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그 이후
시노페의 온실: 하윤 개인로그
윤이 이 마술 공연을 준비하는 데에는 약 2년이 걸렸다. 책장 하나를 꽉 채우다 못해 실시간으로 흘러넘치고 있는 아이디어 노트 사이에서 마술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몇 개 뽑아내는 데에 반 년, 그 중에서 제 취향에도 맞고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내는 데에 또 반 년. 그리고 그렇게 골라낸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에 일 년.
그 중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내는 반 년 동안. 무수히 뽑아낸 목록 중에서 제일 먼저 그동안 친구들에게 ‘무슨 마술을 보고 싶어?’ 라고 물어서 들어낸 답과 가장 가까운 것들부터 확정 후보에 일찌감치 밀어 넣어 두었다. 그렇게 미리 확정한 목록으로 뽑아둔 것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라가 언급했던 마술이었다.
꽃이 피어나는 마술. 없던 것을 생겨나게 하고, 그것을 단계별로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그 끝에 없던 꽃까지 맺히게 해야 한다니. 구상력 세피라를 피워내었어도 이것은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반년 전 재판에서 일어났던 일 이후로 여전히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였다. 아라가 싫어졌거나 미워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 충격을 받아 미묘한 껄끄러움은 느꼈을지언정 멀어지거나 차갑게 대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결국 한 달 정도만 지나도 흐지부지 묻혀 언제나 그랬듯 어느 샌가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을 것임을 윤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결국, 일상적인 대화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더라도 지금 당장은 그리 편하게만 떠올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뜻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치고서라도 윤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 제약 없이 피어나는 생명은, 환하게 피어나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를 흩뿌리는 고운 봄꽃은 자신이 적어두었던 그 어떤 아이디어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고,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마술.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제게 있어서 그것만큼 마음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마술은 없었다. 또한 아직 아무 것도 몰랐을 적, 어린 시절에 들었던 친구의 소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소중히만 느껴지는 법이었다.
생각해낸 것들 중 역시 제일 힘들었던 것은 꽃을 피워내는 마술이었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갔지만 여전히 이것만큼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아마 본격적인 준비기간이었던 1년 중 약 4개월은 여기에만 매달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밤낮 없이 열중하며 매달렸다. 그 동안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힘들었다고 대답했겠지만, 그 동안이 즐겁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도 대답했을 것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친구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이 온실을 나가게 해주겠다거나, 선생님이 사라지게 해주겠다거나. 그런 것은 제 힘으로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즐거움과 웃음을 위한 소원 정도라면 마술사로도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어떻게 이루어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마술사. 이것은 열두 살의 하윤이 가진 꿈이었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열일곱 살 무렵의 하윤은 자신의 길을 그려나갈 때에 그 꿈 옆에 한 가지 덧붙인 것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사. 이 ‘좋아하는’은 특정인밖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이것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꾼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꿈이었지만, 이것 또한 이미 소중하게 되어 버린 꿈이었다. 그리고 물론, ‘좋아하는’에는 이 온실에서 함께 생활해온 모든 친구들의 이름이 당연한 듯이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완성해낸 짧은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펼쳐내고, 그 사람들의 웃음을 보는 것으로 윤은 만족했다. 어쩌면 이 마술은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 제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설령, 어린 시절 제가 했던 물음에 이것이 보고 싶다며 답해주었던 친구들이, 자신이 윤에게 무엇을 보고 싶다고 언급했는지 잊어버린 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도, 그저 기뻐하는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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