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모모세 아마네.] 감기

해피버스데이.

모모세 아마네의 일상은 밀그램에 와서도 그다지 변하는 건 없었다. 머무는 곳이 바뀌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과, 간혹 있는 심문을 제외한다면 다를 건 없었다. 그렇기에 아마네는 아침 6시에 자고 21시에 잠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할 뿐이었다.

분명 그럴 텐데…. 아마네의 몸은 오늘따라 어쩐지 무거웠다. 물 들어간 솜처럼 움직이기가 힘들고 그냥 이대로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을 넘기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랐고, 규칙적인 생활을 깨트릴 수는 없었다.

아마네는 그저 피곤한 것으로 판단하고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서 식당에 갔지만, 가서도 오늘따라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깨작거리는 건 눈에 띌 테니까, 미소를 지으면서 규칙적으로 입에 넣어서 씹고 삼키는 것을 반복했다. 맛이 잘 안 느껴지지만 먹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주위의 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나쁘니 오늘은 식사를 끝내고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 누군가에 손이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뭐지 싶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것은 카지야마 후우타였다.

"……어이. 너 괜찮냐?"

그는 나를 꽤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표정인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표정은 문제가 없을 텐데. 음식을 먹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린 게 티가 난걸까?

"…네? 괜찮습니다."

물론 이곳은 꽤 눈치 빠른 자들이 많으니, 누군가 내 몸 상태를 눈치챌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가 눈치채고 내게 묻는 건 예상외였다. 타인의 차이를 저 사람이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식사하는데 카지야마 후우타의 시선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지?

이상해서 뭔가 더 용무가 있냐고 여쭤보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에 손이 내 이마를 잡았다. 장갑에 서늘한 그 감촉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다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아아, 아마네. 역시 열이 나잖아요."

"...시도우 씨?"

언제 온 거지? 평소라면 걸어오던 때 눈치챘을 텐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몸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네는 이마에 닿아있는 손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뻔한 것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상황으로 보면 키리사키 시도우는 나를 걱정을 해주는 것이니 지금 이 손을 내치면 내가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먹는 것에만 집중해서 몰랐는데, 주변 시선이 이상할 정도로 이쪽에 쏠려 있었다. 거기다 관심이 없던 이들도 키리사키 시도우 때문에 이쪽을 보고 있었고.

"열…. 말입니까?"

어쩐지 몸이 무겁다 싶더니 감기라도 걸린 건가. 저번에 스프링클러가 고장 났을 때, 물을 맞았던 게 원인일지도 몰랐다.

우비를 입기는 했지만 그전에 쫄딱 맞아버렸고, 그 상태로 토낭을 옮겼으니까. 무리를 한 걸지도 몰랐다.

정말이지. 미성숙한 육체는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높은 곳은 못 올라가고, 힘도 부족하고, 체력도 없으니까. 얼른 자라면 좋을 텐데…….

아니. 아니. 나는 지금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해봤자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나는 왜 지금 이런 불평을 하고 있는 거지.

으음. 어쩐지 정신이 몽롱했다. 거기다 뭔가 식당이 춥지 않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생각해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괜-은 건-."

키리사키 시도우가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말하는 것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도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드문드문 끊겨서 들려왔다.

뭐라고 하는 거지? 이제는 시야까지 흐릿해져서 나를 쳐다보는 건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픈 티를 내면 안 되는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 도저히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프면 안 된다. 네가 아픈 건 신앙이 부족해서야.

아버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그래. 이렇게 아픈 건 신앙심이 부족해서다. 신님을 정말 열심히 믿었다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겠지.

이곳에 오고 나서 저도 모르게 신앙심이 약해져 버렸나 보다. 역시 아직 나는 부족하구나.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나에게 벌을 내리셨겠지.

"아마네?"

그 순간, 시야에 초점이 돌아오면서 키리사키 시도우에 얼굴이 가득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하던 몸을 멈췄다.

나를 보는 키리사키 시도우에 눈에는 걱정과 호의 같은 감정들이 눈에 들어와 있었다. 그 푸른 눈을 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났다.

평소라면 적당히 괜찮다고.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사라졌을 텐데, 이번에는 그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런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려고 하는데, 시야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말을 멈췄다. 어라. 이상하네. 눈앞에 있는 키리사키 시도우의 얼굴이 두 개로 보였다.

그런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의외로 멀리서 지켜보던 유즈리하 코토코였다. 상태가 이상한데.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주변에서 나를 보고 있던 키리사키 시도우였고, 가까이에 있던 카지야마 후우타와 카야노 미코토는 놀란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사쿠라이 하루카가 시끄럽게 히익!! 하며 비명을 지르고, 시이나 마히루가 다가왔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이 이쪽을 바라봤으니까.

"아마네!"

음. 아마 키리사키 시도우가 크게 소리쳐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쪽이 귀가 울릴 정도로 컸으니까.

아니. 내가 갑자기 쾅 하고 쓰러져서 그랬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언제 쓰러졌더라. 나. 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러 사람을 바라보면서 모모세 아마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도저히 끝없이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는 부디 이 고통이 사라졌기를 바라면서, 모모세 아마네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이건 신앙심이 부족한 너의 대한 벌이다.

그건 지금처럼 아팠던 옛날, 감기를 심하게 앓을 때 일이었다.

학교에 가야 하던 날,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침대에 누워 있느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픈 것을 들켰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보며 아버지는 내가 아픈 것은 신앙심이 부족한 것 때문이라면서, 팔을 잡아당겨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벌을 주셨다.

그 벌을 받고 나서는, 감기 때문에 몸이 약해진 것 때문인지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더 심하게 앓았다. 아니면 그 고통조차 내게 내려진 벌이었던 걸까.

아버지는 견디라고 말하며 학교에 보내셨고, 나도 신앙심이 부족한 스스로가 한심했고, 괜한 참견으로 걱정을 받기도 싫었기에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지금보다 어렸고, 몸 상태도 더 나빴으니 결국 들켰지만. 괜찮다고 계속 말하니 결국 학교 선생도 포기하고 내버려두었다.

그 감기는 금세 낫지 않고 며칠 동안 계속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하고, 아직도 안 나은 건 신앙심이 부족한 거라면서 벌을 꽤 받았었다. 그때는 몸이 아픈 것보다, 쉬지 못하는 것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실망하게 한 자신이 속상할 뿐이었다.

그 순간, 눈을 뜬 모모세 아마네는 누워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머니보다 키가 큰 것을 보면 아버지려나. 아파서 벌을 내리고, 이렇게 보고 계신 것을 생각하며 귀찮게 해드린다는 죄책감에 사죄를 하기 위해 입을 넣었다.

"죄송…합니다. 죄송…."

몽롱한 정신 때문에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은 모모세 아마네는, 살짝 쉰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죄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맞는다. 그 생각에 모모세 아마네는 눈을 꾹 감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채를 잡지도, 주먹을 날리지도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다정함에 어쩐지 당혹스러웠지만, 그것보다 기쁨이 컸다. 내가 제멋대로 생각하는 거지만 어쩐지 괜찮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열이 많아서 그런가? 아버지의 손이 시원하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비볐다. 시원한 게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

모모세 아마네는 손을 뻗어 가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그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이러다가 또 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모모세 아마네는 지금 느껴지는 이 다정함에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모시 아마네에 그 기대가 통한 걸까. 잡힌 손을 내버려두신 아버지는 반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얼핏 푸른 눈동자를 본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눈동자는 푸른색이 아니기에 잘못 본 것이라고 결론을 지은 모모시 아마네는 잘 자라고 말하는 듣기 좋은 미성을 들으면서,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을 느끼면서, 모모세 아마네는 다시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으음."

모모세 아마네는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며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에는 이제는 익숙해진 밀그램에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땀으로 가득 젖은 옷에 일어나자마자 모모세 아마네는 찝찝함에 사로잡혔다. 무슨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꿈을 생각하는 것도 잠시,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면 뭔가 주변에 보이는 물건이 많아졌지만, 자신의 방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쓰러졌었지. 누군가 자신을 옮겨준 모양이다. 의식을 잃기 전에 뭔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정신이 몽롱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키리사키 시도우가 이마를 만졌던 것 같기는 한데…. 이마?

-아아, 아마네. 역시 열이 나잖아요.

-아마네?

-아버지….

스쳐 지나간 지난날의 기억들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키리사키 시도우가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고? 거기다 아픈 게 뭐가 그리 자랑이라고 드러내고 쓰러지기까지 한 거지.

거기다 열이 올랐던 나머지 여러 가지 실수를 한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어딘가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려던 때, 끼익-. 하면서 방에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일어났어?"

눈을 마주치자 웃어주던 시이나 마히루는 체온계나 여러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어디에 쓸 건가 싶었는데 바로 내 귀에 꽂아버렸다.

삐빅. 체온계에서 소리가 나면 시이나 마히루가 자신의 앞에 가져다 댔다.

"응.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네~"

"열이 났었군요."

어쩐지 추워지면서 몸이 떨리더니, 열이 심하게 났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해서 멀쩡하다고 판단하며 침대에 내려오려고 했는데, 시이나 마히루가 나를 붙잡았다.

"자, 자, 아직 누워있어~ 방금까지 심하게 앓았었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시이나 마히루는 그릇을 가져왔는데, 안을 보니 죽이 담겨있었다. 식사는 아닐 텐데, 요리사가 만들어준 것 같았다.

먹으면 안 되는 것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릇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시이나 마히루는 미소를 지으면서 숟가락에 죽을 조금 퍼서 이쪽을 향해 내밀었다.

"자, 아~"

몸 상태는 꽤 좋아져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먹을 수 있었지만, 시이나 마히루와에 호의를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르고, 쓰러지기까지 했었으니, 보통은 걱정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며 순순히 받아먹었다.

자극이 적고 목 넘김이 수월했기에 꽤 괜찮다고 판단하며 입을 열어 계속 받아먹었다.

그러고 보면 중간에 깼을 때 그 다정한 손길은 시이나 마히루였던건가. 익숙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돌봐준 것 같고.

솔직히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에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었고, 여자 손인지 남자 손인지 기억이 나지 없었다.

그게 현실이라면 과연 누구였을까 생각하는 사이 그릇에 담긴 것을 전부 먹었다. 양이 적지는 않았지만 아까 제대로 먹지 못해서 배고팠던 것 같다.

적당히 찬 배에 만족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어쩐지 옆에서 자꾸 눈치를 봤다. 뭘까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시이나 마히루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있지. 아마네 짱? 열은 내렸으니까 괜찮으면 잠시 따라와 볼래?"

그 말을 듣자, 뭐지 싶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고,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표정이 환해진 시이나 마히루는 내 손을 잡고 방을 나오면서, 걸음 속도를 맞춰주며 천천히 걸었다.

깨어나자마자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가 했더니 그 발걸음이 멈춘 곳은 생각지도 못한 식당이었다. 이미 식사했으니 밥을 먹으러 온 건 아닐 텐데. 왜 이곳에 온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이나 마히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식탁에 이런저런 음식들이 놓여 게 보였다.

내가 잠들고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었다. 벌써 점심이나 저녁때인 건가? 하지만 음식의 양은 10명이 먹기에는 꽤 많았다.

"오늘 식사는 화려하군요."

무슨 날이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에 시이나 마히루를 바라보는데, 그녀의 뒤로 밀그램의 일원들이 모여있었다. 거기엔 간수와 토끼도 함께였다.

"하나둘 셋! 생일 축하해. 아마네!"

"…생일?"

"오늘 생일이잖아. 아마네 짱!"

내가 생일을 말했던가? 그 말에 기억을 돌이켜보니 하나 예상이 가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 생일을 물어볼 때, 어머니께서 이맘때쯤이라고 하셨던 것을 떠올리며 답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생일을 축하한다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그러는 건 들어봤지만, 스스로는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난 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에 굳이 말하고 다니지도 않았고 말이다.

지금 보자 주위의 음식은 자신도 먹을 수 있게 야채가 가득한 음식들이 사이사이에 놓여있었다. 그건 저를 위한 배려인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그것에 모모세 아마네는 신기함을 느꼈다. 본인 자신도 남이나 자신의 탄생일에 관심이 없었기에, 저들이 타인의 생일에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그걸 말할 수는 없었기에, 모모세 아마네는 미소를 띠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생일 축하는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고 모모세 아마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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