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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천사를 위한 파반느

투구꽃 타입|오마카세 AU•플롯 소설 [2만 1천자]

hatsukoi 99.9% by 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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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에 부스러진 흙무더기가 휘날리며 하늘을 뿌옇게 물들였다. 모래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낸 폐 빌딩의 꼭대기를 점유한 독수리가 날개깃에 부리를 묻었다. 창문을 뚫고 그 속까지 들이친 모래의 위를 지네가 기어 다닌다. 과거의 흔적은 모두 금빛 폭풍의 입맞춤에 녹이 슬거나 숨이 죽어 묻힌 지 오래되었다. 높다란 모래 언덕과 끊임없이 부는 돌풍. 바람이 불 때마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신기루 도시의 뒤로는 생기 없는 초원이 간신히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었다. 잭 임마누엘 누스는 잘난 코끝에 걸친 검은색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등허리에 걸친 돌격소총을 정비한다.

 

“날이 좋네. 오늘은, 태양도 기꺼이 우리의 편을 들어주시려는 모양이야.”

 

쓸데없는 잡담 말라며 동료가 잭의 허리를 치고 지나간다. 독수리는 인기척을 감지한 건지 어느새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있었다. 앙상한 깃털이 후드득 떨어지며 잭의 팔을 스쳤다.

 

“야아, 독수리다. 얼마 만에 보는 조류지? 다 멸종한 줄 알았는데. 특히나 저 독수리 놈들은 그들의 애완 새를 물어 죽인다고 악명이 높더랬다고. 알량한 것들은 목숨줄이 질기단 말이지.”

 

잭은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다. 한 팔로 몸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웠다. 잭은 적당한 곳에 정을 꽂아 넣고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낡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빌딩 외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그들은 비질비질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몸을 움직였다. 혁명군, 아포피스. 감히 태양을 오시하는 그릇된 뱀들. 쉰을 넘긴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수로 이루어진 아포피스는, 규모와 달리 상황과 관계없이 즉결 처형이 허용된 주적이었다.

 

머리 위로 아테카의 인장을 단 구식 전투기가 지나간다. 아포피스는 빌딩에 몸을 딱 붙이고 건물 벽과 모래 속으로 몸을 숨겼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 정각, 매일 오전과 오후 3시에 순찰을 도는 전투기가 그들을 지나간다. 시계가 없는 이곳에서 순찰 전투기는 그 대용이 되어 주었다. 목숨을 내걸어야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가 또 어디 있을까. 잭은 고개만 내밀어 전투기의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바탕에 넓게 펼쳐진 날개, 중앙에 자리한 매의 형상. 날개는 아테카만이 유일한 골디락스 존이라는 뜻이고, 매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했나? 그들의 애완용 앵무새를 위해 독수리를 몰아내고 집단 폐사시켰듯, 필요 없는 인간들을 경계 너머로 내쫓고 겉만 번지르르한 유토피아를 세운 이들이 할 말은 아니었다. 가식적이기도 하지.

 

잭 임마누엘 누스는 빌딩의 거친 틈을 붙잡고 기어오르는 동안 델타 메시아를 생각했다. 정부의 대가리가 호의호식하고 있는 메인 빌딩 앞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을 그. 값싼 배급품으로 배를 채우고 정제된 공업용 알코올을 술이랍시고 받을 그를. 이 꼭대기에 오르면 작전이 시작된다. 정부를 덮쳐버린 아포피스와 그 선두에 선 자신을 본 델타 메시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살아있을 줄 알았다고 눈물 흘릴까. 증오할까? 아니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지나쳐버릴까……. 날카로운 햇살이 선글라스 테를 감싸고 잭 임마누엘 누스의 왼눈을 물들였다. 탁한 홍채의 색이 태양 빛을 담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잭은 눈가를 움츠리면서도 태양에 가까이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날의 둘을 회상한다. 앙상한 몸으로, 같은 먼지를 묻히고 같은 누더기를 입었으며 아테카의 초원과 경계면의 길을 모두 꿰고 있던 때. 죽은 새의 깃털을 모아 베개를 채우고 쥐굴을 찾아 땅을 더듬거리던 모험 같은 생존기. 주린 배를 붙잡고 초원에 누워 빗물을 받아마시던 때를 생각한다. 델타 메시아의 어린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델타, 너는? 너도 이 태양을 보고 있어? 하늘을 직시하기는 해? 나는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는데.’

 

그 시각 델타 메시아는 여타 다른 군인들과 같이 열과 행을 맞춰 정렬해 있었다. 수십 달 동안 바뀌지 않은 작전명을 또다시 듣는다. 독수리 사냥. 그간 기생충처럼 파고들어서 귀찮게 하고 감히 유토피아를 모래로 파묻어버리려 하는, 괘씸한 집단. 태양의 은혜를 제 손으로 저버렸다는 평가에서, 그들이 얼마나 아포피스를 우습게 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델타 메시아는 그늘진 구석 자리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총책임자를 의식이라도 한 듯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열변을 토하는 작전 관리자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열한 정부군의 앞에 핀으로 고정된 흑백 지도는, 아테카와 그 인근을 제외하고는 새빨간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라는 뜻이었고, 아포피스들이 유랑하는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델타 메시아가 남몰래 생각하기에, 그것은 또한 아테카의 위대함을 되새기라는 뜻도 되었다. 델타는 사막이 얼마나 얼마나 넓은지는 몰라도, 적어도 아테카의 수십 배는 되리라는 걸 알았다. 웬만큼 머리가 돌아가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지도를 보라. 저런 꼴을 하고도 세계 지도라 이름 붙이다니…. 검은색 핀으로 표현된 아포피스와 흰색 핀으로 표현된 정부군이 지도 이곳저곳에 꽂혔다.

 

흑색과 백색 핀이 같은 장소에서 꽂힐 때마다 델타 메시아는 잭 임마누엘 누스를 생각했다. 만약 저곳에서 대치하는 이가 그와 자신, 단둘이라면…. 사라진 나를 궁금해하지 않은 당신이라면. 아마도 나를 잊었을 당신이라고 생각하면. 델타 메시아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군복 뒤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얗게 변한 손마디가 아려왔다.

 

“….”

 

메시아의 붉은 눈이 일순 왼쪽으로 굴러간다. 회의실의 벽이 미묘한 간격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력 공급 시설이나 수도관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뭣도 모르고 지도를 쾅쾅 내려치며 작전을 설명하고 있는 작전 권리자를 두고, 델타 메시아는 몸을 휙 튼다. 주변의 정부군도 이미 낌새를 눈치챈 건지 총책임자에게 무어라 소리 지른다.

 

“벽에서 떨어지십시오!”

 

마치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벽을 직격한 포탄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공간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벽에 군인 몇이 깔려 죽었다. 아포피스가 아테카 중심부까지 쳐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말만 들려왔다. 메시아는 마치 어렸을 때처럼 먼지를 뒤집어쓰고, 뻥 구멍이 뚫려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회의실 전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은 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로터가 거세게 회전하며 공기를 찢는 소리를 냈다. 투투투투투…. 어딘가 거대한 새가 날갯짓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 덜렁 내려와 있는 사다리에 매달려 바주카를 어깨에 짊어진 인영에 햇빛이 맺힌다. 델타 메시아가 일순 뒷걸음질 친다. 하늘 한중간에서, 태양을 등지고, 마치 흑점처럼 나를 응시하는.

 

잭. 잭이다.

 

“아포피스의 임마누엘이다!”

 

비명처럼 누군가 내지른 이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증오스럽고, 또한 사랑스러운 입매가 매끄러운 곡선을 그렸다. 구식에 분명 녹슨 것처럼 보이는 화기를 들고 있었으면서도 잭 임마누엘 누스는 자신 있어 보이는 얼굴로 반파된 메인 빌딩을 향해 뛰어내렸다. 이윽고 날카로운 총탄 날아가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델타 메시아는 자신을 끌어내는 누군가의 손길에 정신없이 무기고로 뛰었다. 잘 손질된 보병 자동소총에 스트랩을 연결해 어깨에 걸치고, 피스톨을 허벅지 권총집에 집어넣는 동안 델타 메시아의 머릿속에서는 온통 잭 임마누엘 누스가 짊어지고 있던 구식 바주카포와, 헬기에서 총열만 보이던 스나이퍼 라이플이 재생되고 있었다. 낡은, 아마 신세대가 도래하기 직전에 만들어졌을 무기들. 총신에 하얗게 쓰여있던 문구,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치가 떨리게 싫다. 손수 새겼을 게 뻔한 그 짧은 문장에 손이 다 떨렸다. 어떻게 그가 그것을 못 알아볼 수 있겠나. 별도 뜨지 않은 밤에, 그 문구를 몇 번이고 암송해준 델타가,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건 그들이 한 몸 불살라 불씨가 되리라는 각오였다. 아무도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아무도 백골의 위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자를 구원하는 대신에 죽은 자들을 망각해야 한다는……. 아포피스가 지른 불이 초원을 온통 태우고 있다. 마른 풀에 불이 옮겨붙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내에는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한다.

 

델타 메시아는 고아원에 입양됐던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잭 임마누엘 누스를 기다리기 위해 강둑에서 발을 담그고 있던 날. 불길한 까마귀 소리, 어설프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아 고아원으로 데려간 그들. 그 건물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입양된 것으로, 서류에 같은 이름의 보호자를 두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몰랐지만, 원장실을 청소하며 몰래 서류를 살핀 메시아만은 알고 있었다. 보호자 란에 필기체로 갈겨진 이름은, 지금 아테카의 총책임자의 이름과 같았다. 은혜나 보살핌 따위가 아니었다. 일부러 부실한 음식을 먹이고, 끝없이 움직이게 만들어 적합하지 않은 아이들을 솎아냈다. 말단 군인, 어쩌면 체스 말. 메시아는 임마누엘이 자신을 몇 시간 동안 기다렸을지가 궁금했다.

 

델타 메시아는 타고난 전투 센스가 좋았다. 전투가 힘으로만 승패가 갈리는 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메시아는 바로 앞의 적뿐만 아니라, 그 뒤의 서포터를 볼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이 취하는 진형을 알 수 있었다. 방아쇠 한 번에 아포피스의 표식이 피에 물들었다. 아주 간만의 실전이었지만 마치 매일같이 전쟁터에 선 것처럼 몸이 움직였다. 그런데 죽이기가 쉽지 않았다. 머리를, 목을, 심장을 노려야 하는데, 마치 그 위치를 쏠 수 있는 건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듯 총구가 아래로 겨눠졌다. 또한 이 자들의 시체를 지나칠 누군가가 자꾸만 생각났다. 델타 메시아는 결코 그에게 미안해하지 않겠다 몇 번이고 다짐했는데.

 

“헉, 허억, 하….”

 

결국 팔을 늘어뜨리고 잠시 멈춰 선 델타가 머리카락을 거칠게 넘긴다. 오른눈에 남은 흉터가 지끈거렸다. 안대 위로 손바닥을 올려 꾹 누르자, 흐려졌던 시야가 천천히 돌아온다. 왼쪽으로 꺾인 복도 끝에서 검붉은 인영이 보인다. 바주카포는 어디다 내버린 건지 짧은 자동권총만 손에 쥐고 있는 잭 임마누엘 누스다. 그가 선 위치까지 불과 5m가량. 잭도 델타를 알아본 것인지 그곳에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조준하면 필히 사살할 수 있다. 아포피스의 임마누엘은 자신과 같은 말단도 아니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 땀이 뚝뚝 흐른다. 메시아의 눈이 흔들린다. 어느새 올바른 방법으로 견착된 총이 일직선을 그린다. 그러나 가늠자가 흔들려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었다…. 델타 메시아는 잭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 사념을 깨닫자마자 메시아는 몸을 돌리고 도망친다.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전투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쫓기는 피식자처럼. 한 줄기 바람처럼 임마누엘의 헛웃음이 메시아의 귓바퀴에 따라붙었다.

 

멀어져가는 푸른빛 머리카락을 보며 검은 뱀은 자신의 권총을 들었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맞추어, 멀어지는 그를 끝까지 바라본다. 라이플과 달리 권총에는 망원 조준경이 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잭은 델타 메시아를 따라가지 않았다. 무거운 워커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비명 소리와 악에 받친 목소리. 그 시끄러운 공간에서 아주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은 채로, 잭은 다만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델타 메시아는 아마 자신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추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잘된 일이다. 자신에게도. 입술을 짓씹으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발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심장 소리와 동화된 듯 걸음이 꼬일 듯 조급해진다. 결국 뛰듯 달려간 잭 임마누엘 누스가 얼떨결에 그와 마주한 정부군 하나를 향해 총을 갈겼다.

 

아포피스는 오래 지나지 않아 후퇴했다. 격납고에서 탈취한 헬기 대신 버리고 간 아테카의 헬기는 몇 달 전 순찰에서 폭풍을 만나 돌아오지 못한 헬기로 밝혀졌다. 아포피스의 사망자는 아홉 명 남짓에, 부상자 측정 불가. 전부 데려간 모양이다. 그에 반해 아테카 측은 초기 대처가 미흡해 피해가 컸다. 더군다나 회의실에 거의 모든 인원이 몰려 있었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그곳에서만 죽은 이가 손발을 다 합쳐도 꼽을 수 없는데, 회의실에 느긋하니 앉아있던 총책임자는 잔해에 생채기만 났단다. 사지 멀쩡함에도 병원으로 실려 갔다던가…. 델타 메시아를 비롯한 정부군은 황폐해진 메인 빌딩 12층을 청소하며 인력으로 소모되고 있었음에도. 함께 시신을 수습하고 먼지를 털어내던 동료가 델타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델타 메시아, 너도 이번 성인식 목록에 있지?”

“네. 3부대 인원들과 함께 성인식을 치른다고 들었습니다.”

“아포피스 걔넨 어떻게 알고 성인식 직전에 이리 난장판을 치니. 아쉽지 않아? 그래도 아테카 국민이 살면서 가장 호화롭게 지낼 수 있는 날인데.”

“…. 괜찮습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떨궈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쳐 맨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잔 생각이 사라진다. 사실은 못내 아쉬웠다. 말로만 듣던, 가난하고 한미한 이들이 유일하게, 일생에 단 한 번 고귀해질 수 있는 하룻밤. 하얀 연회복을 차려입고, 마치 과거의 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당위성을 주는 날. 그 속내는 이 날을 죽을 때까지 추억하며, 그러한 기회를 준 국가에 평생 헌신하라는 것이었지만 부족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하등 의미 없었다. 속아도 좋으니 단맛에 취하고 싶은 것이다. 아테카의 부호가 복원했다는 고대 원형 극장의 고풍스러움. 곳곳에 탐스럽게 핀 장미꽃과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는 샹들리에. 정원과 테라스와 장식용 건물들. 그것을 잇는 상아색 다리와, 인공 연못…….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매 상상마다 더욱 아름다워진 그 공간. 그곳은 절대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며, 성인식을 치른 이들은 그저 웃을 뿐,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어 모든 성인식 이전의 아이들에게 더 큰 환상을 심어주었다. 델타 메시아는 어쩌면 자신이 속한 이 정부가 완전히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날개가 뒤로 꺾인 채 바깥으로 옮겨지는 육식성 조류나 병들고 못나진 새들. 어느 순간 사라져 무수한 소문으로만 소식을 알 수 있는 사람들. 정말로 사막으로, 이름 없는 땅으로 도망친 건지, 혹은 죽은 건지. 그게 아니라면 아테카의 수많은 지하 건물과, 평범한 이들은 알지 못하는 곳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죽은 이의 눈을 감겨주며 델타 메시아는 도서관의 책에서 봤던 어느 예술 작품을 떠올린다. 차가운 돌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진짜 생명의 요동.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채 온몸을 비틀고 있지만, 두 눈만큼은 단단히 뜨여진 채 위를 바라보던 이름 모를 사람의 형상 말이다. 이제는 금서로 지정되었을지 모르는 도록을 회상하며 메시아는 사진 아래 작게 쓰여 있던 제목을 떠올린다. 빛을 등진 심장. 조각을 묘사하던 모든 문장을, 지금도 외울 수 있었다. 밑에서 두 번째 줄에서 신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설명하며, 작가는 예레미야서를 인용한다. 그래.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그러니 델타 메시아도 잭 임마누엘 누스를 위해 울지 말아야 했다. 손끝에 죽은 자의 피부에서 나는 냉기가 옮은 듯하다. 싸늘한 손가락을 감싸 피가 통하도록 마사지하며, 메시아는 상관에게 보고하고 숙소로 향한다. 하루가 유독 길었다.

 

조명을 켜도 어두운 방에서 장비를 벗어 두고, 다 해진 군복을 침대 아래 쑤셔 넣는다. 하얀 티셔츠에서 향 냄새가 났다. 커튼을 굳게 치고 창문을 살짝 연 델타가 창문 아래 벽에 기대앉았다. 델타 메시아는 임마누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숲을 불태우는 불씨가 번지고 번져 거대한 산불이 되었을 때, 불씨 하나하나는 그저 하나의 산불이 된다. 맥락도 개체도 없이 뭉개져 조각난 명예만이 남는다. 메시아는 감히, 잭 임마누엘 누스의 이름 석 자가 결코 역사책에 쓰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 아테카가 무너진다 한들 아포피스의 시작을 언급하는 한두 줄에서 묘사로나 나올까…. 끝나지 않는 모래의 침식에 옛 국가들이 백기를 들고, 수만의 해골이 모래 30m 아래 잠든 지가 백 년이고, 아테카가 돔을 만들어 절대 군부 시대를 선언한 지가 반백 년이다. 그 사이 오십 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아테카의 총리도 모를 것이다. 누가 자유를 외쳤을까. 누가 몸 뉠 자리와 빵과 물을 외쳤을까. 누가…. 이름 없는 자들을 이름 없는 땅으로 몰아낸 건지 정말 모르는가, 잭? 아니지. 당신은 알고서도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을 사람이지. 이 어린 독수리야. 날개 달린 뱀아. 그래서 델타 메시아는 임마누엘을 증오했다. 때로는 연민했고, 때로는 경멸했다. 모래에 가려진 발자국을 더듬어 걸어가는 그가 영영 제게서 멀어질까, 델타 메시아는 오직 그것만이 두려웠다.

 

한숨을 길게 내쉰다. 몸 곳곳에 묻은 피가 딱딱하게 굳어 부스러지는 게 불편했다. 결국 델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피 묻은 손을 대강 물로 씻어내며, 더러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밝은 청색 머리카락이 먼지 탓에 탁해졌다. 물을 몇 번이고 묻혀 씻어내도 축축해질 뿐이었다. 영혼에 엉겨 붙은 악은 씻어낼 수 없기 때문인가? 눈 아래가 짙었다. 고되었다. 표정이 없어 근육이 다 빠진 것 같은 얼굴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결국 세면대를 채우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에 얼굴을 담가 입을 막아버린다. 보글보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공기 방울만이 델타 메시아가 아직 말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작게 난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에 물에 젖은 바닥이 희미하게 반짝이더니, 곧 그마저도 구름에 가려버린다. 마침내 고개를 든 델타가 창문 밖 하늘을 쳐다보며 실소를 흘렸다. 가는 햇빛이 델타 메시아의 볼에 키스한다. 그러나 창백한 빛은 온기를 띠지 않는다. 인간을 외면한 신처럼, 델타 메시아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햇빛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간다. 종이 세 번 울린다. 집합 신호다.

 

먹구름 사이를 새로 탈취한 헬기로 지나치며, 잭은 머리에 쓴 소음 차단 헤드셋을 꽉 붙잡았다. 능숙지 않은 운전에 고전하는 동료를 놀리다가도 여차하면 떨어트린단 농담에 식은땀 달고서 응원한다. 죽은 이가 많지도 않았고, 새 헬기도 구했고. 기분이 좋았다. 델타 메시아를 봐서 그런 것도 맞았다. 잭도 종소리를 듣는다. 아테카의 종소리는 시대를 한참 거슬러 간 중세의 것이었다. 교회의 첨탑 꼭대기에 매달려있을 법한 중후한 소리. 아마 델타는 이 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 잭은 델타가 못내 안타까웠다. 그 냉엄한 얼굴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를 이곳으로 빼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땅 아래 매장된 이가 방향을 몰라 아래로,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꼭 그처럼 잭은 델타가 안타까웠다. 하늘 위에서 보는 땅은 얼룩덜룩했다. 유일한 초지인데도 볼썽사나웠다. 과거의 찬란한 녹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테카는 높은 담을 세우고, 유리 돔을 만들어 숨기고 있지만, 그들도 아주 느린 속도로 사막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지구에 다시는 초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여? 초원이 저번보다 줄었어.”

“그래, 수도를 끊고 초원에 물을 쏟아부어도 풀은 다시 자라지 않겠지. 델타가 걱정이야. 아테카의 정부군은 별 잡일까지 다 한다지? 하다 하다 풀까지 심으라고 하면 어떡해?

”네가 그럴 처지가 아니다만.“

”에이. 걱정은 원래 사서 하는 거야. 몰랐어?“

“허.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아포피스도 그 애 때문에 들어온 거라면서.”

 

상공 4700m에서 울린 목소리. 정작 그 주인은 담담하다. 잭 임마누엘 누스의 표정만 굳었다. 머리에 쓴 검은색 헤드셋을 벗어 손에 쥐며, 그는 귀가 터질 듯한 소음 속에서 웃는다. 씨익 미소 짓는 얼굴에 동료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난 내가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어.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으니까. 태양이 어떻게 우리를 말려 죽여?”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닌데….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래. 곧 도착하니까 헤드셋 다시 쓰고.”

 

헬기가 다시 모래가 굳어 생긴 계곡 사이로 들어선다. 비교적 멀쩡하게 생긴 빌딩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옥상에 대충 칠해진 H 표시에 맞춰 헬기를 착륙시키자마자 잭은 뛰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동료들이 그를 맞이한다. 헬기 운전수까지 모두 자리하자, 벽을 철거해 텅 빈 한 층에 도열한 아포피스가 허름한 지도 하나를 중간에 두고 저마다 계획을 말한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아테카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부를 전복시키고 주도권을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할 줄을 알아도 시도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모두가 죽음을 불사하고 있다. 이것은, 아포피스를 사막의 유령으로 알고 있을 아테카인에게 자유와 발버둥을 가장 강력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새롭게 뒤를 이을 수 있도록. 그들의 표정은 모두 결연하다. 어딘가 신성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잭은 그들 또한 평범한 인간임을 안다. 잭이야말로 이 작전을 실행하게 된 이유이자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물임에도.

 

회의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잭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천사상을 들어 꾹 쥔다. 주먹 사이에 가뒀다가, 공중에 던졌다 다시 잡는다. 엉성한 표면이 손이 많이 닿아 반질거렸다. 메시아가 어릴 적 나무로 조각했던 천사상을 모방해 만든 것이었다. 잭 임마누엘 누스는, 단지 델타 메시아의 세상을 바꿔놓고 싶었다. 단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그 모든 것을 손수 제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토록 오래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척 제 갈 길만 걸은 걸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잭은 어쨌든 최선을 고른 것뿐이다. 그것도 델타 메시아만을 생각한 답을. 검붉은 장미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근래 바삐 움직였다 보니 신경을 못 썼기에 그렇다. 잭은 얇은 장미 꽃잎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문질렀다. 상아색 천사상의 둥근 머리에 잭의 입술이 닿았다. 잭의 손에서 옮겨간 온도가, 잭에게는 마치 델타 메시아의 온기처럼 느껴졌다. 그의 심장은 십몇 년 동안 그를 향해 뛰고 있으니, 아주 모순인 말은 아닐 것이다.

 

“너의 성인식을 축하해주러 가야지. 나는 영원히 네게 하나뿐일 텐데.”

 

다른 누구보다도 네게 가장 각인되고자 약간은 떼를 쓰기도 했다. 아테카의 침습 일정을 모두 델타의 성인식이 맞춰 정했으니까. 천사상을 챙긴 잭이 방을 나선다. 뒤로 꽃잎이 모두 떼어내져 줄기만 남은 장미꽃이 보인다. 사막을 지나가려면 노을이 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따각. 데구르르, 딱.

 

막 잠이 들었던 델타 메시아가 이질적인 소리에 눈을 뜬다. 또 전등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건가? 아니면 수도관이 망가져서? 의문이 이어지기 전에, 다시 명확한 소리가 들린다. 창문 쪽이다. 열어뒀던 창문 틈으로 동그란 조약돌이 데굴 굴러 바닥에 떨어진다. 델타는 불현듯, 결코 있을 수 없다 생각한 가정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불을 걷어내고 다급히 커튼을 열어젖힌다. …. 잭 임마누엘 누스가, 까만 망토를 둘러쓰고, 창턱을 잡아 매달려있었다.

 

“…. 안녕, 천사 아가씨.”

 

아무것도 아닌 양 웃는 얼굴에 헛웃음조차 나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로 밝은 달이 떠 있었다. 반달보다 약간 얇은 그믐달이 희미한 달빛을 내리고 있었다. 순찰을 도는 군인들 호루라기 소리와 에타카 전역을 비추는 등대 불빛이 이렇게나 가까운데. 그 모든 태양이 비추지 않는 그림자에서 겨우 몸을 숨기고 있는 잭 임마누엘 누스라니.

 

“너. 제정신이 아니로군. 그렇지? 네게 정녕 제대로 된 상식이 박혀 있는 자라면, 지금 이곳에 있지는 못할 테니.”

“언제부터 내게 제정신을 요구했다고 그래…. 못 본 새에 나에 대해 많이 까먹었나 봐, 메시아. 내가 싫어졌어?”

“….”

“와, 정말이야? 상처인데.”

 

잭 임마누엘 누스는 열려 있는 창문을 붙잡고 방 안으로 들어선다. 창문 가까이 붙어있던 델타 메시아의 허리를 감싸 뒤로 물러나게 만들면서. 당황한 낯이 선연한 얼굴을 보고도 특유의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숨이 불규칙한 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차가워진 메시아의 손을 붙잡아 손등에 입 맞춘다.

 

“나의 천한 손이 이 거룩한 자리를 더럽혔다면- 아, 이미 입 맞췄으니 허락을 구해도 의미 없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언젠가 초원 끝을 떠돌다 찾아낸 유일한 소설책.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었던 신분인 둘이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델타는 이다음 대사를 알고 있다.

 

“착한 순례자여, 그대 손을 너무 탓하지 말아….”

 

델타는 결국 잭을 내치지 못한다. 잭은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비웃는다. 델타 메시아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사랑스러운 미소가 단지 애정을 담고 있다 생각할 만큼, 델타 메시아는 순진하지 않았다…. 잭이 그녀를 이끈다. 허리를 숙이고 귓가에 소곤거린다. 마치 연인의 밀회처럼. 창밖을 향해 그녀를 끌어당기는 잭 임마누엘 누스는 불온한 악마처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결국 델타 메시아는 빛이 닿지 않는 그늘을 걷게 된다. 둘은 사박거리는 풀을 밟고 건물을 돌아 좁은 뒷골목을 걷는다. 걸을 때마다 잭이 덮은 망토에서 금빛 모래가 떨어졌다. 깔끔한 일상복을 입고 있는 메시아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몰랐음에도, 왠지 그의 망토 자락을 붙잡고 싶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원형 극장. 아테카는 과거의 잔해를 독점하기 위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폭탄으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곳은… 마치 전해 듣기만 했던 성인식용 원형 극장과 똑같이 생겨 있었다. 상상으로만 남겨두었던, 물결치는 기둥과 매끈한 바닥과 인상적인 울타리. 무성히 진 넝쿨. 장미는 피어있지 않았지만, 델타 메시아는 모든 환상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아름답네.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았나. 분명 다 없앴다고 했는데….”

 

풍경에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 잭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깔린 돌을 툭툭 밖으로 치우며, 델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델타가 시선을 내민 손으로 옮기고는 묻는다.

 

“무슨 뜻이지?”

 

작게 머금었던 미소가 녹아 사라진 곳에 대신 자리한 건 약간의 경계. 잭은 눈을 굴린다.

 

“아가씨, 보통은 춤을 추자는 뜻으로 해석하지? 이런 곳에서, 남녀 둘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면 말이야. 싫으면 안 잡아도 돼. 하지만 너도 내게 미쳐있다는 것쯤 알고 있어. 나를 잊은 적 없잖아. 그렇지? 내가 네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아주 잘 안다는 듯 말하는군, 잭 임마누엘 누스. 네가 나를 못 본 지가 몇 년인지는 아나? 내가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지를 알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거지? 내가 네게 응했다고 해서, 이런 것까지 허락할 것이라 지레짐작 마라.”

“잘 알지. 내가 너를 어떻게 몰라. 네가 어떤 사람일지, 모든 경우의 수를 매일 같이 상상해왔는데.”

 

델타의 숨이 먹혀 들어간다. 등 뒤로는 높은 펜스가 가로막고 있다. 뒤로 손을 뻗어 차가운 철을 매만진다. 진정하려 숨을 참았다 느리게 내쉬지만, 고작 문장에 온 심장이 요동친다. 불공평하다고 느낄 정도로.

“거짓말하지 마….”

 

결국 델타 메시아는,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불가항력에 의해 무른 속내를 내비치고 만다. 딱딱하게 굳혀왔던 말투가 어느새 뭉그러져 끝을 흐린다. 손에 힘이 풀린다.

 

“거짓말하지 마. 네가 정말로 나를 생각했다면,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네가 네 안에서 나를 만들어 살아 숨 쉬게 했다면, 정말로 살아있는 내 앞에 나타났어야지. 일찍이 그 말을 내게 했어야지.”

“미안. 미안해, 메시아. 네게 좀 더 완벽한 나를 주고 싶었어. 응? 미안해, 우는 거야? 울지 마….”

 

잭이 안절부절못하고 가까이 다가와 델타의 뺨을 조심히 붙잡는다. 힘 하나 들지 않은 손길에도 델타는 기꺼이 얼굴을 맡기고, 그에 따라 고개를 든다. 투명한 물이 어린 눈동자 옆에 짧은 입맞춤을 남긴 잭이 다시 말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청할게. 델타 메시아, 나에게 당신과 춤을 출 영광을 주겠어?”

 

잭이 한 걸음 물러서며 뒤늦게 델타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델타 메시아는 어둠에 묻힌 까만 머리칼을 보고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낭만은 생각을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그는 대답하는 대신에 잭의 손을 맞잡고 원형 극장의 중심으로 움직인다.

 

“…. 그러고 보니, 내 옷은 무도회에 적합하지 않은데.”

“그럼, 이렇게 하자.”

 

잭이 자신의 긴 망토를 벗어 델타의 어깨에 걸쳐준다. 꼼꼼히 매만져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다. 잭에게도 무릎 아래로 한참 내려오는 망토는, 델타 메시아에게 걸쳐졌을 때 바닥에 끌리게 된다. 옷이 더러워지자 당황한 낯으로 망토 자락을 껴안은 델타를 향해 웃은 잭이 그의 손을 잡아 망토를 놓게 만든다.

 

“드레스 같아. 멀리서 보면 분명 그렇게 보일 거야. 아름다워.”

 

음악 없는 무도회가 시작된다. 하지만 바람 소리는 바이올린 켜는 소리가 되고, 모래 날아가는 소리는 윈드차임처럼 들린다. 배운 적 없는 스텝을 밟으며 둘은 어정쩡한 춤을 춘다. 멈칫거리다 잭의 발을 밟을 뻔하기도 하고, 델타가 잭의 손에 휘청이기도 한다. 끝내는 가만히 서 서로를 꼭 안기만 한다. 푸스스 흩어지는 웃음소리. 아하하,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 잭 임마누엘 누스는 델타 메시아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마른 풀잎과 쇠의 냄새를 맡는다. 델타 메시아는 잭 임마누엘 누스의 옷깃을 손으로 잡고는, 연한 장미꽃 냄새가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델타가 입을 열려 고개를 들자, 잭이 그에게 더욱 파고든다.

 

“…! 임마누엘?”

“메시아. 다음 해가 뜬 한낮에 아포피스 전원이 아테카로 진격할 거야.”

 

느닷없는 기밀 정보에 메시아의 몸이 굳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놓고 얘기하지. 잭, 임마누엘. 놓으라고 한 것 안 들리나?”

 

잭은 메시아를 더욱 세게 껴안는다. 움찔거리지도 못하게. 그러고는, 메시아가 고개를 돌릴 수 없이 귓가에 대고 고해를 이어간다.

 

“들어. 들어야 해. 이번에는 장난 같은 거 안 쳐. 죽일 수 있는 이를 놔주지도 않을 거고, 메인 빌딩만을 겨냥하지도 않을 거야. 그야말로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말이야.”

 

잭은 곧 작전이 시작됨을 고한다. 이것은 아포피스의 최고 기밀 유출이지만, 배신은 아니다. 잭은 델타가 이것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너는 나를…. 그래. 사랑하니까. 오해하지 못할 정도로. 겨우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 델타는 잭을 올려다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있다. 잭이 손을 뻗어 정리해주려 하자, 메시아는 도리어 잭의 안으로 파고든다. 손대지 못하도록.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하지만 심장 소리만은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게. 얇은 옷 너머로 피부 아래 뛰는 심장이 느껴진다. 잭의 심장은 델타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부비며 델타 메시아 또한 고해한다.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한다, 임마누엘. 그러나…. … 너도 알고 말한 것이겠지. 그러니 이것만을 고백하겠다. 나는 네게 내 심장을 내어주었으나, 영혼만은 내어주지 않겠다. 아테카의 델타 메시아는, 네 심장이 멈추는 날 여느 군인들과 함께 환호하겠지……. 그래도 괜찮나? 네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생각이느냔 말이다.”

“응. 너를 후회하지 않아. 그런 적 없어.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고. 그러니, 전부 듣고 기억해놔. 네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 알아. 다만, 알리려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너에게만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델타 메시아는 얼어붙은 자세 그대로 잭 임마누엘 누스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듣는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잭의 저의를 모르는 채로, 델타에게 역사가 새겨진다. 문장을 끝맺은 잭이 짧게 델타의 이마와 안대 위, 코끝과 볼에 입맞춘다. 델타는 그의 눈을 볼 수 없었으나 어떤 의미로 그러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델타 메시아가 잭의 옷깃을 잡고 끌어내린다. 허억, 숨 터지는 소리가 곧 델타의 입술에 막힌다. 건조한 입술을 타액으로 적시고, 목이 뒤로 젖혀져 아린데도 눈을 꽈악 감고 매달렸다. 곧 델타의 목덜미를 감싼 잭이 키스에 응했다. 아직 달조차 지지 않은 밤이었다. 여린 살을 씹고 핥아 열이 피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눈을 뜨는 이가 없었다. 눈 감은 자들에게 태양은 영원히 떠오르지 않으므로.

 

방으로 돌아온 델타 메시아는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어느새 방이 파란빛으로 물든다. 메시아는 비척이며 창문에 몸을 붙인다. 해가 뜬다. 뜨는 해는 지는 해와 같은 색을 하고 있지만,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어디선가 비단 앵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고 여리지만, 확실하게 아침을 불러오는 소리이다. 메시아가 파리한 얼굴로 미끄러져 바닥에 눕는다. 골반께가 불편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엉성한 천사상이 있었다. 델타 메시아가 나무로 깎곤 했던 조각과 같은 모양이다. 델타는 고심한다. 이것은 이 밤을 잊지 말라는 선물인가 혹은 지난날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인가.

 

“너를 잊으라는 건가? 혹은 영원히 잊지 말라고? 잭 임마누엘 누스, 너는 항상 내게 의문을 남기는군.”

 

다시 종이 세 번 친다. 집합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전투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델타 메시아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포피스는 잭이 델타에게 말했듯 아테카 중심지로 진격한다. 몇 없는 헬기와 전투기를 몰고, 아껴뒀던 화기를 전부 꺼냈다. 담으로 돌진해, 모래 폭풍을 몰고 아테카를 에워싼다. 적의 본거지에 직접 들어가는 건 패를 전부 버리는 것과 같다.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전쟁터인 이름 없는 땅을 포기했다는 건.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불씨를 지펴 산불을 일으키는 것. 태양에 닿는 불을 일으키는 것이다. 교묘하게 시민들을 향하지 않는, 다만 그들의 심장에 불을 옮겨 붙이기 위하여. 아포피스는 직접적으로 시민을 해하지 않지만, 아테카는 시민들이 휘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대를 투입한다. 그들이 아포피스의 얼굴을 보고, 싸움의 장면을 보는 것을 금지한다. 없는 인력을 빼내 창문과 문을 닫고 커튼을 쳐 숨죽이게 만든다. 잭 임마누엘 누스는 그것을 비웃는다. 이제 의문이 피어오를 것이다. 아포피스는 이름 없는 귀신이 아니다. 땅 없는 유랑자가 아니다. 그들 또한 인간이며 태양을 옥죄는 뱀이다. 실체를 가진 혁명은… 비록 나약할지언정,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혈관에서는 피가 흐르므로.

 

델타 메시아는 그 모든 꼴을 눈앞에서 본다. 그는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기회가 온다면 벤다.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구르고 뛰어 아포피스의 총칼을 피한다. 그러나 델타의 눈은 내내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붉은 기가 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찾고 있었다. 태양의 흑점을 찾고 있었다. 잭 임마누엘 누스는 전투의 중심에 있다. 두 개의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확성기 주변에서 군대와 대치하다, 기둥을 타고 오른 모양이다. 검붉은 망토가 바람에 날리며 기둥을 감쌌다. 마땅히 잡을 곳도 없을 텐데, 총탄을 피해 날렵하게도 움직이는 잭은 꼭 거대한 뱀이 기둥을 휘감는 것처럼 보였다. 높이 올라갈수록 시선은 그에게 꽂힌다. 그 누구도 잭 임마누엘 누스를 보지 못했다 말하지 못하도록….

 

거리가 멀어 잭의 이목구비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도 델타 메시아는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감히 알 수 있었다. 나의 악마께서는, 분명 아테카 전역을 내려다보며 웃음 짓고 있을 테다. 입꼬리로 완벽한 곡선을 그리면서. 델타 메시아는 참담해졌다. 그는 오늘 죽는다. 죽을 것이다. 설령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해도, 그는 여기서 제 몸을 뉘고 영원한 잠에 빠져들 생각인 것이다. 잠들었다 깨어나는 아포피스처럼… 한 몸 바쳐 불사신의 영원함을 알리기 위해. 죽어간 모든 이들이 언제라도, 언젠가라도 돌아올 것을 알리기 위해. 델타 메시아는 그제야 깨닫는다. 잭 임마누엘 누스는 델타 메시아에게 망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총신을 붙잡고 있던 손이 떨려온다. 어느 순간부터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대신해서, 그를 향해 달음박질치는 것과 같이. 총을 몸에 묶어두고 있던 스트랩이 헐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델타 메시아는 어딘가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정신으로 팔을 휘저어 스트랩을 벗어던졌다. 부서진 땅 위로 무거운 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이어진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것은 폭음과 맞물려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다. 부서진 담 때문에 모래 폭풍이 끊임없이 불어닥쳤다. 자랑스러운 아테카의 장미꽃이 먼지에 더럽혀진다. 그 아우성 속을 델타 메시아는 헤쳐 지나간다.

 

기둥 밑으로 군인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탄알이 다 떨어진 듯 총을 받치고만 있는 이들도 있었고, 조준만 하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밤을 처음 본 인간처럼 굴었다. 싸울 의지를 잃은 아테카의 군대를 뒤로하고, 델타 메시아가 기둥을 올랐다. 기둥을 두 손으로 잡고 몸을 위로 날려보낸다. 발을 끼워넣어 몸을 고정하면, 잭 임마누엘 누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델타 메시아를 바라보고 있다. 취기에 흐려진 붉은 눈이 그를 응시한다.

 

“….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 잘 봤어? 나-”

“안아줄게. 이리로 와, 잭.”

 

가타부타할 것 없이 제 할 말만 한 메시아가 밤을 끌어 내린다. 지독한 태양 아래 말라가던 식물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던 다정한 암흑을. 팔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게 힘줬던 몸을 아래로 늘어트린다. 잭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당황한 듯 이를 악문다. 하지만 그는 떨어지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추락과 함께 땅 아래 먼지가 번진다. 아둔한 이들이 눈이 가려진 틈을 타 델타 메시아는 총 끝으로 잭을 위협하며 아테카 외곽을 향해 움직인다. 그들은 싸우지만, 그것은 꼭 왈츠를 추는 것처럼 보인다. 바깥으로, 경계 안 아슬한 곳으로. 둘만의 비밀을 숨겨둘 으슥한 곳으로.

 

“델타 메시아, 생각보다 더 화끈하게 구네.”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말하기야?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 나 슬퍼.”

“간교하게도 구는군. 알아. 네 뜻쯤.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지. 네가 내 불안을 고려하지 않았듯이. 그러니 총을 들어라, 잭 임마누엘 누스.”

 

메시아는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악독한 익살쟁이인 그를, 제 목소리로 한 겹 덧입힌다. 눈 뜬 채로 보낸 밤은 지독했다. 델타 메시아는 최종적으로 사랑에 무릎 꿇었다. 임마누엘이 죽어야 한다면 그건 제 손에 의해서야 했다. 그 또한 이것을 원하리라는 걸 알았다.

 

“너는 내 손에 죽는다. 그러나 정정당당해야 옳겠지. 네가 나를 죽인다면 너는 살 테고, 내가 너를 죽인다면 내가 살 테다. 망설이지 마라, 잭. 나는 진심이니까. 너도 진심을 보여.”

 

델타 메시아의 총은 떨리지 않았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맞춰, 정중앙에 임마누엘이 향하도록 했다. 임마누엘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총집에서 총을 꺼내 메시아에게 겨눴다.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메시아, 나는 네 그런 면을 정말로 좋아해. 알고 있지?”

“그래. 그러니 이제 입 다물어라.”

 

델타 메시아는 내내 우습다는 생각을 한다. 승자가 뻔한 게임인데, 참여자 둘 모두가 진심처럼 임하는 꼴이라니. 이런 게임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승자도, 패자도, 관람자도 기만 당하는데. 델타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얹어진다. 잭은 네 손가락이 모두 그립을 붙잡고 있었다. 메시아는 그걸 보고도 못 본 체 했다. 거기까지가 네 진심인 건가, 하고 말았다. 방아쇠를 누르는 데 많은 힘은 필요하지 않다. 아주 살짝.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처럼. 두 번.

 

탕, 타앙. 깔끔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자 잭의 몸이 뒤로 허물어진다. 망토 위로 넘어진 잭이 몸을 웅크렸다. 델타 메시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반동에 어깨가 저렸다.

 

“델타. 델타아. 이쪽으로 안 와줄 거야?”

 

숙인 머리 너머로 아린 목소리가 들렸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다. …어딜 맞췄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꼭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모두 까먹을 듯 머리가 멍했다. 델타 메시아가 휘청이며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기었나? 걸었나? 뛰었나?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느새 온기가 새어나가는 몸을 붙잡고 있었다.

 

“울지 말래도….”

“그러는 너도 울고 있다. 나만 울지 말라는 건 너무 치사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볼이 온통 젖어 있어, 메시아는 다급히 손바닥으로 잭 임마누엘 누스의 볼을 훑어주었다.

“너도 울지 마라.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내가 후회하게 하지 말아줘. 응? 부탁이니까…….”

 

어린애처럼 목덜미고, 쇄골이고 위치를 분간하지도 않고 머리를 비비고 훌쩍인 델타 메시아가 그를 끌어안는다. 강한 체한 건 언제 벗어던졌는지 모르겠는 채로. 잭의 손이 메시아의 등에 툭 얹어진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흘러나와 둘의 옷과 땅을 척척히 적셨다. 델타는 자신의 잭의 어디를 쏘았는지도 모르면서 피가 흐르는 곳을 틀어막았다. 잭이 무언가 말하려다 쿨럭인다.

 

“말! 하지 마. 그냥… 있어.”

“내 유언 안 들으려고?”

“너, 너, 죽는 거 아니잖아.”

 

델타 메시아는 순간의 온기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피가 손을 물들이고 있는데도 놔주지 않았다. 이어진 말이 전무했음에도 잭 임마누엘 누스는 그 말의 요지를 알 수 있었다. 잭은 죽으려고 죽는 것이 아니므로. 아포피스가 남아있고 아테카의 부정이 존속하는 한 잭 임마누엘 누스는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 지극히 신성을 띠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유언을 말하면 모순이 된다. 죽지 않은 자의 유언은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델타 메시아는 영원히 잭 임마누엘 누스의 유언을 모르는 채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천사상이 바닥으로 떨어져 임마누엘의 피에 적셔진다. 금세 피를 머금은 천사상은 장밋빛을 띤다. 낭만적이게 말해 그렇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나중에… 언젠가는. 꼭 들려줄 테니까.”

 

온기가 밀려나간다. 몸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바깥으로. 혈관을 따라 흘러나온 피를 따라. 땅에 흡수된다. 고요해진 잭 임마누엘 누스의 몸 위로 제 몸을 겹친 델타 메시아가 가는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피부가 떨릴 뿐이다. 붉은 눈 하나가 동시에 감겼다. 몸이 떨려, 추워, 춥다고, 중얼거리며 망토 하나로 몸 두 개를 덮었다. 저 멀리서 잭을 알아본 아테카의 군인이 소리친다.

 

“잭 임마누엘 누스가 죽었다!”

 

웅성이는 소리가 번진다. 부산한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다가온다. 메시아는 내내 그 자리에 움츠리고 누워있었다. 오지 마. 오지 마. 기다려. 아직은 아니야…. 부상 당한 줄 알고 그의 팔을 군인 하나가 끌어당긴다. 힘 없이 딸려 올라간 그가 팔을 비틀어 빼낸다.

 

“다친 게 아니다. 건드리지 말아. …. 그래, 잭 임마누엘 누스가, 죽었으니, 시신이나 가져가도록.”

 

그의 눈이 하늘로 향한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노을이 태양과 닿아있었다. 지평선 위쪽으로는 까만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이제 델타 메시아는,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불어넣어야 하나?

 

흔히 영원을 상징하던 태양은 시대를 불문하고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태양은 때로 다정했으나 동시에 잔혹했고, 이에 반하는 이들은 필히 어둠이 되어야 했다.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 하나 울지 않는 저녁에 살아남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델타 메시아는 사라진 집을 향해 걸어갔다. 둔탁한 종소리가 또다시 울린다. 하나, 둘, 셋.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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