蓋島
여수
4년 전. 남해와 고성 쪽에서 발발하던 폭동 탓에 그 옆에 자리한 여수는 무장경찰이 시내를 지키고 있었다. 빈번히 일어나던 폭동이 단순한 폭력 사태가 아니라 특수 감염병─지금까지도 이것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으며 미디어 상에서나 보던 ‘좀비 바이러스’라 여기는 실정이다─이라는 정황이 생기자, 여기에 31사단이 합세한 결과가 지금의 여수다. 31사단은 감염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 발 빠르게 모든 선착장과 톨게이트, 여수공항을 통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사단장 계진이 데려간 우리는 여수의 셸터이자 전초기지인 곳에 당도했다. 기존에 요양 병원이었던 건물이라 간병 로봇들이 머릿수의 사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외로는 경찰과 군인이 대다수, 여기에 몇몇의 신체 건강한 민간인들이 모여 지내는 공간이었다.
초기 여수는 완벽한 안전지대를 만드는 데에 혈안이었다. 우리처럼 갖은 수를 써 여수까지 도달한 이들을 모두 내치지는 않았으나, 당장도 식량을 나눠야 하는 판국에 그들을 전부 들일 수도 없었다. 그때 계진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일종의 징병제와 같은 것이었다. 감염 정황과 신체 결격 사유가 없고, 스스로 판단키에 키워볼 만하다 생각된 이들을 셸터에 넣고 31사단의 관리 아래에 굴리는 것. 방식은 다양했다. 군인들의 틈에 끼워 톨게이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온 섬을 뒤지고, 볼멘소리를 내는 민간인들을 관리하고, 가볍게라도 의료 지식이 있다면 의무반을 도와 사람을 치료하는 등…….
그나마 다행인 건 계진이 우리를 꽤 아꼈다는 점이다. 셸터 내에서 비교적 어린 나이는 오히려 무기가 됐다. 우리는 군사 훈련에 준하는 신체 단련을 하고, 계진에게 직접 총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배웠다. 계진은 이 나라에 우리 다음 세대가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언제나 몸을 소중히 하라 말하곤 했다.
그렇게 재난 속의 생존자 집단은 일이 년을 무사히 버텼고, 여수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안전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여수의 궤변도 이 즈음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끊어진 통신, 수십 일에 한 번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재난 방송. 그저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셸터 안에서 생존자들은 점점 삶의 방향성을 잃어 갔다.
계진의 밑에서 주로 무기를 관리하던 서제는 간병 로봇을 개조해 그것들에게 전투 프로토콜을 이식하고, 로봇과 로봇이 전투하며 기술을 익히게 한 다음, 그것들을 바깥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셸터 안에는 로봇들의 전투 훈련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람들마저 몇몇 생겨났다. 부수고 부숴지는 꼴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여드니 꼭 콜로세움 같은 행색이 됐다. 개중엔 우리가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부터 갖가지 생필품을 나눠주던 로봇도, 말동무가 되어 주던 로봇도 있었다. 그러나 계진은 그것들을 절대로 ‘인간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좀비들을 살생할 때 하던 말과 같았다.
전투 프로토콜을 체화하지 못하고 부서진 로봇들은 대부분 탐색 도중 감염됐으나 급소를 피해 그 속도가 더디던 생존자들과 같이, 배편을 임의로 전부 끊어버려 31사단의 손을 타지 않고선 향할 수 없는 섬에 버려졌다. 그곳이 바로 개도蓋島였다. 사 년 전 생이별한 이들의 행선지 말이다.
이따금 느껴지는 여수의 안온함은 이렇듯 이 안에 발을 들인 인간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고, 우리는 언제나 마음에서 부채를 지울 수 없었다.
개도
배를 통하지 않고서야 닿을 수 없는 곳. 주위 섬을 거느린단 뜻을 가진 이름관 달리, 여수에서부터 걸러지고 버려진 것들이 모여 사는 섬. 우리는 사 년 전 31사단의 강요 하에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전까지는 고즈넉한 섬마을의 풍경이었을지 모르나, 재난 이후 사 년이라는 세월은 섬 하나를 황폐화 시키기엔 충분했다. 우리가 발을 들이기 전부터 이미 여수가 유기한 감염자 몇이 활개친 직후였던 개도는 곳곳이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개도는 빠른 속도로 괴멸하고 있었으며, 피부로 와닿는 재난이란 열차 안에서 느껴 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는 부두에서 가장 가까운 빈 민박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섬의 지리를 익히고 필요한 것들을 죄 털어 모자람 없는 사람처럼 살기 위해 움직였다. 이 섬 안에 있는 산 사람이란 게 꼭 우리 뿐인 것 같아서. 섣불리 서로를 놓을 수조차 없었다. 삶이 덧없다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후의 몇 년 간, 개도의 부둣가로는 감염자들 사이 간혹 시체 몇 구가 실려 오기도 했다. 경찰과 군인들이 주가 되었고, 드물게 민간인이 존재했다. 그런 중에도 우리는 개중 혹여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으며, 그런 중에도 생을 이어 붙이는 데에 쓸만한 것들을 그들에게서 찾아야만 했다. 요깃거리, 총기와 같은 무기들, 뭣하면 옷가지까지.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이 버려진 섬에서 서로만 붙든 채 기어코 살아남은 우리는 수백 일간 몇 구의 시체를 밟고 올라섰다. 나날이 끔찍했고. 한편으론 초연하게 되었으며. 이따금 더는 뱃머리도 닿지 않는 부두 너머의 것들이 그리워졌다.
이런 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약 일 년 전부터 개도에 닿기 시작한 비생명체에 의해서였다.
감염자와 이미 생명이 꺼진 시체들로 쌓여 가던 부둣가에, 어느 날부터인가 꼭 사람처럼 미세히 박동하는 로봇들이 들어섰다. 그것들은 험하게 쓰이다 버려진 것처럼 성한 부품이 없었고, 아예 작동이 꺼진 것들이 태반이었으나, 열 중 하나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개중 하나의 이름이 바로 윌이었다.
윌은 종종 우리에게 여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점점 줄어드는 생존자의 수, 강제로 전투화가 되어 가고 있는 로봇들과, 유라시아 전역에 퍼진 감염병의 실태. 그리고
여수는 곧 괴멸해. 재난 방송에서 외쳐대던 진짜 안전지대는 따로 있다는 거야. 우리끼리는 그걸 알 수 있어.
여수의 괴멸을 점지하는 말까지.
현재
안전지대라 여겨진 여수였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완벽한 바리케이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탄약은 한정적이고, 로봇들은 불안정하며, 이 상황서 건설이란 불가능한 데다, 돌아가며 여수를 지키던 이들도 몇 년이 흐르면서 지치고 병들어 갔다.
그런 중 간헐적으로 들려 오는 재난 방송에서는 한반도에 여전히 안전지대가 남아 있다 공표하였으며……
공공연히 안전지대라 알려진 여수로는 전국 각지의 생존자들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혹들을 달고서.
결국 한반도의 마지막 방어선이라 여겨져 왔던 여수는 괴멸하고 말았다.
개도에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로봇들의 헛소리를 무시해 왔던 사단장 계진은, 언젠가를 위해 모셔 놓았던 배에 셸터에서 동고동락했던 생존자 몇을 태워 개도로 향했다.
이상에게 있어서는 사 년 만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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