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커플링(Non-CP)

NCP [0510] 유즈리하 코토코가 ■■하는 이야기

사랑 : ■■하는 마음

밀그램 by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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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인, 가족, 동료, 친구, 팬...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이 있기에 비로소 존재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랑만이 그들을 그 이름 아래 묶여있게 한다. 아카페, 에로스, 필리아.. 사랑마다 종류가 있다지만, 결국에는 똑같다.

모든 관계는 필요와 이해, 그리고 비합리적인 사랑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 수많은 음유시인과 예술가, 철학자들이 광범위한 그것을 하나로 정의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기술은 발전해 가고, 미지의 영역은 점차 줄어드는 현대에 와서까지 사랑이란 여전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인간은 관점을 바꾸었다. 사랑을 정의 내릴 수 없으니, 그 이유를 정의하고자 했다.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가, 왜 인간은 사랑받아야 하는가. 왜 사랑받으려고 하는가.

그 이유조차 명확하지 않으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겠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이 무리를 이루듯이, 조금 두뇌가 발달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들의 생존 본능의 집합체.

그러나 시대가 변해가며 여유로워지고, 생존의 필요가 없고, 번식 또한 필수가 아니게 되자 사람은 그 뇌의 작용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사랑」이라고. 그런데 이제와 그것을 다른 것으로 정의내리려 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사랑이란 아주 상냥한 차별이다. 부드러운 계급제다. 아주 감미로운 독이다. 끝없이 비교하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아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란 소리다. 가치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내 것으로 삼는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은 침범할 수 없는 그룹을 이루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너무나도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감정이 안정감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끔찍하게 변하는가. 인간이 사랑하며 창출되는 것을 양분 삼는다면, 그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그것을 얻어야 하는가. 이 빌어먹을 계급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강제로 사회와 단절된 지금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

유즈리하 코토코가 이상해졌다. 가뜩이나 좁은 감옥 내에 단번에 퍼진 소문이다. 인간관계가 좁고 소문에도 어두운 어느 이중인격자에게도 그 소문이 닿을 정도로.

물론 판결이 끝난 이후 사람이 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판결은 반드시 대상의 변화를 촉구했으므로. 오히려 유즈리하 코토코의 변화는 매우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감옥 내에서 굳이 소문이 돌 만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 상태가 묘했기 때문에, 하물며 유즈리하가 판결 이후 폭력을 저지른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잠시 저들끼리 잠시 쑥덕이는 이야기가 되었다.

성격이 변한 것도 아니다. 찌르면 그대로 반응이 돌아오고, 적당히 날카로운 듯하면서 무뚝뚝한 분위기도 여전하다. 그저 어딘가 집중을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것에 대해 어떤 수감자 H 씨는 「용서를 못 받은 게 충격인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에스 군과 사랑싸움이라도 한 게 아닐까?」라고 하기도 했으나 코토코 본인이 그 추측을 들었으면 헛소리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또 자기 혼자 멍하니 바닥이나 천장 혹은 벽을 보며 멍하니 생각에 빠진 후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이어 중얼거릴 테지.

그래, 마치 지금처럼. 유즈리하 코토코는 배식으로 나온 식사를 앞에 두고는 멍하니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먹는 이들은 이미 진즉에 식사를 끝낼 시간까지도 그러고 있자 결국 적당한 사람이 코토코에게 다가갔다.

“유즈리하 쨩”

그 뒤에 붙은 쨩즈케만 아니었어도 익숙한 나이 든 남자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그 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았고. 코토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걸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음식이 다 식어가는 것 같은데, 괜찮니?”

“괜찮아. 식은 것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답하며 코토코는 카레를 수저로 비비기 시작했다. 이미 살짝 굳은 밥은 카레와 잘 섞이지 않았으나 비비다 보니 점점 섞여갔다. 그다지 식욕은 없지만, 그렇다고 먹지 않을 이유는 없다.

대충 비빈 카레를 한 입 넣자, 덜 섞였는지 미지근한 카레와 겉이 살짝 굳은 밥의 맛이 동시에 났다. 입이 텁텁해졌지만 기계적으로 씹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걸 보던 누군가 씨가 무슨 카레를 저렇게 전투적으로 먹냐고, 코토코의 것만 맛이 다르냐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코토코도 요즘 죄수들 간의 묘한 분위기를 아예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다. 그 정도로 정신이 팔리지도 않았고. 모르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단순히 지난 심판으로 죄수들이 자신을 기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물론, 오히려 어떻게 하면 다시 심판을 할 수 있을까라던가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런 것들에 대해 머리를 굴리기도 바쁘니까. 하지만..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쾌한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돌이라고 씹은 거야?라는 누구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어지간히 떠들어대는군. 마치 불쾌한 것을 마주한 사람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몸에 약간의 힘이 들어가 긴장 상태를 유지해 버린다.

유즈리하 코토코는 현재, 이 감옥에서 한 사람이 불쾌했다. 키리사키 시도우. 전직 의사, 대량 살인마, 아마도 장기이식으로 큰 죄를 지었을 사람. 그리고 이 상황에도 침착하고, 삶의 의지가 없고, 그럼에도 타인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고.

어느 사이비 소녀의 감정에 동화되거나 그 하찮은 사상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 본인조차 이유를 모른다. 그저 그가 싫다.

어째서? 저 남자가 죄수들을 치료했기 때문에? 아니, 그건 상정 내의 일이다. 애초에 예상했으니 불쾌할 것도 없다. 그걸 예상하고 그들을 적당히 짓밟아 놓은 것이기도 했으므로.

아니면 살인자 주제에, 타인의 미래를 짓밟은 주제에 삶에 대한 미련 한 점 없던 눈동자나 1심 판결 이후 생기가 돋은 그 표정이 거슬려서? 아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역시 살인자답네, 그 정도의 혐오로 충분한 일이다.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 유즈리하 군,하며 이쪽을 마주해오는 그...

덜컹, 코토코는 저도 모르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과 부딪히며 균형을 찾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직 식당에 있던 대부분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코토코에게 쏠렸다. 소리의 원천지를 확인하고는 불편한 시선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코토코를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그 시선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코토코는 접시도 내버려둔 채로,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아직 다 먹지도 않은 카레와 정리된 의자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의자만이 어색하게 그 공간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왜 저래?”

대부분이 그렇게 가볍게 넘겼으나, 그것을 기점으로 유즈리하 코토코의 이상 행동은 더욱 심해질 것을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이상 행동의 처음은 그러니까, 무쿠하라 카즈이였다.

대화를 하던 카즈이와 카지야마 후우타 사이에 코토코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끼어들어 카즈이의 멱살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물론 카즈이의 방어로 시도는 실패했다. 바로 앞에 있던 후우타는 트라우마 때문에 몸이 굳고 벌벌 떨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피하려고 했다.

그런 후우타를 신경 쓰던 카즈이 때문에 곧바로 제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리는 벌려져 대치 상황이 이어졌을 때, 왜 그러냐고 묻는 카즈이에게 코토코는 침묵하다 입을 열어 말했다.

“눈”

“...눈?”

한차례 이해하지 못한 카즈이가 그렇게 반문하자, 코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후우타를 습격했을 때같은 살기는......느껴지지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얼굴을 보여주면 되는 건가? 그걸 먼저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저씨 깜짝 놀랐다고”

물론 카즈이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코토코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걸 눈치챈 코토코는 굳이 일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색할 정도로 팔을 고정한 채, 부러 다리만 움직여 그에게 다가갔다.

코토코의 붉은 눈동자와, 카즈이의 푸른 눈동자가 올곧게 마주했다. 카즈이는 문득 누군가를, 그것도 눈을 이렇게 진득하게 바라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녀석도, 그 사람도, 그 외의 다른 이들도.

상대에게 제 마음을 들킬까봐..가 이유였을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이든 거짓이든.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까지 있으니까. 눈까지 휘어 미소를 짓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유즈리하 코토코는 자신의 속내는 뻔히 보인다는 듯, 무심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지만,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은 마치 몇 겹인지도 모르게 온몸을 덮은 거짓이 벗겨진 듯한 기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명도가 낮은 눈동자는 담담하게, 시선을 피하는 일 없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이 얼마나 올곧은 눈동자인가.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다. 조금 더 먼 곳을 보는 듯한...그래,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그 붉음은 마치...

그때, 코토코의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인다. 시야에서 눈동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카즈이는 현실로 돌아왔다. 코토코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카즈이는 손을 움찔거렸다. 어느새 경계는 반쯤 잊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달려든다면 제압할 자신은 있지만.

둘의 눈싸움을 지켜보던 주변인들이 둘보다 더 긴장했으나, 코토코는 정말 그게 목적이었다는 듯 미련 없이 몸을 천천히 돌려 걸어갔다. 보고 싶은 건 봤다는 담담한 말 한마디는 덤이었다.

카즈이는 결국 뭘 하고 싶었던 걸까...하고 중얼거렸으나 그 중얼거림에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잘 끝났다고 안심한 사람에겐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유즈리하 코토코의 1차 시도였다. 1차였다는 말을 듣고 눈치챈 사람도 있겠으나, 당연히 2차와 3차 시도도 있었다.

2차는 카야노 미코토. 판결이 끝나고 조금 상태가 나아졌던 미코토의 앞을 다리로 막더니, 카즈이에게 그랬듯 얼굴을 들이댔다. 그 폭력스러운 쪽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른 죄수들에게 있어서는 유일하게 다행인 부분이다.

카야노 미코토가 코토 쨩!? 코토 쨩!? 하면서 시끄럽게 굴었으나, 코토코는 조금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 없이 눈을 잠시 마주치더니 멀어져갔다. 카즈이때보다 확연하게 짧게 마주쳤다. 미코토가 주변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그 설명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지켜보고 괜히 지레 겁먹고 코토코만 보면 몸을 굳히거나 피해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음 타깃은 아무 생각 없이 오므라이스를 먹던 사쿠라이 하루카였다.

“코, 코, 코토, 코토코 씨..!?”

하루카가 시선을 피하려고 들자 코토코는 멱살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는지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 인간도 있었다.

3번째 피해자까지 생기자 꽤 머리가 돌아가는 죄수들 일부는 대충 코토코의 목표 대상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음 대상도.

하지만 짧은 주기로 저질렀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코토코는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았다. 멍때리는 빈도만이 여전했을 뿐이다. 결국 대부분이 코토코 관찰을 포기하고 슬슬 각자의 생활에 전념했을 무렵에서야 일은 일어났다.

“아, 유즈리하 군”

코토코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미성. 부드러운 성인 남성의 목소리. 크지만 조심스러운 보폭 소리.

뒤를 돌자,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키리사키 시도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푸른빛의, 투명한 눈동자. 마치 개미가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불쾌한 감각에 코토코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것이 마치 천적을 앞에 둔 피식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코토코는 결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계속, 눈도 깜빡이지 않고 시도우를 관찰했다. 그 시선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다가온 시도우와 한 발자국 정도를 사이에 둘 때까지.

푸른 눈동자는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제대로 된 어른의 표본처럼 침착하고, 상냥하다. 아마 겉으로 보기에는 저 남자가 자신이 봤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참된 어른의 요소를 충족시키는 사람이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싫어.

그래. 저거. 그 사건 이후로 자신에게 갖는 저 묘한 시선이 코토코는 무척이나 불쾌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마치 미성숙한 어린아이를 보는 어른처럼, 자신을 저런 식으로 바라봤던 그 사람처럼 그는 자신을 봤다. 이곳의 누구도 나를 저렇게 보지 않는데. 공포에 질렸을지언정, 저런 식으로 내려다보지는 않았는데. 드디어 그 시선에서 벗어났는데.

코토코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그 손을 뿌리친 것은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들지 마.

“기분 나빠”

아.

딱히 내뱉을 생각이 없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답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굳이 정정할 생각은 없었다.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었으니 이참에 잘된 일이겠지.

코토코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건 금방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네요”

“오늘 식사는 낫토라던데, 교환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유즈리하 군, 잠은 충분히 자고 있는 건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면적도 그리 넓지 않은 감옥이니까. 하지만 유즈리하 코토코는 남이 자기를 피해 다니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물며 기분이 나쁘다,라는 인간 관계를 맺기에는 최악에 가까운 말까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처음에야 무시하거나, 적당히 피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썼지만 질리지도 않고 다가오는 시도우에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코토코였다.

“무슨 목적인데?”

묻자, 시도우는 평소의 맹한 표정을 지었다. 겉모습만큼은 멀끔해서, 저런 표정을 하면 대부분이 속아 넘어갈 테지만 코토코는 저게 얼마나 멍청한 표정인지 알았다.

“아까도 말했듯 최근에 잠을 못 주무시는 것 같길래 잠이 잘 오는 법을 알려드리려고 왔을 뿐입니다”

“그거 말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말이야”

“글쎄요.. 정말 의사로서 당신의 건강이 걱정되어 말을 걸었을 뿐입니다만. 수면 부족은 만병의 근원이니까요”

“그 걱정의 대상에 나도 포함되어 있어?”

“물론입니다”

하, 코토코는 코웃음 치고 싶은 것을 참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기는.

“당신은 나를 싫어하잖아”

담담하고 느긋하게 말하는 시도우의 말에 단호하게 답하자, 시도우의 웃는 표정은 이내 진중해졌다. 미소를 지을 때는 상당히 상냥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얼굴인데.

저 얼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속여왔을지, 그리고 그만큼 죽여왔을지. 그 생각까지 치밀자 코토코는 역겨움이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유즈리하 군은 정말 눈치가 빠르군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라는 평을 들었는데. 여기에 와서 물러진 걸까요? 아니면 당신의 사람을 읽는 실력이 뛰어난 거겠죠. 어느 쪽이든 대단하네요”

마치 아이를 대하듯 칭찬한다. 그것이 그의 장점으로 작용했을 때도 있었겠으나, 저런 취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감옥 내에서는 쓸데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오히려 저런 태도가 그를 향한 거리감을 만든다.

 “유즈리하 군에 대해 별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뻔한 거짓말은 됐어”

“정말입니다. 유즈리하 군. 당신은 제가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정말로 당신을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유감 정도는 있지만요”

거짓말은 하지 않겠지만, 묵비권은 행사하겠다. 키리사키 시도우가 에스에게 말한 그것은 분명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죄수들에게까지 통용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코토코가 프로파일링한 그대로의 대답이다. 코토코는 우선 그 전제조건을 적용한 채 그와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마저도 연기라면 정말 직업을 잘못 선택한 녀석이겠지. 게다가 의심하는 건 대화가 끝난 직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믿는다는 태도를 보여주면 상대도 방심하기 마련이니까.

“오히려 당신이 절 싫어하지 않나요?”

이런 점이 그러지 못하게 만들지만 말이지. 코토코는 그 물음에 무심코 얼굴을 굳혔다. 진짜 싫어. 그러나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는 듯 그는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치료라던가, 삶에 의지가 없는 태도라던가, 여유로운 모습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지적을 받았거든요”

“아, 그래?”

“그렇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당신은 제게 그것들을 지적한 그들과는 조금 다른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나는 당신의 그런 점도 싫어하거든”

“그렇군요. 그건 유감이네요.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면서. 정말 위선적이고, 쓸데없는 예의를 차리는 척하는 남자네.

“유즈리하 군, 당신은 절 보면 누군가가 떠오르는 건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에 상대를 빤히 쳐다봤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쪽을 마주 보고 있다. 소름 돋을 정도로 푸른 눈동자가 불쾌하다. 매우.

“..근거는?”

“글쎄요. 직감이랄까요. 「그런 사람」은 익숙해져 있거든요”

뭔가를 떠올리는 듯 시선이 위로 올라간다. 항상 그렇지. 에스와 모모세 아마네를 볼 때도, 자신을 볼 때도, 그는 그야말로 누군가를 떠올리려는 듯 멍한 시선이었다.

그야말로 익숙해져 있을 법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런 사람」을 볼 테니까.

“당신은 절 보며 떠오르는 상대를 싫어하나요?”

코토코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저걸 보통 연륜이라고 하던가. 그 사람의 저런 점이 정말 싫은 건데.

“싫어”

“그렇군요. 친밀한 사이였나요?”

“글쎄, 일방적으로는. 그보다 점점 질문의 저의를 모르겠는데”

약간의 불평을 내뱉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어른은 비교적 어린 사람이 친근하게 대해주면 좋아하는 습성이 있으니까. 물론 좀 더 나이를 먹어야 잘 통하겠지만.

“단순 고민 상담입니다”

“어느 쪽의?”

“둘 다랄까요. 어째서 미움받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최근 표정이 어두운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습니다”

“어른 행세네. 날 당신의 애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거야?”

“후후... 아, 미안합니다. 에스 군에게 비슷한 소리를 들으며 정강이를 걷어차였던 것이 생각나서”

상상이 간다. 에스는 제법 권위주의적인데다 괴롭히는 걸 조금 즐기는 고약한 성격이니까. 그게 통하지 않는 데다 멋대로 아이 취급하는 그 유유자적한 태도에 짜증이 났겠지.

“유즈리하 군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없어. 솔직히 필요성은 못 느끼겠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심플하게 말하자면 불쾌해. 멋대로 애정을 품은 주제에 이쪽에도 같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지. 마치 그것이 의무인 것처럼. 그 외에도 같아. 사랑이란 스스로를 위한 행위. 자신의 이런저런 욕구 충족을 그저 사랑이란 이름으로 베풀어놓고는 그 보답을 당연하게 여기니까”

시도우의 눈동자가 측은해진 느낌이 든다.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당신이 불쌍하다,따위의 것일까. 이런 점이 미움받는 것일 텐데. 물론 그 사실을 알려줄 생각은 없다.

“딱히 비관적인 건 아니야. 실제로 사랑의 이름 아래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봐왔을 뿐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런가요. 하지만 유즈리하 군,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너무나도 정론이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은 익숙한 불쾌감으로 치환됐다. 코토코는 순간적으로, 다시금 알고 있던 사실을 상기했다. 이 남자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존재라서, 이 감옥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서,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역겨웠다.

사랑만이 사람을 살게 한다면, 사랑을 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는 마치 오류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물론 그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감정의 섬세함이라는 단어가 결여된 것처럼 이따금 이런 불쾌감을 치밀어오르는 데에는 선수였다.

도대체 사랑만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구는 머저리들은 도대체 언제쯤에서야 그 착각에서 벗어날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지금까지의 스스로는 지워버려, 반드시 변화를 촉구하고 사람을 어디까지고 멍청하게 만든다.

“당신의 그 사랑이 대상에게 불쾌할거라 생각한 적은 없어?”

시이나 마히루처럼, 애정을 품고 행한 사랑이 얼마든지 무기가 되어 사람을 옥죄고, 종국에 가서는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스스로의 감정과는 상반된 결과를 낼 수도 있고, 통제 불능이며, 누군가의 사랑에 휘말린 자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 하지만.. 네,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은?”

유창하게 열리던 시도우의 입이 닫혔다. 코토코는 시도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마치 놀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윽고 표정이 굳어진다. 입꼬리의 미소가 사라지고, 가지고 있는 표정이 드러난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은 죄악감인가? 아니면 그런 죄를 저질러가면서까지 살리고자 했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윤리마저 외면하게 했던 사랑했던 상대인가. 어느 쪽이든 이제 와서 변하는 것은 없다.

코토코는 대부분의 죄수의 죄를 진즉에 눈치챘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죄의 조사는 자신의 판단을 위해서지, 자랑이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코토코도 사람이다. 화가 나면, 상대의 약점부터 입에 올리고 본다는 뜻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도, 당신은 똑같이 행동하겠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그 상대만을 위해서”

코토코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역겨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위선자. 평소에는 옳은 소리만을 해대겠지.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인간을 죽여선 안 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 것들을 성인군자처럼 말해대는 주제에 정작 상황이 닥치면 자신이 했던 무수한 말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는 자신만을 위해 행동해.

그런 녀석이 어른 행세 따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로. 냉정하고, 침착한, 그럼에도 애정을 품은 듯한 그 눈동자는...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어.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가려버리는 경우도 허다하지. 사랑이라는 방패로 그 아래에 있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일축해 버려. 법률, 상식, 윤리, 그 모든 것들을 제치고 단숨에 절대적 잣대가 되어버리지. 지금까지의 자신을, 자신의 가치관을 전부 부정해도 상관없다는 식이 되어버려”

시도우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얼굴에 분노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적 성숙의 증거라고는 볼 수 없다. 감정 조절이 서투른 인간일수록 그 표출을 억제함으로써 균형을 잡으려는 법이니까.

물론 시도우의 그것은 완전히 그것과 닮아있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우가 겉으로 완전히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상적인 어른은 될 수 없어.

“사랑이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 또한 사랑이야. 누군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특별 취급하고, 그 외의 사람을 단순한 엑스트라로 만들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일을 그 사람을 애정한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돼. 상처 입고, 미움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기대해 버려. 그 기대가 보답받을지조차 알 수 없는데. 그걸 이용해서 제 이득을 취하는 자도 있어. 사랑이 숭고해? 아니, 사랑은 흙탕물 같은 거야”

코토코는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짓눌렀다.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화에 휩쓸리는 인간 따위는 되고 싶지 않으니까. 울화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가 없다. 마치 에스에게 분노했을 때처럼. 아니, 달라. 그때는 에스에게 분노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은 시도우가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 화가 난 거지?

“유즈리하 군. 당신은...... 역시 누군가를 사랑했나요?”

“하?”

“하지만 지금 당신은...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이 감정이 사랑?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랑일 리 없다. 이런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터질 것처럼 뛰는 이 심장의 박동이 사랑이라고?

“무슨...”

“정말로 아닌가요?”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게 묻는 시도우에, 코토코는 당황했다. 그 때문일 것이다. 당황해서, 지금 이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일 테니까.

마치 말라 죽어버린 식물처럼 명도가 낮은 갈색 머리카락,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인데도 불구하고 가끔 빛이 비치면 푸른 눈으로 보이는 듯한 그 눈동자는...

“유즈리하 군?”

시도우에게서 상대의 모습은 비춰본 코토코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겨우 한 걸음.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망쳐본 적 따위 없는데. 그런 스스로에게 드는 혐오감보다도 뭔가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아닐 것이다. 이건 단순히 흔들다리 효과에 불과해. 교감신경의 흥분상태에서 활발하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때문이야. 실제로 재난 상황이 닥치면 오늘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도 남다른 유대감을 형성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극한 상황에서는 되려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타인의 안전이 곧 내 안전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거다.

살인자뿐이고, 폐쇄적인 감옥 내에서 유일하게 정을 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지. 그래서 애정을 줘버리고는 그에 대한 작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몰라. 사고가 일시적으로 뒤틀린 것이 틀림없어.

하물며 이건 애정이라기보다는 그저 동질감, 그것에 가깝다. 나의 사상을 가장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이 장소에 대한 감정을 그 녀석에 대한 감정으로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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