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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범(38)
이상고등학교 2학년 5반의 담임이자 한국지리 담당. 교내에서는 이름 따라 솔선수범의 아이콘, 5반 내에서는 뻔뻔스러운 개저선생님이시다.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여행지 결정, 학기 초 반장 선정까지. 고작 반년 함께했는데도 5반이라면 이미 혀를 내두르는 그의 행보는 마침이라곤 없이 투 비 컨티뉴드.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의 순천행과 임시 반장 선거였다. 밑도 끝도 없이 한 사람 집어다 임시 반장직을 일임해 놓곤 귀찮으니 아마 일 년간 임시 반장 같은 진짜 반장이 될 것이란 엄격근엄진지한 선포가 있었다. 너희도 어차피 투표하고 이러면 귀찮잖아? 다 시행착오를 겪어 보고 결정한 일이니까 토 달지 말도록. 선생님이 결혼을 일찍 했으면 너네만한 딸이 있어요.
아무튼 하여튼 여하튼 이렇듯 제멋대로인 담임이라 학생들 보기엔 왠지 밉상에 진상. 순천으로 떠나는 당일날 서울역에도 자기가 더 신나서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났다. 진실로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은 남자다.
주미지(18)
저, 선생님. 하지만 저는 사주에도 관상에도 감투가 없는데요.
3월 30일 인시 출생, 무속신앙, 명리학, 이분파묘재미있게보셨나, 기토인지 을목인지 그게대체뭔데쓰니야, 로 구십팔 퍼센트를 설명할 수 있는 낭랑 십팔세 주미지는 2학년 1학기 초 김수범의 점지에 의해 반장 타이틀을 달게 되는 일생일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좋은 질문이구나 미지야. 네가 반장이 된 이유는 네 언니가 전교 회장이기 때문이란다.
철면피 같은 것. 언니는 핑계고 민주주의적 투표라는 일련의 과정이 귀찮은 거군. 어딜 그럴싸한 이유를 들먹여서는……. 앙 다문 입술이 비틀렸지만 보살님께서 웬만하면 감정을 드러내고 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주셨던 것을 생각하며 참았다. 이렇듯 주미지 근간에 의해서도 황당무계한 점지였다. 십분 고찰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쩌면 김수범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고찰의 끝에선 남동생은 먼지만도 못하지만 언니만은 하늘인 미지의 시스콤 자아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김수범의 두 마디를 오전 수업 시간 내내 곱씹던 미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며 심신이 편안해졌다. 오행 상 나는 물을 따라가야 길할 팔자인데 수범쌤은 모르겠지만 우리 언니 오행은 물난리 중의 물난리였지 그래 맞아 역시.
역시 언니는 내 인생의 길잡이야……!
그렇게 주미지 군말 없이 2학년 5반의 임시 반장 같은 진짜 반장으로 자리매김하다.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이로 인한 반장의 과업 하나. 5반 학생들은 모두 미지를 통해 모바일 승차권을 선물받았다. 듣기론 예매 심부름을 받았다는 듯. 감투는 핑계고 자기 귀찮다고 별 걸 다 시킨단 친구들의 말에도 운명에 순응한 사람처럼 대답한 바 있다. 괜찮아. 나 수범쌤 시다바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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