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커플링(Non-CP)

모모세 아마네 시점

IF 모모세 아마네가 공격받았다면?

밀그램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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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말이 튀어나오는지조차도 모르겠다. 다만 빌었다. 사죄했다. 그것만이 시련을 대하는 방법이다.

시련은 벌이다. 분명히 내가 무언가를 잘못 했기에, 신앙심이 부족하기에 받는 벌. 혹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인도. 벌은 사랑이다. 애정이 없다면 관심 또한 없고, 벌이라는 행위로 이어지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 신님은 우리의 신앙심을 그런 식으로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죄해야만 한다. 신앙심이 부족해져서, 실망을 드려서, 나약해져서 죄송하다고. 그래야만...

모모세 아마네는 끊임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필사적으로 신앙에 대해, 벌에 대해 사고했다. 사고가 멈추는 순간 느껴질 고통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외면한다. 현실에서부터 멀어져,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 그것은 오랜 습관이자 본능이었다.

시야가 점멸했다. 사소한 금마저 보일 정도로 가까웠던 바닥이, 어둠으로 변했다. 사고보다도 빨리, 아마네는 그것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차가워. 뭉툭한, 손 같은 무언가. 내 것인지 모를 진동. 그 감각이 모모세 아마네를 현실로 인도했다.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아마네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찾아올 고통을 예상했기 때문에. 하지만 고통이 그를 덮치는 일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성인 남성의 목소리. 상냥하고, 부드러운. 모모세 아마네는 그제야 온몸을 압박하고 있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를 지금, 껴안고 있는 건가?

어째서?

“아마네, 팬케이크는... 부드럽습니다”

그다음으로 아마네가 깨달은 것은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었다.

그다음은 타격음이 들릴 때마다 떨리는 저 가냘픈 몸이었다.

그다음은 볼의 고통을 제외하곤 이상하게 멀쩡한 자신의 몸이었다.

눈을 가리고, 폭력으로부터 지킨다고 해서 상황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들려온다. 둔탁한 타격음과 참는 듯한 신음 소리가. 아마네는 저 고통을 알고 있었다. 이건 시련이다.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나에게서 이것을 앗아가는가. 왜 당신이 스스로 시련을 받으려 하는가.

차라리 유즈리하 코토코를 막으려고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다친 자신을 치료하려고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우리에게서 시련을 빼앗아 가는 존재가 바로 당신이므로. 그러나 어째서 자신을 감싸는가. 그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키리사키 시도우가 발차기를 맞아 날아갔을 때,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했던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맞기 전에 무쿠하라 카즈이가 유즈리하 코토코를 제압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내가, 이 내가 저런 의사에게 손을 뻗을 뻔했다고? 미수로 끝났으나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사실 자체가 아마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뿐일까. 고통에는, 시련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치욕스러웠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제대로 마주하고, 버티고, 이겨내야만 하는 것인데.

시련을 강제로 빼앗겼다. 시련의 극복을, 신님의 안배를, 저 남자에게. 원망해야 한다. 스스로 시련을 쟁취해야만 했다. 그리고 극복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옳은 방법이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뇌리에 스치는 그 목소리에, 모모세 아마네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코토코의 주먹에 맞은 볼이 아파져서 순간적으로 힘을 풀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내부에서부터 뭔가가 올라오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것은 미움이다. 증오다. 사람들이 시련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도록 하는 저 존재가, 이윽고 자신의 시련마저 앗아갔다는 그 사실에 대한 원망이다.

그분들이 여기 있었다면 실망했을 테지. 또냐,는 얼굴을 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련을 주셨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죄송합니다. 아버지. 실망을 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용서를 해주세요.

“미안하지만 아마네부터 옮겨주지 않겠어? 창고에 분명 상태 좋은 이불이 있을 거야. 그리고 저쪽에 후우타와 시이나 쨩도 봐주면 좋겠네. 상처가 심각하니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몰라”

익숙하게 속으로 사죄를 읊던 아마네는 무쿠하라 카즈이로부터 나온 그 단어에 집중했다. 치료. 그 끔찍한 것을 드디어 하려고 드는구나. 나로부터 시련을 앗아간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타인의 시련의 극복마저 네놈이 방해하는구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몸으로는 치료 행위를 막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다친 이들은 무지한 자들이다. 일깨워주어야 한다. 신앙을, 시련의 극복을, 그 이후에 있는 구원을.

아마네는 떨리는 몸뚱아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다리, 팔,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참을 만했다. 고통에 굴복해선 안 된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들 힘까진 없었다. 우선,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결할 행위를 받기 전에, 이 시련마저 빼앗기기 전에.

“아마네, 그렇게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상처가..”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타박상이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키리사키 시도우의 재차 말리는 목소리에 뭔가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방금까지도 자리에 누워 느끼고 있던 그것이었다. 분노. 모모세 아마네는 그것을 그렇게 판단했다.

“됐다고 말했을 텐데요!”

그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리를 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른스럽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소리다. 너는 의무가 있다. 신앙을 지키고, 신앙을 전파하고,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

단 한 번도 떼를 쓴 적도,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벌을 내릴 때의, 아버지의 몫이다. 분노란 정당해야만 한다. 아버지처럼, 신실하시고 대단하신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는 자신이 약속을 어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도 무릇 그래야만 했다. 「모모세」는 화를 내선 안 된다.

그런 자신이 소리를 쳤다. 어린아이처럼. 짜증을 부렸다. 감사와 미소를 잊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시도우 씨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정도로 저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말을 내뱉고는 도망쳤다. 그것에 대한 벌이었을까. 아마네는 뭔가가 기어오르는 듯한, 간지러운 감각을 느꼈다. 피부 한 겹 아래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손톱으로 꾹 누르기도 해보고, 그 피부 주변을 손바닥으로 때려도, 피부를 긁어도 사라지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자신의 행위를 모욕하는 그 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그것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간지러움을 잊을 수 있으니까. 다만 그것도 길게 가지는 않았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이 간지러움을 가라앉히지 않는 한, 잠을 계속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도해야만 한다. 이것은 시련을 쟁취하지 못한 자신을 향한 벌이다. 기도하고, 사죄해야 한다. 용서해 주실 때까지.

다만 자신의 방은 불결하다. 자신이 시련을 빼앗긴 곳이므로. 기도에는 장소가 중요하다. 그래서 모두가 그곳에 모여야만 한다. 모여서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고, 신앙을 증명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몸을 일으켜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만한, 적당한 장소. 어차피 좁은 감옥이니 갈 곳은 한정되어 있고, 밤이니 모두 자고 있을 것이다. 식당 정도가 괜찮겠지.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금방 식당에 도착했다. 인기척이 없었기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누군가가 있었다. 익숙한 얼굴. 아마네는 얼굴을 보자마자 그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시가라키 시도우. 상대 또한 한 박자 늦게 자신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다. 하지만 다르다. 피로가 잔뜩 올라온 듯한 얼굴, 군데군데 보이는 상처, 맞은 여파로 인해 찢어진 옷까지. 누가 누구를 돕겠다는 건지. 결국 그 같잖은 의료 행위를 한 모양이다. 결국, 신님의 그것을 인간 따위가 앗아갔어. 그 불쾌감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네는 뇌리에 떠오르는 표정을 잊으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를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었어.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어. 불쾌해.

지금은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분명 그 또한 자신을 싫어할 테니까. 일이 귀찮게 되는 것은 사양이다.

“아마네?”

“......”

화를, 내지 않는다. 짜증도 무엇도 없어.

“이 시간엔 무슨 일인가요?”

똑같다. 평소와, 나를 껴안았던 그때와, 나를 불렀던 그때와.

아마네는 처음으로 키리사키 시도우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걱정을 한가득 담은 그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모세 아마네는 필사적으로 그것에서 그 외의 무언가를 찾았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그야, 이상하잖아.

유즈리하 코토코에게 상처를 입었고, 나는 짜증을 냈다. 감사의 말이라곤 전혀 듣지 못했어. 그런 주제에 지금, 쉬지도 못하고 강제로 책임을 떠맡았어. 명백하게 나 때문이잖아. 이건 자책도, 죄책감도, 걱정도 아니다.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순수한 의문이다.

왜?

가슴이 답답해지며,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기도를 하려고 왔습니다”

키리사키 시도우의 앞에서 뭔가의 증상은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나를 치료하려고 들 거야. 그것은 안 된다.

“기도,말인가요..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마네도 다쳤으니까요”

...고작해야 뺨 한대다. 강한 힘으로 맞긴 했지만 그뿐이다. 하물며 더 다쳤어야 옳았을 것을 빼앗아버린 당신이, 내게? 감히?

아마네에게 있어 분노란 불처럼 타오르는 것이었다. 유즈리하 코토코의 그것처럼, 카지야마 후우타의 그것처럼, 아버지의 그것처럼. 그게 모모세 아마네가 습득한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이 감정은 분명히 분노다. 이처럼 강렬한 감정은, 분노밖에 없다.

대화하며 잊고 있던 간지러움이 다시금 올라왔다.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도저히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

“아마네!”

소리를 치며 달려온다. 팔이 올라간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 손은 그저 자신의 팔을 잡을 뿐, 전혀 아프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금방 손을 놓았다. 아마네는 자국이 전혀 남지도 않았을, 약하게 움켜쥔 상대의 팔을 떠올렸다. 자신을 위해 굽힌 한쪽 무릎을 보았다. 왜 사과하는 거지? 그것은, 그 눈동자는 흔히 봐온 것과는 달랐다. 눈동자만큼은 여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팔이 간지러운 거라면 차가운 수건이나 얼음주머니가 낫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됐습니다!”

도저히 이것을 토해내지 않고서는 못 버틸 것 같았다. 더 이상의 걱정을, 유혹을 받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단호하게 끊어내야만 했다. 이 남자에게, 이 천인공노할 의사에게 제대로 말해두어야만 한다.

“이건 시련입니다! 이겨내야만 합니다! 코토코 씨라는 시련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저에 대한 벌이라고요...! 당신이 제게서 이 이상 무엇 하나 빼앗게 두지 않을 겁니다!”

아마네는 이번에야말로 시도우가 자신을 부정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이, 이 환청들이 그러했으니까. 당신들이 나를 부정한다면, 나 또한 당신들을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침묵하던 시도우의 답변은 전혀 달랐다.

“아마네, 왜 그걸 벌이라고 생각하나요?”

처음. 또, 처음이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약속을 어겼을 때도, 신앙을 굳건히 지켰을 때도, 어떤 행동이든 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에 아마네는 눈을 크게 깜빡거리다가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시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어째서인가요? 당신은 유즈리하 군에게 맞기까지 했는데도”

“시련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중죄입니다”

“...그렇다면 벌은 당신의 시련을 멋대로 가로챈 제게 와야 옳지 않나요? 시련을 가만히 받으려던 당신을 멋대로 구속하고, 시련으로부터 보호해 버렸으니까요”

“그건...!”

답하지 못하자, 그런 자신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다시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은 마치 벌을 받고 싶은 사람처럼 보여요”

아마네는 침을 삼켰다. 방금까지 건조하던 입안이 축축해졌다. 그 말대로, 어쩌면 벌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시련이었는데,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벌을 주지 않아. 잘못했다고 책망하지도 않는다. 혼내지도 않는다.

되려 걱정해 주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해주었다. 그 사실이...

아마네는 입술을 눌렀다. 아까부터 치밀어오르던 무언가가 목구멍 근처까지 치밀어올라 넘실거렸다. 긴장을 풀어버리면 뭔가가 흘러내릴 것 같다.

“경솔하게 당신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거나, 말을 얹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서 모르니까요. 알더라도 당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당신의 느낌, 생각, 마음,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해요. 제 인생을 기준점 삼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건 분명 당신에게 상처가 되겠죠”

마치 동물의 털처럼, 한겨울에 틀어진 히터처럼 부드럽기만 하던 목소리가 일순 단호함을 띄었다.

“하지만 아마네, 아이가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또 어린아이 취급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린아이 취급하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어른스럽습니다. 훌륭할 정도로요.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기는 전부 당신보다 연상들입니다. 저는 여기서나마 당신이 좀 더 어리광을 부려줬으면 좋겠어요. 그 시절에만 요구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어른스러운 것을 칭찬받는 경우는 많았다. 당연하다고 여겨졌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에게 손이 덜 가는 것을 기쁘게 여겼기에. 하지만 그는 다르다. 되레 어른스럽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칭찬을 곁들인다. 그러고는 손을 뻗었다. 아주 천천히, 매우 느리게. 그리고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그 행위에, 이번에는 가슴 근처가 간지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 같았다.

“제가 다친 건, 당신이 멀쩡한 건 온전히 저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다치는 걸 볼 수 없던 내 일방적인 배려죠. 그 벌은 분명 내게 올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벌을 대신 받겠다, 시련을 대신 받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이 직접 받아야만 옳다. 타인의 시련을 빼앗는 것은 중죄다. 하지만...

“다만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나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 목소리가 너무나도 상냥해서, 마치 그게 옳은 것인 양 느껴진다. 바닥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었다. 시도우는 어딘가 슬픈 듯, 그러나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당신의 탓이다. 당신이 날 지키지만 않았어도, 그런 표정으로 날 보지만 않았어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안겼다. 아주 조심스레. 그것은 마치 소중한 것을 대하는 듯한 손길이라, 어쩐지 소중한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포근포근한 인형에 안겨있는 느낌. 실제로 몸에 닿는 것은 인간의 신체였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밀그램은 변해갈 겁니다. 안 좋은 방향으로. 똑똑한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네, 당신만큼은 그저 보호받아도 괜찮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어른인 우리들이 해결할 일이에요”

어째서일까. 종일 치밀어오르던 분노도, 어린애 취급에 대한 거부감도 무엇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저 꿈을 꾸는 것처럼 멍해서. 분명 관리되고 있을 밀그램 내의 밤공기가 왜 그렇게 차가웠던 건지, 이 사람의 포옹은 왜 이렇게 따뜻한 건지 모르겠다. 맞은 상처에서 뭉근하게 열이 오르는 둔통 때문이었을까.

차라리 이 사람이 아버지였다면...

“...!!”

내가, 무슨 생각을.

맞닿아있는 시도우의 신체를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밀치고 복도로 달려 나갔다. 힘을 그다지 주고 있지 않았는지 멀어졌다. 역시 상종하는 게 아니었어. 이런 사람 따위. 신앙을 흐리게 하는 존재야. 믿음이 흔들려선 안 된다. 사랑을 의심해선 안 된다. 그것만이, 신앙만이 내 전부다. 분명 나는 구원받을 테니까. 나는 옳을 테니까.

더 이상 간지럽지 않은 몸은 이미 아마네에게서 잊힌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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