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그램 60분 전력

[10ㅣ유즈리하 코토코] 영웅의 탄생

탄생 :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

밀그램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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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언제 탄생하는가. 영웅은 난세에서 생겨난다. 아주 유명한 말이다.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다. 누구나 위기 속에서 각성한다. 생존본능, 혹은 누군가를 위하여. 그리고 보통 후자를 사람들은 영웅이라 부르겠지. 그 고결한 희생정신에, 사람들은 구원받으며 그제야 영웅의 칭호를 붙일 것이다. 그리고 영웅의 칭호를 받은 자는 고난과 역경, 시련 들을 헤쳐 나갈 것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그리고 뭔가를 잃을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고, 무책임일 수도 있고, 소중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연민할지언정, 영웅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겠지. 자신이 뭔가를 잃는 것보다 영웅이, 그래야만 하는 존재가 그것을 잃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힘이 있는 존재니까. 뭔가를 얻기 위해선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것에 끝은 있는가. 애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작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되는가. 기본적인 고뇌이다. 필요한 고찰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영웅이라는 다른 종족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정의로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영웅이라는 멋들어진 족쇄를 채워놓고, 영웅이 되기를 강요한다. 선의든, 책임감이든, 분명히 타인을 위해 했던 일이 자신을 얽매어온다. 그것만이 삶의 이유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마치 그게 의무인 것처럼 자신에게 그저 요구만 하는 이들을 구해야만 한다. 대가를 요구해서도 안 되고.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란 말인가.

난세가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난세가 영웅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 뭔가가 올라오는 감각을 느꼈다. 자신의 안에서 뭔가가 타올랐다. 그 연기를 마신 것처럼, 목이 멘다. 손톱이 살을 짓누른다. 강한 힘을 준 이가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크게 눈을 떴다. 고통 때문이 아니다.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웅은 이야기 속에서만 있다. 모두가 영웅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영웅은 무대 위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무대 아래 따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영웅이 되면 된다.

물론 자신은 절대 이야기 속의 영웅 따위 될 수 없다. 타인을 향한 이타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가 반드시 보답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코 고결한 이가 아니다. 타고난 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영웅의 탈을 쓸 수는 있다. 그런 사람인 것처럼 굴 수는 있다. 오히려 그것만이 가능하다. 어차피 부조리가 난무하고, 악의만이 선명한 이 세상에 온전한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그렇기에 모두가 영웅을 갈망한다. 나 대신 누군가가 해줬으면 좋겠어. 약자가 안전하면 좋겠어. 누군가 구원해 주면 좋겠어. 악을, 처벌해 줬으면 좋겠어.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눈이 먼 사람들을 위해서. 바라는 것만이 많은 이 자들을 대신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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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밀그램에 왔을 때, 정확하게 말하자면 밀그램의 존재 의의와 목적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흥분이었다. 기대라고 해도 좋았다. 비현실적인 장소와 말,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들. 살인자라고 판명되어 불려 온 죄수들의 분명한 죄의식의 성향, 성격, 말과 트라우마. 거의 믿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분명한 범죄자들이다.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 이들을 벌해야만 한다. 영웅으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타인의 미래를, 가능성을, 무언가를 짓밟은 이들을 심판해만 옳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그 자격은 없다. 자신은 죄수로서 이곳에 있으므로. 그렇다면 그 자격을 얻으면 된다. 그 세계에서 정당방위라는 방패를 갖췄듯, 정의라는 갑옷을 입었듯. 그리고 그 자격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나에게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간수다.

제법 머리도 돌아가고, 지식도 많고, 설득력과 타당성도 가지고 있다. 필요한 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조사뿐. 간수 씨는 불필요하게 밖을 나서지 않았다. 심문과 가끔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없다. 유일하게 모습을 마주친 건 첫 만남과 복도에서 가끔, 그리고 다른 죄수의 심문이 있는 날.

다른 사람의 소문 또한 불확실하다. 저들이 살인자, 악인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전혀 다른 정보만을 말할 뿐이다. 각자가 느낀 걸 말하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결국 간수라는 사람을 처음 마주한 건 심문 때였다.

간수는 어떤 사람인가.

냉철하다. 정확히는 그런 척을 하려고 한다. 이유는? 위압감으로 인한 지배, 대화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함. 그리고 권리 침해당하기를 싫어하는 타입. 영역을 중요시한다. 어째서? 그런 성격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간수로서의 권리와 위치에 집착하고 있다. 습관적인 말버릇은 「너희는 죄수고, 나는 간수다」라는 말. 그건 선을 긋기 위함과, 자신에게 말하는 다짐.

정론을 말하며, 괴롭히는 것을 조금 즐기는 타입. 솔직하고 진실되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을 뿐에 불과하다. 먼저 정보를 제공해 주는 타입은 아니고. 권위주의적이지만, 그건 그가 추구하는 겉모습에 불과해. 속내는 은근히 아이스러운 면이 있고, 그럼에도 지식은 많고 상대의 페이스에 휩쓸리지 않는 고집도 존재한다.

간수인데도 불구하고 밀그램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정보만이 주어져 있다. 또한 밀그램에 대해서 사고하기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듯한 언동.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 거짓말과 뭔가를 숨기는 행위에 익숙한 성격은 아니야.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타입이면서, 그쪽에 재능도 없는 타입. 가치관의 형성 또한 불안정해. 마치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결론적으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이쪽의 주장이 정론일뿐더러, 진심인 한 분명 간수는 나의 협력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물며 죄수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관찰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그에게 나의 정보 제공은 분명 효과가 있을 터. 나의 정의를 이해..이해한다...?

눈을 크게 뜨며, 저도 모르게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나는, 이해받기를 원했던가?

이해받기는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해하고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행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으니까. 하물며 유명해지면 처벌받을 위험도 늘어난다. 자신은 법으로 처벌받아선 안 된다. 법에 처벌되지 않아야 이 심판을 이어갈 수 있으니. 악인은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이런 쪽은 깐깐하다니 웃길 따름이지만.

게다가 스스로 나설 용기조차 없는 멍청한 작자들이다. 자신이 나서서 뭔가를 할 용기도, 누리고 있는 뭔가를 포기할 생각도 없는 주제에 누군가 움직여 뭔가가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어. 그런 멍청이들의 지지 따윈 필요 없다. 대리 만족에 가까운 그런 멍청한 감정의 대상이 될 생각 따윈 없으니까.

그저 내가 옳다고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악을 처벌하기 위해, 그 악에게 무언가를 빼앗겼을 피해자를 위해, 빼앗길 약자를 위해. 그것만이 내가 취할 태도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간수는, 에스는,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자다. 악을 심판하고, 악을 용서할 수도 있는 사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그런 감정도 있다. 저 위치에 서서 악인에게 벌을 내리고 싶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옳아. 내 행위는 옳아.

너라면 날 이해할 수 있잖아!

눈앞에서 곤혹감으로 물들어가는 에스의 얼굴을 보며 코토코는 입꼬리를 올렸다. 눈을 빛냈다. 흔들리는 방 한가운데서도, 에스의 얼굴만이 유일하게 선명했다. 이쪽을 마주 보는, 회색빛의 눈동자의 차가움만이 유일했다.

그에게 이해받는다면, 이해받을 수만 있다면 분명 모두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내 죄를 옳다고 여긴 거겠지. 그런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저 심판자가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저 차가운 눈동자가 나와 같은 빛을 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단편적인 모습만 볼 인간들과는 달라. 나의 꾸밈없는 마음과 가치관을 절대적인 무언가의 힘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면, 형태를 갖출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보고 분명 이해해 줄 테니까. 네가 나와 같은 자라면 분명!

너라는 존재가 나의 이상의 최종 형태라면. 그렇지?

-

어째서?

왜?

유일무이한 이해자라고 생각했다. 이해했으니까 긍정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심상을 봤다면 알잖아. 알 텐데. 왜 나를 용서하지 않았어?

아주, 아주 오랜만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기대를 배반당했을 때의 감정이란, 이런 것이었지.

물론 이해받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했다. 하지만 네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너는..

너는... 뭐지? 내가 기대하던 유일한 이해자도, 냉정한 심판자도, 무엇도 아니라면 너라는 존재는 뭐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쌓아갔던 환상을 벗겨갔다. 공명정대하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오히려 한쪽에 치우쳐져있다고 느껴져. 그런데도 중립을 벗어나진 않아.

내게 뭔가를 기대하고, 나의 행위를 이해한다. 아니, 처음부터 너는 유즈리하 코토코를 봤다. 죄수 10번. 동료,동류,협력자,히어로. 네게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무엇도 되지 못했다.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차갑다. 아니,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공감한다. 애정을 준다. 죄수들을 이해하는 사람처럼 군다.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설령 그것이 자신을 옥죄는 것이라고 해도 버리고 도망간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약하다. 무엇이? 몸은 나약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코토코가 봤던 누구보다도 강인하다.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해받을 생각도 없이, 용서를 빌 생각도 없이,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간다.

과정은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는 이타적이고, 책임감 있고, 신념과 정의를 가진, 어디까지고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

그걸 사람은 영웅이라고 부른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던, 먼지가 풀풀 쌓인 그 단어를 꺼내 들었다. 영웅이란 자칭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영웅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존재. 만약 내가 널 보고 그 단어를 떠올렸다면.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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