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솔직해질 것.
앤솔 WV
일단 안 사귀는데 하여튼 요상함
미완
* ‼️ 맥시멈 10권 강스포 ‼️
* 사투리를 잘 몰라 울프우드가 표준어를 사용합니다
* 캐붕 / 날조
* 여러모로 주의
* PC 최적화라 모바일은 읽기 조금 힘드실...지도?!
🌌
“있지, 울프우드.”
“왜.”
별이 쏟아질 것처럼 선명한 밤이었다. 투명한 만화경을 펼쳐놓은 듯 찬란한 밤하늘은 이제 밧슈와 울프우드에게 있어 하나의 시그널이나 마찬가지다. 날까지 선선하면 더더욱 좋았다. 그런 날이면 둘은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높은 곳으로 향했다. 하는 일은 딱히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하늘이든 옆에 있는 사람이든간에. 그리고 시답잖은 농담이나 진실 한 가닥 섞은 짓궂은 이야기들을 마구 늘어놓는 것.
그래서 울프우드는 밧슈가 제 이름을 불렀을 때, 평소와 같은 응석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울프우드는 왜 나랑 같이 다니는 거야?”
“커흡!”
이런 반전은 생전 처음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내뿜으려던 담배연기를 도로 들이킬 정도였다. 본의 아니게 기관지를 역주행한 매연이 폐를 뜨겁게 달군다. 컥, 쿨럭, 큽! 옆에서 울프우드가 얼마나 격하게 기침을 해대든간에 밧슈는 저 혼자 산뜻한 낯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다. 그 태연한 태도에 울프우드만 어이가 다 털렸다. 아니, 뭐고?
“갑자기 뭔,”
“아~ 아냐, 안 들을래.”
진짜 뭐고?
그렇게 두 번째 반전에 얻어맞은 울프우드가 얼을 타는 사이 밧슈가 웃차,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냥 여유롭게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울프우드 눈에는 훤히 다 보였다. 아마 밧슈도 알고 있을 터다. 둘이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나. 그런데도 밧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만 딱 평소처럼 헤실대며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나는 먼저 들어가볼게! 울프우드도 늦지 않게 들어와!”
“야, 임마!”
잡힐새라 후다닥 도망가는 발걸음이 요란하기 그지없다. 누가 인간태풍 아니랄까봐, 밧슈가 휩쓸고 간 자리엔 2히트만에 어처구니가 죄다 증발한 울프우드만 덩그러니 남았다. 허. 기가 막혀 다물지 못한 입에서 피다 만 담배가 툭, 떨어져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간다. 그게 소중한 돛대였다는 건 이미 생각 밖이다. 멍하니 밧슈가 달아난 쪽을 바라보던 울프우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니랑 나랑 같은 방에 묵는 건 그새 까먹은 거냐, 하여간 바보 자식…….”
🌌
평소 밧슈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처럼의 꿈이 더 생경하고, 생생하고……. 애틋했다.
배경은 익숙한 사막. 구름이 깃털처럼 흩날리는 창공은 여전히 휘황하고, 그런 하늘에서부터 두 개의 태양이 따갑게 내리며 모래 위로 짙고 옅은 음영을 덧그렸다.
이런 와중 눈 앞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뭐, 그럴 수 있지. 이건 꿈인 것 같으니까.
빠르게 납득한 밧슈는 왜인지 눈길을 잡아끄는 소파를 차분히 살펴보았다. 흙먼지가 소복히 쌓인 소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관리가 잘된 것 같았다. 그건 꼭 오랜 시간을 들여 눈물에 찬찬히 젖힌 듯한 색을 띠고 있었는데, 오른쪽에만 누군가 앉은 흔적이 있는 게 퍽 신기했다. 2인용인데도 그랬다.
마치 그 흔적에 담긴 감정을 전부 모아 굳힌 뒤 소파에 담은 후 잠궈버린 것만 같았다.
무지 좋아하나보다. 좋아했나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와중, 문득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밧슈는 고개를 들었다.
“아.”
검은 머리의 청년이 밧슈와 똑같이 커진 눈망울로 그를 마주보다 환하게 웃었다.
한차례 불어온 바람에 두 사람 분의 코트자락이 제라늄 꽃잎처럼 흩날렸다.
“안녕. 여긴 어떻게 왔어?”
🌌
그 날이 시작이었다.
울프우드는 회고한다. 그 날, 빌어먹게 깨끗한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흐르던 바로 그 밤. 나몰라라 도망치는 밧슈를 어떻게든 잡아서 심문해야 했다고. 아니면 그새 칠칠맞은 잠옷차림으로 잠들어버린 걸 깨워서라도 캐봤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적어도 깜짝선물처럼 질문 몇 십 개로 폭탄맞는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
밧슈 더 스탬피드라는 생물은 기본적으로 도망을 잘 쳤다. 게다가 다소, 꽤나, 많이, 제멋대로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최근의 울프우드는 밧슈의 마이페이스에 휩쓸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질문공세를 받는가 하면, ("있지, 울프우드는 왜 나랑 같이 다녀? 왜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거야? 혹시― 아, 아냐! 갑자기 안 궁금해! 응, 난 완전 괜찮거든!?" "얼간아, 앞이나 제대로 봐라! 앞!") 답이라도 해주려 입을 열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망치는 밧슈와 때 아닌 술래잡기를 펼치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둘의 ‘함께’는 그대로라는 게 가장 아이러니했다. 다 큰 어른들이 멀쩡한 거리를 뒤집어 엎어가며 잡기놀이 따위를 하는 주제에, 어느 쪽이든 머리 끝까지 올랐던 열이 사그라들 때 쯤 슬그머니 돌아와 서로의 옆자리를 채운다. 극이 다른 자석마냥 자연스럽고 고정된 이끌림을 습관을 넘어 본능인 것처럼 구는 거다.
결국 이 지지부진한 교착 상태에 먼저 지친 건 당연하게도, 주변인들이었다.
“저기요.”
“넌 또 왜.”
“밧슈 씨랑 뭐예요?”
요즘에요. 메릴의 뾰족한 눈초리에도 울프우드는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어쩌라고?’ 하는 뻔뻔한 태도로 국수만 후루룩 말아먹는 게 아닌가. 당장 어젯밤에도 화려한 술래잡기를 펼친 장본인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두꺼운 낯짝이다. 아니, 이 목사가 정말! 결국 참다 못한 메릴이 그간의 분노를 가득 담아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큰 소리가 나자 한순간 가게 안의 눈동자들이 한 데 모였다가 우수수 흩어진다.
“어떻게 좀 해봐요, 진짜!”
“뭐? 애초에 도망치는 건 늘 빗자루잖아. 난 잡는 쪽이고. 번지 수 잘못 찾았어, 아가씨."
“그리고 부수는 건 늘 같이 하고 말이죠! 대체 뭐가 문젠데요? 지금까지 둘이서 잘 지냈잖아요. 저희가 뒷수습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요?”
새삼스럽게 사랑싸움이라도 하시는 거냐고요. 으르렁대는 메릴의 어조가 울프우드의 본심을 푹 찌른다. 존재는 알았으나 거기 있는 게 당연해서 구태여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별의 그림자였다. 그래서 울프우드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항의하기보다, 냅다 과장해 덮어두기를 택했다. 아니, 이봐. 이봐!
“서류만 들여다보더니 눈이 삐었어? 내가, 저 망할 빗자루랑?”
“아니에요?”
“허.”
“참나. 여하튼 해결은 해주셔야 해요, 정말로.”
팔자에도 없는 야근이라니 진절머리가 난다며 메릴이 푸욱 한숨을 내쉰다. 울프우드의 선글라스에 가로막힌 시야로 봐도 눈 밑이 좀 시커멓긴 한 것 같았다. 기실 울프우드는 그걸 보고도 딱히…… 죄책감이라던가, 책임감이라던가 하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메릴의 말대로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당연한 만큼 간절한 건 울프우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울프우드는 여전히 그 밤, 그 별들 아래에 머물고 있는 탓이다. 밧슈는 저 혼자 도망쳐 태연한 척 웃고 있지만 울프우드는 이번만큼은, 그에게 어울려주기가 영 쉽지 않았다. 애시당초 그 놈 앞에만 서면 스스로가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무너지는데 뭣하러 안간힘을 써 ‘척’을 꾸며내겠는가. 밧슈를 사로잡아다 저와 똑같은 밤하늘 아래로 데려다 놓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래야 비로소 터놓고 이야기할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그 겁쟁이는.
까놓고 말해 기가 막혔다. 어찌됐든 물꼬를 튼 건 밧슈 아닌가. 져야할 책임이 있을텐데도 저가 그에게 느슨한 걸 믿고 귀엽게 웃으며 옆에 붙을 때면, 같잖고 우스워서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그보다 더 우스운 건 그걸 또 받아주는 스스로이긴 했으나, 그건 그거고.
울프우드는 그도 모르는 새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비벼 껐다. 싫지 않은 심란함이다.
“알았어.”
“그러니까…… 네?”
“알았다고. 그만 떽떽 대, 얘기 해볼테니까.”
근데 그 자식, 도망치는 것 하난 끝내주게 잘하는데 잡을 순 있나. 툭 던진 말에 메릴이 기다렸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내가 누구 전담인데 그거 하나 예상 못했겠어요!
“밀리가 잡아온다고 호언장담했으니 금방 올 거예요.”
“뭐? 어떻게?!”
“뭐라더라, 마을 꼬마들 힘을 좀 빌린다던가…….”
그 때였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별안간 가게 문이 활짝 열렸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뚫고 각종 냄비며 찌그러진 캔 같은 걸 뒤집어 쓴 아이들이 승전보를 울린 장군처럼 우르르 들이닥쳤다. 어이, 진짜냐……? 울프우드가 눈을 크게 떴다. 메릴이 거 보라는 듯 한껏 볼을 치켜든다.
메릴의 말은 정말이었다. 해냈다, 우리가 밧슈 형아를 붙잡았다! 와아아아! 신이 나 소리 지르는 꼬마들의 행렬 뒤로 밧슈가 죄인마냥 질질 끌려들어오는 게 보였다. (엄밀히 말해 죄인이 맞긴 하다.) 허를 찔린 표정이 볼 만 했다.
“으으, 애들을 이용하다니……. 비겁하다……!”
“이용이라뇨! 밧슈 씨도 차암, 정중히 부탁한 거라구요.”
뒤이어 선배와 똑같이 의기양양해진 밀리가 나타났다. 요근래 둘을 괴롭히던 골칫덩이를 성공적으로 포획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꼬마애들이라면 밧슈 씨도 진심으로 도망치진 않을 것 같아서요~ 대꾸하는 목소리는 마냥 천진난만한데 밧슈를 잡아끄는 손길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하긴, 밀리도 그간 쌓인 게 많겠지……. 이런 걸 보고 업보라고 하던가. 근데 나도 다 사정이 있다고! 밧슈는 툴툴대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저 뒤에서 일어선 울프우드와 딱, 정면으로, 운명처럼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멈췄다고 느낀 건 비단 밧슈 뿐만이 아니리라. 시야에서 못 보던 별이 팡팡 터진다. 누가 눈치 준 것도 아닌데 밧슈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울프우드였다. 당연하게도.
“빗자루.”
“어, 으응? 헤헤, 우리 목사님이 왜 그러실까아……?”
“할 얘기가 좀 많은 것 같지."
시간 다 됐다. 커다란 손이 가까워지자 밧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엔 정말 글렀다.
🌌
“비슷한데 조금씩은 다르구나. 신기하네.”
“그러게~ 이런 경험도 흔치 않은데!”
그 후로도 둘은 종종 꿈에서 만났다. 배경은 늘 같은 장소였다. 가느다란 선 하나만이 대지와 하늘의 경계를 갈라놓는 장대하고도 빈 사막, 적막한 세계의 구심점처럼 자리를 지키는 빛바랜 푸른 소파.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서로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듣고, 가끔씩 서로가 그들이라 할 수 있는 위로나 격려를 전하는 것 정도. 그는 소파에 앉아도 된다며 권해왔지만 밧슈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젓곤 곁에 기대어 섰다.
소파는, 이런 말을 하기엔 좀 웃기지만, 밧슈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은.
둘이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기에 알 수 있는 어떠한 직감이었다.
밧슈가 그것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은 의외로 빨리 왔다.
한창 두 세계의 밤하늘과 별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래도록 말을 고르던 그가, 망설임을 끝내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말이지.”
“응, 왜?”
“그…… 그 쪽의 울프우드는, 혹시 어때? 건강하게 잘 지내?”
소파 커버를 꾸욱 쥔 손 끝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웃음을 덧그리는 입꼬리, 떨리는 눈동자.
푸른 색이 짙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 밧슈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어떠한 자각이 심장께를 강타한다. 밤하늘이 떨구는 별똥별처럼.
“잘…… 지내.”
“그렇구나, 다행이다.”
정말로.
이번엔 밧슈가 물었다.
“괜찮아?”
“응.”
“…….”
“아하하, 진짜 괜찮은데.”
밧슈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밧슈를 품 가득 끌어안았다.
소리 한 점 없던 사막이 두 사람 분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
체감상 방에 들어온 게 꼬박 한 시간은 넘은 것 같은데, 아닌가? 밧슈는 눈동자만 굴려 여태 아무 말도 없는 울프우드를 살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하던 옆얼굴은 이젠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새 노을이 사그라들고 밤이 내린 탓이다. 그가 피고 있는 담뱃불만이 이따금씩 불꽃처럼 깜빡이며 옆선에 숨을 불어넣었다. 으음, 새삼 잘생겼네. 좋아, 좋다고. 그런데 말이지……. 밧슈는 데굴데굴 굴러가 울프우드의 허벅지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무반응이다. 나 좀 보라고 옆에서 암만 밍기적대도 이놈의 목사는 시선 하나 주는 법이 없었다. 체엣. 밧슈가 입을 툭 내밀었다.
그렇다. 그는 아직까지도 묶인 채였다. 아직까지도!
사실 풀려면 얼마든지 풀 수 있었으나, (어찌됐든 꼬마들이 요령 없이 칭칭 감기만 한 밧줄이므로.) 울프우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또 밧슈 스스로도 잘못한 걸 알긴 알아서 눈치만 보다보니 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살짝 열린 창 틈으로 별들이 하나 둘 춤추기 시작한다. 뚱한 낯으로 그걸 바라보다가, 이번엔 밧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울프우드.”
“…….”
“울프우드으으!!!”
“시끄러워, 망할 빗자루야!”
“나 이거라도 좀 풀어줘. 안 도망갈테니까! 응?”
“거짓말도 못하는 주제에 애쓴다.”
“아니, 진짜로! 팔 아파서 그래.”
나는 밥도 아직이고 팔도 감각이 없고 여긴 창문도 닫아놔서 공기도 안 좋고! 한 번 터지니 쌓였던 불만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온다. 그런데도 울프우드는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다. 밧슈의 목소리가 점점 수그러들었다. 잘못한 건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잡아둘 필요가 있냐는 끝맺음은 숫제 울먹이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여전히 울프우드는……. (하략.) 잔뜩 심술 난 밧슈가 울프우드의 허벅지에 박치기를 몇 번 해주고서야 어어, 하며 큰 손으로 대충 받쳐준 게 다였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밧슈 혼자 분에 차서 삐죽거리고 있기를 또 한참. 무언가 가늠하던 울프우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가자.”
“……진짜?!”
“어.”
“나 풀어주는 거지?”
“아니.”
“왜애……?”
“빗자루 니는 고생 좀 해봐야 돼.”
“…….”
아까 스치듯 봤던 메릴과 밀리의 모습을 생각하니 맞는 말 같아서 반박도 제때 못했다. 그럼 난 어떻게 나가. 밧슈는 될대로 되란 식으로 물은 건데, 가만히 바라보던 울프우드가 대뜸 그런 밧슈를 들쳐업었다.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히자 밧슈가 왁왁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울프우드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 머리에 피 쏠려! 제대로 들어줘야지 이게 뭐야, 하여간에!”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닥치고 가만히 있어, 얼마 안 걸리니까.”
“어, 어디 가는데?”
그새 새 담배를 꼬나문 울프우드가 말했다.
“늘 가는 데.”
“그냥 걸어가면 안될까……? 사이 좋게 손 잡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지 않아?”
“왜 가는지는 안 물어보냐. 니도 참 니다.”
“…….”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둘이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울프우드는 밧슈를 배려해주었다. 밧슈가 왜 그런 걸 물었는지, 왜 상황을 펼쳐놓고 자꾸만 회피하는지 모른다 해도 그건 확실히 배려였다. 한 사람만을 향한,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배려. 아마 울프우드는 밧슈가 질문을 던진 그 밤에 생각을 모두 끝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기다린 거다. 보험콤비가 먼저 돌아버리지 않았더라면 울프우드는 내내 밧슈를 기다려주었을 터였다. 설령 밧슈가 영영 용기내지 못한다 해도.
그러니 이젠 정말로 밧슈 뿐이다. 울프우드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멍청이.”
“뭐?”
“이게 뭐라고 쫀 게 웃겨서.”
“……날 뭘로 보는 거야.”
그리고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늦은 밤, 등불이 남김없이 꺼진 거리는 한산했고 오로지 별들만이 넘칠 듯 아슬아슬하게 반짝였다. 타박타박 걷는 발소리를 들으며 밧슈는 마음을 다잡았다. 두서없어도, 다듬지 않아도, 서툴어도 전해질 진심이라면 중요한 건 딱 하나다.
솔직해질 것.
🌌
“알고 있었어.”
그가 말했다.
울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는 여전히 먹구름 몇 겹을 겹쳐 놓은 듯 눅눅하기만 한데, 시선만은 담담했다. 새빨갛게 튼 눈가를 숨기며 그가 재차 말했다.
“울프우드가…… 내가,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 때의 우리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나는, 당연히 끝 이후에도 우리가 함께일 거라고……”
“…….”
“한 번만 제대로 말해볼걸. 처음이 마지막이어도 좋으니 기약따위 없는 것처럼 냅다 소리쳐볼걸.”
그는 네 앞에선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밧슈는 그런 그를 다독이고 다독여 기어이 안에 고인 것을 쏟아내도록 했다. 둘 다 고집쟁이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으나 밧슈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것들을 받아내고 싶었다. 홀로 썩을 뻔한 감정의 조각은 대부분 짙은 그리움과 비애였는데, 한 데 모으면 결국 후회가 되었다. 그 때 그러지 못한 것, 애써 말을 돌린 것,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그런데도 조각 하나하나가 날카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그가 울프우드의 전부를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울프우드의 삶, 길, 본심을 감춘 말과 마지막 선택, 그에게 내밀던 차표와 콧잔등을 덮어준 종이조각 하나까지도.
사막의 하얀 햇살이 눈물에 금이 간 그의 뺨을 베일처럼 덮는다. 때아닌 바람에 검은 머리칼이 나풀거렸다.
아, 슬슬 꿈이 끝나려나보다.
같은 것을 느낀 그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쭉 폈다.
밧슈 쪽을 바라보는 낯이 맞지 않게 장난스럽다.
“울프우드를 좋아하지?”
“어, 어, 어떻게 알았어?!”
“후후, 모를 리가.”
그가 말갛게 웃었다. 어쩐지 후련해보였다.
“꺼내니까 조금 나아진 것 같아. 고마워.”
“고맙기는.”
“그래서 말인데…….”
너도, 조금만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말 끝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밧슈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을 무어라 해석한 건지 그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오지랖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나는 그게 항상 후회됐으니까, 다른 세계라고 해도, 혹시나 네가…….”
“응, 무슨 말인지 알아.”
그리고 밧슈는 이 말을 그에게 듣는 상황이, 그가 이 말을 하는 상황이 조금 잔인하다고 여겨졌다. 소파의 기원을 이해한 직후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렇기에 도리어 진실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밧슈도, 그도. 모든 게 괜찮을테니 마음 가는대로 해도 된다는 말을 ‘밧슈 더 스탬피드’에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또한 ‘밧슈 더 스탬피드’일 것이기 때문에. 둘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모래알이 그새 거세진 바람결을 타고 춤추듯 주변을 맴돌았다. 폐막의 시간이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냥…… 말이란 거,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구.”
“그렇구나.”
“헤헤…….”
“……미안해.”
“왜? 사과하지 마.”
“그래도.”
“나는 괜찮을텐데도? 물론! 바로 내일 엄청 슬픈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때때로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하겠지만……
그게 곧 우리가 불행하다는 뜻은 아냐. 알잖아.”
그럼에도 밧슈는 여전히 울상이었다. 비를 머금은 제라늄처럼, 그의 유약한 강인함이 찬란하고 아팠다. 한참 쩔쩔매던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면, 약속 하나만 해줘.
“한 발짝만이어도 좋으니까.”
“솔직해질 것.”
“그리고 행복해질 것.”
🌌
꽤 웃긴 꼴이었지만, 여하간에 둘은 언젠가 별을 세던 곳에 다다랐다. 오는 내내 성인남성 하나를 들처업은 울프우드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밧슈를 낮은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툭툭 밧줄을 풀어주자마자 재빨리 그걸 멀리 치워버린 밧슈가 기지개를 쭉 편다. 살 것 같다아……. 상쾌해진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울프우드가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해봐라, 이러쿵저러쿵.”
“아! 히히, 으음…….”
“설마 없다고 하지는 않을테고.”
기, 기, 기다려봐. 오냐.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라 밧슈의 눈꼬리가 대번에 뾰족해졌다. 울프우드는 어깨만 으쓱였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는 게 뭐가 대수겠냐는 얼굴이다. 밧슈는 무어라 항의라도 해보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가, 아랫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거 보라지. 그래도 도망칠 낌새는 없으니 된 건가.
다행히 밤은 이제 시작이었고, 차차 떠오를 별들이 하늘의 빈 자리와 둘의 시간을 채울 터였다. 울프우드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말할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서야 비로소, 밤이 둘을 중심으로 맴돌기 시작한다.
태양이 사라진 사막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꼬물거리던 밧슈가 엣취, 작게 재채기를 하자 울프우드는 팔을 뻗어 그를 제 곁으로 끌고 왔다. 익숙하게 품에 파고든 밧슈는 자기 편한대로 고개를 기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탄성을 터뜨렸다.
"봐, 울프우드! 오늘 유난히 별이 많은 것 같아."
"그러냐.”
“맨날 같이 봤는데도 몰라?”
“니가 제일 열심히 보잖아.”
너도 좋아하는 거 다 알거든! 하여튼 못된 말만 한다며 밧슈는 한참 쫑알거렸다. 울프우드는 간간히 성의 없는 추임새나 넣어주며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때맞춰 불어온 바람이 밧슈를 울프우드의 품에 더 밀어넣고 재를 저멀리로 치워버리면, 달빛이 준비된 무대 위의 조명처럼 눈 앞에 흩뿌려진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익숙한 적막함 뿐이다. 이 밤이 둘을 중심으로 축소된 것처럼.
두 개의 숨소리가 하나의 박자로 맞춰질 즈음 밧슈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알아.”
“뭘 또.”
“내가 늘 억지부리는 거.”
그걸 모르는 게 더 문제 아니냐. 볼을 쿡 찌르는 눈초리에도 아랑곳않고 밧슈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울프우드는 늘 내 억지를 받아주잖아.”
“늘 애새끼처럼 구니까.”
“그러다 다치면 엄청 걱정해주고!”
“시체 치우기 싫어서 그렇지.”
“나랑 별도 봐주고.”
“또 꼬리에 불 붙은 토마새끼마냥 도망갈까봐 그런다.”
“이렇게…… 기다려도 주고.”
“싫으냐.”
때마침 별 하나가 하얀 빗금을 그리며 밤하늘을 갈랐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마냥 수많은 별들이 온 하늘을 배경 삼아 낙하하기 시작했다. 유성우였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별들의 향연에 밧슈가 작게 감탄할 때에도, 울프우드는 밧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태여 위를 올려다볼 필요는 없었다. 그는 늘 밧슈의 눈을 통해 별을 헤아려왔으니.
그래서 울프우드는 줄곧 궁금했다. 밧슈가 이 사단까지 만들어 가며 하려는 말보다 그 말을 하려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빗자루.”
“울프우드는,”
“왜 니 뒤꽁무니만 쫓아 다니냐고?”
“내가 그렇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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