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치던 날의 아가 드래곤들
온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흙먼지가 훌훌 날릴 만큼 메말랐는데. 또 트로비가 무슨 심술을 부린 건지…. 아니, 어쩌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뭐든. 사실 트로비가 기분이 좋든 싫든 노래하며 춤을 추든 그것은 까맣고 작은 드래곤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라는 것은 그에게 꽤나 큰 심각성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하필 평소보다 멀리 놀러 나간 오늘’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더더욱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아이나르는 힘차게 날았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의 날개는 성룡의 것보다 훨씬 작고 연약했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드래곤의 강인함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새라면 날갯짓할 엄두도 못 내었을 폭우 속에서 아이나르는 퍽 안정적인 비행 솜씨를 보여주며 곧 목적지에 다다랐다.
속도를 줄이지 못했던 탓에 착지함과 동시에 빗물에 젖은 땅에서 거하게 발이 미끄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던 아이나르는 준비했던 대로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두어 바퀴 구른 후 깔끔하게 일어섰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물에 젖은 네 개의 발이 차박차박 경박한 소리를 내었다. 아이나르는 제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흘끔 쳐다보고는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시원하게 푸르르 털어내었다. 그리곤 두 발로 일어선다. 꾸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인간의 것처럼 여려 보이는 피부가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아이나르는 그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이내 뱃속에서 끌어올려진 커다란 외침을 토해냈다.
“형 왔다!”
순간 번쩍- 벼락이 내리꽂히며 주변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뒤따르는 천둥은 이상한 것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아이나르는 무척 험악한 인상이 되어-그래봤자 아이의 얼굴이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느냐마는- 짤막한 다리를 바삐 놀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
아이나르가 찾던, 하신의 목소리였다. 아이나르는 하신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뛰어가더니, 그대로 날아들듯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벽이 진동할 만큼 커다란 벼락이 내리친 것은 사라지지 않은 아이나르의 도톰한 꼬리가 하신의 다리에 어설프게 감겨든 다리였다. 우르릉, 여운을 남기며 잠잠해지자, 아이나르는 그제야 다짜고짜 품에 넣어버린 아이를 풀어주었다.
“형 내일 온다며.”
아이나르는 빨간 눈망울을 말똥 뜨고 물음을 던지는 하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껴안을 때 짓눌렸는지 조금 빨개진 코끝이 앙증맞다. 아이나르는 씩 웃으며 흐트러진 하신의 머리를 한층 더 흩트렸다.
“트로비 님이 너 잡아갈까 봐 얼른 왔지.”
“거-”
“이것 좀 봐!”
하신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아이나르는 틈을 주지 않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오면서 벼락을 다섯 번이나 맞았더니 비늘이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렸다니까.”
하신은 ’거짓말‘이라는 말을 하려다 만 입을 벌린 채 잠시 아이나르를 쳐다보다가, 아이나르가 앞으로 내밀어 보인 꼬리를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형은 원래 까맣잖아.”
“아냐. 잘 봐봐.”
아이나르는 여전히 젖어있는 머리를 탈탈 털어내려다가, 자기 꼬리를 유심히 살피는 하신을 번쩍 안아 들었다. 아이나르보다 조금 더 작다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는 덩치였기에 서로 끌어안은 모양새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하신의 발이 바닥에 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일단 들어가자. 그런데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했어?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아이나르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요령 좋게 뒤뚱뒤뚱 걸어 방으로 향했다. 작고 연약한 동생이 천둥소리에 놀라 기절해 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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