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DHD인거 알고 있었어요?
어렴풋이 짐작은 했어요. 하하
모든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과 실화를 토대로 작성이 됩니다. 병원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음을 미리 알리며, 모든 약물은 의사와 상담 후 복용하시길 바랍니다.
원래 나는 남들보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대화를 하는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였다. 이로 인해 대학생때는 사회공포증을 앓아서 학교를 거의 못 갈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이 극심해서 2년간 병원을 다녔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본가로 돌아온 이후로는 너무 멀기도 하고 집에 있으니 좀 괜찮아져서 병원을 안갔지만 말이다.(매번 말을 할테지만 어? 괜찮네? 라고 생각하면서 병원을 가지 않는다는건 굉장히 미친 짓이다. 나의 정신병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의사가 판단할 일이다.) 작년 6월, 설계사무소에 취업하기 전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생활을 해왔지만 취업을 한 이후로는 그 망할 사회공포증과 불안장애, 우울감이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 날이 되기 전까지는.
2024년 2월 22일
그 날따라 일을 하는데 도저히 집중도 안되고 도면이 자꾸 눈 앞에서 날아다녔다. 피곤한건가 싶어서 점심때 잠시 눈도 붙여보고 테라스로 나가 바람을 쐬면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정신은 더욱 산만해지고 차분해지는게 쉽지 않았으며, 우울과 불안이 차례대로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병원을 가야겠다고 느낀건 업무전화를 받고 필요한 서류를 들었음에도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1초 전에 나눴던 대화를 새햐앟게 잊어버린 것. ‘무슨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방금 전화한 상대는 누구였지?’ 최대한 머리를 부여잡고 먼지 한 톨도 남지 않은 내 기억력으로 겨우겨우 기억해내어 서류를 보내주었지만 그 시간 이후로 내 머릿 속에는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아, 병원가자.’
6시15분에 퇴근하기 무섭게 택시를 잡고 30분 거리에 있는 정신과로 달려갔다. 차가 정말 더럽게 막히고 택시비도 15,000원 가까이 깨졌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그저 내 정신상태를 다시 체크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6시50분 언저리에 도착해 헐레벌떡 병원으로 뛰어가 접수가 되냐고 물어보자 간호사는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설문지 몇장을 주며 어떻게 작성하는지 알려준 후에 다 작성하면 데스크로 갖다달라는 말을 전하고선 마저 할 일을 하러 갔다. 비어있는 상담실은 깨끗했다. 실내를 두리번거리다가 설문지를 천천히 채워나갔다. 볼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에 집중하며 적으니 금방 끝났다.
“작성 다 했어요.”
“그럼 접수 하시고 기다려주세요. 지금 사람이 많아서 9시에 진료를 보실 수 있으실거에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7시 반쯤에 대기의자에 앉아서 엉겹의 시간을 보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짜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다리를 계속 떨고 휴대폰을 껐다 켰다, 에어팟을 달칵거리며 열고 닫고…. 게다가 저녁도 먹지 않아 상당히 배가 고팠었다. 분명 간호사가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 식사하고 오라고 했는데 왜 오기로 버텼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그냥 바보인거다.) 8시 반쯤 되니 사람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5명.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면서 불안해하니 시간이 잘 갔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불안해하면 시간이 잘 가는 것도 웃기긴 하다.
9시 조금 넘어서 내 차례가 되었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가 내 설문지를 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진료실 안을 둘러보았다. 천장은 어떤건지, 벽지는 어떤 컬러인지, 바닥은 무슨 재질인지 생각하고 있으니 의사가 나를 불렀다.
“전에 다니시던 병원은 언제가 마지막 방문이였어요?”
“어…. 잠시만요. 달력 한번만 볼게요.”
놀랍게도 10분동안의 모든 대화는 이런 레파토리가 이어졌다. 의사가 질문을 하면 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휴대폰을 켜서 달력을 유심히 살펴보고 대답을 했다. 아마 의사는 여기서 내 상태에 대한 확정을 냈을지도 모른다.
“환자분 설문지도 그렇고 불안이 굉장히 높아요. 사회성도 많이 낮은데다가 집중력과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고요. 중학교 초등학교때도 그랬었어요?”
“네. 어릴 때 부터 불안하고 사회성이 낮긴 했어요. 그거 때문에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었고요. 고등학교랑 대학때 제일 심해서 대학 다닐땐 학교도 거의 못갔어요.”
“으음.. 어릴 때 그랬으면 좀 많이 힘들었겠네요.”
“하하하. 이젠 좀 익숙해서 그런가 괜찮네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답을 하니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설문지를 다시 보고선 결정적이고 묵직한 한마디를 남겼다.
“근데 ADHD인거 알고 있었어요? 짐작은 했을거 같은데.”
“어…. 네. 어렴풋이 짐작은 했어요. 근데 부정을 좀 한거 같아요.”
ADHD.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많이 본 ‘~개 이상 해당되면 님은 ADHD환자임’ 게시물을 많이 봐왔어도 내가 그 당사자일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남들보다 우울하고 불안함이 강한데다 사회성도 떨어지는 정신병자인줄 알았는데 이 모든게 ADHD 때문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진짜 ADHD환자구나. 이런 상태로 집중력을 요구하는 건축설계 일을 하고 있었구나... 정말로 각오는 했지만 나의 기분은 너무나도 참담했다. 그냥 부정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2년간 다녔던 병원에서 받은 약들이 효과가 없었던게 이거 때문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2년의 나의 고생은 물거품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정신과의 문턱을 넘겼으니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도파민에 문제가 있는 ADHD 환자들은 각성제를 먹으며 치료를 시작한다. 물론 나도 아주 소량이지만 아침약으로 처방을 받았다. 메디키넷리타드 5mg. 내가 처음 받아보는 마약류 처방약이다. ADHD 치료제는 대표적으로 두가지가 유명하다. 하나는 콘서타, 다른 하나는 내가 복용하고 있는 메디키넷이다. 둘의 차이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이 글은 내가 복용하는 메디키넷을 기준으로 작성이 될 예정이다. 모든 약의 처방 및 질의사항은 환자보다 의사가 좀 더 잘알기도 하고 요즘은 인터넷에 찾아보면 약학정보원 이라는 곳에서 의약품을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약을 처방받고 다음날 출근해서 일하기 전에 약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작업하는걸 정말 못하고 한가지의 일을 절대 못하는 사람이다. 평소같았으면 캐드를 여러개 켜두고 이 작업 저 작업 왔다갔다 하면서 뭔가 하나씩 빼먹고 뭐만 하면 메일함을 새로고침 하면서 세움터를 들락날락할텐데 그 날은 달랐다. 하나의 도면을 열어서 그 일을 모두 마치면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심하게 떨던 다리도 얌전했다. 다른 잡생각도 들지 않았다. 신세계였다. 이 작은 캡슐 하나로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정상인들은 이런 삶을 살았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상기되었다. 나도 이제 정상인이 되는구나..! 싶지만 이건 착각이다. 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도파민계열 약물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약의 효과는 다르고 날마다 효과가 똑같이 든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그 날은 행복했다.
주말에도 똑같이 약을 먹었다. 그러나 효과는 금요일보다 살짝 미미했다. 아무래도 일을 안해서 그런거 같긴 한데 게으른 사람이 하루 아침에 부지런해지겠는가. 난 여전히 게을렀고 운동도 가지 않았다. 그냥 가고 싶지 않았던거 같기도.. 나의 오래된 버릇을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있을거라는 헛 된 희망을 품은 어리석은 사람은 약의 탓을 조금 했다. ‘왜이러지? 어젠 좋았는데?’ 이 생각이 들고 아침약을 하나 더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그게 떠올랐다. 부모들 사이에서 유행을 탔던 [집중 잘하는 약]. 이게 바로 공부약으로 불린 ADHD 치료제, 메디키넷리타드다. 멀쩡한 사람도 오남용을 하면 정신을 반병신으로 만들어놓는데 나라고 안그럴거란 보장이 있을까. 이게 딱 떠오르니 약을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솔직히 나도 제정신은 아니다. 마약류에 매달리려는게 어떻게 제정신이겠는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약을 정리하고 누웠다.,.
22일 처방목록(참고용)
유틸린정 1
메디키넷리타드캡슐5mg 1
인데놀정10mg 1
아졸락정0.25mg 0.5
유틸린정 1
인데놀정10mg 1
아졸락정0.25mg 0.5
유니작정10mg 0.5
아리피졸정1mg 0.5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