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설영]잔향上
꾸었던 꿈 내용 기반!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이성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점차 죽어가게 되는 세계입니다.
아직 진혼기가 완결나기 전에 완성된 글을 이쪽으로 백업한 것이라 지금과는 캐해석이 많이 다릅니다 양해하고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00.
꿈을 꾸었다. 누군가를 사랑했기에 죽는 꿈이었다.
01.
죽음은 사람들의 발 뒤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간혹 머저리들만이 죽음보다도 사랑이 아름답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제 발로 죽어나가고는 했다. 당연한 일이다. 고작 그런 감정 때문에 죽고 싶은 이들이 있을 리가 있나? 그건 정말로 머저리 같은 짓이었다.
……그리고, 그런 머저리가 자신일리는 없을 텐데.
기분 나쁜 꿈. 꿈속의 자신은 저 스스로의 의지로 누군가를 사랑했으나, 죽음이 문턱까지 찾아온 순간까지도 살고 싶어 했다. 꿈속에서마저도 그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겨우 꿈에서 사랑하는 것마저도 아리고 버거워, 깨어난 후에도 자하는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고, 이는 그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툭툭,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행동에서마저도 묻어져 나오는 불편한 심기에도 설영은 잘만 차를 마셨다. 간만 커져서는.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머물렀다. 설영을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아버렸다.
“아까 영사를 했을 때 본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평소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다. 자신이 눈을 감았을 뿐,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설명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조곤거리는 목소리가 퍽 듣기 좋아 자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햇살이 얼굴 위로 늘어지자, 특유의 나른한 빛을 머금은 그의 금빛 눈이 깜박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저 그뿐임에도 햇빛이 놀라 곧장 모습을 감추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 나른하게 늘어진 한낮을 꽤나 오랜 시간동안 바라보던 설영은 턱을 괸 채로 그 모습을 잠시 구경하다가 꾸벅, 졸았다. 아까 전부터 묘하게 피곤해 보이기도 했으니, 그 모습을 눈에 집요하게 담아내던 자하는 시간을 확인한 후 손을 뻗어 설영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여기에서 자지 말고 일어나.”
제 손에 잡힐 정도로 마른 축에 드는 어깨다. 흠칫해서 손을 떼어냈다가 다시 흔들었다. 아까전보다도 더욱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소중한 것을 대하듯, 부드럽게. 설영은 그 손길이 기분 나쁘지 않아 가만히, 그저 가만히 그렇게 있었다.
“이봐, 그만 졸고…….”
툭, 하고 손에 닿는 온기에 정신이 들었다. 설영은 아예 자신의 손에 고개를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물론, 그가 고의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나른한 오후의 햇살에 취하여 그랬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
“…….”
사람을 사랑하는 꿈……. 어째서인지 그 잔인하고 어리석은 꿈에 다시 내던져진 기분에, 그는 멍하니 설영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에게서 왜 그 아린 꿈의 잔향이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자하는 무심코 설영이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설영에게서는 따뜻한 햇볕의 내음이 느껴졌다.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꿈은 무의식의 발로라고 하던가…. 자하는 손을 거두어들였다. 갑작스럽게 기대고 있던 손이 빠져나온 탓에 휘청하며 눈을 뜬 설영이 비난하는 눈으로 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들어가서 자라고 깨웠는데, 내 손에 아예 기대서자면 어떡해? 손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툭하니 던지며 그는 일부러 더 쌀쌀맞게 일어났다.
02.
꿈속에서의 자신은 자신의 기억보다도 더욱 메마르게 갈라진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문득 의구심이 머리를 들었다. 자신은 그 사람을 원망했던가?
03.
'내가 왜 하필 너를 사랑한건지 알 수가 없어. …나라고 죽고 싶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었는데.' 꿈이다. 또다시 이런 꿈이었다. 쓸데없이 생생하고 무거워서, 자하는 마른 세수를 했다. 꿈 속에서 자신은 꽤 볼썽사납게도 화를 내고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꿈 같은 것은 꾸고 싶지도 않았다. 죽어가는 꿈을 꾸면서 누가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그는 몸을 기대어 앉았다. 슬픔, 분노, 두려움……. 꿈에서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자신을 향해서 밀려드는 것이 버거웠다. 자신이 한번도 나약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에 그는 작금의 상황을 더욱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일터다.
너무나도 현실 같은 꿈…아, 이게 사랑이라고? 잇새 사이로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한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그 감정에 대해서 역겨움을 느꼈다.
사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병이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04.
꿈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왔다.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끝은 죽음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련하고 어리석게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 헌신을 알아주긴 하는지.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하는 차게 비웃었다. 사랑이 무어 그리 중요하다고 두려워하는 죽음마저도 받아들이는 것인지. 자하는 자신만큼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확언할 수 있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지독하게도 자신을 쫓는 꿈으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문제이기도 했고, 정신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마침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 자하는 자신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인정해야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지 않는데에 익숙했고, 사람들은 자신이 상태를 숨기면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몰려있단 뜻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하는 저도 모르게 드러난 피로를 능숙하게 숨기고 입술을 밀어올렸다.
“요즈음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래도 괜찮아보였던지 시선이 흩어진다. 자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누구였더라. 눈을 가늘게 좁히며 시선을 두는 것을 보며, 진림은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 저 친구요. 열병을 앓는 중이라고 하덥니다.”
그 병이라고요. 자하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젖혔다. 좋은 인재였다고 말하며 안타깝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멀게만 느껴졌다. “나라고 죽고 싶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 눈이 따끔거렸다. 코 끝에 출처 모를 익숙한 단내가 맴돌았다. 결코 알고 싶지는 않은.
05.
“어쩌다가 널 사랑하게 되었더라.”
사랑이라는 말의 끝이 허탈하게 갈라졌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06.
이걸로 벌써 얼마나 꿈이 반복되었는가. 날짜를 세어보려다가 관두기로 했다. 허무함과 슬픔에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답지 않게도. 가슴을 치며 마른 숨을 토해내자 조금 살 것 같았다. 꿈을 거듭할수록, 꿈속에서 그 미련하고 미련한 사랑고백을 해댈수록 점차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기분이었다. 하긴, 꿈속의 님은 언제나 답이 없었다. 자신만 놓으면 되는 일방적인 관계였겠지. 그 생각을 하자 다시 허무함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쯤 되면 꿈속의 인물과 스스로를 분리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부터 분리해서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자하는 꿈속의 인물과 자신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아파오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슬픔, 기쁨, 환희, 분노,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이…….
“상선.”
나직하게 저를 부르는 말에 비로소 꿈 속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진다. 느릿하게 내려깐 금빛 눈에 맹수의 것과 같은 예기가 비쳤다. 이내 자신을 부른 상대를 확인하자 그의 눈이 살짝 휘었다. 설영, 그에게만 보이는 아주 약간의 다정함이다. 이윽고 고개를 숙인 후 자신을 스치는 단 향에 자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이걸로 두 번째.
설영에게서는 꿈속의 자신이 끌어안았던 열병의 잔향이 느껴졌다.
07.
자하는, 그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감정의 폭이 좁을지언정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는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알았다. 그는 설영을 사랑하지 않았다. 설령 꿈속의 감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사랑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 결론은 꽤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08.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면 추해졌다. 그동안 자하가 보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해왔고, 그것은.
‘네가 사람이더냐? 너를 믿고 따르던 이들의 가슴에 검을 꽂고도 어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느냐?’
……자신의 누이도 마찬가지였지. 바람이 불었다. 아직 한겨울의 날씨였지만, 딱히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에 피어나있던 흰 눈이 바람이 불자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자하는 작게 웃었다. 자신은 그렇게 추하게 굴지도 않았고, 설영이 없으면 죽을 것 같지도 않았으며, 설영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형태는 내리사랑. 즉 높은 이가 낮은 이를 아끼는 것에 속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자신이 설영에게 보내는 친애를 성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 결정적으로 그는 설영과 입을 맞추고 싶지도, 그렇다고 잠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도 않았으니.
설영에게 내보이는 일말의 다정은, 그저 그를 아끼기에 내보이는 아주 작은 친애(親愛)에 불과했다.
“설영랑. 먹을래?”
“어린 아이 취급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래. 빨리 먹어.”
“…….”
그 생각을 감추고서는 언제나처럼 당과를 내주었다. 설영과 자신이 잠자리라니, 그거야말로 선문이 뒤집히는 일이겠지. 사랑을 동경하지 않았기에 기대도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사랑하여, 몸이 갈수록 쇠약해지던 자운은 어느 순간 괜찮아졌다. 괜찮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자신과 자운의 관계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이… 설영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언제나 그렇듯 스치우는 단 향에 오히려 마음이 건조해졌다. 설영이 숨을 뱉을 때마다 새하얗게 김이 서렸다가 다시 스러지는 것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입술에 시선을 두었다가, 아닌 척 눈꽃이 떨어진 나무를 응시하며 단조롭게 중얼거렸다. “겨울이구나.” 그건 정말로 새삼스러운 말이었다. “겨울이 왔어.”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
겨울은 진즉 찾아왔는걸요. 상선에게 보이기에는 꽤나 불손한 언행이었지만 그저 웃었다. 그는 유독 설영에게 관대하고는 했으므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겨울인데 어찌 이리 춥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전부 그 어처구니없는 꿈의 탓으로 돌리며 자하는 괜히 옷깃을 한 번 더 여몄다.
“상선. 요즈음 기행을 벌이신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요즘 들어 정말 이상하시네요.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헛웃음을 삼키며, 자하는 고개를 까딱였다. 저 어린 백의화랑이 자신을 어찌 보는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다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며 자하는 코웃음을 쳤다. 불신이 어린 시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 이전보다 더욱 신경쓰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의원에게라도 몸을 보여야 할까.”
자하의 뜬금없는 말에 그를 위아래로 훑던 설영은 고민하는 듯 했다. 상태가 아직도 많이 안좋은가. 괜히 제 뺨을 만지작거린다. 설영은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과로하신 것 같으니 그냥 쉬시죠.”
“그거 아나, 설영랑? 설영랑은 너무 건방져. 차라리 반말을 쓰지 그래?”
09.
올해의 겨울은 유독 길었다. 눈가를 꾹꾹 누르며 자하는 애써 피로함을 숨겼다. 겨울과 함께 찾아왔던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닌 악몽은 겨울과 함께 무르익어갔다. 악몽은 끝까지 겨울과 함께할 것 마냥 끈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자하는 어울리지 않게도 꽤 심한 두통과, 아무튼 그러한 것들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소리들이 악몽마냥 끈질기게 달라붙어 웅웅거렸다. 꽤 오랜 시간 잠을 청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었으나 회의가 길어질수록 나빠지는 안색을 보며 목소리가 서서히 멎어들었다.
“상선.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다니까.”
평소라면 나오지 않았을 짜증어린 목소리였다. 흠칫 놀라는 이들을 보며 자하는 다시 애써 웃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시 시선이 흩어졌다. 그것들 중에 설영의 것이 있는 것을 깨닫고 자하는 짜증스레 숨을 토해냈다. 아까 괜찮다고 했던가?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지 않은 것 같기도. 처음에는 그저 기분이 나쁜 것으로 끝났던 꿈은 갈수록 자신을 갉아먹었다. 자하는 마치 꿈속에서 사랑을 하는 것이 꿈속의 자신이 아닌, 현실의 스스로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사랑은 무슨. "설영랑. 잠시 나 좀 보지." 소매를 떨치며 냉연하게 일어난 그는, 흠칫 놀란 화랑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래, 악귀인게지. 악귀에게 홀린게야.
무슨 사고를 친 거냐며 모이는 시선을 느끼고, 설영은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들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지만. 이건 정말로 그답지 않은 짓이었다. 자하를 따라 나가며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느낀 설영은 대뜸 입을 열었다.
“악귀에게 쓰이기라도 하신 겁니까?”
“말을 해도 참. 그래, 그것 좀 쫓아내봐.”
붙어 있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어린 말에 설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붙어있다면 상선이 보지 못하셨을 리가 없잖아요.”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며 제 이마에 손을 댄다. 몸을 가까이하자 언제나 그랬듯이 단 냄새가 났다.
“…….”
“…상선?”
설영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자하의 금빛 눈에 이윽고 들어차고야 만 것은 당혹일터다. 그 당혹을 읽어낸 설영의 눈에도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이윽고 꽤 매몰차게 설영의 손을 뿌리치며 자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내 딱딱한 목소리. 그것은 설영이 자하를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설영랑. 아무래도 단 것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겠어.“
당혹스러운 것은 설영도 마찬가지였으니,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단 것을 줄이라고요.“
이내 기가 막히다는 듯, 설영이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단 것을 제일 많이 주신 게 상선이라는 자각을 하셔야할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악귀 같은 건 없었어요.”
차라리 수척해지는 것이 한눈에도 보이니, 아픈 곳이 있다면 의원에게 몸을 보이던지, 쉬던지 하라며 조언이랍시고 덧붙인다. 그 일을 안 해봤을 것 같나. 자하는 굳이 그 생각을 입에 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한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설영의 손이 스치운 부분부터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는 느낌이 났다.
…아. 문득 내리꽂힌 생각에 자하는 굳어졌다. “…상선?” 머뭇거리며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자하는 답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손을 휘저으며 무엇인가를 몰아내려고 했을 뿐. 자하는 이윽고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속에서부터 밀려나오는 웃음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성적이라고. 사랑이 아니라, 고……. 그는 이윽고 웃었다. 웃음을 참으려 해도, 참아질 턱이 있나.
“…미안하다 설영랑. 머리가 아파서…그래, 그래서 예민했다.”
불안하게 저를 응시하는 설영에게 괜찮다며, 괜찮다며 손을 저으며 그를 물린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는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사라지지 않는 잔향이 있었다.
10.
그는 인정해야했다. 이것은 사랑이었다. 부정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지독한 열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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