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사막
어쩐지 눈이 시리다 했지.
아이나르가 차가워진 모래 속에서 머리를 드러내고 몸을 추켜세우자 새까만 산이 불쑥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몸 위에 쌓여있던 모래더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모래찜질하며 잠깐 잔다는 것이 한나절이 지나버린 모양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있어야 할 하신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나르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느른하게 풀렸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목에서 그르렁대는 사나운 울림이 울려 퍼지- 기 직전에 다행히도 그의 샛노란 눈동자가 개미만 한 형체를 포착했다. 낮에만 해도 본체였던 하신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팔자 좋게 드러누워 있었다.
하여간 저 화상. 아이나르는 하신을 그대로 모래 속에 파묻어버리고 싶은 속내를 억눌렀다.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해?”
잠시나마 불안해했던 자신을 탓하며 분을 식히려 허공을 올려다보던 아이나르는 불쑥 들려온 하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것 같던 하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옛날이야기 들려주려고?”
“…하.”
아이나르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낮게 내리깐 눈으로 하신을 흘겨보다가 일으켰던 몸을 다시 바닥에 드리운다. 별다른 것도 없지. 딱히 기대는 없었다. 하신은 흑단 위에 보석 가루를 마구잡이로 흩뿌려놓은 것만 같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올려다보았다. 마을의 불빛이 닿지 않는 사막은 유독 그 빛이 더욱 아름답고, 화려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난 옛날이야기 따위 싫어해.”
그대로 입을 꾹 닫아버린 줄 알았던 아이나르가 말했다.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졌다면, 미래가 현재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면. 그랬다면 여전히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하신은 고개를 돌려 별빛이 흐르는 까만 비늘을 바라보았다. 언뜻 비늘이 돋지 못한 흉터 부분이 눈에 띄었으나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단지 자세가 불편했는지, 아이나르가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가려져 버렸다.
“그때는 그랬지라며 웃어넘길 수 있었을 테니까.”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혼잣말을 속삭이듯.
“행복하고 영광됐었던 과거를 떠올려서 바뀌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수천 번이라도 되새겨봤을 거다.”
수천 번이고. 수만 번이고. 수억 번이고. 어딘지 물기 어린 시선이 하신의 팔로 툭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느리게 감았다 뜬 눈은 아까의 모습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평소와 같았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이나르는 한숨처럼 숨을 불어 하신의 몸에 붙은 모래 먼지를 날렸다.
“헛소리 끝. 이제 잊어버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웅크리려던 아이나르는 잠시 멈추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쪽 날개를 활짝 펼쳐 들어 하신의 위를 덮어버린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빛나던 은하수는 두터운 피막 날개에 가려져, 이내 빛 한 점 없는 새까만 풍경이 하신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또한 밤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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