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꿈이 빛나는 순간

마기로기 드림 : 파우히로

“시합에 나가는 건 나인데, 왜 슬레인이 더 긴장하고 있는거야?”

히로세 카오리는 눈앞에 있는 파우스트 슬레인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지금 언제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지켜보던 친구는 평소에 볼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카오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평소에 보이던 여유는 온데간데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던 파우스트 슬레인은 팔자눈썹을 만들며 카오리의 손을 잡았다.

“그야, 오늘 중요한 시합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다른 시합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잖아.”

카오리는 친구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히로세 카오리에게 모든 시합은 중요했다. 시합의 다른 이름은 찾아온 기회이기도 하니까. 평소에 갈고 닦아온 노력과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기회에 도전하는 것. 카오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허투로 날릴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 지금의 히로세 카오리는 그렇게 붙잡은 기회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상대팀이 전국 대회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들었어.”

게다가 오늘 열리는 경기는 전국 대회에 나가는 진출권을 둔 시합이었다. 진출권을 놓고 겨루게 되는 만큼 상대도 강한 것은 당연지사. 당연한 사실이란 걸 알면서도 파우스트 슬레인은 초조해했다. 파우스트 슬레인은 알고 있었다. 영웅이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는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이란 사실을. 하지만 그렇다고 시련을 마주하는 영웅이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설령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해도 시련은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승리를 거며쥐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마주해야 했다. 도전해야 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초조해 하고 마는 것은 히로세 카오리가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카오리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아니, 정정하자. 파우스트 슬레인이 초조해 하는 이유는 그가 지켜보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히로세 카오리’이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트는 지금 결말을 모르는 책을 읽는 것처럼 시련을 마주한 주인공을 보고 초조해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맞아. 쉽지 않은 경기가 되겠지.”

“… 히로세 씨는 긴장되지 않아?”

“긴장되지. 왜 안 되겠어? 슬레인이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으니까 티가 안 날뿐이야.”

맞잡은 손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긴장을 했다면 차갑게 식을 법도 하건만 식은 땀 하나 느껴지지 않는 손은 확고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의지의 다른 말은 꿈을 향한 각오라고 할 수 있을까. 파우스트 슬레인은 손을 통해 히로세 카오리의 이기겠다는 각오를 느꼈다. 설령 상대가 유력한 우승 후보라 할지라도, 오로지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경기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느꼈다.

“… 히로세 씨에게 중요한 반드시 이겨야하는 시합인 거잖아. 긴장이 안 될 리가 없지.”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언제 갑자기 마음이 꺾여 무너지고 말지 모르는 생물이었다. 얼마나 강한 마음을 갖고 있든,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든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 좌절하는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파우스트 슬레인은 초조했다. 두려웠다. 자신을 반하게 만든 꿈이 역경과 시련에 부딪혀 사라지고 말 가능성을. 그것은 파우스트 슬레인이 얼마나 ‘히로세 카오리’라는 인간을 아끼고 있는지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했다. 파우스트 슬레인이라는 몽마가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애정을 품고 지켜보는 상대는 많지 않았으니까.

“… 있잖아. 만약에 시합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래서 평소라면 꺼내지 않을 가정까지 꺼내버렸다. 방관자로, 관찰자로 있기를 고수하던 입장을 흔들어버릴 정도로 눈앞의 인간에게 푹 빠져버린 탓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인간의 것이 아닌 빛이 서리며 히로세 카오리를 비췄다. 히로세 카오리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세계의 인과를 바꿀 수 있는 마법사, 몽마였다. 네가 바란다면 이 정도의 인과는 원하는 대로 바꿔 쓸 수 있어. 친구이길 자처하는 몽마는 초조함이 섞인 얼굴에 미소를 덧씌웠다. 그러니 말해줘, 네가 이루고 싶은 꿈을. 대가는 네 말 한마디면 충분하니까.

“그거 쉬지 않고 연습해서 자신의 장점을 갈고닦고 단점을 커버한다, 같은 거 아냐?”

그러나 카오리는 농담하듯 모범 답안을 말하며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은 절대 파우스트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히로세 씨는 쓸 거야? 그런 의도를 담고 꺼낸 말이란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히로세 카오리는 그런 것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편법에 기대는 것이 아닌 우직하게 정공법을 택할 사람이었다. 그게 바로 파우스트 슬레인이 반한 ‘히로세 카오리’였다. 파우스트는 그런 카오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저 말이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란 사실을 이해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만약 이야기의 끝이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 감동이 있다면 그만일 텐데. 애초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데 왜 부정적인 가정부터 세우는 거지? 파우스트조차도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초조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중한 존재란 것은 이렇게까지 감정을 뒤흔든단 말인가? 낯선 감정이 파우스트를 붙잡고 있었다.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는 친구를 가만히 보던 카오리는 이내 손을 놓으며 제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 슬레인. 나는 오늘을 위해서, 앞으로를 위해서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연습해온 거니까. 오늘은 내 최선을 다할 뿐이야.”

“히로세 씨…”

“그러니까, 내 최선을 지켜봐줘. 슬레인.”

굳은 의지를 품은 맑고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히로세 카오리는 알고 있었다. 파우스트 슬레인은 언제나 자신을 지켜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카오리는 그런 친구를 위해서라도 오늘 시합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보답일 테니까. 그러니까 긴장할 틈은 없었다. 긴장할 시간에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꺼내야 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보다 중요한 건 시합에 임하는 자세. 행동은 마음을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파우스트는 그런 빛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어둠이 무엇을 속삭인들 빛은 눈부시게 빛나기만 할 뿐이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합이 시작됐다. 운동화는 쉴새없이 소리를 냈고, 그물망이 몇 번이고 흔들리며 경기는 계속 됐다. 히로세 카오리는 경기를 뛰느라 금새 땀범벅이 됐지만 멈추지 않았다. 상대 선수를 스크린으로 견제하고, 팀의 패스를 받으면 골대까지 연결하거나 자신이 슛을 넣어야 하는 실수해서는 안 되는 순간의 연속이 계속됐다. 카오리는 파우스트에게 말한대로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일분일초마다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강했다. 드리블하던 공의 빈틈을 포착해 스틸하고 순식간에 득점으로 연결하고, 페이크였던 슛의 자세를 간파하고 타이밍을 고쳐 블록하는 등 지금까지의 전술이 통하지 않는 벽처럼 카오리의 팀을 압박했다. 처음에는 비등비등해보였던 점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격차가 벌어졌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4쿼터. 타임아웃을 외치고 벤치에 앉아 작전을 정리하는 카오리의 팀은 모두 지쳐보였다. 공을 빼앗고 지키기 위한 몸싸움, 슛을 넣기 위해 뛰어오르고, 상대의 스크린을 뚫고 나가야 하는 만큼 모두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점수 격차는 아직 있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며 쫓아가야 했다. 각자의 포지션을 재확인한 팀은 구호를 외치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경기장을 누비는 히로세 카오리의 모습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공을 빠르게 드리블하며 상대에게 파고드는 카오리의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차오른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뛰었다. 땀방울이 떨어지고 공이 바닥을 두드렸다. 파우스트 슬레인은 관중석에 앉아 그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경기를 보는 내내 카오리의 팀이 득점하면 기쁘고, 실점하면 초조해하며 파우스트의 붉은 눈동자는 반짝이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보여주는 꿈에서.

이기고 올게가 아니라 최선을 지켜봐달라는 말에는 어쩌면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담겨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로세 카오리는 도전했다. 두려운 벽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질지도 몰라.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이길 수도 없어. 카오리가 보여주는 경기가 파우스트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격차도 줄어들고 마침내 1점차까지 좁혀졌을 때, 마지막 공격권은 카오리의 손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은 몇 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 찰나에 카오리는 관중석에 앉은 파우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지켜봐줘.

파우스트가 자신을 본 것을 확인한 카오리는 바로 표정을 굳히고 정면을 바라보며 달렸다. 앞을 가로 막는 상대팀의 선수를 팀원이 막아주고, 수비 진형이 갖춰지기 전에 속도로 밀어붙여 빠르게 적진에 파고들며 카오리는 숨을 삼켰다. 남은 시간은 3초. 골대 앞에는 카오리보다 키가 큰 선수가 2명. 패스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할 수도 없었다. 남은 시간은 온전히 히로세 카오리의 몫이었다. 이기기까지 앞으로 2점. 덩크를 넣으면 만회할 수 있는 점수. 하지만 3초 안에 해낼 수 있을까? 카오리에게 두려움과 걱정이 피어올랐지만 그보다 빠르게 다리가 움직였다. 몸은 이미 공중에 뛰어올랐다. 손에 든 공이 막히면 끝. 기회는 단 한 번. 카오리가 가진 공을 막기 위해 골대를 지키는 선수 두 명이 달라붙었다. 카오리보다 늦게 뛰었으나 큰 신장은 점프력의 차이를 쉽게 커버하며 카오리의 벽이 되었다.

막힌다.

찰나를 지켜보는 몽마가 그렇게 판단한 순간,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최선을 다해 부딪혔다. 노력하는 자만이 더 나아갈 수 있다. 도전하는 자만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히로세 카오리가 눈앞의 벽을 자신의 힘으로 깨부수는 동시에 버저 비터가 울렸다. 강하게 내려꽂은 덩크슛이 작렬하고 카오리는 반동으로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점수는 여전히 1점차. 그러나 앞선 것은 카오리의 팀이었다. 기적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기쁨에 팀원이 카오리를 향해 달려가고 응원하던 사람들의 함성이 체육관을 울렸다. 녹초가 된 카오리는 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지친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관중석에 앉은 파우스트를 향해 주먹을 뻗어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최선, 봤어?”

“응, 봤어.”

그 아름다운 광경에 박수를 치지도 못할 정도로 벅차오른 파우스트 슬레인은 마주 웃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승리의 각인을 새겨주지 않아도 저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자신의 두려움에 맞섰다. 이겨냈다. 그것이 파우스트 슬레인이 지켜보고자 한 ‘히로세 카오리’란 인간이었다. 이런 감동을 보여주는 올곧은 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반짝이는 꿈을 어떻게 보지 않고 넘길 수 있을까. 반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재차 인정하며 파우스트는 손을 들어 박수쳤다. 아름다운 꿈을 향해서.

박수갈채. 아름다운 이여.

그대는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 자극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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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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