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2018)
하신나르
“화이트데이가 뭔데.”
“와, 그거 진짜 상처받는 발언이네요.”
아이나르의 싸늘한 시선이 하신에게 닿았다. 말이 '싸늘하다'지, 애초부터 눈매가 사납고 더러운 아이나르였으므로 지극히 덤덤하고 일상적인 눈빛이었다. 아이나르는 받지도 않은 상처에 가슴을 움켜쥐는 하신을 보며 정말로 싸늘해지려는 시선을 다잡았다. 이 호들갑스러운 드래곤같으니.
“상처받을 것도 많다. 모르면 뭐 어쩔 건데?”
아이나르가 팔짱을 끼고 툭툭 말을 내뱉었다. 가볍게 들린 턱 끝에서 오만을 닮은 무심함의 극치가 엿보였고, 그의 말투에서 ‘배 째라’는 하지도 않은 말이 절로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러자 하신은 가는 실눈을 치떴다 다시 눈꺼풀에 힘을 풀고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발렌타인데이 때 받았던 초콜릿에 대해 보답하는 날이잖아요. 내 초콜릿 홀랑 먹어놓고 홀랑 입 씻으려고 했어?”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아이나르의 눈썹이 조금 위로 들렸다. 아이나르는 그를 쏘아보는 척, 가만히 하신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에 워낙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편이라 그런지 지금 보는 표정에서 그가 서운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나르가 화이트데이를 모를 확률'을 계산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뭐, 그것은 실망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겠지만.
그러면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둘까. 하신의 이런 표정을 본 것은 꽤 즐거운 성과였다. 아이나르는 가볍게 팔짱을 풀었다.
“당연히 농담이지.”
“……?”
“내가 아무리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게 드문 사람이라지만 세월이 얼마인데 그거 하나 모르고 살았겠냐. 이건 오히려 내가 상처받아야 하는 거 아냐?”
아이나르는 느긋하게 대꾸하며 근처에 숨겨두었던 상자 하나를 꺼내어 하신의 손에 곱게 쥐여주었다. 하신의 시선이 상자에 내려앉는다. 정사각형의 납작한 상자. 부드러운 고동색의 상자의 한 귀퉁이에는 조금 넓적한 붉은 리본이 묶여 장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상자는 아무리 봐도…
“…화이트데이는 사탕을 주는 날인데요.”
“그래서?”
“이거 초콜릿이잖아요.”
아이나르의 따가운 눈빛이 꽂혔다. 그래서 불만이냐? 라는 듯한. 하신은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탕이든 초콜릿이든 일단 이 무신경한 아이나르가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하신은 리본을 풀어 상자를 열었다.
“아.”
하신의 눈이 다시금 뜨였다. 붉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초콜릿 상자 안에 놓여있기만 한, 분명한 사탕들이었다. 이거 설마 사탕 모양의 초콜릿을 줬다고 이렇게 준비한 건가?
“형. 가만히 보면….”
“가만히 보면?”
“야비하네요.”
“표현이 그것밖에 안 돼?”
“얍삽하다?”
“…하다못해 교묘하다는 말이 있잖아.”
잘 가다가 이러지. 아이나르는 짧게 혀를 차고는 상자 안의 사탕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하신이 나한테 준 선물이잖아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이나르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직접 만들기까진 못했으니까 이걸로 참아.”
둥근 사탕을 입술 끝에 물고, 두 팔을 뻗어 하신의 목을 휘감아 끌어당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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