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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기사] 메이드는 유희를 끝내고 싶어 (1)

[배신기사의 유쾌한 신의] 드림 FF

[배신기사의 유쾌한 신의]

메이드는 유희를 끝내고 싶어

~ 1. 그 메이드, 낙하 ~

웹소설 〈배신기사의 유쾌한 신의〉 (w by. 가언)을 기반으로 한 드림 연성물입니다.

※ 본 작품의 내용은 원작의 전개와는 무관합니다.

※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 인물, 단체, 장소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쨍한 햇빛,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 아득히 보이는 바닥.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무섭지 않았다.

그저 새파란 공간을 수영하는 것 같았다. 다만 찬 공기 때문에 눈이 시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더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크게 뜨인 시야에 바람을 타고 떠오르는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아, 그래, 저걸 잡으려 했어.

엄청 대단한 마법사의 연구 자료. 잃어버리면 최소 사형이랬는데.

로즈는 새삼 억울했다. 청소하기 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아주, 아주 조금 열었을 뿐인데.

갑자기 바깥 바람이 창문을 온통 제치고 안으로 밀려 들었다.

사방에 종이가 흩날렸다.

그리고 창밖으로 종이가 딱 한 장, 날아갔다.

무심코 로즈는 그것에 손을 뻗었다.

까맣게 잊은 채였다.

이곳이 건물 3층이라는 것,

그리고 창문 너머로 몸을 내밀면 위험하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이후로는 추락만이 남았다.

‘두 번째 삶이 고작 이렇게 끝?!’

판타지 소설 속 세계에 환생한 지 19년 남짓. 황궁에서 메이드로 일한 지는 겨우 1년 남짓만에.

로즈는 거하게 사고를 쳤다.


여느 웹소설 같은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에 살던 평범한 직장인 여성 이하은(26).

하은은 어느 날 갑자기 판타지 소설 속에서 눈을 떴다.

이곳이 소설 속 세계라고는 한눈에 알아 보았다.

양식이 뒤섞인 유럽풍 건물. 현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옛 서양 복식. 그렇다고 해서 근대 유럽이라고 치기에는 묘하게 높은 거리의 위생 수준.

다만 하은이 처한 현실은 판타지라면 으레 있을 법한 황녀니 악녀니 하는 화려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은은 그저 빈민가에서 갓 태어난 아이였다. 언뜻 기억하기로 부모는 난민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낡은 옷가지로 말아 곧장 고아원 현관 앞에 내려 두었다. 흔한 소설처럼 출생의 비밀은커녕 이름조차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고아원은 시설도 구성원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곳에서 하은은 ‘로즈’라는 이름을 얻었다.

로즈는 십몇 년 동안 고아원에서 무던히 성장했다. 읽고 쓰기도 배워서 황궁 하녀로도 취직했다.

그렇게 독립한 지 얼마쯤 되었을까.

기사단에서 ‘라이오스 드 윈프리드’라는 이름이 들려왔다.

그제야 비로소 로즈는 이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깨달았다.

판타지 웹소설 ‘성검의 푸른 기사’.

천재 기사 ‘라이오스’가 기사단장으로서 성장하며 겪는 위기를 다룬 이야기. 읽은 지 한참 지나서 세세한 설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문장이 아름다웠다. 전개는 답답해도 작가님 필력이 워낙 좋아 즐겁게 읽었지.

1~2부는 라이오스의 소년기와 청년기. 3부에 들어서부터 전쟁이 벌어지며 스케일이 점차 커졌던 것 같은데…아마 그 즈음 연재가 중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미 이곳을 ‘현실’로서 살아가는 로즈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로즈는 하녀 중에서도 말단이었다. 한마디로 온갖 허드렛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는 소리.

평소에는 청소를 하다가 일정이 비면 곧장 세탁실로 내려 가 일손을 거든다. 아니면 시동들의 심부름을 나누어 맡거나.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판타지고 뭐고 지쳐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러니 기사단 같은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야 알 바 아니지. 얽히고 싶지조차 않다.

아마 세상이 위험에 처해도 마찬가지겠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출근!

청소, 빨래, 심부름!

퇴근!

월급!

환생자도 별 거 없다. 소시민은 소시민답게 사는 게 최고일지어니.

그 생각을 고수하며 로즈는 일상을 평화롭게 흘려 보냈다. 세상이 원작과는 다르게 흘러가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사형당할 뻔 했던 어느 견습기사가 황궁에서 과격하지만 유능한 인재라는 평판을 얻었을 때라거나.

아렌트 폰 에크하르트.

‘성검의 푸른 기사’에서는 기사단을 배신한 사실이 드러나 처단 당했던 사람.

과연 아렌트 경은 회귀일까, 빙의일까? 아니면 나처럼 환생? 어쩌면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은 조금 다른 게 정상일까.

아렌트 경, 정체가 뭔가요?

조금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뭐, 진짜 물어볼 것도 아니고.

실은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낮은 신분이 높은 신분에게 먼저 말을 걸기는 쉽지 않으니까.

어쨌든 라이오스 단장과 아렌트 경, 그리고 제3기사단 덕분에 칼리온 제국은 원작과는 달리 한층 더 평화로운 나날을 맞이했다.

최근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3기사단이 드래곤까지 처치했다나. 뼈가 퍼레이드에 나왔다고 하는데 바빠서 구경할 틈이 있어야지.

그래도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이,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터였다.

그러나 인생의 전환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 왔다.

“있지, 로즈 - 오늘 나랑 담당 구역 바꿔주면 안 돼? 응?”

그날은 원래대로라면 로즈가 3기사단 연무장을, 같은 하녀 친구 마리가 생활관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시간에 기사단이 연무장에서 단체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사단의 외모와 근육이 전반적으로 출중한 고로 황궁 내에는 당연하다시피 기사단 추종 모임이 있었다. 그 규모는 현대 아이돌 팬클럽을 방불케 할 정도. 마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최애는 라이오스 단장. 단정한 이목구비가 취향이라나.

“멀리서라도 좋으니 라이오스 님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번만 바꿔주면 나도 내일 로즈가 원하는 구역으로 바꿔줄게! 응!?”

로즈는 바로 거절했다.

“싫어. 거기 신경쓸 곳 너무 많아.”

벽난로가 몇 개냐. 화장실도 많고.

“그럼 내일이랑 모레까지 두 번! 바꿔줄게!”

오호.

“음~ 그럼 세 번.”

“크읏, 네, 로즈 님!”

극적인 타협 끝에 로즈는 오후 동안 3기사단 생활관 청소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이 조금, 아니, 아주 좋지 않았다.

로즈가 막 건물으로 막 들어가려는 때였다. 갑작스럽게 슈타들러 백작가 하인들이 안으로 밀어닥쳤다. 모두 자신들 키보다 높은 책이며 종이 더미를 들고 낑낑대면서. 입구는 이미 먼지가 자욱했다.

설마 오늘 이 인원이 추가로 숙식하나. 그러면 일이 곱절이 된다.

등에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걸 느끼며 로즈는 가장 말단인 하인을 하나 붙잡았다.

“저기, 무슨 일인가요?”

“앗, 로즈잖아.”

앳된 시동이 지친 얼굴로 멈춰 섰다. 최근 자주 황궁을 오가 안면은 있는 사이였다. 시동이 푹푹 한숨을 쉬었다.

“그게, 우리 백작님 연구를 엄청 대단한 마법사가 돕는다고 했다나 봐. 이곳에 잠깐 머무르기로 했다는데. 그래서 자료를 옮기고 있어.”

그러더니 덧붙였다.

“중요한 거니까 읽어 보지도 잃어버리지도 말라는데? 나야 글을 모르니 상관 없지만 너는 건드리면 최소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네에.”

이내 남은 하인 무리도 흙발자국을 남기며 쌩 하니 계단을 올라갔다.

남겨진 로즈는 그 장면을 눈으로 뒤쫓다가 이내 빗자루를 고쳐 잡았다.

우선은 현관부터 차근차근.

황궁에 일하는 하녀에게 철칙이 있다면, 바로 ‘청소는 마법처럼’ 이라는 구절이다.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깔끔하게.

곰곰이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요구다. 하녀는 마법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로즈는 차라리 이번만큼은 자기가 정말로 마법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그 종이더미가 쌓인 방을 어떻게 청소하겠냐고.

아니지, 대단한 마법사라면 자기가 머무는 방에는 알아서 청소가 되는 마법 같은 걸 걸어두려나. 물론 그런 마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슈타들러 가 하인들은 생활관에 머무르지 않고 짐만 내려둔 뒤 돌아갔다. 방 주인인 기사들은 이미 모두 연무장으로 집합한 것 같았다.

고요한 가운데 로즈는 부지런히 쓸고 닦으며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도착한 가장 높은 층, 오른쪽 구석 마지막 방.

로즈는 줄곧 생각했던 사소한 의문을 알아서 마무리지었다.

아무래도 청소 마법 같은 건 없는 모양이네.

문을 열자 창문에 쳐둔 커튼 틈새로 빛이 스며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로 먼지가 부옇게 반짝였다.

바닥에는 아까 하인들이 날랐던 고서적이며 양피지 두루마리, 색이 바랜 종이 더미, 그리고 각종 필기구가 널부러져 있었다. 와중에 책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 덩어리가 군데군데 굴러 다녔다.

난장판이었다.

“심했다….”

어디서부터 청소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와. 아까 그 하인들, 적어도 정돈은 해두고 가야 할 거 아냐. 지금부터는 황궁 하인들이 알잘딱깔센 하라는 걸까. 빡세다, 직장 생활.

언뜻 훑어 보니 여러 언어가 섞여 있었다. 대충 용언, 고대어, 엘프와 드워프어. 서로 문자가 달라 분류하기는 쉬워 보였다.

하지만 로즈는 그걸 멀뚱히 살펴 보다가 이내 시야에서 지워 버렸다.

어설프게 손대지 말고 청소, 청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제친 순간이었다.

돌풍이 안으로 밀어 닥치는 동시에 여러 종이가 위로 둥실 떴다.

마법과도 같은 찰나.

로즈는 무심코 창밖으로 빠져 나가는 종이 한 장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곧장 앞으로 고꾸라지며 낙하했다.

사람 살려.

뒤따라 종이 수백 장이 창밖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마치 철새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망했네.

땅이 가까워지기 전 로즈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번째 삶도 이걸로 끝.

그러나 예상했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어이가 없다는 듯 짜증을 내는 낯선 남성 목소리가 들려 왔다.

“뭐 어떻게 된 게 여기 황궁은 멀쩡한 놈이 없어?”

어라?

눈을 뜨자 시야에서 차츰 멀어지는 바닥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힘이 로즈의 허리를 잡고 허공에서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어어어…?”

로즈의 입에서 절로 얼빠진 소리가 흘러 나왔다.

모르는 사이에 도르래가 달린 줄에 매달리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원래 세상이 거대한 인형뽑기 기계였을까.

“어어?!”

이내 로즈는 아까 떨어졌던 높이까지 들어올려졌다. 끌어당기는 손이나 줄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마법?

이윽고 부드러운 바람이 로즈를 창문이 보이는 방향으로 빙글 돌려 세웠다. 그러더니 사뿐히 들어 올려 창 안쪽으로 내려 주었다.

두 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설마 정말 진짜 마법!?

“자신만만하게 뛰어들길래 뭐라도 할 줄 알았더니.”

어느새 눈앞에는 크고 검은 전신주 같은 남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로즈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법은 처음 보나?”

로즈는 홀린 듯 말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완전 처음입니다. 마법 멋있어. 마법 짜릿해. 마법 최고야.

판타지 소설 속 세계에 환생한 지 19년 남짓.

그렇게 로즈는 난생 처음 진짜 판타지와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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