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커플링(Non-CP)

NCP[050810ㅣ시도우&아마네&코토코] 고칠 수 없는 이야기

IF모모세 아마네가 공격받았다면?

밀그램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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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의 모습이 사라진 이후, 감옥이 소란스러워졌다. 유즈리하 코토코가 습격했다. 사람을 죽이려 든다, 살려달라, 이런 소리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가뜩이나 면적이 좁은 데다 폐쇄된 건물 안에서 그 비명들은 귀를 닫아도 들릴 정도로 울려 퍼졌다. 시도우가 그 소리를 듣고 다급히 달려갔을 때는 이미 다쳐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신음을 흘리는 것도 보였다.

식당 쪽으로 도망가거나 각자의 방 안에서 바깥을 살펴보거나 숨어있는 몇몇 죄수들, 날카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카야노 군, 기절한 시이나 군, 카지야마 군의 상태를 확인하는 듯한 무쿠하라 씨가 차례차례 보였다. 고작 이 정도를 달린 걸로 숨이 찬 것인지, 긴장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시야를 돌린다. 정작 방금까지 울려 퍼지던 이름,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모습을 찾을 때 아이의 앳된 비명과 함께 뭔가가 바닥에 부딪힌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진 물체가 바닥에 넘어지는 듯한 울림과 옷이 쓸리는 소리, 그리고.... 쇠가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소음까지. 그걸 들은 순간 시도우는 피가 식는 것 같다고 여겼다. 온도는 항상 적절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춥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을 느꼈다. 부상자들의 상태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다급하게 달려나갔다. 오랜만에 달려보는 탓에, 아까보다 더 마음이 급한 탓에 몇 번이고 몸이 기울어질 뻔 했지만 겨우 넘어지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다지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고, 달려가는 내 몸은 한없이 느린지. 이 몸이 이리도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겨우 도착하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본 장면은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아마네였다. 그리고 몸을 떨고 있는 아마네에게 발길질하려는 유즈리하 군의 뒷모습이...

“윽...!”

 

 등에서 강한 아픔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린 것 같은 느낌과, 어지간히 강한 힘으로 때렸는지 그대로 밀려 바닥에 부딪혔다.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급히 내뱉는다. 어린아이를 이런 힘으로, 저런 신발로 때리려고 했다고? 시도우는 몰려오는, 생전 처음 느끼는 강도의 고통보다도 그 사실이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경악을 느꼈다. 시도우로서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 역시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지켜야 하는 대상인 어린아이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무슨 짓입니까, 유즈리하 군!”

“이건 에스의 뜻, 말린다면 이번엔 당신 차례야. 비켜”

“폭력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를...! 윽!”

비키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자마자 이어지는 폭력에, 시도우는 더욱 아이를 껴안았다. 아마네는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극도로 긴장된 몸 때문에 내뱉지 못하는 것 같다. 가까스로 손을 움직여 아마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토닥였다. 고통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력의 반동 때문에 그 손은 떨렸으나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언젠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인지,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인지, 출처마저 기억나지 않는 말을 하며 시도우는 아이의 주의를 어딘가 돌리기 위해 힘썼다. 두려움과 극도의 긴장감, 고통 때문에 지금 아마네의 호흡 기능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어. 비정상적으로 몰아쉬는 호흡에 시도우는 다급히 고민했다. 고통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으나, 시도우는 상대를 진정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고통을 뒤로 하고 사고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시도우 또한 다른 집중할 생각을 찾지 못하는 이상 고통에 무력하게 당하고 있었을 테니까.

“아마네, 팬케이크는... 부드럽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다. 단 것을 싫어하는 아이니 평소에 이야기했어도 무시당하기만 했을 이야기다. 하지만 시도우는 그마저도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아마네가 현 상황을 잊을 수 있도록, 안심하게 하기 위해서 고통 때문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기에도 모자랐다. 그런 상황에서 곧바로 생각나는 것이 지금까지 아마네에게 거절당했던 팬케이크뿐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화제가 소용이 있었는지 그의 떨림이 줄어들었고, 호흡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문 너머로 달려오는 단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도망갔으니 이리로 올 만한 건 무쿠하라 씨하고... 에스 군 정도인가. 하지만 에스 군의 구두 소리와는 다르다. 그건 좀 더 가벼우니까.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유즈리하 군 또한 오는 상대를 알아챘는지 혀를 찼다. 표정까진 보이지 않지만. 신경질적이긴 하나 어쩐지 포기한 듯한 어투였다. 폭력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이제 끝인가 싶어 온몸에 주고 있던 힘을 빼던 차에, 왼쪽 어깨를 강하게 걷어차였다.

“큿...!”

방심하고 있을 때 제대로 걷어차인 덕에 옆으로 굴렀다. 몸에 차인 구속구가 바닥에 부딪히며 강한 금속음이 좁은 개인실 안에 울려 퍼지면서 귀 바로 옆에서 울려 퍼지며 이명이 들리는 것보다도, 방심한 사이에 찾아온 고통보다도, 점점 커지고 있는 발소리보다도, 아마네에게서 멀어졌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유즈리하 군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목적을 이루기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엑셀만 달린 자동차를 타고 달리고 있어. 빨간 불도, 도로 표지판도, 하물며 사람조차 그를 멈추지 못할 테지. 지금 같은 상황을 놓칠 리가 없다. 분명 공격할 텐데. 성인인 나조차 고통스러웠던 그것을 저 아이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마네..!”

손을 뻗었지만 닿을 리가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차라리 발로 바닥을 박차고 달려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지. 또, 지키지 못했어. 익숙한 절망이 온몸을 감쌌다.

“이런, 위험해라”

예상했던 둔탁한 소리 대신에 상황에 맞지 않게 가벼운 억양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감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쿠하라 씨가 유즈리하 군을 제압했다. 등 뒤로 팔을 꺾고, 힘을 주어 바닥에 엎드리게 한다. 힘으로는 아무도 카즈이를 이길 수 없었을뿐더러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경찰이다. 아무리 유즈리하 군이라고 한들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분명히 유즈리하 쨩을 놓쳤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정말... 너클에다 삼단봉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간수 군이 그런 물품을 승인했을 리도 없는데. 아직도 아프다고”

“모모세 아마네는 용서받지 못했어. 심판해야만 해”

무쿠하라 씨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아니 귀와 눈의 반응으로 봐서는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단순히 아무래도 좋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언젠가 협진을 나갔다가 봤던 섬망을 일으킨 환자처럼 유즈리하 군은 아마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계속해서 몸에 힘을 주고, 비틀며, 몸부림쳤다. 그것만이 명제로 입력된 기계처럼.

기분 나쁘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치 밟혀도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연상될 정도다. 그 정도로 유즈리하 군의 집착은 광기에 가까웠다.

“미안하지만 아까처럼 놓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

“에스의 의지를 죄수 따위가 방해하지 마”

“...에스 군의 뜻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도, 에스의 뜻이라고 했었다. 그 이후 이어진 폭력 행위는 물론, 아마네의 호흡을 진정시키는 것에 급급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묻자, 유즈리하 군은 무쿠하라 씨의 말을 무시했던 때와는 달리 확실하게 반응했다.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쓰러져있는 아마네에게서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한다. 어디까지고 냉정한 그것은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다. 타오르고, 타올라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불꽃처럼.

“아까까진 고통에 몸부림치기 바쁘더니, 위협이 사라지니 이번엔 궁금증의 해결이야?”

“......”

“맞아. 에스의 뜻이야”

“그럴 리가 없습니다”

생각보다도 말이 먼저 나갔다. 단호하고 확신이 담긴 말에 코토코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이 비웃음이었는지 어이가 없다는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당신이 에스의 뭘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한다. 시도우가 이 짧은 생에서나마 깨달은 것은 사람은 안다고 착각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몰이해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하지만 알고 있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에스 군은 어린아이다. 나이나 외형뿐만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지식을 쌓아도, 언변이 뛰어나도, 어른스러워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어린아이의 그것을 에스 군이 가지고 있으므로. 역으로 어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것은 너무나도 반짝이니까.

“적어도 그 사상을 긍정하지 않았을 거라는 건 압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에스는 나와 손을 잡았어.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난 에스의 송곳니야”

“설령 당신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고 한들 에스 군이 이런 짓을 용납할 리가 없어요”

자신이 아는 에스는 극히 단편적이다. 지극히 자신의 시점에서 본 주관적인 평가에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밀그램의 간수라는 것. 그리고 간수로서 착실하게 원칙에 의거해 우리를 심판하려고 한다. 3심제. 설령 간수로서 결정한 이것이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 내리는 처벌이라고 한들, 1심이 끝난 지금 그럴 리 없다. 만약 처벌을 받는다면 3심이 끝난 뒤다.

또, 심문 때 밀그램의 형벌까지는 모른다고 했으니까.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는 거짓말에 익숙한 타입이 아닌 것으로 보였으니까. 하물며 원칙주의자인 그가, 아무리 일본의 법률과는 달리 밀그램의 독자적인 규칙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처벌을 추가할리 는 없어. 만약 유즈리하 군과의 대화 이후에 그것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급작스러울 리도 없고.

“당신, 에스에게 환상이라도 덮어씌워서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실례네. 에스는 당신 생각 같은 존재가 아니야”

“...유즈리하 군이 생각하는 에스 군이 어떤지는 모릅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겠죠. 유즈리하 군과 저의 견해가 전혀 다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결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은 당신 생각은 됐어. 결국 에스는 날 긍정했어. 그게 변하지 않는 사실. 당신만 아니었어도 모든 게 에스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텐데”

“에스 군의 이름을 빌려 유즈리하 군이 멋대로 저지른 짓은 아니고요?”

“뭐?”

단번에 표정이 험악해지며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무쿠하라 씨가 계속 힘을 주고 있었으니 움직이는 일은 없지만.

“시도우 군”

“네”

“미안하지만 아마네부터 옮겨주지 않겠어? 창고에 분명 상태 좋은 이불이 있을 거야. 그리고 저쪽에 후우타와 시이나 쨩도 봐주면 좋겠네. 상처가 심각하니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몰라”

보다시피 나는 지금 무리라서. 그렇게 말하며 무쿠하라 씨는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상처의 치료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으니까. 아마네를 우선 옮기려고 다가가자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괜찮습니다”

“아마네, 그렇게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상처가..”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됐다고 말했을 텐데요!”

아마네가 언성을 높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이 감옥에서는. 아이다움을 잃어버리고 어른스러움을 장착한 아이의 감정의 날것은 분명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자신이 구태여 매번 아마네에게 핫케이크를 권유한 것처럼. 물론 먹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하지만 그게 지금인 것은 조금 곤란했다. 척 보기에도 아마네는 멀쩡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그리 위중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가 폭력의 날것에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멀쩡해서도 안 되고.

소리를 친 아마네는 본인의 소리에 본인이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뻔히 보인다.

“...상처를 입은 시도우 씨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정도로 저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아마네는 전신에 힘을 주고는 비척거리며 방 밖으로 나섰다. 평소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바르게 다니던 아마네의 걸음걸이는 고통을 최대한 느끼지 않기 위해 어색한 자세를 하던 환자들의 자세와 닮아있었다.

“아마네...”

...아마네의 방은 여기입니다만..

“하하, 역시 어린아이는 민감하네”

건조한 웃음과 함께 아마네가 사라진 곳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린 무쿠하라 씨는 이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아무튼 얼른 가봐. 아까 후우타도 상태가 좋지 않았거든. 의학적 지식이 없으니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네.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달려가는 시도우의 뒷모습을 카즈이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은 지극히 평소 같았다. 지극히도.

“당신은 분명 방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네”

목소리도, 태도도 생각보다 침착하다. 아까의 분노나 살기는 온데간데없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몸도 이미 꽤 힘을 풀고 있었다. 저항하려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지만, 경찰로 활동하며 아무런 적의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놓아주면 바로 도망가거나 이쪽을 공격해 오는 범죄자는 잔뜩 보았다. 보통은 생각할 때 자동으로 신체는 함께 움직인다. 도망갈 생각인 자들은 도주로를 눈으로 훑거나 빤히 바라보고, 공격 의사를 가진 자들은 몸에서 긴장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유즈리하 쨩은 그 어느 쪽의 특징도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의 긴장은 하고 있지만 그건 제압당해 있기 때문. 그리고 도주로 탐색 또한 유즈리하 군에게선 보이지 않지만... 지금 놓아줄 생각은 없다. 아직 곤란해.

“누군가 다치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거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도 하네. 이곳에 막 왔을 때의 당신이라면 내버려뒀을 거면서”

역시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이 싫은 것과 별개로 똑똑한 사람도 싫다. 멋대로 이쪽의 의도나 생각을 배려 없이 날것으로 꺼내지는 짓은 꽤 부끄럽단 말이지. 뭐, 애초에 어설픈 배려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보단 직설적인 쪽이 낫긴 하지만.

“확실히.. 그랬을지도 몰라”

“당신도 용서받음으로써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건가.. 그건 뭔가의 힘일까? 아니면 그저 우리들이 이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것뿐일까”

카즈이는 부러 자신의 앞에서 중얼거리는 유즈리하 쨩이 꽤 뻔히 들여다보인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도 알기 쉬운데, 의도인가? 아니면 자신을 숨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것일까.. 아니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어느 쪽이건 카즈이로서는 이참에 상대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음이 기꺼웠다. 유즈리하 쨩은 자신을 딱히 좋아하지 않으니까.

“뭐, 됐어. 카야노 미코토를 제외하고는 전부 숙청을 진행했으니까. 방해는 받았지만.”

“하하.. 그거 미안하네. 내가 놓치지만 않았어도 그 둘이 다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의도한 결과였잖아?”

...역시 유즈리하 쨩 같은 사람은 거북하다. 그리고 거기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콕콕 찔러대는 행위까지도.

“그때 내 공격에 당해준 건 실수를 가장한 것이고, 곧바로 모모세 아마네에게 달려간 내 행동 역시 당신의 예상대로였겠지.”

유즈리하 쨩의 말은 언제나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자신만만하고 냉정한 성격이 온전히 드러나는 말투라고 볼 수 있었다. 일순 듣기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집중해야 하는 건 차가운 말투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표정 또한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알맹이다.

“당신이 키리사키 시도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모모세 아마네까지 싫어하는 줄은 몰랐네. 그것도 이렇게 내게 제물로 내던질 정도로 말이야.”

유즈리하 쨩은 늘 평등하게 사람을 대했다. 그것이 무시인지, 존중인지 알 길은 없으나 상대방에게 특별한 악감정도, 호감정도 없으니 그의 말에 거짓이나 빈말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충분히. 하지만 왜 입에 발린 거짓이 보편적인 미덕이겠는가. 언제나 사람은 진실을 외면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으로 눈을 가린다. 진실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가장 깊게 찌르는 법이므로.

한 마디로, 자신도 제대로 찔렸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방심했을 뿐이야. 유즈리하 쨩의 실력을 낮게 잡았고, 상처 없이 제압하려고 했다가 한 방 먹은 거지”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진 않네”

“그 정도는 넘어가 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뭐, 당신이 무슨 생각인지는 관심 없어. 이제 2심만 기다리면 되는 문제니까. 그러니 비켜”

“딱히 유즈리하 쨩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곤란한데. 지금 나가면 다들 또 패닉에 빠질걸”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심판 대상이 누구인지 정도는 사고했을 텐데”

확실히... 이 정도면 패닉 상태도 진정됐을 거고, 남은 건 유즈리하 코토코를 향한 적대감이나 공포 정도겠지. 하지만 아직 바깥 상황을 모르고, 굳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풀어놓고 싶진 않았다. 더 이상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은 사양이다.

“뭐, 계속 이러고 없을 노릇이긴 하지”

여긴 아마네의 방이니 말이지. 그래도 근육엔 무리가 안 가게 자세를 바꿀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풀어주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유즈리하 코토코가 카즈이에게서 풀려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

“하아...”

시도우는 불 꺼진 식당의 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손에 잡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이내 보급품이 다 떨어졌다는 사실과 앞으로 두 사람을 꾸준히 돌봐야 하는데 담배 냄새가 배는 건 의사로서 안된다는 직업의식이 떠올랐다. 애초에 지금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담배를 피울 시간은 앞으로도 없겠지.

애초에 시설도 빈약하다. 상태의 악화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최소한의 처치에 불과하다. 보급품에도 한계가 있고... 담배를 딱히 피우고 싶다고 피운 적은 거의 없지만, 처음으로 담배가 간절했다. 이 정도 부상, 원래 있던 병원이었다면 트리아지(1) 흰색 정도였을 텐데. (1)부상자 분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구속복의 금속이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내는 소리, 굽이 있는 어떤 신발의 작은 소리. 식당 문 근처에서 난 것 같은데...

“아마네?”

“......”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멈춰 서 있었던 아마네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기도를 하려고 왔습니다”

“기도,말인가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네도 다쳤으니까요”

하지 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선 종교는 자유이며, 힘든 일을 겪은 아이에게 기댈 곳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이곳엔 초면의 대상뿐이다. 살인자라는 사실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요소 중 하나일테고. 그것이 기도라는 행위로 해소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으며, 시도우는 굳이 아마네의 행동을 걱정이라는 이름 아래 통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문 아마네가 갑자기 자기 팔을 긁기 시작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아마네!”

다급하게 달려가 팔을 잡아 행위를 멈췄으나, 그 행동에 몸을 움츠리는 아마네에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폭력을 겪은 아이다. 당연히 접촉이 무섭겠지. 금방 팔을 놓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했어도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데.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버려둘 순 없다. 그렇게 긁었다간 상처가 나버릴 테니까. 반응을 보아하니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병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오늘 일을 생각하면 스트레스 증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팔이 간지러운 거라면 차가운 수건이나 얼음주머니가 낫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다급히 수건과 물을 챙기려 무릎을 일으키자 아마네가 됐다고 큰 소리를 질렀다. 이걸로 두 번째. 전문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이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이건 시련입니다! 이겨내야만 합니다! 코토코 씨라는 시련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저에 대한 벌이라고요...! 당신이 제게서 이 이상 무엇 하나 빼앗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마치 절규와 같았다. 사망 소식을 들은 보호자의 것과도 닮은 그것은, 결코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다. 시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련, 벌, 빼앗는다.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다. 시도우의 상식에선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아이가 가졌을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내가 여기서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 것일까. 어떤 대답이 너를 상처입히지 않을 수 있을까.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시간을 멈추고 고민하고 싶을 정도로. 다만 때론 침묵은 그 어떤 대답보다도 사람을 상처입히곤 했다. 시도우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머뭇거림 없이 입을 열었다.

“아마네, 왜 그걸 벌이라고 생각하나요?”

“시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어째서인가요? 당신은 유즈리하 군에게 맞기까지 했는데도”

“시련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중죄입니다”

“...그렇다면 벌은 당신의 시련을 멋대로 가로챈 제게 와야 옳지 않나요? 당신을 멋대로 구속하고, 시련으로부터 보호해 버렸으니까요”

“그건...!”

아마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도우는 재촉하지도, 급하게 말을 꺼내지도 않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잇지 않자 아이의 시점과 똑같은 위치로 가 마주보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뒤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마치 벌을 받고 싶은 사람처럼 보여요”

그 말을 들은 아마네는 긴장했다가, 이윽고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답지 같은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신의 모자란 식견으로는 도저히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으니까. 적어도 아내가 여기에 있었다면 더 좋은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교육은 같이 힘쓰긴 했지만 아내의 비중이 더 컸으므로. 내가 고민할 때도 항상 옆에서 조언과 격려를 해주었기도 하고.

하지만 아내는 지금 여기 없다. 이 아이의 앞에 있는 건 나다. 내가 해야만 했다.

“경솔하게 당신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거나, 말을 얹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서 모르니까요. 알더라도 당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당신의 느낌, 생각, 마음,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해요. 제 인생을 기준점 삼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건 분명 당신에게 상처가 되겠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린아이가 시련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만약 저것이 종교의 결과물이라면 그 종교에 몸담는 것도 말리고 싶다.

하지만 자신은 아마네에 대해 전혀 모른다. 심리나 종교에 관한 전문적 지식도 없어. 어설프게 하는 걱정과, 그것을 가장한 강제성을 띤 말이 얼마나 상처인지 알고 있다. 지금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는 것조차 큰 부담이다.

다만 전해야만 하는 것이 있어. 이 아이가 그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마네, 아이가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 취급하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어른스럽습니다. 훌륭할 정도로요.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기는 전부 연상들입니다. 저는 여기서나마 당신이 좀 더 어리광을 부려줬으면 좋겠어요. 그 시절에만 요구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시도우는 아마네가 거절한다면 거절할 수 있게끔, 놀라지 않게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너무나도 작고, 보드라웠다. 아주 오랜만에 맨손으로 만져보는 사람의 피부였다.

“제가 다친 건, 당신이 멀쩡한 건 온전히 저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다치는 걸 볼 수 없던 내 일방적인 배려죠. 그 벌은 분명 내게 올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아마네가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 아이의 이런 사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만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나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너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네 상처가 기꺼운 것만은 아니다. 네게 고통이 그런 의미를 갖듯, 내게 너의 고통이란 무척이나 아프다.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의 세상은 무척이나 작고, 연약하다. 그 세계만이 아이의 전부다. 그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너 또한 나를 부정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네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시도우는 아마네를 껴안았다. 이토록 작은 아이가 어째서 종교만이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야 했는가. 어째서 용서받지 않아야만 했는가. 어째서 습격당해야만 했는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투른 말밖에 해줄 수 없어서 무엇보다도 미안할 뿐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밀그램은 변해갈 겁니다. 안 좋은 방향으로. 똑똑한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네, 당신만큼은 그저 보호받아도 괜찮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어른인 우리들이 해결할 일이에요”

아마네의 몸에서 힘이 풀렸다. 이쪽으로 아주 조금씩 기대며, 손을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갑자기 긴장한 듯 몸에 힘을 주더니, 자신을 두 손으로 밀쳤다. 원래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뒤로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 다행일까. 식당에서 다급히 달려가는 아마네의 뒷모습이 이윽고 사라지자 시도우는 숨을 내뱉었다.

“뭔가 실수한 걸까...”

“아니. 오히려 대단한 정론이던데”

“...유즈리하 군?”

식당 문 바로 근처, 아마네가 달려간 개인실 쪽의 반대편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를 듣고 있었던 건가.

“우연이니 그렇게 보지 마”

“무슨 일인가요?”

“단순히 물을 마시러 왔을 뿐이야”

“그렇습니까”

정말 물을 마시러 온 건지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시도우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상처 부위가 아팠지만, 일어설 만했다. 그나마 그 둘처럼 큰 상처는 없는 것이 다행이다. 그랬으면 치료도, 무엇도 못한 채 실시간으로 둘이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그 상태를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일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못 한 채로 생명을 떠나보내는 감각보다는 나았다.

“꽤 멀쩡해 보이네”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입니다”

“아까부터 말투가 날카로운데, 당신한테도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은 있었나보지?”

“......”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은 호인이 아니다. 심판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유즈리하 코토코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폭력과 범죄의 정당화는 결코 되어선 안 된다. 또한 아마네까지 공격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큰 상처를 입었겠지. 그 왜곡된 정의심을 인정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당신을 공격한 것 때문이려나? 원래 당신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어. 당신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안 다쳤을 텐데. 애초에 내 목적은 모모세 아마네였으니...아아, 모모세 아마네 때문이구나”

그 말에 저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불가능했는지, 그렇게 말했다....아니, 하지만 아이를 공격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저 태도가 일반적인 건가? 분명 그렇지 않을 텐데. 거부감이 치밀어올랐다.

“이번 기회에 물어보자면, 당신한테 모모세 아마네는 어떤 대상이야? 어린아이? 죄수? 연민의 대상?”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 취급하며 대리 만족이라도 하는 건가?”

“...누구도 대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

답지 않게 물고 늘어진다. 게다가 질문도 계속 모호하게 하고 있고. 분명히 답을 정해놓은 질문이겠지.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무표정하던 얼굴이 굳어졌다. 불쾌감, 시도우는 코토코의 얼굴에 떠오른 그것을 그렇게 판단했다.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쪽이라는 건 확실했다.

“모모세 아마네는 네가 잃은 아이 따위가 아니야”

“무슨..!”

“아마 본인들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신 아이를 멋대로 둘에게 이입하는 거 말이야”

“...두 사람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떠올린 건 맞지만, 별개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당신 아이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신은 자기 아이를 고를 테니까”

“......”

“드디어 그 미소가 벗겨졌네”

이 정도로 강한 불쾌감을 느낀 적은 그다지 없었는데. 모모세 아마네를 공격했을 때부터, 아이를 입에 올렸을 때부터, 따위라고 칭했을 때부터 점점 불쾌함이 차올랐다. 그다지 미소도 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제가 아마네를, 에스 군을 아끼는 건 당신이 말하는 이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모모세 아마네를 구했는데?”

“어른이니까요. 그러니까 지키는 겁니다”

하, 코토코는 비웃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비웃으며 입꼬리를 올리며 숨을 한 번 내뱉었다. 어이없다는 것에 더 가까울까. 경멸 같기도 했다.

“스스로도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당신, 손을 감쌌어. 그때 모모세 아마네를 감싼 다음, 곧바로 자기 손을 모모세 아마네 아래로 감췄다고”

“......!”

순간 부정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애매하다. 아마네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고, 고통을 견디기에 급급했기에. 하지만 정말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정말로? 시도우는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하고 볼품없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얼마나 잔혹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신용할 수 없다.

그 흔들림을 마주한 코토코는 그런 그를 비웃었다. 스스로를 속일 수조차도 없고, 그렇다고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도 없는 멍청이 같으니라고. 분명 같잖은 일에 매달리다가 여기에 도달한 거겠지.

무쿠하라 카즈이보다, 카야노 미코토보다, 이 감옥의 누구보다도 짜증 났다. 바른말을 하며 자신이 정말로 선인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애정보다도, 어린아이보다도 제 팔과 손이 중요했어? 그런 주제에 어른의 책임이니 뭐니, 믿을 수가 없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고. 의료 행위라는 선행으로 면죄부라도 받거나, 다친 죄수들을 인질로 잡고 용서라도 부탁할 셈이야?  설마 진심으로 그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닐 거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 말이지?”

사실 시도우가 무슨 생각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에스의 용서 여부에 따라 심판은 내려질 거고, 키리사키 시도우의 치료를 염두에 두고 적당히 살아있게끔 완급 조절을 했으니까. 하지만 불쾌한 것은 불쾌하다. 에스가 그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도 공격해야겠지.

“됐어. 자신이 희생한 거라고 착각하는 꼴이 보기 싫었을 뿐이니까. 그런 주제에 에스의 일을 방해하지 마. 살인자 따위가”

여기 온 목적도 달성했겠다, 굳이 더 대화할 필요는 없다. 코토코는 주방 문 쪽으로 발을 옮기며 말했다. 그런 코토코를 멈춰 세운 것은 시도우의 조용한 한마디였다.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뭐라고?”

“당신 또한 똑같은 살인자가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같을 리가 없잖아”

시도우는 가만히 코토코를 마주 보았다. 코토코의 얼굴에 올라온 불쾌감, 분노, 우스움 등을 보자 정말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 이상의 확신에 오히려 이쪽이 놀라울 정도다.

“피해자의 가치도, 동기도, 무엇 하나 같은 게 없어. 내가 죽인 건 죽어 마땅한 악인이었다고”

“정의를 위해서 말이죠”

“잘 알고 있네”

죽어 마땅한 사람. 그 표현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가치와 생명을 선별하는 그 익숙한 오만함에 가슴이 답답해지며 목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다를 것이다. 목적도, 동기도. 하지만 그 본질만큼은 같다.

시도우는 아마네에게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단어로 정의 내리는 것에는 서툰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코토코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생각의 연장선인 것은 분명했다.

“정말로 정의를 위해서인가요?”

그 말에 코토코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으나, 시도우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지금은 상대의 대답을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물론 저는 당신에 대해 모릅니다. 그러나 밀그램에서, 오늘 당신이 저지른 짓은 도저히 정의라고 판단하기 힘들어요. 당신의 정의는 약자의 구원이 아닙니다. 악의 처벌을 위한 정의죠”

“현실이라면 나도 약자를 지켰겠지. 하지만 이곳엔 살인자들뿐이야. 보호 대상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 그렇다면 심판만을 목적으로 삼는 게 당연하잖아?”

“지킬 사람이 있든 없든, 정의는 반드시 약자의 보호를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단순히 개인적인 사적제재에 불과하고요”

“사적제재의 뭐가 나빠? 법이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법의 빈틈을 노려서 행동하는 악인이 있기에, 그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기에 내가 행동한 거야. 그것들에 나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어.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여전히 썩어갈 뿐이라고”

일본의 법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은 안다. 뉴스도 꾸준히 보고, 법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적제재를 긍정할 수는 없고, 이 뒤틀린 정의를 내버려둘 생각도 없다.

정의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도 겨우 스무 살의 아이가 책임감에 짓눌리는 모습 또한 보고 싶지 않다. 그건 고작해야 스무 살 된 아이의 몫이 아니다.

“일본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범죄자의 처벌 의무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에 있고요. 당신의 행동은 긴급피난도, 정당방위도 아닙니다.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사적 제재를 허용하게 된다면 나라는 분명 무법지대가 될 테니까요”

“그 법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인 거라고 말했잖아.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파리들은 잡아도 말벌들은 찢고 지나가게 한다. 그러니까 그 말벌을 잡는 사람이 필요한 거고, 여긴 일본이 아니야”

시도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코토코를 빤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코토코의 정의는 누군가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빈틈 또한 없다. 설령 빈틈이 있더라도 우수한 머리로 금방 그것을 메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진심인 것만은 아니다. 이해를 얻기 위한, 정확히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정의론을 늘어놓고 있다.

“당신의 말대로 여긴 일본이 아니며, 법치주의 국가 또한 아니죠. 이곳의 룰인 에스 군의 판단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에 따른 벌을 받고 있는 죄수들도 있고요. 심판은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당신은 죄수이고, 그건 간수인 에스 군의 몫이죠. 당신의 불필요한 심판은 당신의 개인적인 충족감을 위함이 아닌가요?”

“에스가 나와 손을 잡았다고 말했을 텐데. 당신이 말하는 자격은 충분히 있단 뜻이지. 이건 에스의, 용서받지 못한 죄수들을 향한 벌이야”

“저는 그럴 리 없다는 전제 하에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아, 코토코는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까지 이 쓸데없는 담화를 해야 할지. 하지만 코토코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정의를 가볍게 입에 올린 멍청이는 더더욱. 뺨에 와닿고, 말할 때마다 폐로 들어오는 차가운 새벽 공기가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좋아, 그 전제로 대화에 어울려줄게. 에스가 날 용서했을지언정 긍정하지 않았고, 내가 멋대로 죄수들을 심판했다는 그 망상에 말이지. 그래서? 그러면 뭐가 달라져?”

대체 살인자 주제에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건지 모르겠네. 당신들이 누군가에게 주었을 고통의 일부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를 겪고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는 건가? 코토코는 그 이중 잣대에 역겨움이 치밀어올랐다.

동류 취급도 기분 나쁘지만, 그쪽은 옳고 이쪽은 옳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는 저 따위 태도는 몇 번을 겪어도 기분 나빠.

“당신들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이고,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틀림없지.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 수단보다 중요한 건 목적이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뤄내야 할 목적도 있는 법이라고”

“목적과 수단 중에서 중요한 건 수단이에요. 특히 당신처럼 심판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를 추구하다 보면 이후 그 과정에서 약자의 희생이 생겨도 그건 목적을 위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

“확신이 있네. 그 경험을 겪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을 하던 코토코는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동공을 가늘게 떴다가, 지금까지의 대화 중에서 가장 얼굴을 구겼다.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욕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다.

“당신, 멋대로 겹쳐보지 마”

코토코는 시도우에게 걸어왔다. 걸음에 힘이 담긴 것이, 코토코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정도였다. 코토코가 시도우에게 손을 뻗자, 당장 오늘 코토코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는 시도우로서는 순간 폭력을 행사하는 줄 알고 전신에 힘을 줬을 정도였으나 단순히 멱살만 잡혀 얼굴이 조금 가까워졌다.

아무리 멱살이라곤 하더라도 오늘의 심판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그 힘을 휘두르지 않던 사람이다. 얼마나 감정적인 상태인지 추측이 갔다. 그게 아니면 협박용이겠지. 손 한 번 뻗는 것만으로도 겁먹는 주제에,따위의. 둘 다 아닐 수도 있지만.

“답지 않게 공격해 오더라니. 나는 당신이 아니야. 당신의 보상 심리를 대리 만족시켜줄 존재가 아니라고. 나를 바로잡는 걸로 당신의 실패를 바로잡는 거라고 착각하지마”

“...그런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저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마음에서 기반된 겁니다”

“착각하지 마. 타인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오만이고, 나와 당신은 달라”

그대로 힘을 줘서는 내동댕이치기라도 할 줄 알았기에 힘을 주고 있었으나, 상대는 손을 놓고는 식당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는 옳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는 코토코의 뒷모습을 보며, 시도우는 힘을 준 탓에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근처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더 엉망으로 꼬여버렸을 뿐이야. 그 사실에 지독한 허망함과 자책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 군은 대체 어딜 간 건지...

에스 군, 빨리 돌아와 주세요.

모모세 아마네 시점에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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