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바토 & 하신나르

새해

케이카OC by 케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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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사실 별거 없다는 사실을, 아이나르는 꽤나 뒤늦게 깨달았다.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 하... 기보다는 움직이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 그에게 굳이 돌이켜 곱씹어 보고 싶을 만한 기억이 없는 탓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랜 옛날에 떠나버린 부모.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종족이 아닌 생판 남에 이기적이기까지 한 인간들을 옹호하다가 잠들어버린 후, 기껏 깨어나 한다는 것이 무작위로 선택된 소수의 생물들에게 신의 존속 여부를 선택하게 하는 일을 시키는 제멋대로의 신.

거대한 날개를 펴 날고 있자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작고 시시한 풍경에는 질린지 한참이나 오래됐고.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부는 높고 황량한 돌산에 난 동굴 속 레어의 변치 않는 풍경과, 깊고 깊은 잠에 빠져 꾼 흐릿한 꿈이 그나마 남은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것들을 추억하고, 회상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런 와중에 대체 몇 번을 보는 것인지 모를 아침해에 새삼스럽게 감흥을 가질 일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일찍 일어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는 동화 속 아가씨도 아니고. 그냥 오다가다 우연히 본 것이 다인 눈에 거슬리는 햇빛. 고작 그 정도.

그랬을 터인데.

“신기하지.”

커다란 동굴 입구를 거의 모두 제 몸으로 가려버린 검은 비늘의 드래곤이 중얼거렸다. 제 턱을 한쪽 앞발 위에 올려둔 채,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할 만큼 심드렁해 보이는 얼굴로 서서히 밝아오는 말간 쪽빛의 하늘을 바라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반짝 빛나는 한 점의 태양빛이 눈을 찔렀다. 그에 아이나르는 느슨하게 눈꺼풀을 내려 온기라고는 한 점 느껴지지 않는, 그러나 탐나도록 깊고 짙은 금빛 눈동자를 반쯤 가렸다. 데굴, 눈동자를 굴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지금껏 수많은 해를 봤는데 오늘처럼 눈부시진 않았다.”

그가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존재들과 비슷한 몸집의 이가 그의 비늘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아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그만큼 제 곁에 머무는 하신의 존재는 비현실적이었다. 감동 따위의 감정을 느끼기엔 이미 많은 것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쁜 것 같기도 하고.

“대체 무슨 일인지.”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흘렀다. 아이나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직감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먼 훗날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곱씹어 보겠지.

그래. 분명, 사람들이 말하는 잊지 못할 추억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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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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