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키스

저장 by .
1
0
0

아침에 퇴근할 때부터 날이 흐렸었다. 피곤이 찌들어 골골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씻은 후 제

방이 아닌 아코락의 방에, 항상 하는 진득하고 집요하며, 조급한

행위 끝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잘 깨지 않는 몸이었는데, 툭툭거리는 빗방울

소리 끝에 쏴아- 엄청난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도 좀 자기는 했다. 핸드폰 시계가 오후 4시를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끔뻑끔뻑, 여전히 잠에 취한 눈을 끔뻑이다가 부스스 몸을 일

으켰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빠져나오자 거실이 어두웠다. 불을 안

켠 것도 그렇지만 밖이 어둑어둑했으며,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는 비가 안 왔는데. 아코락이 우산을 가지고 갔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우산이 어떤

모양이고 몇 개가 있고 이런 걸 알지 못했다. 연락해 볼까?

하지만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핸드폰을 자주 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괜히 거실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쏴아- 여전히 비는 굵었고, 시원한 듯 큰 소리를 내며 끊임없

이 쏟아져 내렸다.

저런 비면 건강 체질도 아파질 거 같은데. 하지만 제 머릿속에 아코락은 아프기는커녕 건강, 건강, 그저

탄탄. 쏴아, 정신 사나울 정도로 빗소리가 요란했다. 그냥 이건, 빗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요란해서 제대로 된 생각

을 하지 못해서 벌인 일이다. 핸드폰의 시계가 6시를 알리고 있었다. 가볍게 채비하고 우산 두 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빗소

리는 더욱 우렁찬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귀찮아졌지만 기왕 마음먹은 거, 팡! 우산을 펼치

고 집을 나섰다. 길바닥이 온통 물난리였다. 당연했다. 이건 장대비였다. 신발이 푹 젖었고, 안쪽까지 물이 스며들어 찝찝하기까지 했

다. 괜히 나왔나 신경질도 났다.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일부 퇴근하는

사람 몇이 있을 뿐,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빠지거나 택시를 타는

등 최대한 비를 안 맞으려고 했다. 그리고, 저 멀리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아코락의 모습이었다. “뭐야. 우산 가져갔잖아.”

괜한 짓을 했네. 그 순간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아코락과 눈이 마주쳤다. 어

색하게 하하 웃음을 짓는 순간이었다. “어? 야!”

미친!

아코락은 들고 있던 우산을 그대로 바닥에 던지고 메르에게

달렸다. 멀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다. 바로 메르의 우산으로 들어 온 아코락의 몸이 살짝 젖어있었

다.연신 쏟아진 비로 인해 주변의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지, 아코

락의 입에서 작게 입김이 나왔다. “미쳤냐? 왜 우산을, 하웁.”

뭐라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 두 사람의 입술은 숨의 온도가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입술을 맞대고 비비적, 비비자 괜히 굳은 것 같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소란스럽던 빗소리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아니, 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메르와 아코락의 귀에만 먹먹

해지는 것 같았다. 메르는 놀라는 듯 싶다가도, 연신 부드럽게 찾아오는 아코락의

입술 감촉에 스르륵 눈을 감았다. 무방비하게 입술을 벌리자 아코락은 그 속으로 붉은 혀를 넣

어, 무방비한 입안을 제멋대로 헤집었다.

평소와 다른 낯선 촉감에 팔에 소름이 돋고 뒷목이 쭈뼛 돋았

다. 점점 귀가 먹먹해졌다. 아니, 이 길거리에 둘밖에 없는 것처럼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질척이는 타액 소리만이 남았다. 혀를 넣다가 빼내고, 조심스럽게 메르의 입술을 눌렀다. 그러

자 그 달콤한 순간에 취한 듯 우산을 놓쳤다. 떨어진 우산들, 비는 두 사람의 몸을 원 없이 적시기 시작했

다.상관없었다. 비를 맞는 것도 상관없었고,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

다.두 사람을 사정없이 적시는 비, 그리고 달아오른 몸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아코락은 메르의 허리를 필사적으로 잡은 채, 더 깊숙이 입술

을 탐했고, 혀를 탐했다. “하아, 흡, 흐읍.”

잠시 입술이 이별하면 뜨거운 입김을 토하며, 찬공기를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이마셨고, 곧바로 차가워진 입술이 다시 달라붙으

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만해야 하는데, 차라리 집에 가서.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금방 다시 유혹에 항복

하고 말았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츄읍, 츄읍, 타액 섞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듯했다. “하아.”

짙은 키스로 인해 몽롱해진 눈으로, 숨을 토하며 아코락을 바

라봤다. 발그레해진 볼을 가진 채, 뭐가 그리 좋다고 웃고 있는지. “집에 가자.”

“집에 가서 마저 해도 되나?”

“일단 가.”

허리를 단단하게 감싼 아코락의 팔을 찰싹, 가볍게 때렸지만, 여전히 힘을 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 번 더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

아갈 수 있었다. *

“아니 그러니까 왜! 콜록콜록!”

비는 같이 맞았지만, 결국 독한 감기에 걸린 건 메르 혼자였

다. 아코락은 그런 메르를 위해 아껴두었던 소중한 연차를 사용

할 수밖에 없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