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베리

빼빼로데이따위

케이카OC by 케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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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한구석, 가장 낮고 넓은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가 놓인 그곳은 오래 머물고 싶은 단체 손님이 애용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픈 전이었기에 텅 빈 자리는 레드베리의 차지가 되었다.

 

“질려어어어어어….”

 

소파 위 쿠션 더미에 머리를 처박은 레드베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앵무새 형태였다면 아주 푹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인간의 모습으로 그러고 있으니 그냥 머리 숨긴 타조 꼴이다. 초콜릿을 뜯어 부수곤 투명한 볼에 우르르 쏟아 담던 라우드는 꾸무적대는 레드베리의 몸짓을 흘겨보았다.

 

“그러게 집에 있지 그랬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마치 심한 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분개하는 레드베리의 억지부림은 이제 익숙했다. 어차피 집에 있으면 심심해 죽었을 거라고 우는소리나 하려는 거겠지. 라우드는 대꾸하지 않고 반쯤 찬 볼을 들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담은 냄비 위에 초콜릿 볼을 걸쳐 올리고 약불로 맞추면, 초콜릿은 달콤한 냄새를 내며 천천히 녹아갔다.

 

“이런 건 다 인간들의 간악한 상술이랬다고….”

 

그리고 레드베리도 함께 녹아갔다. 축 늘어져서는 쿠션 더미의 더 깊은 곳으로 머리를 쑤셔 박으며 말했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중얼거림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를 잡아챈 라우드가 픽 웃었다.

 

“나도 그 간악한 상술로 한몫 챙기는 거고.”

 

11월 하면 생각나는 가장 큰 이벤트가 있을 테다. 빼빼로데이라고. 정확한 날짜는 11월 11일이지만, 대체로 11월 전반에 걸쳐 축제처럼 즐기는 게 이제는 익숙한 절차였다. 슈퍼마켓에 가면 길쭉한 막대기 과자가 종류별로 늘어서 있고, 빵집이나 카페에서는 수제 빼빼로라며 온갖 길이와 두께의 빵과 쿠키를 판다.

라우드는 빼빼로를 만들진 않았으나, 초콜릿을 바른 쿠키와 케이크를 좀 더 많이 준비했다. 덕분에 카페는 평소보다 더 진한 단내가 끊이질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레드베리는 슬슬 질리고 말았는지 이젠 싫다며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그제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딱 11일까지만 할 거니까 참아.”

“11일씩이나겠지. 으…!”

 

초콜릿이 녹는 동안, 냉장고에서 썰어둔 과일 몇 종류를 꺼내 담은 라우드가 레드베리 앞 탁자에 접시를 놓아주었다. 달그락대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들어 상황을 살핀 레드베리는 코를 찡긋거리면서도 쿠션에서 빠져나와 곧장 과일을 집어 먹었다.

레드베리가 조용해지는 동안, 라우드는 다시 자리에 돌아가 다시 과정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한 김 식힌 쿠키의 절반을 초콜릿에 빠뜨렸다가 건져 받침대에 얹기를 반복했다. 밖에서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생떼를 부리던 것 치고는 인간의 모습으로 얌전히 먹어주니 다행이다. 제대로 심술을 부리고자 했다면 부리로 과일을 잘게 부숴 반은 먹고 반은 바닥에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을 테니. 아니면 그것마저 귀찮을 정도로 초콜릿이 그렇게나 싫어졌다든가.

어느 정도 일을 마친 라우드는 기성품을 사 진열해 두었던 막대 과자를 꺼내 손에 들곤 다시 레드베리에게로 향했다. 물론 초콜릿을 바르진 않았다. 그 기다란 모양새에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하던 레드베리가 허여멀건한 색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하곤 구겨졌던 미간을 풀었다.

 

“그렇게나 싫어? 네가 좋아할 만한 게임도 있던데.”

 

라우드가 막대 과자를 이 끝에 살짝 물곤 까딱거렸다. 눈을 휘며 얄밉게 웃는 얼굴은 레드베리가 가장 열받아 하면서 좋아하는 표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레드베리의 심통이 심상치 않다. 오렌지를 콱콱 씹어먹는 레드베리는 그다지 동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꽤 심각한 사안이던가. 잠시 고민하는 라우드의 앞으로, 불퉁한 얼굴의 레드베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러고는 라우드가 문 막대 과자를 그대로 손에 쥐어 와득 부러뜨렸다. 라우드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슬그머니 들었다.

 

“바보야. 이딴 걸 내가 왜 좋아해?”

 

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레드베리가 그대로 라우드의 목을 휘감았다. 짓궂게 웃는 레드베리의 얼굴이 아주 가깝게 보였다.

 

“쓸데없는 거리를 두게 되잖아.”

 

아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라우드의 입에 곧 새큼한 오렌지 맛이 들이닥쳤다. 이번에 들여온 건 꽤 좋은 상품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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