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처를 낫게 하려면, 더 아프게 만들어야 하는가.

고백 당시 상황 (저장 오류로 임시로 발행···)

네류 by 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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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라는 겨울과 추위에 약했다. 선선한 겨울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로 바뀔 때쯤, 항상 겨울 감기에 걸렸다. 올해의 겨울과 추위는 당연하다는 듯이 파빌라에게 감기를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대신 가져왔다. 파빌라는 열기에 몽롱해진 얼굴로 본인 침대에 누워있었다. 무거운 기침을 하면서 인중까지 이불을 올렸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양털로 만든 침구였다. 양털이라면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믿었지만, 양털도 거센 겨울바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추웠다. 지독하게 추웠다. 뼈도 얼게 만들 추위가 뱀처럼 발끝에서 머리까지 타오르는 기분 나쁜 기분에 견디지 못한 파빌라는 결국 머리까지 이불을 덮었다. 두꺼운 베개를 ‘루’ 대신 끌어안고 발가락을 바르작 움직이면서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아픔과 뜨거운 열기에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고 안정감이 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몸은 괜찮냐?”

다름 아닌 이사야였다. 이사야는 침대에 다가갔다. 파빌라는 이불 안에서 대답했지만, 감기에 가느다란 목소리는 이불에 완전히 막혀 이사야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할멈 (이사야가 일하고 있는 가게의 사장으로, 그는 사장을 할멈이라고 불렀다) 의 명령으로 나머지 정리를 끝내고 돌아온 이사야는 아직도 겨울 감기에 골골 걸리는 파빌라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11살, 11살 때부터 파빌라가 겨울 감기에 걸린 모습을 봤었다. 이사야가 가장 처음으로 본 파빌라의 겨울 감기는 병동이었다. 잭에게 맞은 상처가 낫지 않아 병동으로 갔던 어느 늦가을날. 병동에 있는 커다란 침대에서 홀로 기침을 하면서 누워 있는 파빌라를 봤다. 그 해 유독 늦게 물들었던 단풍잎보다 더 벌건 얼굴로 끙끙 앓고 있었다. 이사야는 홀로 감기와 싸우는 파빌라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감기네. 단순하고 짧막한 평가였다. 괜찮냐는 흔한 걱정도 하지 않았다. 가끔 만나는 동기를, 먼저 다가와서 귀찮게 하는 친우를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동경할 시간은 더더욱. 잭에게 맞은 상처를 치료하는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해줄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치료해야 하는 상황. 다른 아이라면 부인 어디 계시냐며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사야에게는 지독하게도 타이밍이 좋았다. 상냥하고 간섭이 심한 부인이 돌아오기 전에 붕대와 연고만 대충 챙기고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이사야··· 어디 다쳤어?

항상 그랬듯 파빌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사야는 소리가 들린 침대를 봤다.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 파빌라가 열기가 가득한 붉은 눈동자로 응시하다가, 작은 손을 연신 흔들며 늦은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쟤는 안 자고 있네. 무시하고 그냥 갈까? 이사야가 고민하는 사이에 파빌라가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고, 그 모습에 이사야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야 뭐하냐? 왜 일어나?”

“부인은··· 지금··· 안 계셔··· 교장 선생님이 부르셔서··· 이사야··· 내가 도와줄까? 그러니까 연고가 어디 있냐면, 콜록”

현재의 고통에 죽어가는 건 누구인데, 과거의 상처에 아직도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11살 어린 나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사야는 소리쳤다.

“신경쓰고 환자는 자라!”

으, 응. 파빌라는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이사야를 바라봤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그의 생각이 꺽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별말 하지 않고 다시 얌전히 침대 위에 누웠다. 연신 무거운 기침을 하면서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고, 곧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훌쩍임 속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야는 뒤도 돌아보지도, 힐긋.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파서 울든, 애처럼 누군가를 찾든 남이사였다. 어차피 금방 나을테니. 친구이자 동기에게 신경 쓸 시간은 죽어도 없었다. 이 망할 상처를 그때였다.

“이사야, 옆에 있어줄···래?”

이불 아래로,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불씨 같은 목소리가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든 이사야의 망토를 붙잡았다. 뭐래? 이사야는 파빌라에게 들으라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이 왜? 설마 내게 무슨 간호를 바라나? 참 내게 바라는 것도 많다. 부인이나 기다리지. 사람 귀찮게 시리. 혼잣말을 투덜거리면서 붕대와 연고를 주머니 속 깊숙이 넣었다.

“가지 마”

병동을 나섰다. 무슨 금방이라도 끊어질 희미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희미함은 이사야의 그림자조차 잡기에 벅찼다. 이사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었다. 춥네.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며, 가지고 나온 연고를 짜서 뺨에 난 상처 위에 발랐다. 따가워. 미간을 찡그렸다. 다 나아가는 상처임에도 약을 바르면 이상하게 더 아팠다. 왜, 연고를 바르면 더 아픈지. 별뜻 없는 일에 투덜거리면서 연고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발랐다. 상처가 나으려면, 왜 더 아파야 하는지. 11살의 아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픈 김에 다음 수업은 안 듣고, 낮잠이나 자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머릿속엔 병동과 파빌라는 눈처럼 녹은 지 오래였다. 그 다음 날, 열이 내려서 다시 수업을 듣게 된 파빌라와 만났지만, 두 사람은 병동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이사야는 감기에 걸린 파빌라를 몇 번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자신과 달리 친절하게 간호해줄 부인과 먹기만 해도 열이 내리는 약이 있는 병동이 있고, 무슨 이유인지 파빌라는 4학년 이후 부터는 감기 걸리는 모습을 숨기게 됐기에. 애당초 처음부터 그녀의 사정 따위는 관심도 주지 않았던 이사야였지만, 서로의 사정으로 같이 살게 된 이후는 어쩔 수 없이 파빌라의 감기를 조금은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집에는 친절하게 간호해줄 부인이 있는 병동도 없었고, 먹기만 해도 열이 내리는 약은 예상보다 가격이 비쌌다. (대체 이런 가격의 약을 호그와트는 어떻게 썼는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사는데 적어도 동거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아야 할거 아니냐는 심정이었다. 두텊게 쌓인 이불 언덕을 치우자, 배게를 인형마냥 안고 웅크렸던 파빌라가 눈을 힘겹게 떴다. 너, 어제부터 계속 굶었지? 일어나서 밥이나 먹어. 이사야는 주방을 가리켰다. 직접 만든 수프랑 토마토 소스로 만든 스파게티의 향이 안개처럼 스물스물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파빌라는 고개를 저었다. 목이 심하게 부어 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대로 더 자고 싶다는 듯이 배게를 더 끌어안았다.

“옆에 있어줄래?”

1학년 때와 같은 부탁이었다. 지금 이사야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영부영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파빌라는 손을 내밀었다.

“좋아해”

“그걸, 이제야 말하냐?”

아플 때 말하네. 영 타이밍이 안 좋아.

“다 알고 있었구나, 그러면 그냥 잊어줘. 없던 일로 해줘.”

“야 너 지금 제정신 아ㄴ····야?”

얘 왜 울냐? 파빌라가 우는 이유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멍 때리는 사이에 파빌라는 열기에, 감기에, 준비되지 않은 고백에게 숨겨온 모든 불안을 이사야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미안해, 부담 주기 싫었어, 내가 잘 숨겼어야 했는데”

“야”

“가지마, 이사야”

병동에서 11살의 파빌라가 내뱉은 말이 15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이사야에게 닿았다.

“무서워, 너만은 말 없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안해, 미안해.”

파빌라가 우는 이유는 단순했다. 눈 앞의 상대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단 간절함 때문이었다. 부모를 잃고, 유일한 혈육이었던 삼촌마저 말 없이 떠나버리며 생긴 불안감이

잡힌 손을 빼지도 못했다. 아직도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는 파빌라를 달래지도,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울다가 지쳐서 겨우 잠든 파빌라를 뒤로 하고, 거실로 나온 이사야는 소파에 앉았다. 피곤함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여러 생각 끝에 그에 결론을 내렸는지, 내리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풍덩, 빠져버린 험난한 고난은 생각보다 거센 소용돌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선택권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걸. 상처를 낫게 할 연고는 파빌라가 자신의 손에 쥐어줬다는 걸. 결국 이러나, 저러나 자신은 파빌라의 상처를 한 번 아프게 해야한다는 것.

왜 상처를 낫게 하려면, 더 아프게 만들어야 하는가.

26살의 어른이 되서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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