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ㅣ모모세 아마네] 사랑
실연 :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마음에 대해 성취하지 못한 상태
“다들 연애 경험 있어?”
죄수 번호 006번, 시이나 마히루의 첫 마디였다. 정말로 사랑, 연애 따위에 집착하는군. 그게 모모세 아마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와는 별개로 표정을 유지했다. 시이나 마히루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저 사랑의 대상을, 신앙으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신앙에 보탬이 되고, 나아가 독실한 신자가 될 수도 있는 존재. 굳이 쓸데없는 말을 내뱉어 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주변은 그것에 대해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뭔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시선을 옮겨 뭔가를 유심히 생각하는 사람과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001번 사쿠라이 하루카나 003번 카지야마 후우타, 010번 유즈리하 코토코가 후자였다.
“그런 거 물어서 뭐 하려고”
“에~ 그야 사랑 이야기지! 모두의 사랑 이야기 궁금한걸”
“혹시 후우타, 연애 경험 없는 거야?”
“하!? 나라도 연애 경험 정도는 있거든?”
일일이 말에 시비를 걸거나 반박을 하는 것이 정말로 어린애 같다고 느꼈다. 물론 이 말을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면 아마네가 할 말은 아니라는 말은 들었을 것이다. 그 말대로 아마네는 신체적으로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그것만을 기준으로 어린아이와 어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생각했다. 정신의 성숙함을 고작 신체의 차이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묵살하다니.
“그러는 미코토야말로 연애 경험은 있어?”
“아니아니, 나도 연애 경험 정도는 있거든?”
“청춘 남녀니까~ 고교생 정도 되면 웬만해선 있지”
고교생 정도 된다면.. 아마네에겐 아직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마네는 자신의 주변을 떠올려보았다. 학교, 집, 그곳까지. 그들은 사랑을 해봤을까? 이렇게 혼자 묻더라도 어디선가 대답이 들려오진 않는다. 하지만 아마네는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감정은 이성을 흐리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중 사랑이라는 가장 감정이야말로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하며 인간이 옳은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해서는 안된다,라고. 아니, 그게 아니었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우선순위만은 잊지 말라고 하셨던가?
어찌 되었건 아버지께서 사랑의 지지자는 아니었음이 틀림없다. 애초에 두 분의 결혼도 정혼이었으니까, 그것에 사랑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당연하게도 아마네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에 나이는 없다.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마네에게 있어서는 먼 이야기였다. 시이나 마히루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하듯, 이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듯, 자신은 대신 신앙했을 뿐이다.
고작 사랑이라는 감정과 겨룰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나 아마네는 어쩌면 신앙이 이들이 말하는 사랑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이란 어떤 상대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일을 뜻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과 특정한 개인을 차별하여 그 상대에게 특별 대우를 하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신이다. 신이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은 사랑이고, 신의 우리를 향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그것은 사랑의 형태에 가까웠다. 아버지께서도 타인 즉 인간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지,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아마네가 멋대로 그런 결론을 내리며 혼자 만족스러워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꽤 진행되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굳이 입 밖으로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이유든 간에. 그러다 보니 주제는 점점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아, 그럼 실연해 본 적 있는 사람~”
이번에도 몇 명의 시선은 바닥이나 탁자, 허공을 향해 옮겨갔다. 그들의 생각은 딱히 신경 쓸 바가 아니었으나, 언젠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그 목록과 태도를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다.
이번에는 대다수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연 이들 역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일 따위는 없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떠들어대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할 뿐. 연애라는 건 누군가의 애정을 받을 만큼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입증하고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거짓으로라도 경험을 떠들어대는 시시한 이들까지 존재할 정도겠고, 그러니 이들도 가볍게 입을 열었던 것이겠으나 실연이라함은 자신의 이미지에 어떠한 장점이나 메리트가 없으니까.
“저기저기, 아마네 쨩은?”
“첫사랑도 없댔잖냐. 있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이곳을 보고 있던 010번, 유즈리하 코토코 또한 자신에게 시선을 던질 정도였다.
“너, 괜히 경험 없는게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아닙니다”
카지야마 후우타의 말에 그렇게 대답한 것은 단순한 치기 어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은 제대로 실연이라는 것을 당해본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네의 꿋꿋한 태도와 평소 이미지에 의해 아마네의 말이 오기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 판단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의견을 나누었다.
“사랑을 한 적이 없는데 실연을 당할 수 있나?”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뭐.. 0고백, 1차임이라는 것도 있고 말이지”
작은 소곤거림에 대답할 가치가 있는 말은 없었으니 가볍게 넘겼다. 어쩐지 이대로 두었다가는 모종의 오해가 생길 것만 같다. 물론 그건 상관없었지만, 혹시라도 질 나쁜 오해를 받는 것은 불쾌했으니 조금 더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연애적인 사랑인 것이죠? 그런 사랑이라면 없습니다. 하지만 실연은 확실하게 해봤습니다”
“누구한테?”
002번, 카사키 유노가 그렇게 물었다. 매일 맹하게 웃는 것 치고는 눈이 날카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말의 핵심을 찔렀다. 아마네는 그런 카사키 유노가 이유 모르게 내심 거북했다. 그 거북함 때문일까 잠시 멈칫했지만, 굳이 숨길 내용은 아니었으니 입을 열었다.
“어머니입니다”
그 말에 다시 한번 그들의 얼굴에 이런 저런 감정들이 퍼졌다. 당혹감, 놀람, 불쾌감, 지루함 등. 몇 개는 어째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었고, 딱히 사람의 심리를 읽는 특기는 없었으니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아마네는 그 이유까지 설명할 생각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애초에 이런 대화를 하러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연찮게 대화에 어울렸을 뿐이다.
애초에 실연이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마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연인에 대한 감정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했던 마음이 제대로 보답받지 못하게 된 것 역시 실연이겠지.
그런 경험을 오늘 낮에 한 것 때문일까. 모모세 아마네는 조금 순수한 낯빛으로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자라온 동네, 아마네의 고향이다. 마치 제 3자의 시점으로 이곳을 보는 것처럼, 아마네는 몸을 움직일 수도,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자신을 타인의 시점으로 바라볼 뿐. 아마네는 꿈이라고 생각하고는 하교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이때의 자신은...그래, 아직 믿음이 부족한 시기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무지했으니까. 신의 실존 여부를 몰랐으니까. 이렇게 강한 신앙을 갖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저런 짓을 했던 거겠지. 아마네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쥘 뻔했다. 도저히 눈앞의 멍청한 짓을 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싶다. 하지만 그 욕구와는 달리 눈은 아마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네가 규칙을 어기는 그 모습을.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죄를 비난이라도 할 것 같았다. 교리를 어기면 안 된다. 치료를 해선 안된다. 세상의 순리를 어겨선 안 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신은 그저 충동적으로, 저 동물을 향한 알량한 동정만으로 저런 짓을 감행했다. 뒷일은 생각도 못 하고, 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교리조차 뒷전으로 미루고. 신님은 어디에나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신을 들먹이며 기도했다. 이 짓은 용서해달라고. 용서받을 리가 없잖아.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어머니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버린 자신을 받아들여 주셨다. 그 순간 자신은 환하게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살짝 입을 벌리고, 반짝 눈을 빛내며. 진심으로 기뻤고, 그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마저 살짝 흘렀던 것 같기도 했다.
아아, 어찌 이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약속을 어긴 나를 이렇게 용서해 주시는데. 이분들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 있어 다행이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 또한 신님의 안배겠지.
“감사합니다. 다시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아니었나..?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했던가? 잘 모르겠다. 벌을 받을 때의 기억은 있지만, 그 직후의 기억은 희미하니까. 그마저도 이 벌만은 잊지 말라는 신님의 충고였을지도 몰랐다.
하물며 그것은 신의 시련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금의 모모세 아마네는 훌륭히 신의 신도로서 존재하지 않은가. 그건 모두 그들의 숭고한 가르침 덕분이다. 그에 감사하지 않으면.. 아니, 감사 이외의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아마네의 부모를 향한 감정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식으로서 태어나고, 그것을 올바르게 길러주셨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받았으니, 당연히 자신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금은 어렵고, 가끔은 구속적일 때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의 그것은 애정에서 기반한 것이니까.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단죄와 벌이다. 교리 다음으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주신 부모를 사랑했고, 그만큼 행복했다.
사랑할뿐더러 존경했다.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을 한 나와는 달리 그들은 완벽했으므로. 자신처럼 결코 신앙을 어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착한 딸이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타인과는 다르다. 가족은 특별하다. 설령 신님께 칭찬받더라도, 부모에게도 함께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런 인정 욕구 덕분에 있는 힘껏 노력했다. 공부도, 신앙도, 식습관도. 노력하니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이전까지의 자신의 그것은 단순히 투정에 불과했다. 믿음이 없었으니 그리 나약했던 거겠지. 언젠가 이런 자신을 칭찬해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 따위는 없었고, 앞으로도 평생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러자 모모세 아마네는 방금까지 허공에서 보던 시점에서 내려와, 이 몸에 들어왔다.
“모모세 아마네, 잘 해주었다”
모모세 아마네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나, 모모세 아마네의 말이 아니었다. 아마네는 그것을 들으며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느꼈다.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사랑은 보답받지 못했으나, 신앙만큼은 자신을 옳게 치부했다. 이건 벌이다. 끝까지 신앙을 관철하지 못한 이에게 내린, 드디어 진짜 신도가 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련이자 운명이기도 했다.
핏줄이나 관계에 매달리는 것보다도, 신앙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마지막으로 주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신의 뜻. 죽음도, 탄생도, 아픔도, 무엇도 전부.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이건 신의 의지다. 자신에게 내려온 이 신앙의 대변자가 말한 것처럼, 신벌을 받은 것뿐이다.
“맹세를 저버린다면 제제를, 네 행동은 옳았다.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야”
이 죽음은, 살인은, 실연은, 축복이다. 자신도 언젠가 이 뜻을 관철한 채로 죽어버린다면, 신님께서 칭찬해 주실 것이다. 지금처럼.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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