기고 나무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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