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성

KKN5 by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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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날이 좋았다. 임무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침 일찍 호카게 관저에서 받아온 임무 두루마리 안에는 들어본 적 있는 단어가 직인으로 찍혀 있었다.

直原

나오하라라면 불의 나라에서 꽤 유명한 상단의 이름이 아닌가. 임무 랭크는 B. 하지만 그에 비해 안에 적힌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상단 측에서 임무 자체의 난이도보다는 중요도를 고려해 의뢰를 해온 모양이었다. 어디, 의뢰인의 이름은…… 나오하라 아야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로 나가 보니 연분홍색 기모노를 입은 검은 머리칼의 여자가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목 언저리에 붉은 리본을 묶어둔 그녀는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머뭇거리더니, 심호흡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뭇잎 마을에서 오셨지요?”

“예, 나오하라 아야카 본인이신가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아래로 내리깐 그녀의 눈이 녹색임을 상기하면서 나는 그녀의 이름에서 느꼈던 기시감의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미나토 선생님의 반에 있었을 적, 지금은 곁에 없는 이들과 함께했던 임무에서. 과거의 기억이 줄줄이 멋대로 딸려 올라왔다. 날이 좋더라니, 지나간 인연을 다시 만나기에도 딱 알맞은 날인가…. 입안이 썼다. 잠시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구면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냈더라도 막상 그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할뿐더러, 상대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으며, 임무 중에 옛날 생각을 해 봤자 지금의 능률을 떨어뜨릴 뿐일 테니. 이럴 때는 모른 척 웃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면… 아야카 씨?”

“나, 나오하라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그쪽이 더 편해서….”

여자는 크게 당황하더니 이름 대신 성으로 불러주기를 청했다. 하긴 본관을 숨길 필요가 없는 그녀로서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낯설 수도 있겠지. 분명 들어주지 못할 이유 하나 없는 부탁이었다.

“네, 나오하라 씨. 저는 카카시면 됩니다.”


 

분명 들어주지 못할 이유 하나 없는 부탁이었을 텐데……. 그녀의 의뢰가 이어지면서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자꾸만 다른 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노하라 린. 끝내 내 손으로 떠나보내고 만 동료. 처음에는 나오하라든 노하라든 성씨만 조금 닮았나 싶을 뿐이었지만, 나오하라 씨의 눈빛에서 애정을 읽어낸 순간부터 그녀를 부르는 것이 불편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녀는 먼저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을 겹쳐보는 것은 양쪽에게 실례임을 안다. 나오하라 아야카는 노하라 린이 아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자꾸 그녀로부터 린을 떠올리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상대의 진심을 모른 척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비겁하게도 내게 득이 되는 것은 챙기면서. 나오하라 씨는 좋아하는 남자가 이런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까.

…비슷한 실수를 또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녀를 실망시켜야만 한다. 그녀가 상처받지 않을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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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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