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바다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줄리아 라이네케 개인 로그, 성인2 시점

  • 가족(배우자)가 고문 및 살해당하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Listen, mark my words, one day (one day)
잘 듣고 명심해. 언젠가
You will pay, you will pay
너는 대가를 치를거야. 대가를 치를거야.
Karma's gonna come collect your debt
카르마가 네 빚을 받기 위해 찾아올 거야.

― Set It Off, Wolf in Sheep‘s clothing


새하얀 절벽 위에 외따로 세워진 집. 초록색 지붕을 하고 붉은 벽돌로 벽을 세운 그 집에서는, 언제나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는 절벽에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는 검푸른 북해의 파도를 볼 수 있었다.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해 나선 어선들의 불빛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랗게 빛났다.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이 늘상 창문을 두드렸다. 때로 벽을 보면 하얗게 메마른 소금이 그대로 굳어 있기도 했다. 절벽에는 떨어지지 않도록 나무로 된 울타리를 치고, 마을과 연결된 길에는 작은 문을 달았다. 기름칠이 덜 되어 있는 날에 그 문은 거칠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울타리 바깥의 풀들은 초록빛이었고, 간혹 그 사이로 드문드문 노란색 꽃이 피어났다. 벽돌 아래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어두운 토양 위로 손을 뻗으며 가볍게 흔들렸다.

줄리아는 이 집을 사랑했다. 이 집의 곳곳에는 그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울타리에는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화단의 꽃들이 바닷바람에 시들지 않도록 바람막이를 씌우고, 벽에 묻은 소금기를 정성스레 씻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무로 된 바닥은 왁스칠을 빼먹지 않았다. 이른 새벽, 해가 채 떠오르지도 않은 캄캄한 길을 나선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 또다시 해가 지고 나서 어두운 길을 거슬러 남편이 도착할 때까지. 이제는 캠벨 부인으로 불리게 된 줄리아의 일상은 그런 사소한 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때로는 사소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그는 일을 하는 틈틈히 제 품 안에서 몰래 지팡이를 꺼내고 주문을 외웠다. 그가 알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보호 마법을 그는 이 집에 걸었다. 간절한 소망과 의지를 담고서. 그런 다음 다시 지팡이를 집어넣고, 페인트 붓을, 원예 가위를, 걸레를, 솔을 드는 것이었다. 마법을 쓸 줄 모르는 평범한 머글 여자처럼, 그러므로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할 인물처럼. 그는 자주 바닷바람을 쐬며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파도가 이는 검푸른 바다에 자신의 남편이 있었다. 어떠한 마법도 쓸 줄 모르는, 그러므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라고는 자그마한 배 한 척뿐인 남자가. 그는 자주 두려웠고, 그럴 때면 기도하듯 더욱 간절히 주문을 외웠다. 부디 이 삶이 유지되기를, 아무도 나를 뒤쫓지 않기를,

모두가 그저 나를 내버려두기를.

그는 빌었다.

내가 흘린 모든 피와 재앙아. 부디 나의 뒤를 밟지 말아다오.
너희들에게 내어주기에 내 삶은 너무도 소중해졌단다. 너무도 잃고 싶지 않아졌단다.

그러나,


1987년 2월 1일, 아직 매서운 겨울 바람이 한창 몰아치던 날. 재앙은 그의 바람을 배신했다. 그날은 부슬거리는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웠다. 조세프는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크게 넘어질 뻔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현관에 걸어둔 우비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조만간 큰 폭풍우가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에 몰아닥칠 거라고 떠들어댔다.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켰다. 줄리아는 남편을 위해 훈제한 대구살과 감자를 넣고 으깨어 만든 걸쭉한 스프를 만들었다. 짭쪼름한 냄새가 부엌에서 거실로 흘러들었다. 그는 스프를 그릇에 나누어 덜고, 남편 조세프는 주전자로 끓인 물을 머그컵에 따랐다. 그들은 스프와 빵, 진하게 우린 홍차로 저녁 식사를 했다. 조세프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물었다. 줄리아는 당신이 보고싶었노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스튜는 고소했다. 차는 달콤했다. 그들은 즐거웠다. 이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줄리아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거야―

그리고 고요 사이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조세프가 말했다. “리드 할아버지인가? 안 그래도 뭐 좀 빌려갈 게 있다고 하셨었거든.”

똑똑.

“아니, 조세프.” 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건’ 리드 할아버지가 아니야.”

똑똑.

“왜 그래, 줄리아? 안색이 좋지 않아. 괜찮은 거야?”

똑똑.

“쉿. 목소리를 낮춰.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마. 가능한 한 조용히 있어야 해. 그러면……”

그리고, 침묵.

“그렇게 쥐새끼처럼 숨죽이고 있으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쾅. 한 순간에 나무 문이 산산조각났다. 조각들이 거실 벽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거실 전등이 불어드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다. 문이 있었던 자리는 이제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나같이 검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쓴 사람들이었다. 맨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듯한 이만이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밤하늘보다 더 짙은 검은색 머리에, 꿰뚫어보는 듯한 푸른 눈을 가진 저 사람은…… (아니. ‘듯한’이라는 표현은 빼야 한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저 눈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헤집을 수 있는지. 얼마나 마음 속 깊숙히 감추어진 비밀을 보란 듯이 빼낼 수 있는지.)

“이런 시골 구석에 쳐박혀 있으니 찾을 수가 없었지. 정말이지. 당신 하나 찾겠다고 온 영국을 뒤졌다고요.”

그동안 행복했어요? 레아 윈필드의 이름을 한 재앙은 그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영원히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요? 말했잖아요. 너도 빼앗겨야 한다고. 너도 잃어봐야 한다고.

내가 찾으러 갈거라고.

엑스펠리아무스. 줄리아의 손에서 지팡이가 떠나가는 동시에, 그의 몸이 순식간에 부엌 찬장에 처박혔다. 척추가 한 차례 크게 꺾이자 몸 안에 있던 숨이 일제히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다시금 숨을 들이쉬었다. 이대로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안 돼, 조세프!”

그러나, 크루시오. 그가 미처 무엇을 하기도 전에 붉은 빛의 광선이 남편을 덮쳤다. 조세프는 마치 물고기가 펄떡이던 것처럼 몸을 뒤틀고 목이 쉬어라 비명을 내질렀다. 줄리아는 그 고통을 알았다. 뼈마디가 조각조각 부서지고 다시 끼워맞추어지는 고통. 온몸의 살을 저며내고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고통. 팔팔 끓는 물에 온몸을 담그는 듯한 고통. 지금 조세프가 겪는 것은 그러한 고통이었다.

“줄리, 아…… 여보, …… 어서 도망……”

“그만, 그만해…….”

줄리아는 바닥을 기며 레아에게 다가갔다. 일어서야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상상해온 최악의 공포가 눈앞에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빼앗겼고 조세프는 이런 싸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무 바닥에 쓸린 무릎이 따끔했다. 여전히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손톱 하나가 그사이에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듯 했다. 기어움직이는 자리마다 피가 뚝뚝 흘렀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윈필드. 레아…… 저 사람은 아무 잘못 없잖아……”

“그럼 한 번 물어볼까요, 줄리아.”

레아는 태연하게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어쩐지 즐거움이 서린 것 같기도 했다. 그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레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당신은 거기에 어떻게 대답했었죠?”

아. 절망에 서린 입이 벌어졌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레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멎었다. 벌어진 입은 그대로 다물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비명은 그대로인데, 눈앞에서 몸을 펄떡이는 모습은 그대로인데,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조차 그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동작 그만 주문. 머릿속에서 그 주문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잘 들어요. 조세프 캠벨.”

레아가 손을 들자 잠시 주문이 멎었다. 그는 헐떡이는 숨을 내뱉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마녀예요. 두 손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죠. 지금 당신이 겪는 모든 일은, 전부 저 여자 때문이에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악의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알았나요? 모두 저 여자 때문이라고요!”

또다시 크루시오 주문이 쏘아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명이 울려퍼졌다. 중간 중간 주문이 멎을 때면 레아는 물었다.

“어때요, 진실을 알게 된 소감은? 아내가 원망스럽지 않나요? 증오스럽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은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조세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주문이 날아왔다. 줄리아는 그의 남편이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죽인 수많은 희생자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달라진 것은 오직 위치뿐이었다. 이제는 그가 피식자였고, 저들이 포식자였으며, 그의 남편은, 조세프는…….

“좋아요. 이쯤이면 당신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겠죠.”

레아가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 정도는 들어줄게요.”

조세프가 그를 바라보았다. 다 쉬어버린 목에서 자그맣게 소리가 흘러나왔다.

“줄,리아…….”

조세프. 줄리아는 소리없이 비명질렀다. 조세프, 조세프, 조세프. 날 원망해도 좋아. 날 미워해도 좋아. 제발, 그 무엇도 괜찮으니, 제발…….

“……내 사랑……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해. 그리고 조세프는 웃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조금 전까지 살려달라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명지르던 입으로,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참으로 갸륵한 사랑이에요. 안 그런가요?”

어느샌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 레아가 속삭였다. 레아는 뻣뻣하게 굳은 그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그 손에 지팡이를 우겨넣었다. 조금 전 날아간 그의 지팡이였다.

“자 그럼 외쳐볼까요.”

안 돼. 줄리아는 소리쳤다. 제발. 이것만은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아바다 케다브라.

초록빛 광선이 조세프를 향해 똑바로 쏘아졌다. 그는 주문을 맞고 나서도 잠시 동안 꿈틀거렸다. 고통에 오그라들었던 손가락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줄리아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더이상 빛이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절벽 위에 외따로 세워진 집. 초록색 지붕을 하고 붉은 벽돌로 벽을 세운 그 집에서는, 언제나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1987년 2월 1일, 부슬비가 내리던 그 날에는,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거실의 전등은 깜빡거리며 흔들렸다. 허공에 매달린 시체 역시 그러했다. 문이 있던 공간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은 축축했다. 거기에는 언제나와 같은 소금 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절벽에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사이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다는 한 순간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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