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찰나와 영원에서
카이멜 시레노바 x 리비에르 시라
우리는 어느 영원에서 만나 헤어진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곧 영원이고, 삶이란 끝없는 머무름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하나둘 떨어진 별처럼, 별자리라는 연결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홀로 떠돈다.
반복되는 시련과 시험 사이에서 남는 건 떠나갈 이들뿐이다. 우리에게 인연이란 맺어지지 않을 약속이고, 사그라들 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나 늘 다시 돌아와 만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별처럼 빛을 발하며.
우리는 어느 찰나에서 헤어져 재회한다.
우연은 찰나의 순간이고, 운명은 그를 사로잡는 기회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다. 찾아갈 항구가 남지 않은 기약 없는 여행자고, 단단한 땅에 발 디딜 수 없는 방랑자다.
그 바다의 물살에 몸을 맡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본다. 거울처럼 우리는 서로를 눈동자에 비춘다.
항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같다. 각자의 배는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에게 돌아오는 주기가 짧아진다. 호의를 담은 돛을 올리고.
우리는 죽음을 안고 내일을 기약한다.
허상 된 공간과 벗어나지 못하는 경계 속에, 우리는 두 번째 생을 살아간다.
기다림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고, 남겨짐 또한 우리의 짐이다. 우리의 안녕은 담담하며 결코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다시 보자는 말을 입에 담는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많은 이별을 뒤로하고, 조금 더 밝아질 내일을 기대한다.
안녕은 이별을 기리는 애도다. 또한, 안녕은 재회의 서약을 지켰다는 증거다. 갈림길의 끝에 교차점이 있으리라 믿고 걷는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안녕을 고한다.
우리는 기억에 서로를 귀속한다.
추억은 과거를 그리는 그리움의 유물이고, 우리는 세월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감정은 사치고, 요구되는 냉정 속에 순수한 애정을 담을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표정은 다를지라도 유사한 흔들리지 않는 가면을 내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곁에 머무르며 현재를 살아감을 느낀다. 서로에게 독이 될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거절할 수 없다.
떠나간 과거는 간직한다. 동시에 지금을 이루는 생을 귀히 여긴다. 불투명한 미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모든 시간을 아울러 우리는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
우리에겐 찰나의 기쁨도, 영원한 행복도, 온전한 삶도 죽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에 구속되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찰나를 살고, 영원을 견디며, 함께한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았음에 위로받는다.
우리는 어느 찰나에서 서로를 만났다.
그리고 영원을 약속했다.
Written 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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